얍!마법천자문의 ‘출판마법’이닷
[한겨레] 한자 학습만화 <마법 천자문>이 출판 시장에 ‘마법’을 걸었다.
출판사 북21의 계열사 아울북이 펴내는 <마법 천자문>은 2003년 11월 첫쨋권이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 12권이 나와 나와 600만부가 팔렸다. 만 3년 만에 거둔 이런 성적은 학습만화 시장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원복씨의 <먼 나라 이웃나라> 시리즈가 1천여만부 팔린 것으로 알려졌지만 20년에 걸친 장기 성과여서, 매출 속도에서 <마법 천자문>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먼나라 이웃나라’ 20년간 1천만부
<마법 천자문>의 출판 마법은 파생 상품의 다양성에서도 확인된다. <퀴즈 천자문>을 비롯해 모두 7종이 나왔으며, 캐릭터 시장에서도 호응을 얻고 있다. 하나의 원료에서 여러 가지 상품을 파생시키는 ‘원 소스 멀티 유스’의 실례라 할 만한다. 아울북은 <마법 천자문> 시리즈와 파생상품만으로 올해의 경우 지금까지 매출액 120억원을 달성했으며 연말까지는 그 액수가 135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마법 천자문>의 이런 놀라운 성공은 어디서 비롯한 것일까. <마법 천자문>을 기획한 김진철 북21일 상무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흥미와 학습을 효과적으로 결합할 방안을 꼼꼼히 세웠는데, 그게 먹혀든 것 같다”고 말했다. 일례로, <마법 천자문>은 1권 출간 때부터 ‘한자 카드’를 끼워 판매했는데, ‘포켓몬’이나 ‘디지몬’ 같은 게임용 카드가 어린이들 사이에서 대유행한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김 상무는 말했다. 게임용 카드의 장점을 빌려 학습용 카드로 만든 것이 호응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부가 요소보다는 책의 내용이 이 시리즈의 성공을 부른 직접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기존 학습만화가 만화와 학습이 서로 분리돼 ‘만화 따로 학습 따로’였던 것과는 달리, <마법 천자문>은 만화와 학습을 유기적으로 조직했다. ‘한자 익히기’라는 학습 목표를 이야기의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배치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김 상무는 “학습과 만화를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데 <마법 천자문>이 그 난관을 뚫고 학습만화의 지평을 열었다는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야기 자체의 힘도 <마법 천자문>에 탄력을 주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만화들이 통상 ‘선악 이분법’의 틀에 갇혀 악은 악으로, 선은 선으로만 묘사하는 데 반해 <마법 천자문>은 등장인물의 평면적 성격을 깨뜨렸다. ‘혼세마왕’과 같은 악당도 나름의 자존심과 행위원칙을 지니고 있으며, ‘토생원’ 같은 캐릭터는 악의 편과 선의 편에서 갈등하고 동요한다. 또 아무리 악한 존재라 하더라도 타고난 악마라기보다는 욕망 때문에 악에 물든 존재이고 그런 만큼 개심의 가능성이 있는 존재다. 이렇게 입체적 성격을 지닌 등장인물이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어린이용 만화들이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내용 때문에 부모들의 반감을 사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마법 천자문>은 이런 함정도 피해갔다. 선과 악의 무리가 대결하는 이야기인데도 무기를 써서 신체에 해를 가하는 ‘폭력적 장면’이 없다. 등장인물들은 육체적·정신적 힘을 쓰지만 어디까지 간접적인 타격으로 그친다. 비어나 속어와 같은 비교육적인 말을 쓰지 않는 것도 이 만화가 나름의 윤리적 원칙을 지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법 천자문>의 윤리 교양적 측면은 한자 자체를 설명할 때도 드러난다. 가령, ‘믿을 신’(信)이 등장할 때, 사람 사이에 믿음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큰 힘이 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한자의 뜻과 그 가치를 동시에 익힐 수 있도록 했다.
<마법 천자문> 집필 작업은 만화가 김규홍씨가 혼자서 도맡아 하고 있다. 1권부터 5권까지는 출판사와 작가가 이야기 구성을 공동으로 했지만, 6권째부터는 기본 줄거리만 제공해주면 김규홍씨가 이야기를 스스로 구성하고 그림을 그리는 식으로 작업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리즈 한 권이 나오는데 최소 넉 달이 걸린다고 출판사 쪽은 밝혔다. <마법 천자문>은 이달(12월)에 13권이 나올 예정이며 내후년까지 모두 20권으로 완간된다. 한 권당 새 한자 20자씩 익히도록 짜여 있으므로, 시리즈 전체로 치면 400자의 기초 한자를 익히는 셈이 된다.
내후년까지 20권 완간 계획
<마법 천자문>은 유치원생에서부터 초등학교 4~5학년까지 폭넓은 독자군을 확보하고 있다. 한자를 새로 배우려는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중에도 독자가 있다고 한다. 김 상무는 “우리말의 70% 정도가 한자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말을 제대로 알려면 한자 공부는 필수”라면서 “아이들이 한자를 공부하면서 새로운 경로로 우리말에 접근하고 우리말을 분석적으로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독자들의 반응은 출판사의 이런 설명을 확인해준다. 한 독자(아이디 효은이) “자칫 어렵게 생각되는 한자를 놀이로 알게 해준 책에 대해 고맙다”며 “(아이가) 지금은 책에 나오는 한자뿐만 아니라 다른 한자도 많이 알고 관심도 많다”고 밝혔다. 또 다른 독자(아이디 ellishyon)도 “아이들이 공부를 놀이처럼 할 수 있다는 건 부모들이 가장 바라는 게 아니겠냐”며 “아직 한글도 모르던 아이가 한자와 함께 한글 원리를 깨우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퀴즈·놀이북·DVD·뮤지컬…끝모를 ‘마법 시리즈’
<마법 천자문>의 파생상품은 지금까지 7종이 나왔다.
제일 먼저 나온 것이 <마법천자문 한자 연습장>이다. <마법 천자문>이 한 권씩 출간될 때마다, 새로 등장한 한자 20자를 반복 학습할 수 있도록 한 보조 책자다. <한자 놀이북>은 <마법 천자문>에 나오는 한자를 놀이하듯이 한번 더 익힐 수 있도록 짜였는데, 10권이 출간됐다.
지금까지 5권이 나온 <퀴즈 천자문>은 ‘한자’를 ‘한자어’로 이어주는 다리 구실을 하는 책이다. 퀴즈라는 흥미로운 형식을 통해, <마법천자문>에서 배운 개별 한자들을 한자어 단어로 확장해 이해하도록 해준다. 예를 들어, ‘무거울 중(重)’을 익혔으면 ‘경중(輕重)’을 통해 ‘가볍고 무거움’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마법 급수 한자>도 이 시리즈가 낳은 파생상품이다. 8급부터 5급까지 4종에 걸쳐 9권이 나왔다. 한자 급수 시험 대비용 책이다.
<마법 천자문 비밀의 사전>은 가장 최근에 나온 상품이다. <마법 천자문>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과거와 배경, 그 인물들의 관계도 등을 알려주는 책인데, <마법 천자문> 열성독자들을 위한 일종의 ‘팬 북’이다. ‘팬 북’은 만화 강국인 일본에서는 특정 만화의 배경과 인물의 역사를 알려주는 팬북이 널리 퍼져 있는데, 이번에 <마법 천자문>에서 그 아이디어를 차용했다.
<마법 천자문>은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됐다. 1~5권 내용을 동영상으로 만든 것인데, 시디나 디브이디로 구입할 수 있다. <마법 천자문>에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의 라이선스 판매도 올해부터 시작했다. 김진철 상무는 “주인공인 손오공뿐만 아니라 혼세마왕 같은 악당도 아이들이 좋아한다”며 지금까지 4~5억원어치 라이선스 계약을 했다고 밝혔다. 이밖에 ‘마법 천자문 뮤지컬’도 제작된다. <마법 천자문> 시리즈 내용을 그대로 뮤지컬로 옮겨 내년 초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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