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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선조를 본받아 한국교회 부흥의 역사를 세우자”

북코치 2006. 8. 4. 06:55

“신앙선조를 본받아 한국교회 부흥의 역사를 세우자”

최초의 순교자 토마스…최초의 성경번역자 이수정


▲ '토마스 목사전(유해석/생명의말씀사)'과 '한국 기독교 선구자 이수정'(김수진/진흥)
올해는 전국 곳곳에 성령의 불길을 붙였던 평양대부흥운동이 꼭 100주년 되는 해이다. 초기 한국교회는 독립운동, 민주주의 사수 등 국권 회복과 사회정의 실현에 앞장서며 복음을 전해왔다. 100주년을 맞이해 그때의 신앙선조들을 본받아 다시 한 번 한국교회에 부흥의 불길을 꽃피우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평양대부흥운동은 길선주목사에 의해 시작됐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기독교역사는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누구에 의해 성경이 전해졌을까? 최근 출간된 두 권의 책을 통해 궁금증을 풀어보고 한국교회의 새로운 100년의 청사진을 계획해 보자.


조선 최초의 선교사


‘대동강가에 떨어진 한 알의 밀알 토마스 목사전(유해석 저/생명의말씀사)’은 조선 땅 최초의 기독교순교자인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 선교사를 조명하고 있다.


토마스 선교사가 국내 선교를 준비하고 있을 당시 조선은 천주교의 금암령과 함께 흥선 대원군의 병인박해가 일어난 때로 외국인 특히 전도를 목적으로 하는 선교사에게는 목숨이 위험한 시기였다.



▲ 조선 최초의 선교사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
우여곡절 끝에 토마스는 영국의 상선 제너럴 셔먼 호에 오르게 됐으나 육지에 닿기도 전에 제너럴 셔먼호는 조선의 병사들로부터 공격을 당했고, 결국 불길에 휩싸이게 된다. 이때에도 토마스 선교사는 상선에서 ‘예수, 예수, 예수’를 외치며 성경과 기독교서적들을 밖으로 던졌다. 배에서 끌려 내려와 죽음을 앞둔 그는 자신을 죽이려 하는 병사에게 마지막 남은 성경책 한 권과 함께 복음을 전하며 27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꿈꾸던 사역을 펼쳐보기도 전에 생을 마감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복음을 전하고자 했던 그의 열정과 그가 조선 땅에 남긴 성경은 많은 조선인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와관련 유해석선교사는 “그가 가지고 온 성경에 의해 초기 한국 개신교회의 신자들이 생겨났다”며, “오늘날 한국교회가 세계 여러 교회에 복음주의 신앙의 모델로 제시되고 있는 것은 초창기부터 바르게 세워진 성경에 기초한 신앙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최초의 한글성경 번역자


‘한국 기독교 선구자 이수정(김수진 저/진흥)’은 조선인 최초로 한글성경을 번역하고, 일본에 머무르면서 한국선교를 준비하는 외국인 선교사에게 조선어를 가르치는 등 국내복음 선교에 큰 공헌을 이룩한 이수정에 대한 기록이다.


새로운 농사법을 연구해 농업조국의 미래를 개선하기 위해 고종의 특별배려로 신사유람단을 따라 일본 유학길에 오른 그는 기독교인이었던 농학자 츠다박사와의 만남을 통해 기독교를 받아들인다.



▲ 조선 최초의 성경번역자 '이수정'
국내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무엇보다 성격번역의 시급성을 인식한 그는 직접 마가복음서를 번역하고, 미국교회에 국내 선교사 파송을 요청하기도 했다. 덕분에 일본을 통해 국내에 들어온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 초기 한국 복음 선교사들은 이수정에게 한글로 번역된 성경을 받아들고 국내에 들어와 선교활동을 펼쳤다. 


이후 그는 신약성서 마태전 마가전 등 성경번역과 함께 동경에 유학 온 한국유학생들과 교포들을 전도하며 교회를 창립했다. 그러나 당시 정치적 상황과 기독교에 배타적이었던 조선정부에 의해 순교했다고 알려져 있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이 땅에 더 많은 믿음의 씨앗을 뿌린 토마스 선교사와 이수정 선교사. 우리나라에 최초로 복음을 전하고, 우리말 성경 번역을 했던 두 신앙선조들의 뜻을 이어받아 새로운 한국교회 부흥의 역사를 일궈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