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비를 잃어버린 삼족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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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중국 측의 동북공정에 대한 반발이라는 시류를 타고 민족주의적 색채가 짙은 '강대한 고구려' 관련 TV드라마가 범람하고 있다. 3개 공중파 방송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고구려에 뛰어들어 경쟁을 벌이고 있다. MBC '주몽'과 KBS1 '대조영', SBS '연개소문'이 그들이다.
고구려 고분벽화 전공인 울산대 전호태 교수는 "저런 드라마를 볼 때마다 과연 우리가 중국더러 역사 빼앗기 공작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런 생각이 든다"고 말하면서 "우리가 더한 것 같다"는 말도 덧붙인다. 역사를 왜곡하기란 피장파장이라는 뜻이다.
그런 대표적인 증거 중 하나가 '삼족오'(三足烏). 태양 속에 산다는 세 발 달린 까마귀라는 신화 속 이 동물이 이들 드라마에서 고구려의 마스코트처럼 등장한다. '주몽'의 경우 아예 드라마 시작과 마침을 알리는 화면을 삼족오로 채운다.
심지어 '대조영'에서는 연개소문이 이끄는 고구려 군대 깃발에서 삼족오가 발견된다.
이렇게 보면 삼족오는 가히 고구려의 전매특허품이며, 나아가 그것을 국가와 왕실의 각종 상징물로 삼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유발한다.
이런 '삼족오=고구려' 구도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을까?
동아시아 천문사상사 전공인 동북아역사재단 김일권 박사는 삼족오를 내세우는 구도를 "짝 잃은 기러기나 다름없다"고 비판한다.
그 근거는 이렇다. 신화라든가 벽화 등지에서 삼족오가 단독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삼족오는 항상 태양(해)과 연동된다. 태양은 낮을 주관하는 천상의 최고신이기는 하지만, 세상에는 태양이 지배하는 광명만이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낮이 있으면 밤이 있기 마련이다. 밤을 지배하는 천상의 최고신은 달이다. 물론 은하수로 대표되는 무수한 별이 있기는 하지만, 해가 없는 어둠의 하늘을 지배하는 최고신격은 달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항상 삼족오가 자리 잡은 태양 맞은편에는 달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실제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그렇다. 안악3호분이라든가 덕흥리 고분벽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들 두 고분에서 삼족오의 태양은 무덤방 천장 동쪽에 자리 잡고 그 맞은편 서쪽에는 어김없이 달이 발견된다.
태양과 달을 각각 동쪽과 서쪽에 배치하는 까닭은 음양오행설에서 기인한다. 이에 의하면 동쪽은 양(陽), 서쪽은 음(陰)으로 인식된다. 나아가 남성인 태양에 견주어 달은 여성으로 인식된다.
남쪽과 북쪽 또한 각각 음양 대치 구도를 이루지만, 태양과 달은 모두 동-서로 하늘을 횡단하기 때문에 남북으로 배치될 수는 없고, 각각 동쪽과 서쪽에 위치한다.
따라서 삼족오는 드라마처럼 단독으로는 어떤 상징물로 결코 활용할 수 없다. 삼족오를 살리고 싶다면 반드시 달을 표현해야 한다.
한데 고구려 고분벽화는 물론이고 비슷한 시대 중국의 고분벽화 등지에서도 예외 없이 달 속에는 두꺼비라는 양서류 동물이 등장한다. 경우에 따라 이 달 속에는 두꺼비 외에도 불사약을 돌절구에서 빻고 있는 토끼가 같이 묘사되기도 한다. 하지만 삼족오 하나만 들어앉은 태양에 견주어 두꺼비-토끼를 모두 표현하게 되면 달이 복잡하게 표현되는 까닭에 대체로 두꺼비 하나만 표현하기도 한다.
덕흥리 고분과 안악3호분 벽화도 이에 해당한다.
삼족오를 활용한 태양, 두꺼비가 들어앉은 달이라는 '양자 구도'는 기원이 어디에 있을까? 우리의 통념과는 달리 그 기원은 분명 지금의 중국대륙이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중국'이 지역적인 개념이긴 하지만, 그런 신화가 생성되고 발전하고 유행한 문화권이 지금의 중국대륙임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 무수한 문헌자료와 고고미술품들이 증명한다.
고구려라는 나라가 건국되기도 전에 삼족오와 두꺼비 모티브는 지금의 중국대륙에서 유행했다. 주의할 것은 고구려 태동 이전 이런 해-달 신화가 성행한 곳이 중국 대륙 중에서도 지금의 양쯔강 중심 강남 남방문화권이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늦어도 기원전 200년 이전에는 완성되었을 전국시대 초나라 문화권의 문학작품인 천문(天問), 기원전 120년 무렵 편찬된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의 회남자(淮南子), 1972-74년 중국 후난성(湖南省) 창사시(長沙市) 마왕퇴(馬王堆) 전한(前漢)시대 무덤 출토 백화(帛畵) 등, 삼족오-두꺼비 구도가 발견되는 초기 문헌과 고고미술자료 모두가 남방문화권이라는 사실은 이 신화가 강남문화권을 모태로 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남방문화권은 황하 유역 중화문화권의 시각에서는 동이(東夷)인 고구려나 마찬가지로 오랑캐가 사는 미개한 남쪽 지역으로 간주하곤 했으며, 그래서 이들을 남만(南蠻)이라 일컬었다.
그런 점에서 삼족오-두꺼비 신화가 중국문화의 산물이니 아니니 하는 주장 또한 중화문명 중심주의적인 사고라는 틀을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건 고구려에서 도입해 활용했다면 고구려 문화의 요소라고 보아야 할 것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한데 삼족오와 두꺼비가 대표하는 신화상징은 중국대륙이나 고구려 문화권은 물론이고 신라, 백제에서도 발견된다.
무령왕릉 출토 허리띠에서 확인되는 두꺼비 문양, 신라 적석목곽분에서 자주 출토되는 각종 동물 토우 중의 두꺼비 등은 삼족오-두꺼비 신앙이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고구려만의 전매특허가 결코 될 수 없음은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심지어 일본열도 고대문화에서도 이런 요소가 더러 발견된다.
따라서 삼족오-두꺼비는 고구려만의 신화상징이 결코 될 수 없으며 동아시아 문화권의 공통의 유산이라고 보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끝)
[ 기사제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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