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소출판사들의 미래는 과연 있는가 '도서정가제'라는 유령이 한국의 출판계를 배회하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 유령은 검은장막으로 제 얼굴을 가린 채, 한 손에는 '할인'의 칼날을, 다른 한 손엔 '경품행사'란 총을 든 채, 쿠폰모자를 뒤집어쓰고 밤마다 대한민국 중소출판사의 경영자 및 영업인들을 잠 못들게 만들고 있다. 유령이 출현해 한국 출판 유통 구조의 지각을 흔들어 대자마자 여기저기서 중소출판인들의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신간 10% 할인+쿠폰+경품’으로 무장한 유령을 무찌를 수 있는 것은 오직 ‘완전도서정가제=유령의 베일을 벗겨내는 것!’밖에는 없다고 여기저기서 떠들어 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유령은 출판계의 격정 섞인 불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현실에 발을 딛은 채’ 온라인 서점을 강타해갔다. 모든 책들이 완전도서정가제를 한다고 ‘니들이 만드는 책이 나갈 줄 알아?’하고 조소하면서, ‘경쟁력 있는 기획상품으로서의 도서’를 출간할 것을 경고한지는 오래되었다. 이 유령은 이미 과거 인터넷이 생겨나기 이전엔 출판계에서 잠자코 숨죽이고 있다가, 한국에 마트나 편의점이 활성화되기 전에는 역사의 저편에서 으르렁 거리며 숨죽이고 있다가, 역사가 변하고 출판시장이 변화되어 결국 자신의 위력을 드러낼 현실이 도래하자마자 ‘오랜 세월 출판의 구시대적인 패러다임에 안주하고 있던’ 중소출판사를 뒤흔들어 대고 있는 것이다. 도서정가제를 둘러 싼 우리의 현실은 이렇게 복잡하고, 두렵고, 난감하고, 갑갑하다. 하지만 우리가 똑바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갖고 있다면, 그리하여 현실을 제대로 직시할 수 있는 마인드를 갖게 된다면, 우린 ‘중소출판사들의 위기와 매출격감의 원인’은 사실 ‘유령’때문이 아니라 ‘변화하지 않고 있던 우리의 구시대적 출판 마인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변화하지 않는 구시대적 출판 마인드’가 사실은 급변하는 출판유통현실에 눈을 뜨지 못하게 만드는 ‘실제적인 망령’이다. 굳은살처럼 딱딱하게 박혀 있는 ‘현실을 애써 무시하려는 마인드’ 때문에 사실은 도서정가제라는 유령 탓만 하고 ‘매출격감’을 고스란히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서정가제가 제대로 실시되지 않기 때문에 책이 안 나가요 사장님.” “아, 그래? 그럼 완전도서정가제가 실시될 때까지 푸욱 쉬렴!” 오늘 날 중소출판사 영업인들과 사장님들의 가장 커다란 푸념이 된 듯한 저 말은 과연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의 진정한 영업인들을 보편적으로 대변해 줄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도서정가제라는 ‘유령’이 무엇이 무섭다고 ‘유령의 배후에 있는 출판사’에 불만만을 토로하면서 ‘완전도서정가제’ 실시만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가? 현실은 급변하고 근본은 변화하지 않는 것을! 자, 우리가 ‘가슴 속에 불가능에 대한 꿈’을 갖기 위해서는 ‘현실을 제대로 직시’할 필요가 있다. 앞 서 본 도서정가제의 유령은 이미 밝힌 대로 당신을 잠 못들 게 만들고 있다. 당신 회사의 사장님도 그 악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잠 못드는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다 보면, 그 해답은 사실 ‘도서정가제’란 유령에게서가 아니라 ‘변화하지 않고 있던 당신의 마인드’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도서정가제 완전실시란 사실 자본주의적 상품의 경쟁 법칙을 좌우할 힘이 못된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논의는 다음에 자세히 해보자). 1. 노는 사장님, 노는 영업자 - 일하는 사장님, 일하는 영업자 사실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를 통해 살펴보면, 작금의 출판계 현실은 과거 70년대 이후~80년대 후반까지의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 구조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다. 자본은 스스로 ‘증식’하고 ‘배를 불려서’ 눈덩이처럼 자신을 불려 나가는 본성을 갖고 있다. 과거 한국경제의 성장하던 기업자본이 ‘중소기업’이 하던 ‘다품종 소량생산’시스템에 까지 손을 대면서, 대한민국 중소기업을 위기로 계속 몰아갔던 그 살아 있는 한국경제의 우여곡절이 사실 ‘출판시장의 역사’가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거대 자본의 투입과 문어발식 출판 시스템의 확장은 ‘독점’을 낳는다. 이는 ‘시장을 독점’하고 ‘자본을 독점’하는 양상으로 가는 게 자본주의의 법칙이다. 웅진, 대한교과서, 대교의 거대 자본들이 ‘단행본’ 시장에 진출하는 건 첫째, 대기업이 문어발식 확장구조로 중소기업이 하는 일을 대신하여 중소기업에 위기를 가져온 상황과 동일히다. 둘째, 그 현실은 ‘임프린트’사의 확장으로 나타나고 있다. 셋째, 이 독점화는 ‘사람의 독점’으로 이어지는 데, 이미 훌륭한 기획편집자들을 싹쓸이 스카우트 하는 현실은 이를 반영한다. 대형출판자본의 시장독점화 현상은 이제 출판시장의 현실이 되었다. 그로 인해 출판계의 유통, 인력 등에도 지각변동은 시작되었다. 우수한 인재는 모두 거대자본 쪽으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거나 떠났고, 오래도록 중소출판사들이 치중해 온 기획의 분야에까지도 대형자본은 마수를 뻗치며 야금야금 시장을 갉아먹어 치우고 있다. 그러자, 중소출판사 사장님들의 한 숨 소리가 늘어갔다. 오래도록 7.8.90년대 초반까지의 오프라인 중심의 출판 경영에 익숙해 있던 사장님들은 ‘한국의 근대화 시절 대기업식 문어발 확장 시스템’으로 ‘중소기업이 피폐’해져 가던 식으로 급변하는 ‘출판시장의 변화’ 앞에서 저마다 항복 아닌 투항을 강요당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오래도록 책이란 ‘찍어서 서점에 공급하고 매대관리하며 두고 보면 자연판매가 된다’고 생각하던 사장님들이 가장 먼저 큰 타격을 입었다. 한편, 자본을 들여 ‘무조건 신문 전면광고를 때리면 책은 자연스럽게 나간다’고 생각했던 사장님들 역시 ‘이젠 그게 먹히지 않는다’는 걸 깨달으면서 연말정산 때 혀를 내두를 정도로 손해를 본 것에 아쉬워하고 있다. 자연판매의 위기, 신문광고의 효과 절감, 이는 일간지 신문의 독서코너의 ‘서평기사’의 힘의 상실과 함께 ‘도서상품 판매의 패러다임’ 변화를 예고했던 3대 지표였다. 이런 현실의 변화를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던 사장님들은 당장에 영업인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책이 안나가?’, ‘요즘 영업하고 다니는 거야?’, ‘매출이 자꾸 줄잖아!.........그만 두든지!’ 변화된 현실을 보는 눈이 먼 채, 우리의 외로운 영업인들은 그렇게 회사를 떠나야 했고 또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출판시장’의 변화된 양상을 ‘사장님께 설득’하려는 기회도 갖지 못한 채 대량실업의 사태로 내몰려야 했다(아니면 연봉인상이 없거나...). 외로운 영업자들! 그들은 출판시장의 변화를 ‘말로 설명’함은 물론 ‘몸으로 실천’해 ‘매출’까지 유지해 가야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되었다. 도무지 어느 누구하나 출판시장변화를 제대로 설명해 주는 경우는 별로 없고, 사장님의 무지함에서 나오는 불평을 고스란히 떠안은 채 그들은 ‘매출 유지’를 위해 ‘현장을 뛰고, 비비고’ 다녀야했다. 매출을 위해서는 할인요구를 덜컥 받아줘야 했고, 그 맛에 다시금 특가판매나 행사코너를 찾아다니면서 회사의 매출을 유지해야 했다. 그 사이 이 현실에 무지한 사장님들은 특별한 대안을 내놓는 노력도 보이지 않은 채, 사람을 바꾸고 또 바꾸면서 출판계 인력회전은 가속화 되었다. 7,8,90년대 부를 축적해 온 중견출판사들의 노는 사장님들은 이제 더 이상 놀 때가 아니다. 즉 첫째, 더 이상 영업자만 탓해선 안 되며 둘째, 스스로 변화하는 시장에 조응하는 ‘상품기획전략’과 ‘매출전략’을 기업의 CEO들처럼 몸소 제시하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셋째, 직원들의 고용안정과 미래를 보장하는 청사진을 보여야 한다. 결국 놀지 않는 사장님이 되기 위해서는 첫째, 유통의 다변화에 따른 ‘도서상품 기획전략’의 수정 및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 둘째, 고객의 독서상품 소비 트렌드 향상에 따른 ‘편집 및 제작’의 ‘질적 향상을 통한 타사 도서와의 제품경쟁력’을 제고하는 전략을 가져야 한다. 셋째, 기획과 제작의 전략 다음으로 ‘투명경영’에 대한 의지를 다음어야 한다. 이는 ‘면세사업’인 출판의 세금시스템과 관련해 볼 때도 그러하다. 넷째, 사람 중심의 경영마인드를 보다 강화해야 한다. 책은 사람이 만들고 사람을 위한 상품이며, 교육 수단이자 국가 미래의 촉진제로서의 ‘상품’인 것을 감안하면, 창작노동의 원천자인 작가, 제품을 개발하는 기획편집자, 유통판매를 책임지는 영업자, 창고직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존중하고 그들을 위한 경영’마인드를 강화하여 스스로 ‘가치 있는 사업가’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아직도 직원이 타다주는 커피를 마시며 신세한탄만 하고 있거나, 영업자의 월매출 보고를 받으면서 근거 없는 호통만 늘어놓는 ‘노는 사장’님들이 있다면, 급변하는 출판시장의 변동에 발빠른 대응을 하지 않고, 회사의 위기를 온 몸으로 실천하지 않고 있는 자신부터 반성할 일이다. 노는 사장님은 노는 영업자를 낳는다. 지금껏 나가던 책들이 어느 순간 안 나가고, 신간을 내고 매대에 잘 진열해 놔도 예전같이 독자들의 지갑을 열수 없는 상황 앞에선 영업자들! 사실 이들이 세일즈맨이라면, ‘세일즈’에 치중하여 그 위기를 극복하려 애를 쓸 것이다. 즉, ‘세일즈’ = 특가판매나 할인판매에 주력하여 ‘떨어지는 회사 매출’을 극복하려고만 할 것이란 말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여기서 그치므로 그들은 ‘세일즈맨’이지 ‘마케터’는 아니다. 그럼 마케터라면 이 위기에서 어떤 태도를 가질 수 있는가? 사실 앞서 놀지 않는 사장님이 해야 할 일은 사실 ‘시장의 최전방에 있는 영업자’가 ‘먼저 해야할 일’이다. 첫째, 자사 상품이 고객에게 외면 받고 있다면 ‘상품 경쟁력’을 먼저 의심할 줄 알아야 한다. 즉 우리 회사의 책이 다른 회사의 신상품에 ‘디자인과 가격’에서 밀리고 있다면 ‘빨리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상품 개발’이 필요함을 기획팀에 역설하거나, 사장에게 직언을 해서 매출 위기들을 하나 하나씩 극복해 나가는 ‘진정한 현장 기획자’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신상품이 나올 때마다 이번 도서의 경쟁도서가 무엇이고, 어느 분야의 어떤 상품들과 경쟁하는 매대에 깔릴지 미리 파악하고, 독자 타겟은 몇 세 정도인지를 분석하고, 그에 맞는 홍보 프로모션은 무엇이 좋을 지를 ‘마케팅 기획서’에 담아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신간이 왜 안 팔리지?’하면서 자연판매만 바라보는 영업자와는 달리, ‘시장중심의 기획력을 가진 마케터 능력을 펼치며 상품을 판매를 촉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셋째, 유통의 다변화와 독자의 구매 트렌드 변화를 읽고 ‘기획팀에 상품기획안을 역제안’할 수 있는 마케터가 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요즘 무슨 책이 잘 나가니까 그런 책 한 번 기획해 봐요.’라는 말은 세일즈맨이 할 말이지 마케터가 할 말은 아니다. 이건 기획이 아니라 모방이다. 한편 기획이란 계획이고 창조이면서도 ‘시장현실을 중심에 두는 상품 개발 행위’이다. 따라서 정규적으로 시장의 큰 범위를 분석해서 정보를 제공함은 물론 자사의 특정한 타겟분야 ‘예컨대 철학서 전문 출판사’라면 ‘철학서들의 경향과 트렌드 및 경쟁상품의 판매 추이 보고서’등을 정기적으로 작성하여, 최신 철학책의 트렌드가 ‘대중적’으로 가는지, ‘10대와 논술 코드가 결합된 상품시장이 열려 있다’느니 하는 실질적인 현장제안서를 제출해야 하는 것이다. 노는 영업자와 놀지 않는 영업자는 이렇게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회사의 매출유지와 향상을 위해 우리의 영업자들이 고민하고 해야할 일은 이렇게 많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하지 않고 남의 회사의 ‘할인경쟁’, ‘이벤트-경품’, ‘도서정가제’ 탓만 하면서 그저 불평만 늘어 놓고 마치 남들이 그런 거 안하면 ‘우리 책은 예전처럼 잘 나갈텐데’라고 생각하는 영업자가 있다면 그 사람들은 앞의 노는 사장님들처럼 똑같이 반성할 일이다. 사실 눈앞에 보여 지는 현상들은 매우 복잡하다. 그 복잡함 속에서 본질을 꿰뚫어 보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질이 잘 파악되지 않는다고 해서, 눈앞의 현상만 갖고 불평만 하고 있다면 ‘그런 불평들이야 말로 중소출판사의 위기를 가중’시키는 것밖에는 안될 것이다. 우리가 앞서 살펴 본 현실을 직시할 수 있다면, 이제 진정한 중소출판사 경영자로서, 그리고 진정한 마케터로서 거듭나 가자. 이미 밝혔듯이 한국의 출판시장은 ‘자본시장’이다. 이 시장은 ‘한국자본주의 역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박정희 시대의 대기업 문어발식 독점 양상으로 대형출판자본은 중소출판사의 시장을 독점해 나가고 있다. 여기에 유통환경 또한 마트, 편의점, 인터넷 발달로 다변화 되고 있다. 따라서 이젠, 기존 상품 경쟁력으로는 안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기존의 기획마인드로는 게임이 안 되는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불평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변화하는 비즈니스 환경을 냉철히 분석하고 적절한 대안을 찾아 나가는 것이 오늘날 ‘한국의 중소출판사 사장님들과 영업인’들의 손에 달린 것이다. 동료 제위들이여,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손에 달린 것이다!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신 동료 제위들게 감사드리며, 이 글은 지난 번 게시판에 올린 ‘한국의 출판 영업자의 미래는 있는가’의 후속 글로서 짬이 나는 데로 계속 연재를 해 가고자 합니다. 도서정가제에 관한 본격적인 얘기는 다음 기회에 해보겠습니다. 왜냐면 이미 국회에서의 법제화 문제로 조금은 관망할 시간이 필요한 듯합니다. 아울러, 이 글에서 지적한 몇몇 비판적 내용들은 어떤 감정도 개입되지 않은 따뜻한 시선임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
출처 : 블로그/책동네 소식
글쓴이 : 하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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