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야기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우리의 올바른 역사관은 몇점!

북코치 2006. 11. 21. 08:50

 


 [고조선 사라진 역사/ 성삼제/ 동아일보사 출판팀]
 

 

 [기획의도:지금까지 배운 역사를 의심하라]

 

 명도전은 고대 연나라의 화폐다.’ 국사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 명제는 참일까, 거짓일까. 명도전 출토 지역의 분포가 옛 고조선의 영역과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만주사의 기초를 닦았다는 중국 길림대 역사학과의 장보촨(張博泉) 교수는 어떤 연유로 2004년 중국 학회지에 명도전이 고조선 화폐일 가능성이 높다는 논문을 발표했을까?(《고조선 사라진 역사》 6장 ‘명도전은 고조선 화폐가 아닐까’ 148~156쪽)

고조선 역사를 파고들면 들수록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 책은 고조선을 둘러싼 논쟁을 9가지 쟁점별로 살펴보았다. 저자는 2001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사건이 일어났을 때 대책반(일본역사교과서왜곡대책반) 실무반장으로 활약하면서, 한국 정부나 국민들의 분노만으로 일본의 ‘위험한 교과서’와 일본 우익단체의 공세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근본적인 대책은 일본이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을 깨닫는 것이며, 또 다른 대책은 일본에게 왜곡의 빌미를 주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우리 역사를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4년 후인 2005년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가 다시 불거지자, 저자는 지난 5년 동안 업무수첩에 기록해온 ‘일본역사교과서왜곡대책반 비망록’을 열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이나 중국의 동북공정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 고조선을 둘러싼 논쟁들이 좀더 다양하고 폭넓게 논의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이 책은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저자의 딸을 위해 썼다. 서문에서 저자는 “내 딸과 그 또래 청소년들이 편견 없이 우리 고조선 역사의 쟁점들을 봐주기를 바란다”는 말과 함께 “나처럼 학창시절 일그러진 고조선 역사를 배운 어른들도 함께 봤으면 한다”는 바람을 적고 있다.

[책의 내용:교과서가 가르쳐 주지 않는 우리 역사]

1장 단군, 신화인가 역사인가

 

‘고조선이 건국되었다고 한다.’(6차 교육과정 국사 교과서) ‘고조선은 단군왕검이 건국하였다고 한다.’(7차 교육과정 국사 교과서).‘건국되었다’라는 수동태 문장에서 ‘건국하였다’로 바뀌었지만 ‘·····라고 한다’에서처럼 남의 입의 빌려 건국 사실을 기록한 교과서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22~23쪽)


왜 우리는 고조선 건국을 믿지 못하는가. ‘기원전 2333년 고조선이 건국되었다’는 국사 교과서의 내용과, 단군의 건국은 신화일 뿐이며 신화를 그대로 믿으면 상식에서 벗어난다고 가르치는 수업시간. 헷갈리는 국사, 누구의 잘못인가?


2장 한반도의 청동기시대는 언제부터인가
  한반도의 청동기시대 시작 시기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기원전 400년부터 기원전 4000년까지 편차가 매우 크다. 청동기 시대 상한연대가 중요한 이유는, 고조선 건국을 史實로 보느냐 마느냐의 중요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55쪽) 한반도의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10세기 무렵부터 시작되므로 기원전 2333년 고조선 건국을 史實이 아니라는 주장이 지금까지의 통설이었다. 그러나 최근 발굴되고 있는 한반도의 청동기 유물·유적을 과학적으로 측정한 결과는 전혀 다른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한반도의 청동기시대의 시작 연도는 기원전 10세기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장 고인돌에 새겨진 역사
 전 세계 고인돌의 절반이 한반도에 있다. 국내 학계는 고인돌이 고조선의 유적이며 청동기시대 유적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북한에서 고인돌의 연대 측정을 한 결과, 기원전 4000대 후반부터 기원전 2000년대 전반기까지 성행했던 건축물이라고 발표했다. 유럽에서도 고인돌의 건축 연대는 기원전 2500~2000년 사이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남한 학자들은 이러한 연대 측정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다. 고인돌이 기원전 20세기 이전의 건축물이라면 그보다 앞서 고조선이 존재했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70~71쪽)

4장 단군릉과 단군 뼈의 진실
1993년 10월 북한의 단군릉 발굴 발표. 이에 남측 학자들은 “북한이 주체 사상을 앞세워 학자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한 유골의 연대 측정을 위해 북한이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 대신 전자상자성공명법을 사용한 데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단군릉에서 발굴했다는 유골을 50회 측정해서 얻은 5011±267년(상대오차 5.4퍼센트)이라는 연대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조작된 결과인가, 잘못된 실험인가. (91쪽)

5장 고조선은 대동강 유역에 있었나
고조선의 중심지와 강역(영역)에 대해 여러 가지 학설이 존재한다. 대동강 중심설, 요동 중심설, 요서 중심설, 요동지역에서 대동강유역으로 중심지 이동설. 저자는 사마천의『사기』에 기록된 위만조선과 한의 전쟁을 분석해 패수가 오늘날 대동강이나 청천강이 아니며, 왕험성(혹은 왕검성)이 평양성이 될 수 없는 근거를 제시했다.(106~112쪽)

6장 명도전은 고조선 화폐가 아닐까
‘명도전은 전국시대 때 연나라에서 만든 청동제 화폐’라는 통설을 깨는 새로운 주장. 연나라 화폐라고 하는 명도전이 왜 고조선 영토에서 대량 발굴되고 있을까? 반대로 고조선 땅에서 왜 고조선 화폐가 한 개도 발굴된 적이 없을까? 명도전이 연나라 화폐임이 분명하다면 고조선은 왜 전쟁 상대인 국가의 화폐를 대량 사용했을까? 중국의 학자는 어떤 근거로 명도전이 고조선 화폐라고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했을까?(137쪽) 저자는 원점에서 명도전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7장 일본은 『삼국유사』를 변조했나
『삼국유사』 판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삼국유사』중종 임신본. 임신본이라 불리는 이 책의 영인본에서 일본이 의도적으로 글자를 고쳤다면? 저자는 일제 강점기 조선사편수회 시절 최남선 선생이 일본 역사학자 이마니시의 소행이라며 울분을 터뜨린 변조설을 파고들었다. 『삼국유사』 고조선 편에서 고조선 건국 상황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석유환인昔有桓因(옛날에 환인이 있었다)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변조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석유환국昔有桓國(옛날에 환국이 있었다)이 올바른 표기라고 주장한다. 『삼국유사』임신본 변조설의 전모. 누가, 언제, 왜 고쳤을까?(168~169쪽 글자 위에 덧칠한 흔적이 역력한 『삼국유사』영인본 사진).

8장 위서 논쟁 속에 묻혀버린 고조선
『규원사화』와 같은 책들이 영광스러운 고대사를 만들기 위해 조작했다는 식으로 단정 지을 게 아니라, 먼저 성경의 위서 판정 연구기법을 도입해서 위서 논란이 있는 사서들에 대해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감정부터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9장 『환단고기』에 기록된 천문현상
위서로 분류되는『환단고기』에 그 어떤 역사기록에도 나오지 않는 새로운 사실이 적시돼 있다면? 1923년 연개소문의 아들 남생의 묘지(죽은 사람의 이름, 관직, 행적 등을 새긴 글)가 발굴되면서 아버지 연개소문(개금), 할아버지 태조, 증조부 자유의 이름이 밝혀졌다. 학자들은 이와 비슷한 내용이 『환단고기』에 실려있기 때문에 이 책은 남생의 묘지가 발굴된 1923년 이후 쓰인 위서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환단고기』에는 남생의 묘지에 나오지 않는 새로운 사실이 기록돼 있다. 즉 남생의 고조부, 연개소문의 증조부인 ‘광’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이다.(226쪽) 『환단고기』는 남생의 묘지를 베낀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저자는 박창범 전 서울대 천문학과 교수가 쓴 논문 ‘단군조선시대 천문현상 기록의 과학적 검증’이 발표되면서 『환단고기』재평가 움직임이 있었던 점을 환기시키며 이제 『환단고기』를 포함한 재야사서에 대한 비판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10장 고조선 논쟁은 계속돼야 한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조직적인 한국 고대사 왜곡으로 인해 현재 벌어지고 있는 고조선 논쟁을 불가피한 측면이 많다. 그럼에도 고구려, 부여, 고조선의 역사를 자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이미 시작됐다. 이제 고조선 역사 논쟁은 단지 학설 논쟁이 아니라 국가 생존의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 손으로 조선총독부가 왜곡하고 말살한 역사를 원형 그대로 되돌려야 한다. 한국과 일본이 역사공동연구위원회를 구성하여 함께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본과 중국에게 역사 왜곡의 빌미를 주지 않는 근본적인 대책으로써 고조선 연구가 계속돼야 할 것이다.(247쪽)


[저자 소개:성삼제]
현재 교육인적자원부 지방교육재정담당관(46세)을 맡고 있다. 대구 능인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Univ. of Sheffield에서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학교운영위원회에 관한 연구>(A Study of School Governing Body of England and Wales)로 교육학석사학위(MEd)를 받았다. 제35회 행정고시를 합격한 후 서울시교육청, 서울대학교, 교육인적자원부에서 근무하였다. 2001년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일본역사교과서왜곡대책반 실무반장을 담당했다.  

[목 차]
서문 / 일본역사교과서왜곡대책반 비망록을 열며

1. 단군, 신화인가 역사인가
2. 한반도의 청동기시대는 언제부터인가
3. 고인돌에 새겨진 역사
4. 단군릉과 단군 뼈의 진실
5. 고조선은 대동강 유역에 있었나
6. 명도전은 고조선 화폐가 아닐까
7. 일본은 '삼국유사'를 변조했나
8. 위서 논쟁 속에 묻혀버린 고조선
9. '환단고기'에 기록된 천문 현상
10. 고조선 논쟁은 계속돼야 한다

- 도표, 고조선에 대한 견해 차이

[교육부 관리가 본 '고조선 사라진 역사']
1993년 10월, 북한은 평양시 강동군에서 단군릉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여기서는 완벽하다고 할 만한 인골이 출토됐다.

북한은 인골에 대해 전자상자성공명법이라는 방식으로 연대를 측정할 결과 5011±267년 전이라는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에 의하면 인골은 기원전 3천년 전 무렵을 살다 간 사람의 흔적이다.

이를 남한 학계에서는 거의 신뢰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역사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평양 중심주의에 끼워 맞춘 정치적 의도가 엿보이는 비학술적 주장이라고 했다.

단군릉 발굴이 10년이 흐른 2003년 한국사학사연구회 북한사학사연구반은 '북한역사만들기'라는 집단 연구성과물을 냈다. 북한이 어떻게 역사를 '발명'하고, 이를 통해 역사를 조작하려 했는지에 초점을 맞춘 논문집이다.

여기서 한 연구자는 10년 전 단군릉 발굴성과를 언급하면서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을 피하고 굳이 이 방법(전자상자성공명법)을 사용한 배경도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면서 "이 연대치를 수용한다 하더라도 인골의 연대가 정확히 5011년 전이라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다. '5011±267년 사이에 들어갈 확률이 95%의 신뢰를 가지고 있다'는 정도로 수정되어야 마땅하다"고 '충고'했다.

한데 단군릉 발굴 이듬해인 1994년 북한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실장인 준박사 김교경은 '단군릉에서 나온 사람 뼈에 대한 년대 측정결과'라는 논문에서 "(단군릉 인골에 대한) 그 연대는 지금으로부터 5011±267년(상대오차 5.4퍼센트)으로 확정되었다"고 말했다.

2003년 남한 연구자가 충고하기 벌써 9년 전에 북한에서는 이런 인골 연대측정치의 상대오차가 5.4%임을 밝히고 있었던 것이다.

2001년 일본 후쇼샤 역사교과서 사태 이후 교육부의 일본역사교과서 왜곡대책반 실무반장을 역임한 성삼제 교육부 지방교육재정담당관은 단군릉 인골에 대한 북한의 연대측정치가 옳다고 고집하지는 않는다.

다만, 정확한 자료조사도 없이 함부로 북한측 연구성과를 매도하는 남한 역사학계를 일갈하고 있다. 한 마디로 "제대로 알고 나서 비판하라"는 것이다.

근간 단행본 '고조선 사라진 역사'(동아일보사 펴냄)에 대해 저자 성씨는 "일본역사교과서왜곡대책반 활동 시기부터 개인 비망록에 기록해 둔 것들"인 동시에 그 독자는 고조선에 관한 기술에서 그 자체 혼란과 충돌을 유발하는 국사교과서에 대해 많은 의문을 표시하는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딸"이라고 밝히고 있다.

고조선을 둘러싼 쟁점들, 예컨대 건국시기라든가 단군의 실존 여부, 한사군 설치 위치 등을 둘러싼 논쟁이 '다빈치 코드'보다 더 흥미롭고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저자는 이 책에서 무엇보다 교육정책 일선에 관여하면서 보고 느끼면서 그 스스로 궁금증을 더할 수밖에 없었던 문제들을 분석하려 하고 있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실상 국사교과서 자체는 물론이요, 학계에서도 고조선과 관련되는 문제들은 산적해 있으며, 어느 하나 정설이 없다시피 하다. 그래서 성씨는 이제는 식상하게도 느껴지는 고조선과 관련되는 다양한 논쟁은 지금도, 그리고 이후에도 "계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우리의 올바른역사관은 몇점!]

   중국이 고구려는 물론 발해, 나아가 고조선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군신화가 중국신화의 영향을 받은 중국문화의 반영이라 주장하는 중국 사학계의 주장은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기자 동래설 등을 근거로 고구려 이전 단계에서부터 중국사에 우리 민족사가 포함된다는 것을 강조해 중화적 우위성을 강조하고 고조선-고구려로 이어지는 민족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것이다.

 

조법종 우석대 교수에 따르면 중국은 태양 숭배 신화인 ‘탕곡신화’와 ‘명이’라는 표현이 조선(朝鮮) 명칭의 기원이라 주장한다. ‘산해경’에 나타난 탕곡이 조선의 명칭이며 ‘주역’에 나오는 명이가 은나라 시대 조선 명칭이란 것이다. 또 3황5제 신화 속 황제의 후손인 전욱고양의 신화가 동이족 문화이고 곧 고구려 문화라 주장한다.

 

이런 중화우월주의는 ‘기자 동래설’에서 극에 달한다. 은말 주초 은나라 신하였던 기자가 동쪽으로 피난해 조선의 왕이 됐다는 기자조선설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고 중원민족이 동북민족의 원류가 된 계기로 설명한다.

이는 1차 동북공정 중 장벽파의 ‘기자여기자조선연구’에서 본격화됐다. 기자조선은 은나라 후예가 조선반도에 세운 지방정권으로 실재했던 철학가·정치가인 기자에 의해 중국 동북사가 시작됐다고 본다.

 

 또 기자조선은 주·진의 속국으로, 이후 위만조선은 한의 속국으로 분류한다. 민족적 기원으로는 숙신·예맥·동호계로 동북지방을 3분하고 ‘모두 중국 역사 범주에 존속된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중국 측 주장은 우리 민족과 관련된 구체적 역사를 보편성과 연결지어 부정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게 국내 학계의 반론. 무엇보다 단군신화를 중국신화에 나타난 ‘신성한 존재의 출현이 초인간적 상황 속에 전개된다’는 일반론을 바탕으로 중국신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추측하고 있다.

 

단군신화 속 곰 숭배 사상이 한국 신석기문화 속 고아시아족의 특징임을 망각한 것이다. 또한 중국사료인 ‘상서대전’ 등에 기록된 기자동래설은 다른 사서에선 일절 언급되지 않았고 조선시대 일부 유학자들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신뢰성이 떨어진다.

 

고조선의 청동문화는 중국과 계통이 다른 비파형동검과 돌널무덤 및 고인돌을 중심으로 한다는 점에서도 논리상 맞지 않다. 최근 일부 국내 학자들은 오히려 위만조선이나 한군현 등을 고조선 서쪽 변방에 자리한 고조선의 속국이라 보고 있다.

 

 

한편 중국 측 동북공정에 대해선 학계·정치권의 자성 목소리가 높다. 김정배 전 고구려연구재단 이사장은 자신의 논문에서 “관심이 많은데도 고조선에 관한 연구가 부진한 것은 새로운 문제의식과 해석을 과감히 표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자아비판한 바 있다.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도 “동북공정의 문제는 단순히 역사왜곡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 정부의 정치·외교력 부재를 드러낸 것”이라며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 조직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금의 TV 매체에 역사드라마는 한마디로 말해서 왜곡 그 자체이다. 왜 그러한가 우리의 님비현상을 탓하는것도 중요하나 드라마를 보면서도 우리의 진취적인 역사의식이 결여된것은 학자들이나, 정치인등 책임있는 자들의 연구가 없다는 것이다.

 

일본에 가장 많이 빼앗긴 우리 문화재는 찾아오지 못하는 외교력, 또한 당당한 모습 나라를 위해서 헌신한 사람들에게 부여해주는 의식의 결여됨으로 인하여서 우리나라의 민족성이 우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성삼제씨의 고조선 사라진 역사(동아일보 출판팀)는 우리 젊은 친구들 특별히 어린친구들이 올바른 국사공부를 하는데 길잡이 역할을 할것이며 오래전 학자들의연구서를 통해서 간간히 들려 졌던 삼국유사나 고문서의 왜곡하였던 일제 36년간의 지배력에 이루어진것을 복원해야될 사명이 우리들에게 남기워진 숙제이며 아무리 중국이 동북공정과 요하정책으로 고조선,고구려,발해 역사를 왜곡해도 역사의 증거는 묻혀 있는 자료들, 유물들이 입증해 주고 있음을 알고서 정립된 역사서를 집대성해야 할것이다.

 

중국이 오래동안 만들어낸 동북공정에대한 우리의 자세는 안일하다는 것을 고조선 사라진 역사라는 책을 통해서 알수 있을것이다.  우리가 배웠던 지난날의 역사가 정말 이러한가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힘을 키워야 할것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올바르게 알고 있어야 남에게 전해줄수 있을것 아닌가 한다. 진취적인 기상의 뿌리를 잘 뻗어 내리게 해야할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여긴다. 이 과제는 누구의 몫인가 우리 모두에 것이라고 여긴다. 이책을  일독하기를 바란다. 그냥책이 아니라 잠자는 우리의 역사의식을 깨우는 길잡이로 여기면서 책장을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넘기면서 읽기를 바란다.


[한국양서보급중앙회 북멘토클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