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광의 방] 충북 제천에서 지적박물관 운영하는 리진호 관장
[북데일리]독서광의 노년은 분주하다. 몸만 늙었을 뿐, 책을 향한 열정은 여전히 청춘이다. 책 수집에 미쳐 본이라면 그 재미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것은 중독이다. 수집과 기록은 독서광의 전부이자, 모든 것이다. 늙은 독서광은 선풍기와 환풍기 바람을 쏘이며 책을 돌본다. 책 앞에 서면 어떤 시름이라도 단숨에 잊는다. 책에 미치던 매서운 집념이 시들해 질 때도 됐건만, 젊을 때 보다 더 ‘팔팔하게’ 책을 읽고 사 모은다. 충북 제천시 금성면 양화리 옛 양화초등학교자리에서 지적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리진호(75) 관장의 일과는 이렇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당신네 책 때문에 아파트가 무너질 것 같으니 이사를 가달라”는 항의에 내몰려 1만2천권의 책을 싣고 이곳에 내려와 지적박물관을 연 그는 성실한 독서광이자 극성스런 수집광이다.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10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지적공사에서 23년을 근무한 후 1999년에 정년퇴임한 리 관장은 30여 종의 책을 쓴 학자다. 스스로를 ‘측량기술자’라 부르는 그의 저술 활동은 크게 기독교 역사분야, 지적 분야로 나뉘어 진다. 수지타산 맞지 않는 분야에 넋이 나가 있다 보니 책을 내준다는 출판사가 없어 스스로 ‘우물’이라는 출판사를 차려 책을 냈다. 인세는 꿈도 못 꿨고 유명세를 타지도 않았지만 지적 분야에서는 알아주는 전문가가 됐다.
그렇게 논문을 쓰고 책을 쓰는 동안 모아온 책만 1만6천권. 환풍기와 선풍기를 돌리며 보관하고 있는 책들은 ‘피’ 같고 ‘몸’ 같은 그의 분신이다. 이 많은 책들을 둘 곳이 없어 박물관을 연 것이 엊그제 같은 데 벌써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곳에는 리 관장이 수십 년 간 수집해 온 지적 관련 서적, 향토지와 백년사, 기독교 분야의 책과 자료들이 비치되어 있다. 한국 최초의 성경인 ‘예수성교 누가복음 전서’(1882년) 등 성경책 500여권도 진열 중이다. 개인이 모아온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수집 비결을 물으니 “책값은 다른 것에 비하면 비교적 싸다고. 그러니까 여유 남는 게 있으면 모두 책을 샀지. 오늘도 33만원어치나 청구했는데....”라고 ‘천연덕스럽게’ 답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책 사는 데 드는 돈은 조금도 아깝지 않다는 그는 밥 먹고 운동하는 것 빼고는 아무런 취미가 없으니 책을 더 많이 읽을 수 있다고 자랑한다.
“여전히 왕성하게 책을 구매하고 있어요. 그것이 내 생활의 다요”
리 관장의 어린 시절 꿈은 작은 마을의 이장이 되는 것이었다. 심부름도 하고 농사계장도 하면서 조용히 책이나 읽고 살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싶었는데, 결국 꿈을 이루지 못했다. 농대를 졸업하고 지적공사에서 측량기술자로 일하면서도 책 욕심은 멈춰지지 않았다. 23년간 대한지적공사와 지적기술 연수원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끊임없이 읽고 모았다. 원하는 책이 있다면 섬도 건넜고, 비행기도 탔다. 전국 곳곳에 생긴 지원군들은 “00라는 책이 있는데 사겠소”라고 전화로 물어왔고 그 때마다 두 말 없이 돈을 송금해 이처럼 책이 불어났다.
리 관장에게는 특별한 책읽기 원칙이 있다. 연구하고자 하는 분야를 정한 뒤 그에 필요한 책을 읽는 방식이다. 남의 연구를 따라하는 것을 가장 기피하는 그는 2005년에 ‘스스로’ 출간한 <책 사냥 발자취>(우물. 2005)를 펴 보이며 “<책 사냥꾼>이라는 제목에는 목표를 향해 돌진한다는 뜻이 담겨있지요. 나의 연구는 늘 새로운 걸 발굴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목표를 정하면 그에 필요한 모든 책을 사서 읽곤 해요”라고 했다. 수집 하는 것에 그치면 장서가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식은 활용할 수 없기에 읽은 것만큼 쓰고,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30권에 달하는 리 관장의 저작물은 학문을 향한 불타는 집념과 열의의 산물이다.
지적박물관은 발터 뫼뢰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들녘. 2005)를 연상시키는 어마어마한 책 공간이다. 독서광이라면 군침을 흘릴 만한 곳이나 찾는 이들의 발길은 뜸한 것처럼 보였다. ‘불행히도’ 예측이 맞았다. 3개월간 단 한명의 열람객이 없었던 적도 있다고. 학예사 월급에, 임대료에 운영비가 만만치 않게 들어갈 텐데 어떻게 살림살이를 꾸려나가나 싶어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냈더니 “원고료나 강연료를 받아 운영해왔어요. 시에서도 조금 지원을 해주고요”라고 한다. 그러면서 덧붙인 리 관장의 농이 씁쓸하다. “일본에 갔을 때 누가 묻길래 이렇게 답했지요. 세상에 하나 뿐인 박물관이면서 세상에서 열람객이 가장 적은 박물관이라고” 찾는 이 드문 2300평의 부지에 쌓인 수많은 책들은 노부부와 학예사들의 애정으로 그 질긴 목숨을 이어왔다.
기독교 역사분야, 지적 분야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리 관장은 <한국 지적사>를 집필하면서 11페이지를 쓰기 위해 30권의 책을 사서 2달간 독파했다. 집요한 책읽기는 관심분야의 끊임없는 연구로 이어졌다. 궁금한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은 책밖에 없으니 읽기를 멈출 수 없었다. 리 장관의 여전한 책 욕심은 <책 사냥 발자취>에 실린 ‘책 사냥, 관리 10대 지침’에서도 발견됐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책 따위 사료는 소장자(처)로부터 가능한 한 많이 빌리되 2차 반환 독촉 때까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돌려주지 않는다. 상당한 기간이 지나는 동안 그가 잊어버리거나 죽을 수가 있다. 그때는 자연스럽게 내 소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나의 책은 절대 빌려주지 않는다. 한권의 책을 복사 요청 할 경우에는 먼저 복사비와 송료를 받고 복사 제본하여 우송한다.
▲필요한 자료는 최소한도로 깍 되 아무리 값이 비싸도 구입한다.
▲중요한 자료는 국내는 물론 외국까지 수집하러 간다.
▲수집한 자료는 집필할 저서에 최대한 활용한다.
다른 욕심은 없고 오직 책 욕심밖에 없다는 리 관장. 그는 “알고 싶은 것이 어느 정도 충족이 되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고 했다. “책에는 무한한 보물이 있는데 영상매체에 익숙한 요즘 세대는 너무 책을 읽지 않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국가에서도 체육진흥에는 공을 들이면서 독서운동에 대한 지원이나 관심은 너무 적으니 이처럼 안타까운 현실이 또 어디있겠는가.
“공부한 성과인 논. 저를 써서 발행하면 이름이 남으니 좋고 고료가 나와 생활이 윤택해지니 좋다. 또한 자료를 수집하러 다니게 되니 항상 생각하며 움직이므로 치매에 걸릴 시간이 없다. 그래서 ‘공부하세요’가 우리나라 인사말로 정착이 되고 국민이 다 공부를 하는 풍조가 생겼으면 좋겠다. 체력도 국력이지만 공부 또한 국력이니 공부를 해야 이 나라가 튼튼해지지 않겠는가”
리 관장이 발행하는 계간지 ‘측량과 지적’ 창간호에 실은 말이다. 그의 공부 욕심은 실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았기에 행복했다”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금새 또 집필 계획을 밝힌다. 일본인들이 토지조사를 하면서 만든 1천2백 권의 토지규정을 번역 하고 싶다는 것이다. 필요로 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벌써 3분의1은 번역을 마쳤다니 놀라운 학문적 욕심이다. 지치지 않는 독서광의 하루는 읽기와 쓰기로 여전히 바쁘다. 빨리 지는 해를 원망하는 부지런한 학자 리진호. 그의 남은 생에서 목숨같이 여겨 온 책읽기와 지적연구, 성서연구는 앞으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땅을 딛고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여기 와 봤으면 좋겠어요. 공기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하면서도 중요성을 이야기 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지적도 그래요. 인간이 땅에서 나서 땅으로 돌아가는데 지적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등한시 한다는 것은 인간 자신을 부인하는 행위라고 생각해”
(리 관장과 아내가 사는 지적박물관의 전화번호는 043)651-5115, 홈페이지는 http://www.forjijeok.com)
(보다 자세한 기사 내용은 http://www.bookdaily.co.kr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사진 = 고아라 기자)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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