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야기

마시멜로 이야기 집단 손해배상 소송제기한 변호사

북코치 2006. 12. 13. 00:54
2006년12월12일 10시02분   레이디경향
‘마시멜로 이야기’ 집단 손해배상 소송 제기한 이창현 변호사
 

유명 방송인을 내세운 대리 번역으로 이슈가 된 「마시멜로 이야기」 사건이 제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출판사와 번역자로 나섰던 방송인 정지영씨를 상대로 독자들이 민·형사 소송을 제기한 것. 소송의 중심에는 이 책의 독자이기도 했던 이창현 변호사가 있다. 전례가 없는 이번 소송을 계획하게 된 이유를 그를 만나 직접 들어봤다.

대리 번역 사건 당사자의 사과 없는 모습에 소송 생각

만일 당신이 비싼 가전제품을 하나 샀는데 잔고장이 많아서 스트레스로 고생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가전제품을 만든 회사에 항의를 하거나 소비자 보호원의 도움을 받아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제품을 만든 회사에서는 새로운 제품으로 교환해주거나 그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환불을 받을 수 있다.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같은 보이는 물건에 대한 보상은 이렇게 이뤄진다.

하지만 당신이 에세이 책을 한 권 샀다고 가정해보자. 그 책을 읽고 큰 감동과 위안을 받아 저자에게 감사의 메일이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책 속에 나왔던 저자의 이야기가 모두 거짓이고, 가상의 이야기였다. 독자는 저자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꼈고, 독자는 저자와 출판사에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소송의 결과는 과연 어떻게 나올까?

첫 번째 사례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고, 판례도 있기 때문에 그다지 주목을 끌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두 번째 사례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소송 내용이었고, 당연히 판례도 없다. 그런데 얼마 전 책과 저자의 잘못으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면서 1백31명이 집단으로 저자를 상대로 소송을 내는 첫 사례가 생겼다.

소송 대상은 대리 번역 논란에 휩싸인 「마시멜로 이야기」와 방송인 정지영씨다. 그리고 이 소송의 중심에는 법무법인 홍윤의 이창현(34) 변호사가 있다. 집단소송을 처음으로 준비했고, 직접 실행에 옮긴 변호사다.

“지난 10월 30일 법원에 소장을 제출했어요. 정지영씨를 상대로 대리 번역 논란으로 인해 독자들이 입은 정신적인 피해에 대해 보상을 해달라는 민사소송을 냈습니다. 그리고 출판사인 한경BP를 상대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및 업무 방해 혐의로 형사소송을 냈어요. 처음 소송을 준비할 때는 정말 조용했는데, 소장을 접수한 후에 이슈가 되는 걸 보고 저도 놀랐습니다.”

이 변호사도 「마시멜로 이야기」의 독자였다. 정지영씨가 방송에서 보여준 좋은 이미지에 호감도 느꼈고 “이렇게 바쁜 사람이 언제 번역을 다 했을까?”라는 놀라움 때문에 책을 들었다. 그는 원래 베스트셀러를 믿지 않지만, 정지영이라는 이름의 신뢰감으로 책을 사게 된 것이 지난 9월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대리 번역’ 의혹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진짜 번역자가 나타나 인터뷰를 하며 사건이 커지기 시작했다. 뭔가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고,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정지영씨의 반응은 더욱 놀라웠다. 이 변호사가 이번 소송을 계획하고 진행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책의 대리 번역 사건에 대해 사과나 어떤 언급이라도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정지영씨는 침묵을 지켰다. 그렇게 화제가 됐던 사건이 며칠이 지나면서 유야무야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지난 10월 13일 정지영 대리 번역 대책 카페(cafe.daum.net/chlee5733)를 개설하게 됐다.

소송을 계기로 출판계의 잘못된 관행이 사라지길 바라

이 변호사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법률적 지식을 이용하면 이런 사례는 더 이상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카페를 개설하고 집단소송에 대한 공지를 올렸다.

처음에는 카페 회원이 10명 남짓이었다. 그런데 3일 정도 지나면서 카페 회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소송에 참여하겠다고 서류를 보낸 회원이 4백여 명 정도 되지만 서류에 하자가 없는 회원들만 받아들여 1백31명이 됐다. 그리고 10월 30일 소장을 접수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카페는 별다른 잡음이 없었다.

“그런데 소장을 접수하고 3일 후에 기사화됐어요. 그때부터 안티 네티즌이 카페에 욕을 남기기 시작해요. 저를 홍보하기 위해서라느니, 승소 대가를 바란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저희 사무실 대표 변호사님은 오랫동안 TV에 출연하셔서 원래 유명하신 분이에요. 그리고 소송을 맡기는 분들이 TV나 기사를 보고 찾아오는 경우도 아주 드물어요. 대부분 인맥을 통해서 소송을 맡기거든요. 저를 홍보해서 생기는 것이 거의 없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출판사와 번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의 예는 한 번도 없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승소할 가능성은 반반이다. 소송을 준비하기 전에 법무법인 대표 변호사에게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돌아온 답변은 ‘한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였다.

“미국의 경우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법을 위반하면 피해를 감안하지 않고 배상을 하라는 거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실질적 피해에 대한 보상만 하고 있어요. 제품을 샀을 때 입은 정신적 피해는 배상을 안 해줘요. 특히 책과 일반 제품과는 다르고, 이번 소송과 관련된 판례도 없습니다. 이제는 법원의 몫으로 넘어간 거죠. 이런 사례가 처음 생겼으니까, 이것을 계기로 출판계의 잘못된 관행이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집단 손해배상 소송에 참여한 사람은 모두 1백31명이다. 청구금액은 책값까지 고려해 각 80만5천1백원으로 모두 합하면 1억5백46만원이다. 1백31명 중 30명은 출판사를 상대로 한 형사소송에 참가했다.

만일 이번 소송에서 승소를 해도 이 변호사는 전혀 돈을 받지 않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승소금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돌려주지만,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는 승소금을 좋은 일에 쓸 계획이다. 민사소송은 1심까지 보통 4~5개월이 소요되기 때문에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출판사를 상대로 낸 형사소송은 “검사가 배정됐고, 조사가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번 소송을 통해서 진실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이번 소송에서 우리가 이기면 출판계에서 지금과 같은 대리 번역 관행은 사라질 것입니다. 만일 출판계가 다시 그런 일을 한다면 바로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알린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번 소송 과정에 많은 격려의 편지를 받았다. 특히 숨은 번역가(대리 번역가)들의 메일도 받았다. 대부분의 메일 내용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서서히 잊혀져가는 것이 안타까웠는데, 도움을 줘서 고맙다’였다.

변호사로 일한 지 2년 된 이창현 변호사. 지금까지는 기업 자문이나 회사 M&A 관련 일을 해왔는데, 처음으로 출판사와 대리 번역가를 대상으로 소송을 진행하게 된 셈이다. 이 변호사가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는 아니지만, 자신의 행동으로 출판계에 새로운 자극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글 / 최영진 기자 사진 / 박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