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야기

인터넷 사재기로 양서가 살라진다

북코치 2006. 12. 14. 23:47
지난 8월 27일과 9월 3일에 방영된 MBC 스페셜 2부작 '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에서는 지난 35년간 자녀 교육지침서로 사랑받아온 『부모와 아이 사이』(앨리스 기너트 외)라는 책을 소개했다. 이 책은 그 뒤 별다른 마케팅 활동 없이도 곧바로 종합베스트셀러 상위에 오르며 9월 한 달 동안만 4만 8천 부나 팔렸다. 그런데 그 중 80%가 yes24, 인터파크, 교보문고(오프라인서점 포함), 알라딘 등 인터넷서점 네 군데에서만 팔려나갔다고 한다. 이제 출판 트렌드를 만드는 것은 우리라며 큰 소리쳤다는 한 인터넷서점 대표의 공언이 실감나지 않을 수 없다.

『2006 한국출판연감』에서는 2005년 온라인서점 판매비중이 16.7%라는 통계를 내놓고 있지만 대형베스트셀러의 경우, 그 집중도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어떤 자기계발서 신간은 처음부터 한 인터넷서점에 5만 부를 넣기도 했다. 그 같은 결과가 나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인터넷서점들이 할인, 마일리지, 경품 등을 활용해 무한할인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 독자는 신간을 단지 책값의 10% 미만의 금액에 구입할 수도 있고, 책값의 몇 배에 달하는 경품마저 거저 얻을 수 있다.

상황이 이러니 베스트셀러 목록에 책을 올리려는 경쟁은 '인터넷 사재기'로 이어졌다. 한겨레신문에서 지난 20일자에 보도한 바대로 이제는 회원을 상대로 책사재기를 대행해주는 인터넷 사이트까지 출현했다. 출판사가 500만 원을 주고 책값이 1만 원인 책을 특정 인터넷서점에서 구입해줄 것을 요구하면 사재기 사이트에서는 회원들을 활용해 1주일 안에 500권을 구입해준다. 출판사는 그 중 60% 정도의 책 대금을 회수하니 200만 원만 부담하는 셈인데 이것이 광고를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라고 한다.

이렇게 사재기를 대행해주는 회사가 무려 20여 곳이나 된다거나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출판사들 대부분이 인터넷 사재기에 가담했다는 확인하기 어려운 소문마저 나돌고 있다. 물론 그런 소문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그 정도가 심각함은 확실하다. 인터넷 사재기에 적합한 경제경영서의 경우 한 주에 800부가 팔려도 대형서점 분야별 베스트셀러 20위에 들어가기 힘들다고 하니 말이다. 인터넷서점이 등장하기 전에는 이 정도 부수가 팔리면 종합 베스트셀러 수위를 다퉜을 것이다. 결국 그동안 사재기행위를 부도덕한 행위로 간주하고 적발에 적극적이었던 한 출판단체가 회원사들에게 공문을 보내 공개경고까지 하는 사태마저 벌어지고 말았다.

이 같은 부도덕한 행위야 늘 있었으니 애써 무시한다 치더라도 또 다른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런 행태가 만연해지면서 양서이지만 과당할인경쟁에 나서지 않는 책들은 판로가 막혀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인문사회과학서적은 언론에서 아무리 대대적으로 소개해도, 광고를 아무리 해도 먹혀들지 않는다. 출판사에서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아우성을 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완전도서정가제의 확립을 기원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가 발만 동동 구를 뿐 적극적인 행동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 이미 상황을 되돌릴 수 없다는 패배감에 젖어있는 것이다. 그 행보의 끝이 출판문화의 죽음이라는 것은 이제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재삼 출판인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기사게재 : <한겨레> 2006.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