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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앞 막걸리장사로 눈뜬 세상 책으로 찍어내고 싶었지

북코치 2006. 12. 15. 13:14
고대앞 막걸리장사로 눈뜬 세상 책으로 찍어내고 싶었지
18살 나이차 잊고 어울린 대동세상…행복했다
그러던 어느날 젊은이 취하게 한단 사실이 섬뜩
정신 맑게할 ‘청소년을 위한 책’으로 눈돌려
책 한권마다 대학하나 세운다는 심정으로 만든다
한겨레 임종업 기자
» 지난 여름 제주도에서 열린 대한출판문화협회 주최 출판경영자 세미나. 뒤풀이에서 두리미디어 최용철 사장은 뼈있는 말을 했다. 내리 이태 투숙한 호텔에서 바다가 아닌 주차장만 구경하다 간다고. 무작위로 방 배정을 한다지만 배려받을 위치에 있지 않은 그는 자칭 ‘밥풀데기’다. 하지만 출판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한국의 책쟁이들/ ⑮출판인이 된 ‘6·10항쟁 밥풀데기’최용철씨

맨 정신으로는 힘들다, 저녁시간 끼어 술 한잔 하자고 했다. 그 단어 하나 때문이 아니었을까. 밥풀데기.

직원 12명인 출판사 두리미디어 최용철(52) 사장은 자칭 ‘번잡스런 사람’이라고 했다. 운전하고 가다가 길에 장애물 있으면 내려서 치워놓고 간다. 미아리 살 때는 2㎞ 구간 도로를 자주 뜯기에 관심을 갖고 헤아려보니 스물세 번이었다. 계획성 있게 하라며 구청에 쓴소리를 했다. 사회가 이만큼 변한 것도 참여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주인의식 없이 구호로만 외치는 진보나 개혁은 헛거라고.

두리출판사의 주종은 ‘청소년을 위한 교양시리즈’ 지금까지 14권을 냈다. 한국근현대사, 한국음악사, 서양철학사, 서양수학사, 동양미술사 등등. 책을 많이 읽어야 할 청소년들이 입시에 시간을 뺏겨 이렇게라도 요약 정리해 줘야겠다며 통사식으로 정리한 것들이다. 모두 합쳐 한달 7000부 정도 나간다. 이 가운데 <한국사>가 가장 많이 나가 99년 5월 이래 20쇄 20만부가 팔렸다. 사실 이 책은 경영난에 시달리던 그가 이것만 내고 출판사를 접으려던 참에 우연히 걸린 것이다. 출판사에 들어온 지 3년이나 지난 원고인데 때마침 눈에 띄어 읽게 되고 가능성 있다고 판단했다. 영영 묻힐 뻔했던, 마지막이 될 뻔했던 책은 효자가 되어 내년 2/4분기면 26권으로 완결되는 큰 시리즈의 첫권이 되었다. 자신이 출간하기로 결정했으니 자신이 발굴한 원고라고 말했다.

그는 시리즈 한 권을 낼 때마다 좋은 대학 하나 세운다는 생각을 한다. 청소년 도서는 최근 들어 논술이 강화되면서 종수가 늘어나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는 텅빈 공간이었다. 아이들은 입시광풍에 휩쓸려 책 읽기는 꿈도 못 꾸고 출판인들 역시 그들을 위한 책을 내지 않았다. 아이들은 부모 말도 안 믿을 정도로 기성세대를 믿지 못한다. 대학 가면 된다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는 것, 아무리 공부해도 일등 못한다는 것 등등. 그런 아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양서가 잘 미치지 못하는 지방의 학교도서관에 ‘청소년을 위한’ 시리즈를 기증한다. 얼마 전에는 거창고등학교에 200권을 보냈다. 교도소, 군부대, 지역사회도서관에도 수시로 책을 보낸다.

이처럼 그가 ‘청소년을 위한’ 책 출판에 이른 데는 긴 이력이 숨어져 있다.

유행가 부르는 학생은 쫓아냈어

제약회사 영업직 6년차 때 최씨는 공금횡령 누명을 썼다. 새삼 판공비를 영수증 처리하라는 것을 전결사항인데 갑자기 왜 그러냐며 거부한 것이 빌미였다. 검찰 조사에서 사장과 대질하면서 혐의가 풀려 무혐의 처리됐지만 생각없이 살던 그에게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기독교인인 그 회사는 예배에 참석 않는다는 이유로 직원을 해고했던 터. 사정이 딱해 해고자와 회사 사이에서 중재역할을 한 것이 밉보이지 않았을까. 회사를 그만둔 그는 정경모의 <찢겨진 산하>, 윤정모의 <고삐> 등을 읽었다. 배워보자!




1986년 안암동 5가 로터리 근처에 ‘장산곶’ 간판으로 막걸리집을 차렸다. 대학가에 가면 뭣이 문제인지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서. 90평 술청은 무척 붐볐다. 정원 130명이 꽉차면 대문앞 추녀까지 신문지를 깔 만큼 장사가 됐다. 술집마당에서 서노협, 전노협 태동회의가 열리고, 구석에서 미 대사관저 침투조가 마지막 결의도 했다. 엔엘주점이라고들 했다. 술외상 대신 학생증 받은 것 세 차례뿐 학생들과의 관계는 끈끈했다. 고연전에서 고대가 이기면 기분이다 외상값을 까줬다. 4·18 마라톤 코스 중간중간에 막걸리통 놓아 두었고 질주 대열에 끼어 함께 달렸다. 그의 차는 집회 현장으로 유인물을 실어나르는 도구로 쓰였다. 한번은 계훈제 선생이 뒤트렁크에 숨어 집회장으로 갔다. 수배되어 도망다니는 학생들에게 여비로 10만~20만원씩을 쥐어주었다. 박노해의 <노동해방문학>을 복간할 때는 700만원을 댔다. 그는 스스로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장산곶매가 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치기였지만 과외하는 학생들한테는 술을 팔지 않았다. 생각이 있다면 야학활동을 해서 빈곤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면서. 유행가를 부르는 학생은 쫓아냈다. 젊은이라면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를 불러야 한다면서.

그렇게 학생들과 18년이란 나이차를 잊고 어울리면서 엄청나게 다른 대동세상을 보았다. 그리고 현대사의 민족, 계급 모순을 알게 되었다. 막걸리장사 5년 동안 그는 마냥 행복했다. 지금까지의 삶 가운데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고 고대앞이 인생의 분기점이 되었다고 술회했다.

6·10항쟁의 추억도 막걸리집과 겹친다. 밤에는 술집, 낮에는 명동성당. 눈뜨면 아내한테서 5천원을 얻어 현장으로 출근했다. 하루종일 우유 사먹고 거기 나와 앉았는 게 일이었다. 사과탄에 맞아 발목인대가 끊어졌을 때도 목발을 짚고 아내 부축을 받아 그곳에 나갔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학생들이 전경들한테 끌려가는 것을 보고 아내의 목소리가 터지는 것만 기분 좋았다. 누가 누군지 모르면서도 어깨를 걸었다. 시위 대열이 남대문 상가로 피신하면 상인들은 셔터를 내려 보호해주고, 물주고, 떡주고…. 휴가 나온 사우디근로자는 이것이 더 보람있다며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집에 가면 최루탄 가루를 털고 들어가야 했다. 연세대 집회에서는 프락치로 오인돼 학생들한테 잡혀 연금되기도 했다. 아는 학생을 만나 한시간 만에 풀려났지만.

도산…재도전…‘청소년 시리즈’ 성공

수류탄을 생각했다. 집회 지도부는 뇌관, 자기와 같은 사람은 장전된 폭약. 뇌관이 터지고 그 불꽃이 꽉찬 화약에 옮겨붙어 폭발하면서 강고한 외피를 찢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사람이 백걸음보다 백사람이 한걸음이라고 하지 않던가. ‘우리같은 사람’이 몸으로 터져야 모순이 깨지지 않겠는가. 경찰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그들의 말로 그는 밥풀데기였다. 그가 본 것은 해방공간이었고…. (그때 모은 유인물이 라면상자 3개로 가득이다.)

88년 가을 술집영업이 끝난 어느 날 밤. 늘 보아온 비틀거리는 학생, 음식 토사물이 낯설게 느껴졌다. 건강하게 살아야 하는 젊은이들을 술 취하게 해놓고 자신이 살아간다는 사실이 섬뜩했다. 자기 인생이 황당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다른 것은 없을까. 그리고 막걸리 장사를 하면서 깨닭은 세상이치와 6·10항쟁에서 목격한 해방공간의 기쁨을 세상에 대고 외치고 싶었다.

1989년 도서출판 가교를 차렸다. 오피스텔에서 직원 6명, 매킨토시 3대, 600디피아이 레이저프린터로 시작했다. 하지만 ‘낭만적인 활동’ 3년만에 4~5억을 까먹고 도산했다. 아는 사람은 운동권 사람들. 현장에서 필요한 책, 팜플렛 예컨대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기관지인 <연대와 전진> 같은 것 20여종을 만들었다. 밤새워 일해 납품하고 돈을 못 받는 일이 반복되면서 빚더미에 올랐기 때문. 결국 집은 사채업자에게 넘어가고 미아리 단칸 지하셋방으로 옮겼다. 네 식구는 ㄴ자로 구부려 자야했고 공중화장실을 썼다. 들어낸 가재도구는 노원구청 옆 민간주차장에 쌓아놓았다. 술힘을 빌어 가보면 하루는 냉장고가, 하루는 세탁기가 없어졌다. 두리미디어는 절치부심 1997년 다시 시작한 출판사다.

300여종의 책을 낸 출판 10여년을 돌아보면 그는 스스로 비주류였다고 생각한다. 섬처럼 정보의 세상에서 소외된…. 청소년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내면서 자신감을 회복했다. 시리즈들은 각종 상을 받고 추천도서로 선정됐다. <쏭내관의 재미있는 궁궐기행> <추사진묵-추사작품의 진위와 예술혼> <일제의 식민지 지배정책과 매일신보 1910년대> 등은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책이라고 자부한다.

“난 죽어서도 출판을 할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감이나 운에 맡기는 것은 안 통한다고 본다. 최근 기획이사와 주간을 새로 채용했다. 변이철 기획이사는 대학 1학년때부터 장산곶 출석률이 좋았고, 백운광 주간은 1학년 때부터 <한겨레>를 사명감으로 돌렸던 사람이다.

“나는 죽어서도 출판을 할 것입니다.”

돈을 벌면 좋지만 성공이든 실패든 출판에 종사하는 것에 만족한다. 그가 속하는 출판동네는 남을 속이지 않고 큰소리 나오는 법이 없다. 역시 행복하다고 했다. <마시멜로 이야기>처럼 추악한 것은 먼 곳의 일일 뿐, 자신과는 무관하다. 영세한 것이 오히려 그런 것에서 자유롭게 한다. 넘치면 엉뚱한 일을 하게 마련이다.

이제, 누가, 그를, 밥풀데기라고 하는가.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