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모으는 즐거움이요? 이제 나누는 기쁨이죠 | |
민주화사업회 일곱 상자·고려대 연구실 1천권… 연변대 빈약한 자료에 충격받고 15상자 기증 합쳐져 의미로 남는 게 소중하죠 친일인명사전 펴내려 일제 자료 수집중 장삿속에 값 치솟아 못산 게 많아요 | |
임종업 기자 | |
한국의 책쟁이들/④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책을 기증한다고 하니 집사람이 먼저 책짐을 싸더군요.” 은평구 구산동 예일여고 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의 집. 그의 집은 예상과는 달리 넓어 보였다. 길쭘한 거실. 두 벽이 책꽂이지만 책들은 책꽂이에서 한발짝도 내밀지 않았다. 가운데에는 소파와 깔개가 널찍하게 자리잡았다. 첫째 아이의 방. 책상을 등진 벽에는 이중 책꽂이에 어른 책이 버티고 있다. 어쩌면 박 실장 자신의 서재로 쓰다가 크는 아이한테 쫓겨 책을 둔채 나왔는지도 모를 일. 안방에는 부부 공용 외에 둘째 아이의 책상과 아이의 책뿐, 그의 책은 전혀 없다. 말끔한 정도로 보아 안방에까지 쌓였던 그의 책들이 어느 순간 마나님의 반란으로 추방되지 않았을까. “가족이 함께 사는 공간인데 내 책이 독점하다시피하는 게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던거죠.” 며칠 걸려 정리한 것이 지금의 모양새다. 추방된 책 가운데 수백 권은 베란다에서 수형생활이다. 다행히 북향이라서 햇볕이 들지는 않지만 책이 바래는 것을 어쩔 수 없다. 대부분 오래된 사회과학 서적이나 복사본이어서 가슴앓이가 덜하지 않을까. 책과의 싸움은 식구들과의 싸움이자 자신과의 싸움. 책을 버리는 것은 스스로 용납되지 않고, 선택한 방법이 기증하기. 그는 기증을 누군가와 책을 나누는 즐거움이라고 표현했다. 스스로 그렇게 믿을지는 모르지만, 더이상 책을 수용할 공간이 없는 터에 불가피하게 선택한 마지막 수단이 아니겠는가. “민주화기념사업회에 일곱 상자를 보냈어요. 연구자로서 미련이 남지만 욕심을 버렸어요. 책뿐 아니라 각종 팜플렛도 포함돼 있어요.” 고려대 한국사 연구실에도 1천여 권을 떨궜다. 자주 기증을 하다보니 자료의 공유라는 대의명분을 띠기 시작했고 그것은 연변까지 확장됐다. 중국출장을 가서 조선족학교인 연변대의 실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 구내 만화대여점에는 허접한 한국만화가 꽂혀있었다. 우연히 참석한 신입생 환영회. 퀴즈대회에서 고구려를 세운 왕이 누구냐는 물음에 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귀국한 뒤 그가 한 일은 기증용 책모으기. 우선 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질을 문화당에서 싸게 구입하고 헌책방 ‘책나라’에서 쓸만한 단행본을 한권에 500원씩 샀다. 공감하는 동네사람들한테서는 만화나 잡지를 모았다. 그렇게 모은 것이 15상자 분량. 중국으로 가는 컨테이너 틈에 끼워넣어 보냈다. 동북공정이다 뭐다 하는데 그 책들이 천덕꾸러기가 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책 수백 권 베란다 ‘수형살이’
그의 책은 그가 연구실장으로 있는 민족문제연구소에도 가 있다. 두 차례에 걸쳐 연구서 2천여권을 보냈다. 자료실이 안정되면 더 보낼 생각이다. 연구소가 궁극적으로 자료센터가 돼야 한다고 본다. 다양한 자료를 모아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으면 근현대사 연구자들의 시간과 돈을 절약해 주지 않을까. “책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자료가 만인들에게 이용되는 것이 꿈입니다.” 그는 박원순 변호사가 장서 전량을 역사문제연구소에 기증하면서 “마누라 빼고 다 가져가라”고 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자료실의 근간이 된 임종국 선생의 책에 비하면 나의 책은 물방울에 불과합니다.”
연구소 자료들은 자체적으로 구입하거나 기증을 받고 있다. “연구소 근처 70~80평 지하실을 빌렸어요. 제습기만 설치하고 분류정리하는 수준입니다.” 언젠가 전모를 펼쳐 공개할 기회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동안 한해 한차례 정도 주제를 특정해 전시회를 열었다. 올해는 조정래의 <아리랑>을 주제로 펼쳐보일 생각이다.
“그동안 우리는 자랑스런 유산만을 내세워왔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빛과 어둠이 공존하죠. 항일이 빛이라면 친일은 어둠에 해당합니다. 빛은 어둠과 대비시킬 때 더욱 돋보입니다.”
이번 전시를 위해 8월13일부터 한국일보 갤러리를 빌려놨다. 원래는 서울시립박물관을 임대하려 했으나 강렬한 주제를 부담스러워하는 박물관쪽 윗분에 의해 거절됐다는 후문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1989년 친일문제연구가 임종국 선생의 빈소에서 싹이 텄다. 이날 모인 사람들은 임 선생이 추진했던 친일파 총정리 사업의 뜻을 잇기로 결의했다. 91년 초 정식으로 연구소가 설립됐고 △한일 과거사 청산을 통한 역사 바로세우기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목표로 지금껏 활동해왔다. 진성회원 5000명, 상근자 35명.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몇 안되는 엔지오 가운데 하나로 연구와 사회운동적 성격을 겸한다. 그동안 김창룡 묘 이전, 서춘에 대한 서훈 취소, 문래동 박정희 흉상 철거 등 ‘평지풍파’를 일으켜왔다.
“잘못된 것을 상식적으로 바로잡는 겁니다. 친일파가 독립운동가인 척하고, 독립기념사업에 참여해 훈장을 받아 왔어요.” 그는 친일 미술가가 이순신, 백범, 안중근, 동상을 도맡아 제작하고 노년에 3·1문화상 받아 그의 친일문제가 감춰졌다고 말했다. “냄비식 반일과는 달라요. 일본을 비판하려면 우리의 잔재부터 청산해야 한다는 거죠. 우리가 ‘마사오 다가키’ 박정희를 기념한다면서 어떻게 일본한테 당당할 수 있겠습니까?”
기증한다니 아내가 언른 책짐 싸
근현대 한국사를 전공한 박 실장과 민족문제연구소의 방향은 거의 겹친다. 설립 초기에 연구소에 합류한 그가 개인의 일을 접어두고 연구소 일에 전적으로 매달리는 것은 그 탓이다. 아니, 그게 아니라 연구소의 일이 곧 자신의 일일 터다. 그의 몫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자료의 수집. 평소 개인적인 수집벽을 연구소로 연장하면 바로 공적인 일이다. 개인 자료와 연구소 자료가 뒤섞여도 표가 나지 않고 그것을 어쩌지 못한다.
연구소에서는 <일제 식민통치기구 및 협력단체 편람>(국내편), <일제하 해외 친일단체 편람>, <일제하 지방 친일단체 편람>을 공식·비공식으로 간행하고 <재일조선인단체편람>을 정리중이다. 2007년에는 최종목표인 <친일인명사전>을 펴낼 계획이다.
바탕이 되는 것은 일제 때 그들이 펴낸 자료들. 매일신보, 대한매일, 조선일보, 동아일보, 만선일보 등 신문은 물론 친일잡지들, 인사록, 신사대동보, 공로자명감, 연감류, 서훈록, 국방헌금납부자명단, 만주국한국인관리 명단, 전국지방의원 명감, 병합기념장 수여자 명단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 자료를 구하기 위해 국사편찬위, 기록원, 각종 도서관을 뒤지고 일본과 중국에도 여러 차례 출장을 갔다. 중국의 문서관에는 만주친일파, 간도특설대에 관한 자료가 보관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대부분 비공개라서 애로가 많다.
문서자료 외에 간접자료도 아주 유용하다.
예컨대 한일합방 기념 오사카 <매일신문> 부록인 아동용 블루마블게임. 신공왕후. 귀무덤, 신라인 조공 등 조선역사 왜곡를 왜곡하고 식민통치를 정당화한 내용이다. 당시 국어교과서에 실린 ‘간도에서 온 편지’. 비적이 평정돼 살기 좋다며 개척이민을 장려하는 내용. 수신교과서에 실린 충효사상. 이는 유교문화의 유산이 아니라 천황에의 충성을 말한다. 박정희 정권 때의 충효사상 강조와 흡사하다.
수집은 전단, 포스터, 우표, 군복, 지도, 앨범등 생활자료로까지 확대됐다. 역사는 텍스트로 알기보다 오감으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천인침(처녀 1000명이 수를 놓아 총알을 막아준다는 배띠), 무운장구의 기원을 적은 일장기, 한일합방 축하 가두행진 사진, 이완용의 친일시화, 최린 임전대책협의회 회장의 엽서, ‘돌격’ 담배,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세로 표어, 창씨개명 관련 자료, 일본군 앨범과 군표, 조선지원병 첫사망자인 이인석 상병 선전책자, 일본군가, 친일영화 전단 포스터, 황국신민서사 전단, 러일전쟁·중일전쟁 주사위 게임 등등. 이런 자료는 중간수집상, 인터넷 경매 등을 통해 구입한다.
친일청산 뜻있는 분 기증 바랍니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모은 것이 처음입니다. 일찍 시작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장삿속으로 모으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값이 많이 올랐거든요. 돈 없어 못 산 것 많아요.” 그는 뜻있는 사람들의 기증을 바랐다. 흩어져 값으로 존재하기보다 합쳐져 의미로 남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믿음에서다.
한해 앞으로 다가온 2007년. 대망의 친일인명사전이 마무리되면 10년 너머 미뤄온 박사학위 논문을 매듭지을 참이다. 주제는 박정희가 통치이데올로기로 내세워 성공을 거둔 민족, 국가 담론 분석과 국민교육헌장, 반상회, 학도호국단 등 언술을 관철시켰던 시스템 연구.
“해 저문 저녁 갈길은 먼데, 비가 오죠, 소는 뛰고요, 풀짐은 무거워오고요.”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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