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멘토&북코치 북리뷰]
'영성(spirituality)'이란 단어 만큼 혼란을 주는 단어는 없다. 이 책은 영성을 깊이있게 연구하고 있다. 무엇이 영성인가? 저자는, '영성은 이미 거듭나서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가기 위한 거룩한 몸부림'이라 정의한다.
필자는 영성을 '거듭나서 이미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더욱 가까이 가기 위한 거룩한 몸부림'이라고 나름대로 정의한다. 그러므로 이 말은 구원 받은 자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 우리는 그분을 더욱 알기 위해 부지런히 영혼의 날개 짓을 한다. 이것이 바로 '영성 추구'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일에 자라가기 위해 부지런히 성경을 읽고 연구하면서 우리의 삶에 적용시키고 있다. 때로는 기도와 금식을 통해 하나님에게 나아가고 있다. 이 모든 일들이 일종의 영성 수련이다. 신앙의 선배들은 나름대로 그분에게 가까이 가려고, 그분의 임재 앞에 서려고 각양의 방법으로 영성을 추구해 왔고, 또한 이 영성 수련들을 전수해 주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영성으로 가는 길을 다루었다.
영성은 '믿음과 삶과 인격과 성품과 태도 따위를 총괄하는 통합체'이다. 그러므로 '누구의 영성'이란 말은 '그 사람의 모든 삶의 결정체'를 가리키는 말로 보아야 한다. 빌립보서 3장 7절에서 16절에 담긴 말씀에서 보듯, 바울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그리스도를 얻으려 한데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 인격체적인 영성을 발견코자 함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자아이며,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며, 새로운 신분의 회복이다.
영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만남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 만남이 없으면, 그리스도를 얻지 못하며, 그리스도를 얻지 못하면, 모든 것을 잃어 버림이 아니라 배설물을 얻는 결과가 되어 버린다. 옛사람이 죽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몸부림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다.
개신교에서는 '영성'이란 단어를 지금까지 회의적 시각에서 바라보아 왔던 것이 사실이다. 16세기의 종교 개혁자들이 내건 슬로건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구원에 호소하는 그들의 눈에 영성은 인간의 공로를 주장하는 사악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영성은 종교개혁의 큰 틀 안에서 당연히 배제되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영성은 공로주의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그때부터 '영성'이란 단어는 '생활의 거룩', '경건한 생활'로 탈바꿈하여 사용하게 된다.그들은 참 경건이란 세상을 떠나 수도원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바로 수도원이며, 세상의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종교 개혁 시대와 아주 다른 상황이 되었다. 종교 개혁자들이 중세 기독교의 여러 심각한 잘못된 교리들을 버리고 나오면서 영성도 함께 곁들여 버려졌다는 사실을 최근에 이르러 깨닫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 영성의 진가를 캐내기 위한 시도가 개신교 안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매우 환영해야 할 점이다.
개신교 내의 몇몇 영성주의자들이 최근에 영성을 소개하면서, 영성에 대한 바른 이해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선두에서 일하고 있는 영성주의자들 가운데는 한국에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리차드 포스터(Richard Foster), 달라스 윌러드, 피터 쿤(Peter Coon) 등이 있다. 유진 피터슨(EugenePeterson)과 덴버 신학교의 브루스 데마리스트(Bruce Demarest) 교수는 영성 신학자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데마리스트 박사는 학생들의 영성을 위해 영성 형성(Spiritual Formation)이라는 교과목을 책임지고 있으며, 엘리스터 맥그레스(Alister McGrath)는 영성의 방향에 대한 혜안을 제공해 주고 있다. 그 외에도 게리 토마스(Gary Thomas)를 위시한 많은 영성 작가들이 기독교 고전에서 영성을 소개하고 있다. 이 외에도 영성은 많이 세분화되어 영성과 목회. 영성과 상담, 영성 순례(영적 사이클을 점검하는 작업), 영적 지도 및 인도(spiritual director,spiritualmentor) 등의 방향에서의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일각에서는 영성이 로마 카톨릭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편협된 인식도 여전히 남아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개신교 내에서 바울과 어거스틴을 상당히 높게 평가하고 있지만, 어거스틴을 위시한 신앙의 선배들은 어느 특정된 교파에 소속된 사람들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들은 위대한 믿음의 선배 그리스도인이지 어느 특정 교파에 속해있는 분들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영성은 초대 기독교 시대부터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신앙 활동이었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보화를 전수 받아 더욱 새롭게 영성을 쌓아나가 한다.
저자는 영성을 지식적 영성과 체험적 영성으로 분류하였다. 지식적 영성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knowledge of God) 이요, 체험적 영성은 하나님을 아는 체험(experience of God)이다. 그러나 이 두 영성이 상반된 것은 아니다. 두 가지 모두 하나님을 알아가는 방편으로서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말씀을 통해서고 능히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으며,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확증해 나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통합은 사도 바울 안에서 엿볼 수 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당대의 최고였다.
그는 구원에 이르는 과정에서부터 교회의 구성, 성령의 은사 및 목회 지침에 이르는 방대한 신학을 저술한 신학자였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 이상으로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있었다.
저자에 의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을 체험하는 일은 영성에 이르는 두 가지 방편이 된다. 그런데 두 가지 다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다. 지식적 영성은 인간의 이성에 의하여 오도되는 위험이 있는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인간의 이성과 자유를 더 존중하는 인본주의가 있다.
기독교 역사에서 알 수 있는 잘못된 신론, 기독론, 성령론을 들고 나온 여러 이단들은 성경의 지식을 오용한 잘못에서 나왔다. 반대로 체험적 영성은 신비주의로 빠지는 위험성과 지나친 영의 세계를 풀려고 하다가 이단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모든 영적 체험은 반드시 신앙의 표준인 성경에게 반드시 물어 보아야 한다. 올바른 체험적 영성은 성경을 기준으로 삼는다. 고전 영성 수련가들은 철저하게 성경 중심적이었다. 만약 신비적 체험을 했을 때에는 반드시 성경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영성은 교회의 전승에 맞아야 한다. 초대 교부들은 성경은 물론 사도들의 전승에 유의하여 이단들과 맞섰다. 예를 들어, 사도신경은 초대교회에서 각종 이단들과 싸워 얻어낸 의미 있고 뿌리 깊은 믿음의 고백이다. 선배 신앙인들이 쌓아 나온 영성의 기틀을 무시하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기 쉽다. 더 알기 원하는 것이 있거나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영성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야 한다. 교회사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성과 은사주의는 다르다. 미국에서는 영성 신학을 표방하는 학교 중에서 은사주의 신학을 가르치는 학교가 더러 있다. 영성과 은사주의는 다르다. 은사를 받기 위해 영성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영성을 은사의 시녀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성령의 은사는 성령을 충만하게 받으면 저절로 주어지게 되어 있다.
영성은 신비주의와 다르다. 영성 생활이 깊어지면 신비(mystery)를 체험하는 일이 반드시 온다. 하나님을 아는 것 자체가 이미 신비에 속한다. 바울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도 신비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바울은 삼층천에도 갔다 왔다. 어떤 교회에서는 꿈에 대한 얘기만 하여도 펄쩍 뛴다. 성령에 대해 설교하는 교회가 드문 것도 사실이다.
신비를 너무 두려워하면 안 된다. 그러나 신비주의(mysticism) 는 다르다. 이것은 영적 체험 만을 강조한다. 그러나 잘못하면 사탄이 주는 영적 조화를 잘못 받을 가능성이 크며, 그렇게 해서 이단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식적 영성에 기초해 있어야 사탄의 장난을 막을 수가 있다.
영성과 영적 분위기를 혼동하면 안 된다. 영적 느낌이 영성을 이끌어 가서는 안 된다. 막연한 느낌에 의존해서 영성 생활을 이끌어 가면, 주관적 판단이나 주위의 분위기에 영성이 좌우되기 쉽다. 하나님과의 만남에 있어서도 분위기나 느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항상 초점은 하나님께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느낌과는 상반되는 결과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영적 분위기에 의존하면 올바른 영성이 형성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독교 역사 속에 숨쉬고 있는 영성을 살피는 것은 필수적인 작업이다. 기독교 영성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정도를 발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영성을 분간할 수 있는 안목도 얻게 된다.
이 책은 영적 지도자에 관한 자세한 지침도 제공하고 있다. 영성 지도자는 지도를 받는 자들의 사역에 따라 지도를 해야 함은 물론, 그들의 영적 사이클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지도를 영성 지도자가 먼저 받아야 한다.
영적 혜안이 없었던 엘리 제사장이 사무엘의 어머니인 한나의 영성을 잘못 판단한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일리는 사무엘에게도, 그의 두 아들들에게도 아니 백성에게도 조차 그의 영성 지도는 밑 바닥 수준이었다.
영성 지도는 개인의 영혼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도하는 자는 지도를 받는 자의 그때 그때의 필요에 따라 맞추어 지도해야 한다. '그저 기도해 보세요'라던가 '성경을 읽으세요' 혹은 '예배나 모임에 부지런히 참석하세요' 따위의 일반적 또는 일방적 지시의 시대는 지나갔다.
그러므로 영성 지도자는 그들의 영적 형편을 잘 파악하여 구체적으로 지도를 해 주어야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영성 지도자는 그들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여,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계획이 그들의 삶 속에서 활짝 펼쳐질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형상에 닮아가도록,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어야 한다.
헨리 나우웬은, 영성 지도자는 상담자나 심리 치유자나 분석자가 아니라 성숙한 동료 그리스도인이다. 우리는 그를 믿고 우리의 영적 삶을 이야기 할 수 있으며, 삶 속에서 하나의 능동적인 임재를 분별하기 위해 끊임없이 몸부림치는 우리에게, '기도에서 우러나오는 지시를 그로부터 기대할 수가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영성의 지도를 받는 사람은 지도자를 믿고 따라야 한다. 자기 생각과 고집을 앞세우면 두 사람의 관계는 형성되지 않는다. 그래서 토마스 아켐피스는 "현명하고 양심적인 사람과 늘 의논하여, 당신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고 따르는 것보다는 당신보다 나은 사람의 의견을 묻고 그의 지시를 따르도록 하십시오"라고 충고한다.
영성을 지도하는 자는 처음부터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말도 있듯이 자기가 받은 고통과 아픔이 하나님 앞에서 승화되어 나오면 훌륭하게 남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고 싸매어 줄 수가 있다. 다시 말해서 고난의 길을 걸어본 사람은, 같은 고난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 더욱 효과적으로 도와줄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영적 지도자는 은혜의 통로로써의 전달자이다. 자신이 먼저 기도로 영력이 뒷받침 되어 있어야 하며, 영혼의 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경험이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영혼 하나하나에 대한 진실어린 애정이 늘 내면에 깔려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자신의 영성만을 고집하여 상대방에게 무리한 강요를 할 수도 있다.
물론 진정한 영성 지도자는 성령이시다. 영성 지도자는 다른 사람의 영혼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지켜보며, 이를 기뻐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영안을 갖고서 그 사람의 삶 속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작업을 간파할 의무가 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권고에 민감함은 물론,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원하시고자 하는 계획이 무엇인지에 항상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므로 영성 지도자는 상대방의 말을 듣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모든 일에는 과정이 필요하고 순서가 있는 법이다. 성령은 그 누구보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영성 지도자가 마음대로 조정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가장 알맞은 시간 속에서 각자의 영성을 지도하신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영성 신학이 모든 신학의 결정체라고 말한다. 성경신학, 조직신학, 실천신학은 물론이고 인간학, 상담학, 지도자학이 총망라되는 종합적인 신학이 요구된다. 독자는 본서에서 영성의 참뜻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삶에 적용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필독서로 추천한다.
[한국양서보급중앙회 북멘토&북코치클럽]
http://cafe.naver.com/Bookmentor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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