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양서보급중앙회

『문명의 충돌』 VS『문명의 공존』

북코치 2006. 2. 17. 18:47

『문명의 충돌』 VS『문명의 공존』 - 냉전의 은폐술, 혹은 화해의 손짓에 대하여


1. 자기 정체성, 혹은 세계의 등본으로서의 지도


지도는 참 쓸모 있는 매체임에 분명하다. 세계로부터 떨어져 나온 보잘 것 없는 개체에 비해 세계는 너무나도 커서 이 거대한 세계 앞에서 우리는 자주 길을 잃고 절망해 오지 않았던가. 우리가 별을 보고 점을 치거나 나침반을 고안하여 가야 할 길을 가늠해 온 것, 득의의 측량술로 거리를 재고 이런저런 이정표들을 마련하고서 공간을 질주해 온 인간의 역사도 따지고 보면 모두 이 절망의 다른 이름들일 터이다. 뿐인가. 저 유클리드의 기하학으로부터  원근법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이 세계를 바로 우리 눈앞에 소환해 오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지도는 세계에 대해 우리가 자신 있게 들이밀 수 있는 영락없는 물증이다. 이 세계를 위도와 경도로 꼼짝 못하게 포박해놓은 물증이 이제 우리 손에 쥐어져 있다. 

지도를 통해 세계는 이제 인간에게 등록된다. 지도는 세계의 등본으로서 우리가 떼어 주는 서류이다. 인간이 세계를 접수한 것이다. 접수란 세계를 의식 속에 불러들이는 일이다. 우리는 세계를 기억 속에 접어 넣는다. 어떻게 접느냐에 따라 세계의 목록은 달라질 터, 세계는 기억 속에서 재구성된다. 세계가 단순히 지리적, 물리적 배치가 아닌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것은 기억의 편재와 구축에 따라 인간의 정체성을 축조해낸다. 세계가 그저 의식 바깥에 머물러 있는 공간이 아닌 것도 이 때문인데, 외적 공간으로서의 세계는 지도를 매개로 해서 내적 공간과 맞물려 있는 의식의 장으로 작동된다. 따라서 인간의 정체성이란 세계와 따로 떨어져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흡사 줄탁동기(啐啄同機) 같은 것이어서 세계와 의식은 늘 함께하는 어떤 것이다. 우리가 세계에서 살아가는 한 의식 속의 네비게이터 역시 쉴 새 없이 돌아갈 터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이 지난 세기말에 상재한 『문명의 충돌』과 이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 독일의 국제관계학 교수 하랄트 뮐러의 저서 『문명의 공존』이 문제적인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다. 양자는 더러 교차하기도 하고 때로 동행하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냉전이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난 지점에서 제목이 표 나게 내세우는바 서로 상반되는 지도를 그리고 있다. 이는 우선 두 사람의 사유의 거푸집이 다름은 물론, 이 거푸집에서 주조해내는 작금의 세계의 꼴 역시 다름을 뜻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두 사람이 문명의 단층선을 따라 이 세계에 만들어내는 골과 이랑이 다르다. 그리고 그들이 그려내는 지도가 당장 우리의 발밑에 깔리는 물리적 접지와는 무관할지라도 많은 부분 우리 안에 접혀 들어앉은 의식의 지도에다 각각 다른 주름과 흔적들을 새겨 넣는다. 


 
2. 거꾸로 걸린 깃발, 혹은 역린(逆鱗)의 전조


먼저 헌팅턴의 경우이다. 1980년대 말 저 동구권을 진앙지로 둔 공산권 붕괴의 해일이 급기야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을 집어삼킨 후 세계는 잠시 이념의 재난에 봉착하는 듯했다. 이것이 재난이었던 것은 이 변화무쌍한 사태가 워낙 갑작스럽게 덮친 때문이기도 했지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의식의 영역을 팽팽하게 가누고 있던 한 축이 무너져 내리는 통에 관념적 내용물이 일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공황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아직 이런 재난과 공황이 채 가시지 않고 있었던 1993년에 헌팅턴은 <포린 어페어스(Foeign Affairs)>지에 ‘문명의 충돌?’이란 논문을 실었고 이에 대한 전세계적인 반향에 힘입어 몇 년의 집필 과정을 거쳐 아예 이를 『문명의 충돌』이란 꽤 묵직한 책으로 묶어냈다. ‘이념의 지도’가 사라진 때에 그는 ‘문명의 지도’라는 새로운 등록증으로 분분한 논쟁의 지형 속에 자신의 이름을 등재했던 것이다.  

헌팅턴은 책에서 자신이 그린 문명의 지도를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을 끌어다 설명한다. 그는 “간결한 패러다임이나 지도는 인간의 사고와 행위에서 빼놓을 수 없다”고 전제한 뒤, 공산권이 붕괴되기 전까지 두 세대 동안 “세계 정치의 간단한 모델로서 냉전 패러다임은 그 어떤 경쟁 모델보다도 중요한 현상을 많이 설명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제 이른바 ‘변칙’이 생겼다. 냉전이 무너진 것이다. 그러니 이 변칙을 해명할 새로운 모델이 요청된다. 바로 자신이 제출한 ‘문명의 충돌’이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패러다임의 교체 순간을 알리기 위해 일견 사소해 보이지만 이전의 대칭과 평형을 깨는 일련의 기우뚱한 사건을 들려준다. 

“1992년 1월 3일 러시아와 미국의 학자들이 참석한 회의가 모스크바의 한 정부 기관 강당에서 열렸다. 두 주일 전 소련은 해체되었고 러시아 연방이 독립국으로 출범하였다. 그 결과 이제까지 강당에 우뚝 서 있던 레닌상은 사라지고 그 대신 러시아 연방기가 내걸리게 되었다. 한 미국인 학자가 관찰한 딱 하나의 문제는 기가 거꾸로 걸려 있다는 것이었다.”       

“1994년 4월 18일 사라예보에서 2천여 명의 군중이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의 국기를 흔들며 집회를 가졌다.......사라예보 시민들은 자기네가 이슬람 세력과 연대하고 있음과 그들의 진정한 벗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밝혔다.”

“1994년 10월 6일 로스앤젤레스에서 7만 여명의 군중이 불법 체류자와 그들의 자녀의 복지 혜택을 대폭 박탈하는 주민 투표 제안 187호에 항의하면서 ‘멕시코 깃발의 바다’ 아래 행진을 벌였다. ......두 주일 뒤 더욱 대규모의 시위대가 미국 국기를 거꾸로 든 채 거리를 행진하였다.”

헌팅턴은 ‘깃발’에 주목한다. 그는 거기서 탈냉전 시대의 징후를 읽는다. 깃발은 문화 정체성의 상징물이라는 것이다. 이 깃발이 지금 거꾸로이거나 서로 다른 깃발이 전에 없이 함께 흔들린다. 장승이 피눈물 흘리고 석상의 얼굴에서 진땀이 나는 아주 기괴한 풍경? 이념적 전복과 문명적 연대의 시대적 조짐이 깃발에서 묻어난다고 그는 보는 걸까? 거꾸로 선 깃발은 물론이거니와, 그에게 있어 함께 흔들리는 깃발로서의 비서구의 연대 또한 전복의 기운으로 읽힐 법하다. 그야말로 세계의 목록과 기류에 아주 얄궂은 전조가 풍긴다. 중국은 당, 송, 명 시대에, 이슬람은 8세기에, 비잔틴은 8세기에서 11세기까지 유럽을 훨씬 능가하는 경제력, 영토,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고, 예술적, 학술적, 과학적 성취에서도 유럽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우월했다. 그러나 대체로 서기 1500년 이후부턴 사정이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때에 이르러 유럽은 이슬람과 비잔틴 문명의 고등 문명을 자신들의 조건에 맞게 적절히 활용하며 자신들의 르네상스 문화를 서서히 안정기에 올려놓기 시작했고 이에 힘입어 서서히 세계의 문명을 주도해 나갔던 것이다. 아울러 서기 1500년 이후 절대군주들이 다스리는 왕조간의 치열한 영토 다툼을 거치는 가운데 성립된 서구 국민국가와 그들 간의 분쟁은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이념 대결로 고착되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크게 보아 세계는 16세기 이후 20세기까지 4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서구 문명은 비서구 문명을 지배해 왔고 정치적으로는 이념적 양극 체제를 구축해왔으며, 비서구 문명은 자의 반 타의 반 이념적 양극의 우산 아래 스스로의 문명을 복속시켜 온 것이 저간의 사정이었다. 그런데 이념의 끈이 풀리면서 이 양극화된 세계의 기류에 이상이 생겼다. 이 이상 기류를 헌팅턴은 거꾸로 걸린 깃발에서 감지하는바, 이 거꾸로 걸린 깃발에서 그는 모종의 역린(逆鱗)의 낌새를, 하나의 거꾸로 선 비늘을 본 건 아닐까? 거꾸로 걸린 깃발이 역사의 반대 방향, 곧 16세기 이전 시대, 중국과 이슬람과 비잔틴이 서구 문명을 압도했던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넌지시 가리키고 있다고 지레 겁먹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헌팅턴이 새로 그리려는 지도에서 그의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포를 읽는다. 그리고 그 공포와 불안에서 이념적 핵심국 미국의 주민인 자신의 정체성 붕괴를 막으려는 교묘한 방어 기제를 본다. 인간의 정체성이란 늘 외적 공간과의 공모로 축조되는바, 그 한 축이 무너지고 있는 까닭이다. 



3. 새뮤얼 헌팅턴 - 문명의 허울 
  
      
헌팅턴은 ‘깃발의 징후’를 꽤 그럴 듯한 그림으로 형상한다. 우선 세계는 이제 이념적 양극 체제에서 다극적 복수 문명 체제로 옮아가고 있다고 그는 진단한다. 1988년에서 1999년 사이의 <뉴욕 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 그리고 의회 기록에 “자유세계라는 이념적 용어의 사용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서구라는 문명적 용어의 사용이 늘어”나고 있고, 세계가 7, 8개의 문명권으로 재편되고 있는 것으로 그에겐 보이는 까닭이다. 그는 달라진 세계를 기독교 문명(유럽, 북미, 오세아니아), 동방 정교 문명(슬라브, 그리스), 이슬람 문명(중부 아프리카에서 근동을 지나 중앙아시아와 인도네시아에 산재), 아프리카 문명, 인도의 힌두 문명, 일본 문명, 유교 문명(중국과 그 주위의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으로 나눈다. 문명이 세계를 나누는 가름선인 까닭은 그것이 “가장 오래 된 이야기”이며 보즈먼의 말대로 “정치 체제는 문명의 표면에 떠 있는 일시적 부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각 문명권을 나누는 기준이 종교라는 점이다. 헌팅턴은 참 유난히도 종교에 집착하는 듯 보이는데 이에 대해 그는“문명을 정의하는 객관적 요소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테네인이 강조하였듯이 종교”라고 전제한 다음, “문명마다 철학적 전제, 밑바탕에 깔린 가치관, 사회관계, 관습, 삶을 바라보는 총체적 전망은 크게 다르고, 세계 전역에서 불고 있는 종교의 부흥 바람은 이런 문화적 차이를 더욱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한다. 

한편 각 문명 블록에는 핵심국이 있다. 기독교 문명에서는 미국이, 정교 문명에서는 러시아가, 유교 문명에서는 중국이 핵심국이다. 힌두의 인도와 일본은 문명권과 핵심국이 같은 경우이다. 그러나 이슬람 문명에는 핵심국이 없다. 그에 따르면 이제 국제 정치 무대에서 행위자는 국가가 아니라 문명이다. “문명 핵심국들의 중력은 문화적으로 비슷한 집단을 끌어당기고 이질적인 집단을 밀어”내고, 이 문명 핵심국들이 냉전 시대의 초강대국을 밀치고 “접근과 배척의 중심축”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쟁 또한 이념의 단선적 분절선을 따라 일어나는 게 아니라 문명적 괘선에 따른 복수적 간극들에서 다발한다. 헌팅턴은 냉전 체제의 와해 직후 벌어졌던 피비린내 나는 유고 내전과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면서 러시아와 주변 독립 국가 간에 일어났던 일련의 갈등과 분규를 예로 든다. 둘 다 종교 분쟁인데, 가령 구 유고슬라비아는 가톨릭을 믿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이슬람교도가 세력을 잡고 있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정교 인구가 다수를 점하는 세르비아-몬테네그로와 마케도니아로 갈라졌다. 그리고 이것이 다시 2차 분열을 일으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전쟁을 통해 세르비아 지역, 이슬람교도 지역, 크로아티아 지역으로 쪼개졌으며, 크로아티아는 세르비아계와 크로아티아계로 다시 갈라졌다. 이 유고 내전을 가톨릭, 이슬람, 정교 간에 벌어진 치열한 종교 분쟁으로 헌팅턴은 묘사한다.

이제 문명적 일원화를 추구했던 서구의 보편 문명의 꿈은 한낱 미망에 불과하다. 비서구의 문명적 약진으로 말미암아 서구의 문명적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이로 인해 세계는 핵심국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면서 몇몇 문명권으로 사분오열된다. 그리고 각 문명 블록은 이제 서구 문명에 주눅 들지 않고 자신에 찬 문명적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와 관련해 특히 헌팅턴은 동아시아의 행보에 주목한다. “20세기 후반부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현상 중의 하나는 동아시아의 경제 발전”인데, 경제 발전은 그것을 성취한 주체에게 “자신감과 자긍심을 준다”고 강조한다. 말하자면 동아시아는 근대화에 성공했다는 것인데, 헌팅턴은 이 대목에서 동아시아의 이런 성공이 서구의 훌륭한 견인력 덕이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이를테면 나는 “차세대 토착화 현상”이란 헌팅턴의 어법에서 그런 뉘앙스를 잡아챈다. 가령 “서구의 식민지였던 중국이나 독립국이었던 일본 같은 나라의 ‘근대화’ 세대나 ‘해방’ 세대는 대개 외국(서구) 대학에서 서구어로 교육을 받았”고, 이들은 귀국하여 자국 내에서 야심만만한 젊은 지도자가 되는데 이들은 “자기 사회의 가치관과 문화로 복귀한다”는 말에서 그런 뉘앙스가 풍긴다. ‘서구’의 식민지였고 ‘서구’ 대학에서 ‘서구어’로 교육받았다? 그런데 자기 문화와 가치관으로 복귀한다? 말하자면 나는 여기서 ‘배은망덕’이라고 말하고 싶은 그의 불편한 심기를 감지한다. 가령 영국인 변호사 진나는 파키스탄인 아잠이 되었고 골수 영국인이었던 리 콴유(李光耀)는 유교의 명쾌한 대변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예컨대 구한말에 정체성을 잃지 않은 채 서구 문화를 수용한 미국 유학생 유길준도 있었지만, 미국 유학을 갔다와 우리 사회의 가치관과 문화로 복귀하지 않은 서재필도 있지 않은가. 서재필은 미국의 한인 교포 신문에 갑신정변에 대한 회고록을 연재했는데, 회고록에 의하면, 그는 “미국을 빛의 나라로 내세우는 한편, 점진적인 개혁을 주장한” 민영익을 배신자로 낙인찍어 죽이려 한 사람이다(박노자, 허동현, 『우리 역사 최전선』).

헌팅턴은 이슬람 문명에는 핵심국이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슬람에 대해선 원리주의의 위험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원리주의의 원인으로 이슬람 세계의 인구 증가를 들고 있다. 곧 젊은 층들이 늘고 있다는 말인데, 젊은 지식인들이야말로 이슬람 원리주의의 행동대원들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솔직히 새뮤얼 헌팅턴이라는 사람의 지적 숙련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음을 고백하고 싶어진다. 그는 너무나 허술하고 일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동아시아를 포함한 중국의 유교문명권만 하더라도 동아시아의 경제 발전이 유교문명과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매개되는지, 다른 문명권으로 분류한 일본의 발전이 유교 문명권과 어떻게 구분되는지에 대한 어떤 설명도 없다. 그런가 하면 유교문명권에 속한다는 한국에 대해서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한국에는 “역사적으로 불교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루는 데 불교는 제 구실을 하지 못하였다고 평가한다. 그러고는 1980년대에 한국의 크리스트교 인구는 “최소한 30퍼센트를 차지했다”고 적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20세기 후반의 한국의 눈부신 경제 성장에는 불교가 아니라 기독교가 공헌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한국을 왜 서구와 같은 기독교문명권에 안 넣고 유교문명권에 넣었는가? 뿐만 아니라 헌팅턴은 베트남을 중국과 함께 유교문화권에 집어넣고는 양국간에 분쟁이 있는 걸로 얘기한다. 그리고는 아무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이 분쟁이 머잖아 해결될 걸로 보인다고 전망한다. 이슬람 문명권을 말하다가 왜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하는고 하니, 이슬람 원리주의가 인구 증가와 관련된다면 왜 하필 이슬람문명에서만 인구 증가를 언급하는지, 인구 증가가 문명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어떤 해명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슬람교에서는 낙태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고 짐작해 볼 수는 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짐작일 뿐이지 저자의 명확한 견해는 아니다. 

사정이 이렇고 보면, 기실 헌팅턴은 자신의 책에서 문명을 빙자하여 실상 이슬람 원리주의에 대한 과도한 혐오나 적대감을 드러내고자 하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민족성을 재창조하려는 민족에게는 적수가 필요하며, 잠재적으로 가장 위험한 적대감은 세계 주요 문명들 사이의 단층선에서 불거진다”는 헌팅턴의 말은 이슬람 원리주의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적용되어야 할 말이다. 이러한 적대감이 과도하게 작동된 나머지 그는 이슬람 사회와 아시아 사회, 이슬람 사회와 서구 사회에서 가장 격렬한 대립이 나타날 걸로 예상하면서도 ‘중국-파키스탄-이란’으로 이어지는 ‘유교-이슬람 결합’을 강조하는 자가당착을 범하기도 한다. 이리하여 헌팅턴은 급기야 이렇게까지 말한다. 

“중국의 부상이 지금처럼 지속될 경우 중국은 ‘인류사의 가장 덩치 큰 주역’답게 21세기 초반의 국제 안정에 막대한 압박을 가할 것이다. 중국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패권국으로 떠오르는 것은 미국이 이제까지 추구하여 온 국익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미국의 이익, 나아가 서구의 이익을 침해받지 않기 위해 헌팅턴은 기독교, 다원주의, 개인주의,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서구만의 독특한 문명을 수호하고 유럽과 함께 대서양 중심의 정책을 도모할 것을 미국에 제안한다. 그래야만 미국은 진정한 국익을 얻을 수 있을 거라 말하면서.
       


4. 하랄트 뮐러 - 헌팅턴의 허구와 숫자 놀음


『문명의 공존』의 저자 하랄트 뮐러는 책의 서두 부분에서 대뜸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에 대해 “경고를 발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곧 이어 ‘충돌’이 아니라 ‘공존’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물론 문명간 충돌의 여지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럴 때조차 그것을 자명한 것으로 수용할 게 아니라 공존과 협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그는 충고한다. 즉 “다양성은 문명들이 서로 평화롭게 교류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전제이다.” 뮐러는 첫머리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민족성을 재창조하려는 민족에게는 적수가 필요하”다는 헌팅턴의 논리를 간단하게 뒤집는다. 그 역시 정체성엔 적수가 필요하고 적이란 무서운 위협으로 보지만 “그만큼이나 그리운 대상이다.” 

뮐러는 먼저 헌팅턴이 그려낸 문명의 지도에 시비를 건다. 그는 “절약적인 이론일수록 선호되”긴 하지만 헌팅턴이 “자유세계와 공산 세계로 나누었던 옛 이분법과 똑 같은 질서를,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퍼즐 같은 오늘의 세계에 부여”했다고 꼬집는다. 물론 ‘오캄의 면도날’로 명명되는 이론이 갖는 절약의 덕목은 그 자체로 미덕이지만, 헌팅턴이 꼭 필요한 부분까지 잘라내는 바람에 그의 이론은 유용성과 현실성을 상실했다고 비판한다. “유리한 물증만 수집하고 불리한 반대 증거는 관대하게 무시하는 변호사의 관행”이 꼭 그 짝이 아니겠는가. 실제로 헌팅턴은 자신의 문명 지도에서 불교 문명을 잘라내는가 하면, 일본 문명을 중화 문명에서 잘라내어 독자적인 문명 블록으로 설정하기도 하고 이슬람을 믿는 인도네시아를 이슬람 문명에선 언급하지 않다가 아세안(ASEAN) 그룹을 말할 때는 그 멤버로 거명한다.

이런 문제점은 그가 자신이 그려낸 세계상에서 문명을 지나치게 강조하려는 데서 말미암는다. 가령 헌팅턴은 “현재 진행 중인 전쟁의 50퍼센트가 문명 간의 갈등을 배경으로 한다”고 하지만, 이는 곧 전쟁의 “절반 이상이 문명적 요소에 의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결론으로도 이어진다. 이런 사태는 헌팅턴이 경험적 검증이 없이 통계 자료의 숫자 놀음에 매몰된 탓에 일어나기도 한다. 뮐러는 헌팅턴의 숫자 놀음을 똑 같은 ‘숫자 놀음’으로 간단히 뒤집는다. 가령 그가 문명 집단 간의 분쟁 31개 중 21개, 곧 2/3이 이슬람과 비이슬람의 분쟁이라고 판정한 경우를 보자. 이슬람 전사가 타 문명 전사와 싸움을 하려면 비이슬람 문명의 상대역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위의 통계는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 즉 타 문명과 분쟁을 벌인 62개 문명 집단 가운데 21개 집단, 곧 1/3만 이슬람이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인 것은 헌팅턴의 이런 집계가 이슬람 집단의 폭력성을 도드라지게 한다는 점이다. 내가 보기에, 헌팅턴의 이런 불편부당한 태도는 단순한 국소적 허술함이 아니라 그의 책 전편에 묻어나는 일련의 혐의들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혐의 사슬들은 그 책에서 아주 미묘한 저류를 형성하고 있다. 뮐러의 지적대로 NATO에 재가입시키지 않으려고 헌팅턴이 그의 책 곳곳에서 터키를 이슬람 문명의 대표국으로 추천하고자 한 것이나, 핵심국이 없는 이슬람 세력의 위험성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강조하는 사례가 다 보이지 않은 저류들이다. 이런 부추김은 사실 똑 같이 핵심국이 없는 라틴 아메리카나 아프리카를 아주 미미하게 다룬 것과는 매우 대조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또 동아시아 문명에 대해서는 경제 발전을 세력 성장의 근거로 거명하면서 유독 이슬람에 대해서만 원리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태도가 아닌가? 헌팅턴의 이런 태도에서 나는 그가 서구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대립 구도를 구축하기 위해 다른 문명권들의 명단을 단순히 첨부한 것에 지나지 않는가 하는 아주 ‘황당한’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이 ‘황당한’ 생각은 “미국의 대 이슬람 국가 무기 판매량이 중국과 북한의 판매량의 10배가 넘는다”는 뮐러의 집계와 조우하는 순간 매우 현실적인 판단으로 바뀐다. 

이런 나의 판단은 다시 뮐러의 지적과 사이좋게 만난다. 즉 헌팅턴은 “특이하게도 세계의 문명을 종교를 구심점으로 나눈다.” 세계 도처에서 나타나는 세속화 경향을 생각해 볼 때 이는 매우 “의아스러운 시도”라고 뮐러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혹 무리를 해서라도 종교를 외쳐야 할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닌가? 솔직히 나는 『문명의 충돌』을 읽으면서 내가 혹 복잡하게 꼬인 코일 속을 숨바꼭질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었음을 고백해야겠다. 이슬람 문명이 문제라면 그것의 바탕이 되는 이슬람교에 대해 왜 자세히 언급하지 않고 종교 원리주의만 줄기차게 주장하는가? 재미있게도 뮐러는 헌팅턴의 이런 태도를 서구 근본주의라고 되받아치고 있다. 요컨대 ‘근본주의 대 근본주의’의 아주 첨예한 전선이 형성된 것이다. 가령 2005년 지금 부시가 벌이는 이라크 전쟁도 바로 ‘근본주의 대 근본주의’의 맞대결이 되는 것이다. 그럼 지금의 이 전쟁도 문명과 문명 간의 충돌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이? 우리의 자이툰 부대도 갔으니 한국과 이라크는 어떤가?

뮐러는 ‘문명 충돌’의 구도가 터무니없는 그림임을 곳곳에서 폭로한다. 예컨대 서로 다른 문명권에 속하는 태평양의 섬나라 인도네시아와 호주는 상호방위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국민의 75퍼센트가 중국계인 싱가포르의 고촉통 총리는 중국의 용병 국가임을 분명한 어조로 거부했다. 뮐러에 따르면, 한 문명 블록의 어떤 강국이 지배력을 행사할라 치면 같은 문명권의 다른 나라들은 세력 균형을 위해 서로 동맹을 맺거나 타 문명권의 강대국을 끌어들인다. 더구나 세계는 지금 전지구적 네트워크로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산업도 철도, 석탄, 철강 등의 중앙 집권을 가속화하는 부문이 아니라 전자 정보통신 같은 권력 분산적인 기술과 용역이 중시되는 상황에 와 있다. 뿐만 아니라 국제무대의 행위자도 문명 세계가 아니라, 최근 들어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는 국가가 여전히 활동하는 가운데 사회 세계가 부상하고 있는 형국이다. 더구나 시민 사회의 성숙으로 가능해진 NGO의 활동은 문명권을 초월한 행위자로서의 사회 세계와 사회 세계와의 관계를 더욱 활성화시킬 것으로 판단된다. 그래서 냉전이 끝난 후의 세계 지도는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세력 균형의 모습을 띠는 가운데 상호 교역하고 다양한 문명이 공존하는 모양새로 끊임없이 그려진다는 것이 뮐러의 전언이다.



5. 퇴행으로서의 문명 충돌, 혹은 부시의 짝퉁


헌팅턴은 “문명은 가족의 확대판이며, 핵심국은 가족 안의 웃어른처럼 친척들을 돕고, 지켜야 할 원칙을 제시한다”고 점잖게 훈계한다. 그러나 작금의 가족의 모습이 정말 그러한가? 물론 가족의 본모습이 그랬으면 하는 당위적 소망은 여전히 아쉬운 채 남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위이지 현실은 아니다. 사회과학자가 오늘날의 가족의 상황을 웃어른을 모시는 가운데 친척들을 돕는 모습으로 그린다면 이는 온당한 학적 작업일까? 모르긴 해도 그것은 엄밀한 학적 작업으로서는 일종의 ‘퇴행’에 해당할 터이다. 하물며 이 세계의 모습을 그리고자 하는 사회 과학자에게 있어서랴? 그는 현실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아주 냉엄한 그림을 그려야 할 것이다. 

외람되지만 나는 헌팅턴이 그린 세계지도는 일종의 퇴행이라고 본다. 그는 이념적 냉전 체제의 구도에다 근본적인 형질 변경을 가하지 않은 채 지금 시대에 그대로 평행 이동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바꾸어 말하면 그는 지금 시대를 냉전 시대로 되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는 이념적 ‘대결’을 문명적 ‘충돌’로 재무장시키고 있다. 그는 지금 시대를 ‘냉전’이 아니라 ‘냉화’라는 아주 기묘한 조어로 대신하고 있는데, 이야말로 냉전을 보다 부드럽게 표현했을 뿐이지 대결 의식은 그대로 상속하고 있는 어법이라 하겠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책에서 미국을 핵심국으로 하는 서구 기독교 문명을 향한 타 문명의 도전을 유럽과 굳건히 손잡고 지켜내야 한다고 외치는 걸 방금 확인하지 않았는가? 그의 그림이 퇴행인 이유는 또 있다. 그의 글은 냉전 체제가 끝나자마자 매우 발 빠르게 대응한 흔적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선 시간적인 순발력에서 그러하지만, 무엇보다 이념적 재난과 공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제출되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곧 헌팅턴은 자신의 그림을 냉전 후의 ‘변칙’을 해명하는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에 빗대지만, 다른 이론 체계와 별로 경합하지 않은 채 ‘패러다임’으로 등극한 혐의가 짙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격전을 치러내지 않은 ‘미성년’의 것이란 점에서 퇴행이다.  

아니면 속전속결은 혹 아닌가? 외적 세계와 내적 세계의 공모로 구축되는 정체성의 한쪽 축의 무너짐을 황급히 축조하기 위해 세계의 문명 지도라는 ‘서류’를 서둘러 떼어 물증을 확보하려는 심산은 혹 아니었던지. 이러한 심산의 안쪽 길을 따라갈 때 우리는 보다 명료한 목적지에 이를 것도 같다. 즉 헌팅턴의 자기 정체성의 구축은 서구 기독교 문명의 자기 동일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정체성은 어느 한편 마땅한 “적수”가 있어야 하므로, 서구 기독교 문명은 서둘러 성채를 쌓고 자신의 문명을 수호할 채비를 차리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책이 끝날 즈음에 매우 낯익은 논리와 만나게 된다. 

“근본적 차이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뒤통수를 얻어맞을 날이 온다. 클린턴 행정부는 당초 미국과 동아시아 국가들의 세력 관계 변화에 무지하였던 것 같고, 그래서 무역, 인권, 핵 확산 등의 사안에서 스스로 관철시키지 못할 목표를 거듭 공표하였다. 전체적으로 미국 정부는 세계 정치가 문화와 문명의 파도에 규정되는 시대에 적응하는 데 크나큰 어려움을 보였다.”                
  
이만하면 미국의 공화당 네오콘의 발언이라 해도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그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 문명이 기독교로 무장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지금의 부시 대통령과 새뮤얼 헌팅턴은 그리 멀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령 그는 한국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다수의 한국인들은 북한의 핵무기를 한민족의 핵무기로 이해하였다....... 북한이 핵폭탄을 같은 동포의 머리 위에 떨어뜨릴 리는 만무하므로,......한국의 관리들과 군 관계자들은 통일 한국의 핵무기 보유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공공연하게 피력하였다.” 

 

권정관(『비평과 전망』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