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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어찌하여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게 되었는가

북코치 2006. 3. 24. 06:16

 

 

무라카미 하루키

 

최근에는 옛날에 비하면 현저하게 책방엘 들락거리지  않게 된 듯한 기분이다.
어째서 책방에 안 가게 되었는가  하면, 그 이유는 자신이 글쟁이가 된 데 있다.
자기 책이 책방에 진열돼 있다는 게 어쩐지  부끄럽고, 진열돼 있지 않으면 그건
또 그것대로  난감한 일이다-등등의 이유로,  책방으로부터 싹 발길이  멀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집 안에  책이 너무 많이 쌓여  있는 탓도 있다. 아직 채  읽지도 못한
책이 몇 백 권이나 저장돼 있는데, 그 위에다  부질없이 더 올려 쌓는 것도 왠지
바보스러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금 쌓여  있는 책더미를 죄다 정리하고 나면
책방에 가서 또 읽고 싶은 책을 끌어  모아야지 하고 생각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도무지 한 권도 줄지는 않고, 오히려 날로 늘어나기만 하는 실정이다.
  <블레이드 러너>는 아니지만, 나 역시  '독서용 복제 인간'같은 것이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그리하여  그가 책을 왕창왕창 읽으면서,  '주인 나으리, 이건 아주
좋습니다. 꼭 읽어야만 해요'라든가, '나으리, 이건 읽을 필요 없습니다'하고  다이
제스트식으로 설명해 주면  무척 편리할 것 같다. 딱히 복제  인간이 아니더라도
정력이 넘치고 한가한데다가 책에 대한 식견이 있는 사람이 곁에 있기라도 하면
좋을텐데, 그런 일도 쉽지가 않다.
  책방 나들이를 그다지 하지 않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신간 중에 외국 소설을
번역한 작품이 눈에 띄게 줄어든 데 있다 .  SF라든가 미스테리, 모험 소설 같은
번역물은 상당히  많은데, 이런 류의 번역물은  옥석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어,
그 유명한 나도(한때는 무턱대고  읽었으니까)요즘엔 거의 안 읽게 되었다. 따라
서 순수한 번역 소설의 간행량은 극단적으로 적다. 한 출판 관계자는 '순수 문학
번역물은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안 팔린다'고 말하는데, 어찌됐든 유감스러
운 일이다.
  그리고 또, 내 자신의 독서 시간이 대폭 감소했다는 이유도 있다. 출판사 사람
들을 만나면 모두들 입을 모아 '요즘 젊은  사람들은 한자리에 앉아 지긋하게 책
을 안 읽는다니까요'하고 투덜거리고, 나도 덩달아 '그래요. 그것 참 한심한 일이
군요'하고 장단을 맞추기는 하는데, 곰곰 생각해 보면 나 자신도 책을 그다지 안
읽게 된 것이다.
  십 대  시절에 <카마라조프가의  형제들>과 <쟝 크리스토프>와  <전쟁과 평
화>와 <조용한 돈강>을 세 번씩 읽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옛날 일이다 싶다.
하긴 당시에는 책이란  양만 넉넉하면 그걸로 대만족이었던지라 <죄와 벌>같은
작품은 페이지가 너무 적어 어쩐지 성에 안  찬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 당시
에 비하면-나이를 먹어 책 한 권을 가지고 천천히 꼼꼼하게 읽게 되었다는 변화
가 있기는 하지만-독서량이 오분의 일 정도로 줄어든 것 같다.
  어찌하여 이렇게  책을 읽지 않게  되었는가. 그건 한마디로  독서에 할애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요컨데  독서 이외의 활동에 시간을 많이 뺏겨, 그
영향으로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 것이다. 예를 들면  런닝이 하루에
한 시간 반 내지 두 시간, 음악을 듣는데  두 시간, 비디오를 보는데 두 시간, 산
책에 한 시간...하고 따져 나가다 보면, 차분하게 앉아 책을 읽을 시간 따위 거의
없다니까요, 이것 참, 뭐 직업상 읽어야  할 책은 한 달에 몇 권 매달리듯 해 가
며 읽고 있기는 하지만,  그 범위를 벗어난 책을 정지하게 말해  도무지 읽지 않
는다. 한심한 노릇이다.
  하기야 이런 상황 내지는 경향에  빠져 있는 것은 결코 나 혼자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즘 젊은 이들이  책을 읽지 앉게 된 것은 역시  독서 이외의 다양한
활동에 시간이나 돈,  에너지를 대폭 할애하고 있는 까닭일 거라고  나는 추측한
다. 내가 젊었을 때는-하면서 얘기가 갑자기 궁상맞은 아저씨  투로 바뀌지만-전
체적으로 시간이 흘러 넘쳐,  '할 수 없지, 책이라도 읽을까'하는 기분이 들기 쉬
웠다. 당시에는 비디오도 없었고,  레코드도 상대적으로 비싸 많이는 살 수 없었
고, 스포트도 오늘날처럼  번성하지 않았다. 시대적인 분위기도 대단히 이론적이
어서, 어떤 종류의  책을 일정량 독파하지 않으면 주위로부터 바보  취급을 당하
는 풍조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뭔데 그게? 그런 거 안  읽었어. 알지도 못하는 거'하면 스므
스하게 넘어간다. 그 밖에도 할 일이 얼마든지 있고, 자기 표현을 할 수 있는 장
소나 방법, 미디어도 각양각색으로  갖추어져 있다. 결국 독서란 것이 유일한 신
화적 미디어였던 시대는  급속하게 종식되고 만 것이다. 지금의 독서란  그 다양
한 각종 미디어 중 한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경향이  바람직한 것인지 아닌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그것은
대부분의 사회 현상이 그렇듯, 좋지도 나쁘지도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교양
주의적, 권위주의적 풍조가 사그라지고 있다는 것을-정말  사그라지고 있는 거겠
지-기쁘게 생각하고  있으나, 한편 한 사람의  글쟁이로서는 책이 안 읽히게  된
것을 섭섭하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섭섭한  반면 또 우리(란 출판에 관계된 여러
사람들을 말합니다)가 우리 자신의 의식과 체질을 전환시켜, 그 새로운 지평으로
부터 새로운 종류의 우수한 독자들을 포획하는  일은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언제
까지 한탄만 하고 있어서야 묘책이 안 생기는 법이니까.

출처 : 작은화실
글쓴이 : 독일병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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