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문화뉴스

“정부가 고구려재단 해산하라 1년전부터 압력”

북코치 2006. 9. 10. 14:06

“정부가 고구려재단 해산하라 1년전부터 압력”



[조선일보 유석재기자, 이진한기자]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한 고조선·고구려·발해 등 고대사 왜곡의 강도를 높여 가는 한편 백두산에서 아시안게임 성화를 채화하는 등 점차 속뜻을 노골화하고 있다. 김정배(金貞培) 전 고구려연구재단 이사장(전 고려대 총장)은 6일까지 세 차례 이상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한마디로 “현 정부의 잘못된 대응 정책 때문에 빚어진 일이어서 더욱 통탄스럽다”고 말했다. 그가 책임지고 있었던 정부출연 기관 고구려연구재단은 불과 2년 만에 해산, 지난달 동북아역사재단에 흡수 통합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한 왜곡을 강화하는 데 이어 백두산에서 성화까지 채화했다.

“역사 왜곡이 (현실의) 영토 문제로 자꾸 연결돼서 선을 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저들의 다음 단계가 고조선 왜곡일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고구려연구재단이 있었을 때는 중국이 역사 문제에 대해 매우 신중했는데 해산하자마자 이런 공세가 나와 걱정스럽다. 이제 국민도 학계도 사건이 불거질 때만 흥분하지 말고, 다시 단합해서 대응해야 한다.”

―고구려재단 해산의 아쉬움은 없나?

“중국과의 ‘역사 전쟁’을 치르는 중에 ‘고구려’라는 간판을 그렇게 쉽게 내린 것은 아주 잘못된 일이다. 그나마 고구려연구재단이 있었기 때문에 광복 이후 이제서야 북방사(北方史) 연구가 제대로 시작된 것인데, 구심점이 없어져 연구의 탄력이 없어질까 걱정된다.”

―동북아역사재단은 동북아 전체의 역사문제와 독도문제에 대한 ‘연구’와 ‘정책’을 함께 추진하겠다고 했다.

“역사란 기본적으로 연구지 정책이 될 수 없다. 연구와 정책을 함께 해 나간다면 연구가 정책에 종속될 우려가 있다. 우리가 만든 고구려사 자료를 외교부 반대 때문에 각 학교에 배포하지 못한 적도 있다. 또 중국과 연대해서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응해야 할 때가 있고, 그 반대의 경우가 있는데 한 기관에서 모든 걸 맡아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지난 2년 동안 정부에선 얼마나 재단 사업에 관심을 가졌나?

“교육부 장관이고 차관이고 5~10분 얘기하는 것조차 잘 들으려 하지 않았다. 국가적 사업인데 어떻게 그렇게 무관심할 수 있나? 처음 1년 동안 겨우 재단 기틀을 잡아 놨더니 나중 1년은 내내 통합 압력에 시달린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작년 3월 일본과의 독도 문제가 불거지자 “역사 왜곡과 독도 문제를 장기적·체계적으로 전담할 기관을 설치하라”고 지시했고, ‘동북아 평화를 위한 바른역사정립기획단’이 출범해 동북아역사재단 설립을 준비했다.)

―통합 얘기는 언제부터 나왔나?

“작년 여름부터 동북아역사재단이 외교부 산하에 설립돼 우리 재단을 흡수 통합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해 9월 추석 직후 김진표(金振杓) 당시 교육부총리, 김병준(金秉準)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바른역사정립기획단장 겸임)과 함께 만난 자리에서, 나는 동북아역사재단이 만들어지더라도 외교부 산하로 가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역사 문제는 어디까지나 교사를 양성하고 역사를 편찬하는 교육부가 지도 감독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역사’가 ‘외교’ 아래 있으면 정부의 홍보센터로 전락하고 말 텐데, 어느 나라 어느 학자가 그걸 신뢰하겠느냐고 했다.”

―그 말에 어떤 반응을 보였나?

“김병준 실장은 ‘(외교부 산하 통합이) 청와대의 뜻’이라며 ‘역사가 외교부에 가 있으면 어떻고 교육부에 가 있으면 어떠냐’고 말했다. 큰일날 사람이라 생각했다. 이후에도 바른역사정립기획단 관계자가 여러 차례 찾아오는 등 정부에서 계속 통합 압력을 넣었다. 여러 사람들을 설득한 끝에 동북아역사재단이 외교부로 가는 것만은 막았는데 이건 지금도 잘했다고 생각한다.”

―2004년 11월 ‘고구려연구재단 지원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결국 통과되지 못하지 않았나?

“지난 4월 21일 교육부 학교정책실장이 내게 ‘고구려연구재단 법률안과 동북아역사재단 법률안을 (정부에서) 같이 통과시키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래 놓고 채 2주도 지나지 않은 5월 2일 동북아역사재단 법률안만 통과됐다. 그 뒤에도 통합을 반대했지만 정부에서 더 이상 예산을 편성해 주지 않았다.”

―지난 2년간의 활동을 회고한다면?

“국민적 성원에 힘입어 재단을 설립했고, 중국 당국과 학계가 놀랄 정도로 상당한 학문적 성과를 쌓았다. 중국과의 국제학술회의, 남북 학술교류, 러시아와의 연해주 발해 유적 공동 발굴조사와 같은 사업들이 이제 막 궤도에 올랐는데 무척 아쉽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이 사업들을 최대한 잘 계승해 주길 바랄 뿐이다.”

(글=유석재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karma.chosun.com])

(사진=이진한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magnum91.chosun.com])

[키워드] 고구려재단·동북아재단

고구려연구재단은 지난 2004년 초 ‘동북공정’을 통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교육부 산하에 설립된 학술 연구기관이다. 1년 예산 50억여 원, 상근 인력 27명으로 대응 논리 개발, 학술회의, 연구활동 지원 등의 활동을 해 왔다.

그러나 작년 3월 일본과의 독도 문제가 불거지자 주변국과의 역사 문제를 통합적으로 전담할 ‘동북아역사재단’ 설립이 논의돼 왔다. 지난 5월 2일 국회에서 ‘동북아재단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된 이후 고구려연구재단을 흡수 통합하기로 결정됐다. 8월 7일 고구려연구재단은 ‘해산’을 공식 발표했고 8월 20일 동북아역사재단의 출범과 함께 통합됐다. 동북아역사재단은 현재 6개 실 12개 팀에 56명이 근무하고 있으나 아직 이사진 구성과 재단 등기 등이 이뤄지지 않았다. 출범식은 이달 28일로 예정돼 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