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야기

[스크랩] 보스턴 글로브지에 실린 하버드 교수의 요코이야기 평

북코치 2007. 1. 26. 17:09

 

A matter of context // Carter Eckert (Harvard University의 Korean history 교수)
December 16, 2006

도버-셔본(Dover-Sherborn) 학교위원회에서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Yoko Kawashima Watkins)의 책 ‘요코 이야기’(원제: So Far from the Bamboo Grove)를 6학년 커리큘럼에 포함시킬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문학을 가르칠 때 역사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하는데 특히 수업에 사용될 교과서가 특정한 역사적 시간과 장소를 다룰 때 더욱 그러하다.

저자의 삶에 근거하고 있는 왓킨스의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일본 식민지 지배하의 한국의 북쪽 지역에서 11살짜리 일본인 소녀와 그녀의 가족이 겪었던 비참한 경험에 초점을 맞춘다. 그것은 공포와 생존에 관한 흥미를 끄는 이야기로 잘 쓰인 책인데 주인공인 소녀 요코의 1인칭 서술이 6학년 독자들에게 더욱 호소력 있게 다가온다.

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미국의 자민족중심주의라는 틀에서 벗어나서 사고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구분을 뛰어넘는 인류의 공통성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왓킨스의 책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하기 위해 긴 여행을 떠난다 (goes a long way). 그녀의 마법과도 같은 산문과 여주인공과의 일체를 통해 학생들은 전혀 다르고 머나먼 시공간 속으로 여행을 떠나 요코의 호된 시련과 승리감을 자신의 것처럼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글의 맥락과 균형감이 중요하다. 요코의 이야기는 생존에 관한 이야기로 흥미를 갖지 않을 수 없지만, 부분적으로는 요코와 그녀의 가족이 한국에서 생활했던 당시의 역사적인 맥락을 생략함으로써 더욱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 맥락이란 일본의 잔혹한 40년 식민지 지배를 의미하는데 요코의 성장기인 1937~45년 전쟁의 시기에 정점에 달했다. 일부 한국인들은 더 나은 대우를 받았을지라도 대다수 한국인들은 일본 제국주의 전쟁집단에 봉사하는 강제노역과 성적 노예인 정신대로 끌려가야만 했으며 일본의 조선총독부는 한반도에서의 독립적인 한국의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해 추진된 강력하고 강제적인 문화 동화정책을 동시에 조장하였다.

이러한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을 때 어린 소녀였던 왓킨스를, 점령 그 자체에 대한 책임을 물어 비난할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녀가 말하는 이야기는, 왜곡이 아니라고 해도, 보다 큰 맥락이 생략되어 있다는 점에서 불완전하다. 예를 들어 그녀는 ‘한국인들은 일본제국주의의 일부분이었으나 일본인들을 증오하고 전쟁에 기뻐하지 않았다’라고 적고 있다. 하지만 이야기에는 더 이상의 맥락이 없으므로 일본의 식민지배나 전쟁시기의 잔학행위들에 대해 더 광범위한 역사를 거의 모르는 어린 독자들은 한국 사람들은 한 몸인 일본제국주의를 향해 감사할 줄도 모르고 비협조적인 민족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작가의 ‘항일 공산주의 부대’의 한국인들에 대한 묘사도 마찬가지의 문제를 갖는다. 첫째 여기서 그녀가 언급하고 있는 그들이 누구인지 의문이다. 한국 군인들로 조직된 ‘항일 공산주의 부대’는 만주지방에서의 김일성(나중에 북한의 지도자가 되는)과 그의 게릴라 빨치산을 제외하고는 없었는데 그들조차도 1945년 9월 초가 되어서야 비로소 한반도에 들어왔고 이는 책에서 서술된 사건들보다 훨씬 뒤의 일이다. 물론 그녀가 이야기의 주 무대인 나남 지역에서 식민지배의 불만을 폭력저항으로 맞선, 지역에 흩어진 소규모 공산주의 그룹을 언급했을 수도 있다. 그러한 폭력저항은 용서될 수 없다. 그러나 단지 1945년의 한국의 공산주의자들을 특정지방에만 한정된 불순세력으로 묘사한 것은 경험적으로만 틀린 것이 아니다.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잘못된 묘사는 한국 공산주의로부터 공산주의의 항일 자세와 그로 인해 대다수 한국인들에 호소력을 가졌음을 설명할 폭넓은 역사적 맥락을 빼앗아버렸다. 정말로 1945년에 전 한반도에 걸쳐서 공산주의자들은 무자비한 식민통치에 맞서 목숨을 내건 애국적인 민족주의자들로 널리 간주되었다.

도버-셔본 학교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을 넘어서 그들의 사고를 넓혀주기 위해, 또한 커리큘럼에 아시아에 관한 작품들을 포함시키기 위해 노력한 것에 대해 박수갈채를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왓킨스의 책은 그러한 목적에 잘 부합된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역사적인 맥락에 대한 충분한 준비 없이 단지 생존에 관한 영웅적인 개인의 이야기로 가르쳐진다면 말이다. 이는 책의 금지나 검열을 논하고자 함이 아니다. 왓킨스의 책이 학교에서 사용되지 말아야 할 이유란 없다. 사려 깊고 현명한 방식으로 소개될 수만 있다면--예컨대 1940년대 일제 치하 말기에 살았던 어린 한국인 소년에 관한 리차드 김(Richard Kim)의 고전 ‘잃어버린 이름들(Lost Names)’같은 작품과 함께 연관시켜서--이는 개인적이고 역사적인 환경에 따라 작가의 시각은 어떻게 달라 질 수 있는가 하는 지를 학생들에게 이해시키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맥락을 제공하지 않은 채로 ‘요코 이야기’(원제: So Far from the Bamboo Grove)를 가르친다면, 이는 나치 점령의 본질이라든가 안네 프랑크의 공포의 원인에 대한 언급 따위는 생략한 채로, 1945년 네덜란드로부터 탈출하려는 독일군 장교 가족에 공감대만을 갖게하는 소설을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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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기사가 실린 곳:
http://www.boston.com/news/globe/editorial_opinion/oped/articles/2006/12/16/a_matter_of_context/?rss_id=Boston

 

출처 : 자유게시판
글쓴이 : 책방아가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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