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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와책]시한부 유오성 위해 채시라가 읽던 그 책

북코치 2006. 9. 22. 09:26
[드라마와책]시한부 유오성 위해 채시라가 읽던 그 책



부부는 애증으로 얽힙니다. 죽도록 사랑했던 젊은 날은 서로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종종, 잊혀 집니다. 약속했던 부귀영화와 안락을 ‘제공’해주지 않는 남편과 아내는 사랑의 대상에서 원망의 대상으로 바뀝니다. 줄 것은 망각한 채 받지 못한 것만을 셈하는 부부는 서로를 미워합니다. 사랑보다는 밥이, 약속보다는 통장이, 로맨스보다는 집등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들은 더 이상 사랑을 꿈꾸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는 상대와 헤어질 결심을 합니다.

KBS 드라마 ‘투명인간 최장수’(연출 정해룡)의 주인공 소영(채시라)과 장수(유오성)도 그런 부부였습니다. ‘사모님’으로 살 기회를 포기하고 가난한 남자 장수를 택한 소영은 자신이 꿈꾸던 결혼생활을 만들어주지 않는 그를 원망했습니다. 아이들과 살아보려고 버둥대는 자신을 돌아 봐주지 않는 장수가 미웠습니다. 죽도록 사랑한 만큼, 죽도록 미워했습니다. 그가,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만 말입니다.

“장수씨... 우리 장수씨 아프대. 언니... 기억이 없어지는 병이래... 나도 우리 애들도 다 잊어버리고 죽는 병이래. 내가 그 사람 미워해서 그 사람 아팠나봐. 언니... 우리 애들 아빠 찾으면 뭐라 그래? 우리 새끼들 아빠 보고 싶다고 어디 갔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해야 돼?”

소영은 울부짖습니다. 늘 그렇듯. 후회는 왜 그리 더디게 오는지요. 장수를 향한 미움의 뿌리가 ‘사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녀는 가슴을 쥐어뜯습니다. 조금만 더 사랑할걸, 조금 만 더 안아 줄걸, 조금만 더 기다려줄 걸....

받은 것은 잊고 받지 못한 것만 기억하던 추레한 사랑이 미안해 그녀는 웁니다. 눈물은 시간을 모릅니다. 하염없이 흐르던 눈물은 초마다, 분마다, 시간마다 흘러내립니다.

소영은 생각합니다. 그를 위해 울어줄 것이 아니라 힘이 되 주자고 말입니다. 그녀는 서점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힘이 되 줄 책 한권을 발견합니다.

그 책이 바로 정호승의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비채. 2006)입니다. 정호승 시인의 가슴을 사무치게 만들었던 말들이 담긴 이 책은 죽비소리가 되어 읽는 이를 흔듭니다. 시인의 생생한 경험이 곁들여진 구절구절은 책 밖까지 걸어 나와 우리의 어깨를 어루만져 줍니다. 책은 오늘이 지나면 다시 못 볼 사람처럼 가족을 대하라고 말합니다. 마지막이라고 느꼈을 때 30분만 더 버티라며 절망에 빠진 이의 다리를 곧추 세워줍니다.

장수에게는 물론 소영에게도 필요한 책이었습니다. “감사함을 통해 부유해질 수 있다”는 글을 왜 이제야 읽었을까요. 조금 더 빨리 이 책을 알았더라면, 시인의 말처럼 조금 더 감사했더라면 그 때처럼 장수를 떠나진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뒤늦은 후회로 소영은 책을 읽습니다. 그리고 기억합니다. 장수에게 전해 줄 소중한 말들을 가슴에 꼭꼭 새깁니다.

“다음 세상에도 꼭 이렇게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아내 소영이 만나 결혼하구요, 우리 다미 솔미 다시 낳아서 살고 싶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생 만큼만.. 꼬옥 그렇게만 살았으면 좋겠네요... 이토록 많은 사랑을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살아있는 장례식에 참석한 장수는 그렇게, 한없이 감사해했습니다.

‘투명인간 최장수’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깨닫게 해 준 드라마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신장을 이식해주고 세상을 떠난 장수. 우리는 그에게 사랑과 감사를 배웠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말처럼 조금 더 부유해지기 위해서, 더 많이 감사하는 당신의 오늘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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