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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기독교 번역소설 <인가귀도> 공개

북코치 2006. 9. 28. 09:20
최초의 기독교 번역소설 <인가귀도>

 

 

▲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은 상당 수의 초기기독교 간행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국내 최초의 기독교 번역소설은 무엇일까? 초기 한국 기독교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이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학술강좌가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주최로 22일 한경직 기념관에서 열렸다.

중국인 전도위한 책을 번역

이날 학술강좌에서 숭실대 중문학과 오순방 교수는 그의 논문 ‘한국 최초의 기독교 번역소설 <인가귀도> 연구’를 발표했다.

그의 논문에 의하면 청일전쟁이 발발한 1894년, 당시 평양감사는 기독교인들을 구금했고, 서양 선교사들이 순교하는 등, 한국사회에서 기독교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1894년은 서양에서 온 선교사들이 복음 전파를 위해 문서선교사업에 전력했던 해이기도 하다. 이들의 노력으로 1880년대 후반부터 이미 시작되어 왔던 기독교 문서 선교사업이 1894년부터 대량 확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인가귀도>는 이 시기에 출간된 한국 최초의 기독교 번역소설이다. 이 책은 중국에서 문서선교를 펼쳤던 영국선교사 그리휘트 존(Griffith John, 1831-1912)이 중국 대중에게 전도하기 위해 1882년에 저술한 책이다.

중국어로 된 이 책을 미국선교사 플랭클린 올링거(Franklin Ohlinger, 1845-1919)가 1892년에 한국어로 번역했고, 서울 정동제일교회에서 1894년에 출간했다. 이 번역본은 현재 숭실대학 내 한국기독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선교사업과 사회개혁을 위한 방향제시

▲ <인가귀도>는 조선 말기 한국기독교사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제공
<인가귀도>는 ‘가족을 이끌어(引家) 도(진리)에 돌아간다(歸道)’는 제목대로, 도박장과 기방 출입으로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던 주인공 이(李)선생이 예수 믿은 후 회개하고 모범적인 신앙인이 되서 존경과 신뢰를 받게 되고 가족과 이웃들을 전도한다는 내용이다.

오 교수는 “이 책은 그 당시 한국사회의 방탕한 술 문화를 잘 꼬집었다”며 “한국사회와 교회에서 가장 필요했던 ‘온 가족 전도’와 ‘절제운동’을 주창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의 저술활동에 비해 올링거의 문서사역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올링거가 번역한 이 책은 초기 한국 기독교의 신앙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올링거는 당시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바로 근면과 정직을 바탕으로 한 절제된 생활임을 확신하고 이를 신앙생활에서 실천할 것을「인가귀도」번역을 통해 주장한 것이다.

당시 서울 정동제일교회에서 사역하던 올링거는 이 책을 번역한 일 년 후인 1893년에 한국감리교회에 ‘절제위원회’를 조직했다.

‘절제위원회’는 당시 한국인의 폭주 습관이 개인ㆍ가정ㆍ사회ㆍ국가에 큰 재난을 초래해 사회를 병들게 만들고 있음을 지적하며 절제된 생활을 할 것을 권유하는 운동을 했다.

이어 오 교수는 “<인가귀도>의 출간으로 인해 한국사회에서 절제운동을 벌일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 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인가귀도」에는 조상숭배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도 상세히 서술돼 있다. 이 책은 ‘조상을 공경해야 하지만 조상에게 제사지내는 것은 허망하며 잘못된 일’임을 명확하게 알리고 있다.

오 교수는 발표를 마치며 “<인가귀도>는 19세기 말 초기 한국기독교의 선교사업과 사회개혁을 위한 선구적이고 모범적인 방향을 설정해 주었다”고 최종평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