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한달 평균 10여권의 책을 사 모으고 있다. 여기저기 서평 올리고 책 관련 방송도 하는 덕에 이러저러한 곳에서 보내오는 책도 한달에
대여섯 권은 되는가 싶다. 그러고 보니 얼추 한달에 이십 권 정도의 책이 내 집으로 들어오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읽는 것은 고작 10권 정도에 불과하다. 하여 매달 읽지 못한 책들이 고스란히 대여섯 권 씩이나 쌓인다. 말 그대로 쌓인다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읽지 않은 책은 절대 책장에 꽂지 않고 횡으로 뉘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책상 위나 컴퓨터 옆, 아니면 책장의 빈 공간에 누워 있는 책들을 볼 때마다 묘한 생각을 하게 된다. ‘임자 잘못 만나서 여태 자리도 못 잡고 누워있군.’ 한편 다짐도 해본다. ‘내 저것들을 다 읽기 전에는 절대 책을 사지 않을 테다.’ 그러나 그 다짐은 늘 허물어지고 만다. 외출할 때 가방을 반쯤만 채우고 나간다. 언제 어디서 어떤 경로로 책을 구하거나 새로 사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때 이미 가방이 채워진 상태라면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다. 사람을 만날 때 약속시간을 비교적 잘 지키는 편이다. 솔직히 잘 지킨다기보다 늘 먼저 나가있기 일쑤다. 약속장소를 대체로 서점이 있는 곳에 잡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30분을 먼저 나가 기다리다가 막상 만날 사람이 제 시각에 나타나면 오히려 서운한 감이 든다. ‘좀 천천히 여유 있게 오지.’ 요즘 그런 게 고민이다. 대체 어쩌자고 그렇게만 사는 건지 정말 대책이 없다. 왜 읽는지, 왜 책을 모으는지, 왜 지식을 쌓아야 하는 건지... 아니 어떻게 하면 합리적으로 혹은 체계적으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건지. 기왕 이 길로 나섰으니 뭔가가 될 때까지 계속해야 하는 건지 대충 집어치우고 돈벌이에 나서야 하는 건지. 아니지. 애초 뭘 바라고 한 짓이 아닌걸... 그야말로 혼란이고 딜레마다. 그래서 다치바나 다카시를 다시 펼쳐보았다. 몇 년 전 그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를 읽으면서 다짐을 해두었던 게 있었기 때문이다. ‘혹, 책 읽기가 지겨워지거나 의지가 약해지면 그때 다시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의 위안을 삼으리라.’ 복수를 결심하며 빼든 칼처럼, 다시 결의를 다지기 위해 고추새운 붓처럼, 다시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허벅지를 찌를 바늘을 뽑아든 것처럼. 그렇게 한 줄 한 줄 한 장 한 장 다치바나의 책을 읽었다. 더불어 그의 조언에 새삼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책값 아끼지 마라. 인문학과 자연과학 책을 두루 섭렵하라. 주제를 정해놓고 깊이 있게 읽어라. 관련 분야의 사람을 적극 만나고 다녀라. 책을 읽는 도중에 메모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그냥 밑줄 정도만 쳐두었다가 다시 읽어라. 읽은 책에 대한 글을 열심히 써두어라. 서평은 감상보다는 요점 정리처럼 하라. 너무 구체적으로 쓰려고 하지 말고 관심을 유도할 수 있는 선까지만 써라. 서가 정리를 체계적으로 하라. 물론 이러한 조언들은 책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은 게 아니다. 단지 내 편의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인 것일 뿐이다. 난 아직 나의 분야를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두려워 할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페셜리스트보다는 제너널리스트가 적성에 맞는다는 다치바나의 생각이 곧 나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박겉핥기 식의 잡학이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제부터는 깊이를 추구할 참이다. 그러기 위해 분야를 압축할 필요가 있겠다. 우선 인문학 중에서 역사학과 철학의 기초를 쌓기 위한 책을 집중적으로 읽을 테다. 더불어 자연과학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문학읽기는 좀 자제할 필요가 있다. 물론 방송용일 경우를 제외하곤 말이다. 그런 다음. 내용정리에도 좀더 신경을 쓸 테다. 그간은 너무 산만하게 서평만을 써왔다. 그러나 이제 좀더 깊이 있는 독서노트를 만들어 나갈 테다. 더불어 오랜 숙원인 내 글, 순수한 나 자신의 창작물을 만들어 볼 테다. 역시 쉽지 않은 일이고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지만 서두르지 않으면서 천천히 도전해 볼 테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훌륭한 스승이다. 눈밭에 찍힌 발자국이다. 나도 언젠가는 그의 고양이 빌딩에 버금가는 나만의 도서관을 갖고 싶다. |
출처 : 블로그/리뷰
글쓴이 : 시라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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