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마니타스 | 우리시대의 논리④
우리시대 전태일의 목소리를 듣는다
<전태일 통신>
1.
전태일기념사업회는 2005년 10월 27일부터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을 통해 <전태일 통신> 연재를 시작했다. 울산 현대자동차의 한 비정규직 노동자로부터 200자 원고지 50매 가량의 글을 받아 게재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2006년 8월 16일까지 서른일곱 명의 필자가 쓴 한국사회의 현실에 관한 마흔여섯 편의 글이 모였다. 이 책은 전태일 열사 36주기인 2006년 11월 13일에 맞추어 그 중 서른여덟 편의 글을 모은 것이다.
필자들 대부분은, 이 사회의 약자들, 이 시대 언론이 외면한 문제를 직접 겪고 몸 부딪혀 가며 싸우고 있는 현장 속 사람들이다. 전태일기념사업회에서는 “전태일의 순수한 그 참뜻을 실현하고, 여태껏 우리 사회 도처에서 횡행하고 있는 비리와 억압과 착취를 걷어 내기 위해 아주 낮은 곳에서 작은 힘과 목소리를 보태려” 노력해 왔고, 그 노력 가운데 하나로 이 연재를 시작한다고 밝히고 있다.
2.
1970년 11월, 어느 다락방 먼지 가득한 작업장에서 빛도 못 보고 피를 쏟으며 노동력을 팔던 어린 노동자들과, 그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른 전태일이 있었다.
2006년 11월, 참교육을 위해 사학비리를 고발하다 거리로 내쫓긴 교사들, 노동자의 기본권도 모른 채 대가없이 노동력을 빼앗기고 있는 청소년들, 모멸스런 이웃들의 눈초리를 피해 더 깊은 그늘로만 숨어들고 있는 노숙자들, 대기업에 저항해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다 해고되고, 감방에 들어가 있는 무수한 노동자들, …… 그 어깨에 걸린 무게는 여전히 같다.
3.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은 소중하다. 또한 우리는 너무나 당연히, 동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이웃의 삶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거창하게 철학과 사상을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이 세상의 모든 ‘나’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웃은 다름 아닌 바로 확장된 ‘나’이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전태일이라는 청년이 일기에 적고 있듯 이웃, 즉 동무, 친구는 나의 또 다른 ‘나’이며 모든 생명 하나하나는 이 세상 둘도 없는 우주 전체이다.
그러나 특히 자본주의 근대화, 산업화라는 괴물이 온 지구를 덮치면서 ‘나’는 너무나도 값싼 상품, 너무나도 많아 그저 소모품으로 버려지는 물건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아파트 한 채나 자동차 한 대보다 못하고 심지어는 옷 한 벌이나 밥 한 끼보다도 못한 수많은 ‘나’가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고 있다. 우리는 날마다 도처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우리의 이웃을 목격하면서 세상을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삶을 누리기는커녕 오히려 삶이 거추장스럽기까지 한 이런 ‘나’의 존재는 과연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를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4.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비정규직과 300만으로 추산되는 빈곤층을 생각하면 오늘 우리 사회는 우애와 협동의 민주주의 공동체가 결코 아니다. 동무를 시험과 인생의 경쟁상대로만 가르치는 교육, 학생을 기업의 인적자원으로만 취급하는 교육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설계하는 공동체의 참교육이 결코 아니다. 아픈 사람을 얼마짜리 환자로만 여기는 의사, 줄기세포라는 생명체를 키워 다른 생명체를 위해 찌르고 잘라 내 죽이는 치료 행위는 결코 생명 존중의 참의료가 아니다.
1970년 11월, 청계천의 청년 노동자였던 전태일은 사랑과 평화, 우애와 협동의 소박한 공동체를 꿈꾸며 자신의 온몸을 던졌다. 그로부터 36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과연 전태일이 그토록 소망했던 인간 해방이 이루어졌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전태일이 그토록 아파했고 돌보았던 나이어린 소녀들의 삶의 조건이 나아졌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5.
이 책을 펼쳐보면 한 장 한 장, 그들의 감춰진 현장의 속내가 빛을 발하며 제 이야길 시작한다.
농촌문제를 연구하는 저명학자가 바로 여기, 농촌에서 자라 평생을 이곳에서 선생일로 밥 벌어먹고 살며 농촌 현실을 몸으로 받아들여 온 이 시인보다 농촌을 더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며 내가 살아온 지난 몇 십 년 고향살이를 떠올리며 나오는 눈물을 감출 길이 없다. 다 어디로 갔는가. 그 많던 미꾸라지와 새우와 가재들과 물고기들과 무지개는,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같이 먹고 같이 일하고 같이 놀던 사람들이 농사를 짓던 땅은 묵어 칡넝쿨이 덮어 버렸다. 봄이면 파랗게 자라던 보리밭은 어디 갔는가. 여름날 이른 아침 소를 끌고 싱그러운 강변을 지나 강을 건너던 농부들은 다 어디 갔는가. 가을이 와도 따지 못한 감들은 감나무에 매달려 버려진 채 썩어가고 어머니는 벌겋게 떨어진 알밤을 홀로 다 줍지 못한 이야기를 하며 운다. 알밤나무 밑에서 알밤을 줍고 있는데 여기저기서 툭툭 알밤이 떨어지면 어머니는 “염병헌다 시방, 나보고 어쩌라고, 나 혼자 어쩌라고 저런다냐?” 눈물을 흘린다. 알밤이 많아도, 감이 많이 열려도, 농사가 잘되어도 걱정인 세상에 우린 산다. /김용택 “나는 해 지는 빈 들을 간다”
우리 사회에는 점점 청소년 노동자들이 늘어가고 있지만, 그들에게 자신이 요구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 한국 사회의 노동 현실에 대해 일러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연이도, 하연이 친구들도, 하연이 동생들도 만으로 15살만 넘으면 일을 시작할 것입니다. 오래전 보릿고개라는 말이 존재했던 시대에, 열두서너 살 어린 노동자들이 시다 일로 허리도 펴지 못하는 이층 다락방 먼지구덩이 속에 파묻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젊음을 빼앗기며 결핵과 각종 질병으로 시들어 가던,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십 년이 지나 선진국을 눈 앞에 두고 있는 기적의 경제성장을 이룩했다고 하는 21세기의 오늘, 지금 만 15살 넘는 어린 노동자들이 그때와 같은 일은 아니지만 여전히 커피 한 잔 값도 안되는 시급을 받으며 일 속에 파묻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청춘의 현재와 미래를 빼앗기고 있습니다. 그 어깨에 짊어진 무게 또한 어쩌면 그리 똑같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그이들의 부모가 가난한 노동자였듯이 이들의 부모 또한 가난한 노동자입니다. 이 세상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어린 학생들이 오늘도 일을 합니다. /박수정 “그 어깨에 걸린 무게가 어찌 그리 같은지”
장애인이 스스로 이야기한다. “우리도 우리 생활에 책임질 줄 안다”고. 평생 집안 어두운 곳에서, 장애인 시설에서, 자신의 능력을 한번 펼쳐보지도 못하고 사라져가는 수많은 장애인들을 위해 쓴 박정혁 씨의 글은 우리가 지금껏 “보호의 대상”으로 여겼던 그들에 대해 바로 알게 되는 기회가 된다.
저는 지금 현재 동대문구 소재 피노키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간사로 일하며 33년간 배우지 못한 인생의 모든 것과 장애인자립생활을 배우고 있습니다. 자립생활의 핵심은 장애인 당사자의 자기 선택과 결정, 그것의 결과에 대한 자기 책임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 사회는 장애인 당사자에게 일어나는 모든 선택과 결정들을 장애인을 책임지고 있는 가족들과 그 장애인을 수용하고 있는 관리자에게 맡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 당사자는 좋건 싫건 가족들과 관리자의 일방적인 의견을 따라야 했습니다.
장애인 자립생활은 가족과 관리자에게 맡겨진 장애인의 권리를 장애인 당사자에게 되찾아 주자는 이념입니다. 저는 지금 그 이념대로 생활하며 행동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은 장애인 연금도, 활동보조인 제도도, 이동권도, 시설에 대한 접근권도 우리나라에 도입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이 힘들고 어려운 일들도, 위험한 일들도 많지만 새로운 장애인 복지제도인 장애인자립생활(IL)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작은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 자체가 저에겐 참 행복한 도전으로 남을 것입니다. /박정혁 “장애인도 자기 생활에 책임질 줄 압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비해 실업계 고등학생들에 대한 사회의 관심도는 매우 낮다. 이들은 사회의 편견에 맞서, 그리고 청소년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부딪혀가며 사회를 경험한다.
이렇게 정리되는 경우 또는 본인의 의사로 그만두게 되는 경우 문제는 월급이다. 그만두고 몇 달이 지나도 월급을 못 받아 애를 먹다가 급기야는 우리 아이들이 욕을 하거나 성질을 내게 되고 회사 쪽에서는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놈이 되고 만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또 이 사회에 대해,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이고 안 좋은 생각을 갖게 된다. 학교 다니는 학생인 줄 알면서도 학교 가지 말고 잔업 하라는 얘기도 하고 그런 학교 뭐 하러 다니냐며 기를 죽이기도 한다. 학교 그만 두고 일이나 하라는 관리자들도 있다.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경험하는 사회에서 따뜻함과 희망을 배우기보다는 지킬 것도 제대로 안 지키는 부정한 사회에서 이기적인 자기를 키워가는 아이들이 안타깝다. /박수주 “노동이 신성하다고? 아이들이 그렇게 느낄까?”
길거리 교사로 유명한 조연희 전 동일여고 교사는 동일재단의 비상식적인 재단비리를 고발하였다는 이유로 강제 해직당했다. 그가 들려주는 동일재단의 모습, 이것을 교육재단이라 할 수 있을까?
학생 식당에서는 교사들로 하여금 학생들이 두 번 먹거나 급식비를 내지 않은 학생이 몰래 급식을 먹는 일을 막게 했습니다. 선생님들은 점심시간 15분 전에 교실에서 나와 식당으로 가야 했습니다. 봉사활동을 하는 학생들도 수업 중간에 식당으로 오게 했습니다. 특히나 실업고인 동일여자전산상고 학생들의 경우 가정형편이 극빈층인 학생들이 많았는데, 국가에서 급식비를 지원받아 무료급식을 하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들에게 “너희들은 공짜로 밥을 먹으니, 대신 식당일을 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강제로 식당일을 시켰습니다. 식당 청소와 배식을 시켰고, 이 학생들은 4교시와 5교시 수업의 절반 정도를 식당에서 일하며 보내야 했습니다. 물론 무료 강제 봉사였습니다. 이렇게 강제로 식당 일을 해야 했던 극빈층의 여학생들이 심한 모욕감을 느꼈음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래서 집안 형편이 어려워 무료 급식을 먹어야 하는 학생들이 무료 급식을 거부하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교사들이 문제 제기를 하면 그야말로 ‘문제 교사’로 낙인 찍혀서 각종 불이익을 당했습니다. /조연희 “급식으로 상처받는 아이들, 쫓겨나는 교사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며,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버마행동”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윈라이 씨의 글은, 고국의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의 편지이자 한국사회의 이주노동자 인권 문제에 대한 고발의 외침이다.
저는 우리 버마 사람들을 비롯한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저와 생각이 같은 이주노동자들과 또 한국의 인권활동가들과 함께 싸우고 있어요. 한국의 인권활동가들은 예전에 우리나라와 같은 군사독재 정부와 싸운 경험을 가지고 있고 지금도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싸우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아직 한국 사회에서 많지 않아요. 많은 한국 사람들은 이주노동자들을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고 차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활동으로 이러한 한국의 상황들이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요. 한국에도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윈라이 “어머니, 언제쯤 함께 살 수 있을까요”
6.
지난 8월 16일, <전태일 통신 46호>를 마지막으로 프레시안 연재는 잠시 쉬고 있다. 이 책으로 일차 정리 작업을 한 뒤 재정비를 거쳐 계속 이어질 것이다. <전태일 통신>이라는 소통과 대화의 마당이 우리 사회의 변화와 전환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작은 힘이 되고,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목차 / 전태일 통신 _ 그 어깨에 걸린 무게가 어찌 그리 같은지
1부 / 그 어깨에 걸린 무게가 어찌 그리 같은지
눈물 젖은 ‘시개’ 김건형/부산 장안제일고등학교 2학년
변산 바다 갯것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박형진/농부·시인
노동이 신성하다고? 아이들이 그렇게 느낄까? 박수주/부천실업고등학교 교사
그 어깨에 걸린 무게가 어찌 그리 같은지 박수정/르포 작가
가장 자랑스러운 초등학교 졸업장 민종덕/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
이 ‘살의’를 어찌할 것인가 이문재/시인
아이들이 보고 있다 이호철/경산 성암초등학교 교사
목욕탕 아줌마의 비밀 연규형/여수 상록배움터 대표교사
촌아 울지 마 공선옥/소설가
외로운 아이들, 그래도 행복한 아이들 이주영/서울 송파초등학교 교사
2부 / 어머니, 언제쯤 함께 살 수 있을까요?
급식으로 상처받는 아이들, 쫓겨나는 교사들 조연희/전 동일여자고등학교 교사
썩을 대로 썩은 사학, 나는 알고 있다 김중년/전 영덕여자고등학교 행정실 직원
주교님들의 침묵과 발언 호인수/부천 상동성당 주임신부
장애인도 자기 생활에 책임질 줄 압니다 박정혁/피노키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간사
오직 한 가지 일 밖에 할 수 없는 사람들 추송례/시각장애인 가족
어머니, 언제쯤 함께 살 수 있을까요? 윈라이/이주노동자, 버마행동 총무
강남구엔 꼭 부자만 살아야 합니까 이준형/넝마공동체 사무국장
노숙인이 될 운명으로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까? 이채호(가명)/노숙인
은하 철도, 서울역에서 강제윤/시인
노숙인 문제 해결은 주홍글씨의 제거로부터 이주원/작은손길 사무국장
혼자 찾아 나선 생명의 길 윤철호/변호사
왜 한국 와서도 숨어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이주영/서울 송파초등학교 교사
“공간 초록”, 뭘 하자는 거지? 김곰치/소설가
성장 좀 그만해! 위기철/작가
나는 해 지는 빈 들을 간다 김용택/시인
‘활자 이탈’의 유목민을 위해 현기영/소설가
기억의 흔적 속에 우뚝 선 강철 금강산 철길 터에서 이시우/사진작가
3부 / 민주주의가 이루어졌다고?
민주주의가 이루어졌다고? 정명자/동일방직 해고노동자
노사 간 대화가 그렇게도 어렵습니까 신태석/코오롱 해고노동자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 조가영/현대자동차 비정규 노동자
중간착취·불로소득과 전쟁이라도 벌였으면 하부영/현대자동차노조 정책개발연구위원회 팀장
방송3사는 ‘흡혈형사 나도열’? 박승옥/전태일기념사업회 운영위원
우리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다 김동춘/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이건희 8천 억 헌납이나, 이병철 한국비료 헌납이나 김성환/삼성일반노조 위원장(영등포교도소 수감 중)
삼성은 무슨 명예를 훼손당했을까? 임경옥/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의 부인
중소기업, 삼성과 인연을 맺어 망가지다 조성구/전 얼라이언스시스템 사장
용역깡패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강상철/민주노총 홍보부장
한은 풀고 복은 나누어야 할 텐데 서동석/전 민중불교연합 의장
전태일기념사업회 소개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가 분신 항거한 이후, 이소선 어머니와 청계피복노조를 중심으로 매년 11월 13일 추모제를 통해 뜻을 기리는 활동이 이어졌고, 84년 전태일기념사업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88년 11월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전태일 정신 계승 전국 노동자 대회’가 개최되면서 매년 11월 전국 노동자대회가 열리고 있으며, 88년부터 전태일 노동상과, 전태일 문학상이 제정되어 매년 시상되고 수상작품을 한 데 모은 수상집이 출판되고 있다. 노동운동자료실 운영, 민족민주열사 추모사업, 전태일거리 명칭개정사업, 국제노동단체 교류, 비정규직·영세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사회복지와 노동조건 개선 등, 아직까지도 36년 전 상황과 별반 나아지지 않은 노동자의 현실을 바꾸어 내기 위해 여전히 전진하고 있다. 전태일기념사업회 사이트 http://www.chuntaei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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