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 16일 (목) 10:24 시사저널
<대조영>, 사극의 본토를 수복하다
ⓒ연합뉴스 <대조영은 <주몽>(아래 사진)과 <연개소문>(맨 아래)보다 한층 탄탄한 완성도를 보이고 있다.<대조영>은 거대한 스케일 속에서 현실 정치의 비정함과 그 현실을 뚫고 나가려는 이상적인 영웅을 그리는 KBS 대하 사극의 저력을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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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그뿐인가. <주몽>은 드라마 초반부터 마치 무협 소설처럼 주몽(송일국)이 아버지 해모수(허준호)에게 잠시 무공을 배운 뒤 천하제일의 고수가 되더니 최근에는 모든 것을 전투로만 해결하려 한다.누군가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때도, 정치적 문제를 해결할 때도 해결 방법은 오직 주몽의 액션뿐이다.탄탄한 설정보다는 순간적인 눈요기로 사람들을 끌어당기려 하기 때문이다.또 최근에는 시청률이 높게 나오자 작가조차 반대하는 연장 방영을 시도 중이다.
SBS <연개소문> 역시 드라마 초반부터 주인공 연개소문(이태곤)의 활약상 대신 수나라 황실의 권력 암투를 중심에 놓더니 최근에는 아예 양제(김갑수)의 폭정을 극의 중심에 놓고 있다.이 때문에 연개소문이 아니라 ‘수나라 비사’나 ‘수양제’로 제목을 바꿔야 하지 않겠느냐는 비아냥도 들린다.대하 사극으로서 지켜야 할 품위는 사라진 지 오래이다.대신 사극이 인기를 얻으니 이 기회에 어떻게든 시청률을 올리겠다는 욕심만 있다.주몽과 연개소문은 오직 대의를 위해 사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방송사는 정작 대의보다는 실리에 대한 욕심만 드러내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KBS <대조영>의 등장은 반갑다.<대조영>은 오래간만에 만나는 대하 사극의 격을 갖춘 사극이다.<대조영>이 <주몽> <연개소문>과 차별화되는 엄청난 스케일의 ‘전쟁 신’을 보여주었기 때문만은 아니다.물론 다른 방송사 사극과 비교할 수 없는 대규모 엑스트라와 컴퓨터그래픽을 동원한 <대조영>의 안시성 전투 장면은 초반부터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대조영>의 진정한 가치는 발해사에 접근하는 정통 사극으로서의 진지한 태도 때문이다.<대조영>에서는 하늘이 내려준 운명이나 주인공을 돕는 기막힌 우연 따위는 없다.<주몽>에서 주몽은 신녀 여미을(진희경)의 예지력에 도움을 받고, <연개소문>에서 고구려가 수나라의 군대를 물리친 것은 연개소문의 아버지(박인환)가 신통력을 부려 날씨를 마음대로 바꾸었기 때문인 것으로 묘사된다.반면 <대조영>은 철저하게 사람의 능력과 능력이 부딪쳐 승부를 낸다.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양만춘(임동진)은 당 태종을 직접 찾아가 그를 도발하여 분노케 함으로써 고구려군에 필요한 시간을 벌기도 하고, 패퇴한 당나라 군은 고구려 군의 추격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기만전술을 쓰기도 한다.그러다 보니 주인공의 검술 하나면 전쟁의 승패가 바뀌는 <주몽>이나, 이렇다 할 전략 전술 없이 화랑의 ‘정신력’으로 전쟁의 승패가 갈렸다는 <연개소문>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전쟁의 그림이 그려진다.
ⓒMBC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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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치 혀로 고구려 문벌 귀족들을 회유해 연개소문의 암살을 부추기면서도 미천한 신분이었던 자신을 처음으로 인정해 준 당나라를 위해서는 목숨을 바치는 당나라 장수 설인귀(이덕화)의 캐릭터는 사극을 통틀어 가장 매력적인 악역 중 하나다.당나라와 고구려 간 전쟁에서 서로 거란족을 끌어들이기 위해 설인귀와 대조영의 아버지 대중상이 벌이는 외교전은 입체적이고 복잡한 내면을 가진 캐릭터의 심리를 이용한 <대조영>의 장점을 그대로 보여준다.그래서 <대조영>은 ‘대하 사극’이자 동시에 ‘철혈 사극’이다.단순한 선악 구분으로 캐릭터를 ‘정의 아니면 탐욕, 명분 아니면 이익’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게 하는 <주몽>과 <연개소문>은 그만큼 캐릭터의 행동도 단순한 동기에 따라 결정된다.주인공은 정의에 따라 움직이고, 악역은 자기 잇속만 챙긴다.
‘현실 정치’와 맥 닿는 KBS 사극 전통 이어
하지만 <대조영>의 캐릭터들은 누구나 자신이 처한 현실을 무시하지 않는다.출생의 비밀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반역죄를 뒤집어쓴 대조영은 뒤늦게 자신의 어머니를 만나지만, 그들을 추적한 고구려 문벌 귀족 세력에 잡혀 죽을 위기에 처한다.그가 자신의 어머니 존재를 알고 있다면 죽고, 끝까지 모른다고 하면 산다.그리고 대조영은 어머니의 당부에 따라 어머니가 자신 앞에서 고문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끝까지 존재를 부인한다.또 그는 어머니가 사형당하는 순간에도 다른 영웅들처럼 적들을 뚫고 그들을 구출하려는 대신 어머니가 죽은 뒤 울면서 그의 시신을 수습하려 한다.그것이 아직 노비인 그가 할 수 있는 한계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SBS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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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 (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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