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칼럼니스트

출판계 ‘도서정가제’ 격론...묘안이 없다?

북코치 2006. 12. 9. 00:51
출판계 ‘도서정가제’ 격론...묘안이 없다?
 

[북데일리]도서정가제를 둘러싼 격론이 벌어졌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소장 한기호)가 발행하는 격주간 출판 잡지 ‘기획회의’ 189호 ‘2006 결산좌담’에서다. 40여 페이지에 달하는 장대한 토의에서 도서정가제는 가장 뜨거운 논의거리였다. 좌담에 참석한 6인의 출판인들은 저마다의 의견을 쏟아내며 열띤 격론을 펼쳤다.

가장 먼저 도서정가제를 지지하고 나선 이는 출판사 그린비의 유재건 대표. “적어도 서점판매가격이 같아야 온라인서점과 오프라인서점이 같이 클 수 있고 동네서점도 살 것 아니냐”는 화두를 던진 유 대표는 “어제 어디서나 책과 마주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온. 오프 양쪽 서점이 다 중요하며 그 중에서도 오프라인 서점 중 특히 동네서점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걷거나 산책하다가 우연히 마음에 드는 책을 마주칠 수 있는 기회를 독자들이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온라인서점이 중심이 되고 오프라인서점이 그 주위를 촘촘하게 둘러싸는 모델이 가장 바람직하다”며 오프라인 서점의 생존 방안을 제시했다. 가장 필요한 것은 도서정가제의 정착. 지금까지의 경영방식에서 과감하게 벗어나는 것 역시 관건이다. 작은 평수에 맞게 철저히 전문화된 서점을 지향할 필요도 있다. 지금까지 소형 오프라인서점은 대형 오프라인서점의 축소판에 불과했지만 특정 영역을 철저히 세분화해 특화 한다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위즈덤하우스 신민식 홍보마케팅분사장은 “도서정가제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 하지만 서점, 출판사의 경쟁문제는 다르게 봐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 ‘위탁거래제’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신 분사장은 “영업을 하면서 출판시스템의 하드웨어를 구성하고 있는 위탁거래제를 어떤 방식으로든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도서정가제를 지지하는 입장이지만 혼란스러운 시스템을 이왕 정비할 것이면 장기적으로 봐서 출판환경에 더욱 적합한 제도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유 대표는 “위탁거래제는 어떻게 거래의 법칙을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다”는 견해를 덧붙였다. 위탁거래제가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만든 책이 어느 서점에서 얼만큼 팔렸는지 짐작만 할 뿐,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기 때문. 그는 “위탁거래제가 순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오프라인 소매점이 계속 새로 생겨나고 그 소매점들이 실시간으로 판매데이터를 제공 할 수 있는 포스시스템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민음사 정은수 대표는 “위탁 시스템은 실질적으로 붕괴했다”고 단언했다. 이미 많은 책이 이른바 ‘매절’ 형태로 판매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이는 상당히 문제가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어 “서점에서 어떻게 파느냐 하는 문제보다 책을 독자들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보여줄 것인지에 관심이 있다. 책의 출판을 알릴 수 있는 또 다른 파이프라인을 어떻게 새로 구축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사회를 맡은 한기호 소장은 “한 출판사에서 소설을 펴낼 때 정가를 2만원으로 정하고 싶어도 못한다. 경쟁상품을 의식하기 때문”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정가를 7천원, 8천원으로 낮춰야 하고 고등학생 독자를 대상으로 한 책은 더 낮춰야 하는 많은 고민을 했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가격경쟁이 이루어졌다는 것. 한 소장은 “지금의 구조는 대폭 올려놓고 깎아주는 것이다. 이게 경쟁인가? 독자한테는 하등 이익이 되지 않는 이런 경쟁은 출판시장을 죽이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격노했다.

정 대표는 한 소장의 의견에 반박했다. “특정한 출판사에서 그런 부분이 나타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인식에는 동의 할 수 없다”는 말로 말문을 연 그는 “출판사가 대폭 가격을 올려놓고 깎아주는 경쟁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출판에 대한 자기모멸이라고 생각한다. 가격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원가는 회사마다 상황마다 다를 수 있고 원가에 이윤을 합친 가격이라는 합리적인 틀 안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어 “만약 그게 도서정가제의 이유라면 동의하지 않겠다”며 “그것은 출판인들을 자기기만에 사로잡힌 일종의 폭리업자들로 보는 것이고 이는 대단한 모멸감을 느끼게 한다. 우리가 팔수도 없는 책을 만들어 놓고 일단 가격을 높인 후 할인을 통해서 독자를 유혹하는 존재인가?”라는 강한 반문을 던졌다. 책의 가격이 상승한 것은 인건비, 원자재값, 마케팅 비용, 리스크관리비용, 물가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덧붙였다. 정 대표는 “이에 대한 정당한 이해 없이 우리를 스스로 모욕하면서 도서정가제를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다.

장시간의 격론이 오갔지만 의견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한 소장 역시 “유통의 문제, 도서정가제의 문제는 단순한 듯 하면서도 정말 풀어가기 어렵다. 그나마 올해는 도서정가제의 필요성에 대한 업계 합의가 이뤄졌다는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말로 논의를 마무리 했다.

도서정가제는 출판계 주요 현안 중 하나. 문화상품 보호를 목적으로 발행된 지 1년 이내 책에 한해 정가 판매를 의무화한 제도로, 2008년 2월까지 효력이 있는 한시 규정이다. 2년 넘게 논의가 지속되고 있지만 출판사, 온라인 서점, 오프라인 대형서점, 중소서점 간 이해관계가 엇갈려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다.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