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장편 `무소의 뿔처럼...` <더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의 작가 공지영(30)씨가 여성문제를 다룬 새 장편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문예마당)를 펴낸다. 90년대의 촉망받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인 공씨의 세번째 장편인 이 소설은 결혼한 남녀 사이의 성차별 또 는 착취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성적 불평등 문제를 천착한 작품이다.
학교 시절 하루 빨리 이 사회에 편입되고 싶어 안달을 부리던 혜완, 영선, 경혜는 그 뒤 십여년이 지난 현재 하 나같이 절망에 빠져있다. 주체성이 강한 혜완은 두살짜리 아들이 사고로 죽은 뒤 그 충격과 남편의 몰이해를 견디 지 못하고 이혼을 택했다. 순진하고 착하기만 한 영선은 남편의 공부와 일을 뒷바라지하느라 자신의 공부와 일을희생했음에도 오히려 남편한테 무시당하고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자살소동을 벌인다. 현실적이며 계산이 빠른 경혜 는 의사 남편의 노골적인 외도 앞에서 “넌 연애해라. 난 니가 벌어다 주는 돈이나 쓰면서 살지”라며 애써 상황을 합리화한다.
꿈과 희망에 차 있던 젊고 똑똑한 이들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린 것은 무엇인가? 공씨의 소설은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의 모색으로 읽힌다. "우리 세대는 적어도 교과서상으로는 남녀가 평등하다는 것을 배우며 성장한 세대이다. 그러나 제도적 현실과 사회의 인식은 그렇지 못하다. 결국 결혼생활과 이혼 등에 관해 총체적 혼란에 빠져 있 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이다.” 이 작품 속에서 교양있는 남자들은 아내를 복종시키기 위해 필요할 경우에는 주먹을 휘두른다. 남편들은 또 자신의 아내에 대한 `소유권'을 확인하기 위해 반강제적인 섹스도 서슴지 않는다. 여자들은 버스 안의 신문 파는 소년에 게 추행을 당하면서도 보복이 두려워 그저 몸만 떨고 있을 뿐이다. 그런가 하면 딸만 둘을 내리 낳은 여자는 세번 째 아이로는 아들을 얻기 위해 몇번씩이고 임신중절을 강행한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여자에게 있어 결혼한다는 것은 `오욕의 땅'으로 떠나가는 것이며, 결혼생활은 `짐승 같은 시간' 으로 가리켜 진다. 그래서 이 작품의 결론은 절망적이다. "처음에는 무언가 긍정적인 전망을 제시해야겠다고 생각 했다. 그러나 전망이 없는 것이 더 현실에 가까운 것 같아 비관적인 결말을 짓게 됐다. ” 공씨는 다소 공상적일망정 주체적인 여성들이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모습을, 현재 반쯤 진척된 <착한 여자>에서 내보이겠다고 말했다. 또 “<무소의…>가 중산층 여성들에게로 시선을 제한하고 있다는 한계를 인정한다”면서 54 년부터 87년까지 3대에 걸친 여성 차별사를 그린 또다른 장편에서 그 한계를 극복해 보겠노라고 밝혔다. 제목은 불교의 초기 경전에 나오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서 따왔다.
(93.1.11.한겨레) <최재봉 기자>
공지영 작 - `인간에 대한 예의`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시작>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등이 잘 입증하듯이 공 지영은 문학적 열정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뛰어난 감수성과 단단한 현실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젊은 작가다. 그런 작 가의 작품이 많은 독자의 이목을 끄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가 최근에 발표한 단편소설 `인간에 대한 예 의'(실천문학 여름호)도 그 예외가 아니다.
이 소설에는 아주 대조적인 두 인물이 등장한다. 이민자라는 여자와 권오규라는 남자가 그들인데, 전자는 화려하 고 기이한 경력을 쌓은 `용감무쌍한 자유인'으로서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이미 충만한 사람이 가지는 어떤 힘”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고, 후자는 유신정권을 전복시키려고 폭력혁명을 획책한 직업적 혁명가라는 이유로 20여년이나 감옥에 갇혀야 했던 불운한 부자유인으로서 “출옥을 한 뒤에도 감옥에 갇혀 있었던 이십 몇년간의 습관 때문에 밖에서 누군가가 방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방 안에서 제 스스로 문을 열 줄 모르고, 길을 걷다가도 마치 감옥의 벽 이 그에게 달려드는 것만 같은 환각에 흠칫 놀라 서는” 사람이다. 이들의 대조적인 삶은 무엇보다 이들의 거처에 서 잘 압축되어 있다. 곧 이민자의 거처는 경기도의 한적한 곳에 자리잡은, 넓은 나무마루와 벽난로와 자신이 그린 그림이 있는 통나무집이고, 권오규의 거처는 산동네에 자리잡은, 가느다란 수도꼭지와 벽돌색 대야가 있고 처형당 한 사람과 옥사한 사람이 나란히 들어 있는 흑백사진이 있는 허름한 한옥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소설은 한 공간에서 상봉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이들을 동시에 소개하기 위해서 이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여기자를 화자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민자와 권오규라는 특이한 인물들의 삶 자체에 초점 을 맞추고 있질 않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그 두 인물을 화두로 삼되 그들보다 그들을 취재하는 여기자의 행적을 추적하는 데 더 열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지영이 공들여 탐문하고 있는 이 여기자는 누구인가?
그는 “오랜 독신생활과 길지 않은 여성지 기자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이런 생활 속에서 간혹 척박한 땅에 열무 씨앗을 뿌려 그 싹이 돋는 걸 지켜보는 즐거움을 누리기도 하지만 대체로 쓸쓸함을 느낀다. 이런 쓸쓸함을 이겨 보려고 그는 잠시나마 자유와 명상의 상징인 이민자에게 관심을 쏟는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쓸쓸함을 지우지는 못 한다. 젊고 재능있는 여기자의 삶이 이처럼 그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이 쓸쓸하다는 것은 아무래도 수상하다. 그 까닭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녀가 쓸쓸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한마디로 말해 “죽고만 싶어, 죽고만 싶어 하고 중얼거리며 죽지 못하고 빠져나온 1980년대”에 그가 젊은 날을 바쳤다는 데 있다. 그는 역사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이들이 대개 그렇듯이 그 책임감 때문에 혹독한 80년대에 청춘을 차압당한 젊은이다. 그는 추악한 현실을 외면한 채 자신의 안 락과 장래만을 생각했던 이나 또는 그런 현실을 살면서 부채감이나 중압감을 느꼈다고 공공연히 떠들면서도 이를 뒷받침할 만한 언행을 보인 적이 없는 위선적인 이들과 달리 명실공히 `80년대의 아들이며 딸'의 일원이었다.
그 역 시 “옳으면 승리한다는, 아아, 너무도 단순했지만 너무도 굳게, 결국은 정의가 승리 한다는 믿음을 먹고 자란 사람 들”의 하나였던 것이다. 주변에 있던 많은 깨어있는 젊은이들이 갖가지 수난을 겪거나 때이르게 죽은 것도 그런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숱한 번민과 고통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그 믿음대로 역사가 진행되지는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근래에는 국 내외 정세의 격변에 편승하여 그러한 이들의 믿음과 의로웠던 삶을 경멸하거나 무시하는 사람들마저 생기기 시작 하였다. 특히 이들의 믿음을 사회주의와 무작정 일치시켜 매도하는 비이성적 작태가 자주 목격된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누군들 쓸쓸하지 않겠는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 쓸쓸함을 못견디는 것도 근본적으로는 이런 상황 탓이라고 해 야 하겠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한 쓸쓸한 여기자를 통해 80년대의 아들과 딸의 그런 믿음이 어두운 시대와의 싸움의 동 력이었음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그런 믿음은 다양한 성분으로 구성된 것이기는 해도 포악하고 탐욕 적인 체제라는 `거대한 댐'을 폭파시킨 위력적인 다이너마이트였다. 이런 사실을 부각시키고자 이 소설의 주인공은"시대와 역사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켰던" 권오규를 이민자보다 앞서 소개하기로 함
(93.6.28. 한겨레) 김태현/문학평론가·순천향대 교수
공지영 현상 올해 문학출판계에서는 특이하고도 놀라운 현상이 벌어졌다. 여성 작가 공지영(31)씨의 소설 세편이 주요 대형서점의 국 내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동시에 진입한 것이다. 지난해 봄에 나온 뒤 해가 바뀌도록 인기를 잃지 않고 있 는 장편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와 올 여름에 발표된 또다른 장편 <고등어>, 그리고 중단편을 묶은 첫 작품 집 <인간에 대한 예의>가 그것들이다. 이들은 이달 중순 현재 각각 36만, 20만, 10만부씩 팔려나갔다.
문학출판인들 사이에 “전례가 없던 일”이라는 경탄을 자아낸 `공지영 현상'의 본질은 무엇일까. 공지영씨의 소설 들은 김윤식 교수(서울대 국문과)가 `후일담 문학'이라 명명한 80년대 돌아보기의 바람, 그리고 박완서씨에서 이경 자씨를 거쳐 내려온 여성소설의 전통, 이 두개의 커다란 흐름에 젖줄을 대고 있다. 이 두가지 흐름은 그리고 다른 어떤 경향이나 주제보다도 90년대 한국 소설, 아니 한국 문학 자체의 중심부를 관통하고 있다. 등단작인 중편 `동트는 새벽'과 첫 출세작인 장편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에서부터 80년대를 자신의 문 학적 화두로 삼아온 공씨이지만, 이들 초기작에서 그린 80년대와 최근작에서 보이는 80년대에 대한 작가의 태도 사이에는 작지 않은 차이가 존재한다. 초기 소설에서 엿볼 수 있는 80년대에 대한 작가의 태도가 `혁명적 낙관주의' 에 가까운 것이었다면, 90년대의 작가적 태도는 손쉬운 낙관과 전망은 더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문학평론가 류보선씨의 분류법에 따른다면 앞의 태도는 80년대에 대한 객관적 반성을 의도적으로 무시해버린다는 문제를 안고 있는 반면, 뒤의 태도는 80년대를 비극적이되 심미적 대상물로 바라보는 것에 해당한다. 김영현씨의 <풋사랑>과 김하기씨의 <항로 없는 비행> 등 전자의 태도를 의연히 유지하고 있는 소설들도 없지 않 지만, 적어도 80년대 말~90년대초의 국내외적 격변을 목격한 뒤의 문학이 예전과 같을 수는 없다는 점에서 공지영 씨의 문학적 변신은 타당성을 담보하고 있다. 공지영 문학의 또다른 축인 여성문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의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세대론적 차 별성을 나름의 특장으로 삼고 있다. 공씨 자신에 따르자면 “적어도 교과서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평등하다는 것을 배운 세대”의 남자와 여자들이 그 소설의 주민들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교과서적 지식과 실생활 사이의 괴리가 이 소설의 공안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또한 박완서씨나 이경자씨의 소설과는 구분되는 공지영씨 나름의 독자층이 현실에서 경험하고 있는 괴리이기도 하다.
80년대와 여성문제를 함께 그러안고 몸부림치는 공지영씨의 소설들은 흔히 비슷한 연배인 최영미씨의 시에 비견 되고는 한다. 최영미 시와 공지영 소설의 또다른, 어쩌면 더욱 중요한 공통점은 대중성에 있다고 해야 할지 모른다. 두사람의 작업은 문학 전문가들의 냉정한 분석에서보다는 일반 독자들의 소박한 호응 쪽에서 더 많은 점수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자로부터의 소외를 근거로 본격문학의 위기가 운위되는 시대에 그 대중성은 딱이 폄하할 성질의 것만은 아닐 터이다. 한편 소설, 그것도 여성 작가의 소설로 시야를 좁혀 볼 경우 공지영씨는 공선옥, 김인숙, 신경숙씨 등 쟁쟁한 63 년생 여성 작가군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겨진다. 김소진, 주인석씨 등 동갑내기 남성 작가들과 함께 이들은 80년대라 는 `불의 연대'를 온몸으로 통과하면서 입은 상처와 영광을 자신의 문학적 자양분으로 삼고 있으며, 그것은 앞으로 도 당분간은 한국 문학의 넘치도록 풍부한 수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94.12.13.한겨레)<최재봉기자>
'무소의 뿔'- 남녀 관객 논쟁 예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중심으로 하나의 `전선'이 형성될 조짐이다. 공지영씨의 원작소설이 이미 80만부가 팔렸 고 여성문화예술기획이 각색한 연극의 무대는 `여성연극'의 진앙이 된 바 있지만 이제는 영화의 차례다. 공지영씨가 직접 각색하고, <숲속의 방>에서 한차례 호흡을 맞춘 오병철 감독이 연출한 영화가 다음 주말 개봉된다. 전선의 양쪽에는 `남성'과 `여성'이 있다. 극장 개봉에 앞서 열린 몇 차례 시사회에서 여성관객과 남성관객의 일반 적 반응은 눈에 띄게 다르다. 남성관객들의 표정은 좀 다양하다. “남자들 묘사가 지나치게 단순해서 현실성이 없 다. 왜 여자는 `선'이고, 남자는 `악'인 것처럼 그렸는가.”미혼이라고 밝힌 20대 회사원 이성호씨의 불만이다. 불이 다시 들어온 객석에서 “아내에게 보여주어야 할 지 좀 생각해 볼 문제”라는 농담도 들렸다. 감독의 해명은 이렇다. “어느 쪽에서 바라보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이제까지 영화에서 여성들이 다루어진 방식 을 생각해 보라. 옷 벗겨놓고 손만 대면 신음소리를 내는 여자들을 우리는 무수히 보아 왔다. 그에 비하면 내 영화 의 남자들에게 현실성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여성관객들은 먼저 운다. 로맨틱 코미디가 시대정신이 된 듯한 최근 한국 극장상황에 대한 반격일까. 성급한 이 는 <미워도 다시 한번>과 <별들의 고향>, 그리고 <겨울나그네> 등 한국 멜로드라마 전통의 부활을 전망함직하다. 오병철 감독 자신도 이 작품을 멜로드라마라고 말한다. “이는 대중적 감성에 접근하기에 가장 좋은 장르다. 감독 으로서 많은 관객들과 만나기 위해 멜로를 택했다. 개인적 취향에도 맞는다.” 그러나 영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아주 새로운 종류의 멜로다. 장르의 틀을 따르는 온순한 외양 속에 기존 가부장질서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이끌어내기 위한 발언을 담았다. 오병철의 눈물과 통속성은 위안용이 아니 라 전술무기다. 소설과 연극처럼 영화도 세 여자친구가 결혼에서 부딪힌 성차별의 이야기, 자기상실과 회복에 관한 체험담이다. 이혼한 소설가 혜완(강수연)이 화자로 등장하는 것도 같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실리를 취하자는 경혜(심혜진)는 결 혼으로 신분상승을 꾀한 다음 유한계급의 삶에 안주하던 원작과 달리 방송국 아나운서의 일을 계속한다. 자신의 재능 과 희망을 남편(김의성)의 성공을 위해 희생한 영선(이미연)과 함께 영화는 이들을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여성”, 대학교육이 배출한 중산층 젊은 여성의 전형으로 제시하고 있다. 부덕과 모성이라는 어머니 세대의 미덕을 세습하기를 거부한 세대고, 그 어머니들과 달리 자신들은 `자아실현'을 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성인사회 에 들어선 여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결혼도 어머니 세대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가장 재능있고 예쁘던' 영선은 영화를 공부하러 남편과 모스크바(소설은 파리)로 가지만 생활고가 닥치자 자신의 학업과 시나리오를 포기한다. 남편은 아내의 시나 리오로 영화를 찍어 졸업했고, 귀국해서 `유망신인'이 된다. 그러나 영선은 남편의 성공과 자신의 인생이 별개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망가진다. 자살을 기도한 영선을 중심 으로 다시 만난 혜완과 경혜 역시 `여성의 문제'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자신의 소설을 직접 각색한 공지영씨의 시나리오는 그들의 결혼에 잠복한 차별과 불행을 날쌔게 포착해 요즘 여 성의 보편적 문제로 일반화해내는 데 성공한다. 그렇게 여성관객들을 혜완과 경혜, 영선의 동아리로 포섭해 들이는 데, 이 주인공들은 이제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상태에서는, 불평등조건 아래에서는 행복해질 수 없는 이들이다. 여성의 삶에 관한 한 하나의 `문화혁명'을 요구하고 있는 이 인물들은 이제 시사회장을 벗어나 시중 극장가로 간다. 이들이 유발할 논쟁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주목된다.
(95.9.29.한겨레) (안정숙 기자)
공지영씨 단편 `모스크바에는 아무도 없다' <고등어>의 작가 공지영(32)씨가 1년여 만에 새 단편 `모스크바에는 아무도 없다'를 발표(<창작과 비평> 겨울호)했다. 자신의 원작소설을 각색한 영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의 촬영을 위해 지난 여름 모스크바에 갔던 경험을 그 리고 있는 듯한 이 작품은 말하자면 그의 또다른 단편 `꿈'과 같은 계열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는 것은 두 작품이 모두 작가 자신으로 추정되는 소설가를 주인공 겸 화자로 내세워 소설가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그의 고민과 지향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다는 말이다. 소설의 줄거리인즉, 단순하고 평이하다. 영화감독인 남편을 좇아 모스크바에 온 주인공이, 그곳에서 만나리라고 기대했던 옛 친구들을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돌박이 아이와 모국어가 기다리는 한국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옛 친구들을 만나려는, 끝내 실패로 돌아가고 만 시도들의 사이 사이에 남편과의 신경전과 말다툼, 운동권 출신 스포츠신문 기자와의 대화, 낯선 언어로 전화를 걸어오는 미지의 남자, 푸시킨 미술박물관에서 만난 고흐의 그림, 그리고 친구들과 동행했던 10년 전 여행의 추억들이 끼어든다. 그렇다면 이 범상한 여행기와도 같은 글을 소설로 성립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2박3일간의 낚시여행담을 당대와의소설적 대결이라는 문제의식으로 끌어올린 `꿈'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90년대 중반에 작가와 소설은 무엇을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는 것이 그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나는 이제는 소리지르지 않고 나는 이제는 소근소근 새로운 이야기들을 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화해하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다른 이야기를 하자고. 그래서 장편 하나를 끝낸 뒤 일년반 동안 나는 글을 쓰지 않고 있었다.” `이제는 새로운 것을 쓰라'는, 기자들과 평론가들에게서 거듭해서 들었던 주문에 대한 대답처럼 등장하는 이 지문 은 “이제 저는 그만 80년대에서 벗어나고 싶어요”라는, `꿈'의 주인공의 말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그는 과연 벗어 날 수 있을까.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했던 `꿈'의 작가는 오히려 80년대에 보내는 눈물의 송가라 할 <고등어>를 발표했던 것이니. `모스크바에는 아무도 없다'에서도 작가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 소설에 나타났다가는 사라 지는 인물들과 소소한 사건들이란 실은 흔들리는 작가의 의식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흥미로운 소설 속 인물은 작가와 같은 학번인 김 기자다. 운동권 내부의 `역할분담'을 위해 스포츠신문에 들어왔으나 이제는 그것이 평생 직업이 되어버린 그는 작가의 화두인 세상의 변화를 몸으로 구현하 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한때 운동권이었던 그는 러시아맥주의 힘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우리들을 말야… 우리들을 그렇게 힘없이 회상해서는 안돼,… 우리들은 영원히 외로운 세대야… 왜 그랬는지, 그땐 왜 그러다가 지금 요렇게 되었는지 영원히 이해받지 못할 거라구… 그러니까 그렇게 맥없이 항복하고 들어가 는 건 싫었어….” 그런데 그 김 기자가, 러시아 여자를 `잡숴' 보라는 동포의 제안을 끝내 거절했던 그가 인터걸과 함께 방을 나서 는 모습을 목격당한다. `모스크바에는 아무도 없다'는 제목의 의미가 비로소 확연히 다가온다. 95년 여름의 모스크 바는 `몰래 읽은 혁명사와 레닌 전기 속에서 살아 숨쉬던 땅'이 더이상 아닌 것이다. `예전처럼 어깨동무를 하고 스 텐카라친, 스텐카라친 노래를 부르며 모스크바의 밤거리를 걷게 될' 친구들도 없으며, 만나는 것은 다만 영어 한 마디를 못하는 웨이트리스, 커다랗게 빛나는 맥도널드의 이니셜, 택시를 대신하는 자가용 영업자들, 그리고 늘씬하 게 뻗은 인터걸들뿐이다. 모스크바에는 정녕 모스크바가 없다.
(95.11.14.한겨레) <최재봉 기자>
공지영, 자기고백적 산문집「상처없는 영혼」펴내 공지영씨(33)가 「고등어」이후 2년만에 「상처없는 영혼」(푸른숲간)이라는 산문집을 펴냈다. 소설가가 소설 아닌 자기 고백의 산문집을 발간한 이유는 책속의 한 구절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세상에 발을 디딘 지 33년4개월을 지나고서 처음으로 나는 인생의 한 시간을 시작합니다』 공씨는 지난 4월부터 2개월간 홍콩과 일본을 떠돌았다. 아이도 두고 혼자 헤맨 길이었다. 책 첫 머리를 차지한 여 행중의 상념은 긴 방황에 종지부를 찍는 기록이다. 『지난 1년간 사춘기 이래 제일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저로서 는 죽음과도 같은 순간들이었죠. 너무 힘들다보니 늘 목표를 향해 돌진해가는 식의 제 삶의 관성에서 벗어나서 한 번 둘러보고 싶어졌어요』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 개인사의 어려움. 벼랑끝에 몰린 심정으로 정신과의사를 찾아가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자기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기막힌 상처를 마주하게 되었다. 소설속에 습관처럼 썼던 문장들, 「손가락 사이로 모든 존재가 빠져나갈 것 같은 두려움」 「나를 내쫓고 빗장을 지르는 소리」같은 것들이 내면의 어떤 상처에서 비롯됐는지를 비로소 응시하게 됐다. 불과 30대 초반의 나이에 베스트셀러작가가 되었지만 공씨는 끊임없이 명확하지 않은 모든 일에 불안해 했고 자 신을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왔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일본여행이 끝나갈 무렵 쓴 글에서 공씨는 『다시는 예전처럼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이렇게 미래를 그린다. 『내 인생의 남은 33년은 지난 33년의 삶을 수습하면서 보내야 하리라는 생각…. 너무 많은 일들을 저질렀고 너 무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혔음을 깨닫습니다』변화의 첫 기미는 무엇일까. 공씨는 선뜻 『엄마와 여자로서의 내 삶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를 낳기는 했지만 엄마로서의 마음의 준비는 없었습니다. 마음이 열아홉살에 머물러 있었고 모르는 사이 남 성적인 삶을 지향하고 있었어요. 내가 내 아이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은 정신적으로도 33세 어른이되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책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서 그렸던 것처럼 여성이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데 대한 분노는 그대 로 살아있지만 그는 요즘 생애 처음으로 『여자답다는 것, 생명을 창조할 수 있고 살릴 수 있고 부드러운 그 특질 이 진심으로 좋다』고 말했다. 추석이 지난 뒤 공씨는 지금은 헤어져있는 아이를 데려와 온전히 자기 손으로 키우며 다시 새 소설을 쓰기 시작 할 것이다.
(96.9.9, 동아일보) [鄭恩玲기자]
[공지영] 침묵지키다 첫 산문집 `상처없는 영혼' 탈고 작가 공지영(33)씨가 첫 산문집 <상처 없는 영혼>(푸른숲 펴냄)을 묶어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와 <고등어> 두 장편의 잇따른 상업적 성공으로 최고의 인기작가로 떠오른 그는 그 이후 <한겨레신문>에 장편 <착한 여자>를 연재하는 것말고는 거의 침묵을 지켜왔다. 문학적 침묵과 함께 들려온 개인적 시련에 관한 소문은 그를 아끼는 독자들의 궁금증과 걱정을 아울러 자아냈다. 작가 공씨가 소문과 우려의 벽을 뚫고 내민 산문집 <상처 없는 영혼>은 그의 침묵과 칩거가 영혼의 성숙을 위한 징검돌이었음을 확인시킨다. 고치 속의 안온함과 답답함을 박차고 낯설지만 신비한 세상으로 날아오르는 나비처럼, 그는 상처의 피딱지를 떼어버리고 생살의 후련한 쓰라림을 맞대면하고자 한다. 모두 5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산문집의 첫 두 장 `홍콩으로부터의 편지'와 `일본으로부터의 편지'는 그가 낯선 언 어와 얼굴들 속에서 자신의 상처를 다스려가는 과정을 편지글에 실어 나르고 있다. 그는 일단 상처의 땅을 떠난 셈 이지만 그 떠남은 상처로부터의 도피가 아닌 상처의 응시와 성찰이며 마침내는 그것과의 정면대결이 된다. 그 `대 결'은 상처를 억누르고 제거하는 일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수납하고 포용하는 순한 마음씀을 가리킨다. “고통은 때로 치통처럼 나를 덮칩니다. 그 고통 속에 나를 팽개치지 말자고 몇 번이나 다짐하다가 말았습니다. 고통이 나를 덮친다면 그대로 두는 것도 괜찮은 일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거부하지 말고, 마치 헝클어진 서랍을 정리하듯이 하나씩, 가지런히 고통에게 제자리를 찾아주는 일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구원은 어쩌면 거기서부터 조금씩 시작되는 거라고 말입니다. 고통은 나를 덮치지만, 구원은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오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이 산문집은 작가 자신의 표현대로 “염산처럼 쓴 고통들이 시간과 함께 익어 향기로운 술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과정의 기록이 되며, 그 결과 빚어진 글들은 잘 숙성된 포도주의 향기를 내뿜는 것 같다. 산문집의 제3장은 유년의 삽화들과 주변 사람들과의 이런저런 인연에 할애돼 있으며, 4장은 여성의 현실에 관한 비판적 사유, 5장은 독서 감상문과 문학적 고백으로 채워져 있다. 제4장에서 독자의 관심을 끄는 대목은 그가 어떻게 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와 같은 작품을 쓰게 됐는 가 하는 점이다. 대학에 다닌 80년대 이래 그의 일차적 관심은 독재정권과 민중 사이의 대결이었다. 등단작 `동트 는 새벽'과 첫 장편 <더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가 그런 맥락에서 나온 작품들이다. 그러던 그가 여성문제에 관 심을 돌리게 된 것은 90년대에 들어와서다. 이전에는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던 문제가 새로운 상황을 맞아 두드러지 게 된 것이다. 그래서 쓴 것이 <무소의 뿔처럼…>이다. 이 소설을 마치던 날 새벽 몹시 울었다는 작가는 “만일 여 기서 우리가 진정한 싸움 없이 섣부른 화해를 해버린다면 그녀(=성적 핍박 속에 평생을 보낸 작가의 외할머니)가 바로 우리들의 미래”라고 단언한다. <토니오 크뢰거>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등에 대한 독서 감상문, 박완서·오정희씨 등 선배작가들과의 인터 뷰, <고등어>에 얽힌 일화 등이 담긴 제5부에서 가장 흥미로운 글은 `소설을 쓰고 싶은 후배 T에게'다. 이 글에서 작가는 자신의 문학적 이력과 포부, `성공'한 뒤의 고민 따위를 진솔하게 털어놓고 있다.
산문집 <상처 없는 영혼>은 전체적으로 밝고 건강하다. 상처받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그 상처를 밑 거름 삼아 자존과 이타의 단 열매를 맺은 인간 성장의 드라마가 거기서 펼쳐친다.
(96.9.11,한겨레) <최재봉 기자>
공지영 - 새 소설 '착한 여자' 착한 여자가 있다. 말 잘 듣고 인내심 많고 저녁이면 따뜻한 밥상을 가족과 나누는 것이 유일한 바람인 여자. 그러나 이 착한 여자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남편에겐 학대받으며, 삶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연인으로부터 버림받는다. 착한 여자는 왜 불행해지는 것일까, 착한 여자란 과연 어떤 여자일까. 30대 작가군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공지영( 34)씨가 ‘고등어’를 펴낸지 3년만에 내놓은 장편소설 ‘착한 여자’(한겨레신문사 펴냄)는 이른바 ‘착한 여자 신 드롬’에 대한 문학적 분석서이기도 하다. “착한 여자란 제 인생의 화두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은 때가 새 순이 돋는 봄철이었는데 그 동안 사랑과 결혼의 의미에 대해 얼마나 지긋지긋할 정도로 생각해왔는지가 느껴지더군요. 내가 착할 게, 뭐든지 다 참고 잘해 줄게 하는 것들은 사랑이 아니라 거래였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지요. 이 땅에 사는 여자들의 착한 여 자 콤플렉스를 한번 따져보고 싶었습니다.” 소설은 지방 소도시 출신인 주인공 정인의 신산스러운 삶을 조용히 뒤 쫓는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자살이란 상처를 경험한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마을의 부잣집 아들 현준과 결혼한다. 남편의 끝없는 도박벽과 구타에 허물어져 가던 정인은 이혼후 친구의 출판사에 취직해 새 삶을 시작하지만, 나약 한 소설가 지망생 호영에게 다시 버림받고 남루한 자취방에서 칼로 손목을 긋는다. 고향 오빠인 의사 명준의 보살핌으로 살아난 정인에게 남은 것은 뱃속에 든 호영의 아이. 딸 효빈은 결국 그를 절 망속에서 구해낸다. “나 오늘 처음 내가 엄마라는 사실이 좋았어요. 내 말 이해하겠어요? 아이 업고 궁둥이 두드 리면서 노래 부르는 거, 내가 한 생명의 엄마라는 거….” 정인이 아이를 통해 삶을 다시 시작하는 과정은 지난해개인적으로 많은 아픔을 겪었던 공씨 자신의 경험으로도 읽힌다. 그는 한때 자신이 강하게 부정했던 ‘여성성’‘착함’의 힘을 되찾게 해준 것도 바로 아홉살 난 딸과 두살짜리 아들이었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착하고 부드럽고 여성적인 것은 다 남성들이 만들어낸 신화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보니 사는 게 장난이 아니란 생각이 들더군요. 이 사회를 구하는 것은 생명을 창조하는 여성의 부드러운 힘이고, 세상은 여자와 남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점을 배운 셈이지요.” 세상에 대해 좀더 관대해진 공씨의 눈길은 마지막 5부 ‘사람이 사는 집’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지난해 신문 연재 스케줄에 쫓겨 서둘러 마무리 지었던 이부분을 단행본으로 출간하며 새로 썼다. 그 덕분에 정인이 어느 날 느닷없이 대안 가족을 지향하는 사회운동가로 탈바꿈하게 된 듯한 배경이 좀더 설득력을 갖게 됐다. 공씨는 “죽을 듯한 고통을 겪고 나면 어렴풋이 글쓰기가 조 금씩 나아지는 것을 느낀다”며 “소설가란 정말 잔인한 직업”이라고 덧붙였다.
( 97년 05월 08일, 문화일보) <吳愛里 기자>
공지영 장편 <봉순이 언니> 소설가 공지영(35)씨가 짧은 장편 <봉순이 언니>(푸른숲)를 펴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착한 여자> 등의 소 설을 통해 `여성주의' 작가로 알려진 공씨는 이번 소설에서도 여자 주인공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새 주인공 `봉 순이 언니'를 통해 작가가 펼치고자 하는 것이 반드시 페미니즘적 주의주장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보다는적대적인 운명에 맞서는 한 여성의 싸움과 패배의 여정을 소설은 보여준다. “두툼한 눈자위와 뭉툭한 코, 엷은 곰보가 진 얼굴과 비어져나온 입술, 웃으면 빨갛게 드러나던 잇몸.” 봉순이 언니는 화자 `나'의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는 사람이다. 열한두 살부터 시작한 것이 십년 가까이 이어져 소 설 시점인 60년대 후반 현재의 나이는 열아홉. 소설은 다섯 살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봉순이 언니의 기구한 삶을 72개의 짧은 장으로 그려나간다. 마당과 꽃밭이 있던 기와집이 성냥갑 같은 아파트로 바뀐 때는 더부살이 식모의 구실을 출퇴근하는 파출부가 대 신하게 된 무렵과 대체로 포개진다. <봉순이 언니>는 우선 식모라는 반봉건적 제도와 그것이 보편적이던 시절의 이런저런 사회상을 되살려낸다. 모래내역 앞을 천천히 지나던 마차와 서대문 근처를 쨍그랑쨍그랑 종을 울리며 달리던 전차, 난지도의 수영장, 그 리고 논과 개울이 있던 60년대 후반 서울의 모습은 이제는 사진에서나 만날 수 있는 것들이다. 몸체만한 건전지를 검거나 누런 고무줄로 친친 동여맨 구식 라디오, 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성우 구민씨의 <전설따라 삼천리>, 수 박처럼 흰 줄이 쳐진 왕사탕, 양은 국자에 달고나와 소다를 녹여 만든 또뽑기 역시 향수를 자극하는 풍물들이다. 봉순이 언니와 `나'의 가족들의 관계는 노동력과 임금을 교환하는 고용·피고용의 관계와는 다르다. `나'의 부모는 봉순이를 반은 수양딸처럼 여기며 또 그렇게 대우한다. 더구나 어린 `나'에게는 봉순이 언니가 자궁처럼 편안하고 따스한 존재이다: “엄마였고 언니였고 그러면서 친구인 그녀는 내 첫사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엄연한 신분의 차이가 완전히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나'의 언니와 오빠가 아침마다 교복을 다려 입고 학교로 가는 반면, 봉순이는 밥과 빨래를 하고 아이를 돌보아야 한다. 아버지의 일제 도요타 크라운 승용차를 타고 가족들이 함께 외출할 때에도 봉순이는 남아서 집을 지킨다. 심지어는 어머니의 보석 반지가 보이지 않자 봉 순이는 도둑으로 몰리기까지 한다. 결국 소설은 부자와 빈자라는 두 계급간의 `충돌'을 보여주는 것인데, 그것은 봉순이와 가족들 사이에서만이 아니 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돼 나타난다. 봉순이가 남자와 눈이 맞아 밤도망을 놓은 뒤 대신 들인 식모 미경이는 헐벗 은 동생들 생각에 주인집 아이들의 옷을 몽땅 훔쳐 달아난다. 주로 세를 사는 동네 아이들은 “재수 없는 주인집 딸년! 에이 우라질!”이라는 욕을 퍼부으며 `나'를 따돌린다.
자전적 성장소설로 읽을 수도 있는 이 작품에 따르면, 봉순이로 대표되는 다른 계급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이 그 의 80년대를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쪽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서로 애비가 다른 네 자식을 건사하는 것으로도 모자 라, 이제 오십이 가까운 나이에 다시금 새 남자를 만나 도망을 치는 봉순이처럼 화자 역시 끝끝내 희망을 놓지 않 으려 한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화자는 “희망이라니, 끔찍하게…”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 희망은 봉순이와 `나'와 작가 자신의 삶을 이끄는 가장 커다란 원리이다.
(98.12.9, 한겨레)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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