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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십자가를 짊어진 고당 조만식!!

북코치 2007. 1. 13. 12:30

민족의 십자가를 짊어진 고당 조만식!!

 



[송삼용 지음/생명의말씀사(lifebook)]

 

 [들어가면서]
  그분은 어떤 분인가 왜 이 사람에 대하여 우리는 다시금 주목하여야 할것인가?  우리는 그분을 잊지는 않고 있었는가? 고당 조만식 선생 그분은 하나님이 보낸 사람 민족 지도자이시다. 그분은 평안남도 강서(江西) 사람이다.  15세까지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하고 1905년 평양 숭실중학교(崇實中學校)에 입학하여 재학중에 기독교에 입교했으며 1908년에 졸업하였다. 일본으로 건너가 정칙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에서 3년간 영어를 공부했다. 그는 1910년 명치대학(明治大學) 법학부에 입학하여 1913년 졸업하였다.

  조만식 선생님은 1913년 귀국 후 이승훈(李昇薰)이 설립한 오산학교(五山學校)의 교사로 취임했고 1915년에 교장이 되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 운동에 적극 참가하기 위하여 오산학교 교장을 사임하고 평양으로 가서 평양의 제2차 만세시위운동의 조직 책임자로서 독립운동을 지휘하다가 일제 경찰에 피체되어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0년 1월에 가석방되었다.

  출옥 후 다시 오산학교의 교장이 되었고, 1921년에는 평양 기독교청년회(基督敎靑年會) 총무에 취임하는 한편 산정현교회(山亭峴敎會)의 장로로 시무하였다. 1922년 7월 평양에서 김동원(金東元)·오윤선(吳胤善) 등을 비롯하여 그곳 기독교청년회와 함께 조선물산장려회(朝鮮物産奬勵會)를 조직하고 강연회를 개최하는 등 물산장려운동을 시작하였다. 이 운동은 서울에서 김성수(金性洙)와 동아일보(東亞日報)의 적극적 지지를 받아 1922년 12월 7일에는 동아일보가 물산장려운동의 전국적 확산을 제창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하여 서울과 지방의 반응이 컸으므로 1923년 1월 21일 서울에서 중앙의 조선물산장려회(朝鮮物産奬勵會)를 창립하고 전국 각지방에 지회를 설치하여 전국적인 물산장려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1922년 11월에는 이상재(李商在)를 대표로 하고 조만식 등 47명이 조선민립대학기성회(朝鮮民立大學期成會)를 발기하였다. 그는 이 교육운동을 매우 중시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1923년 3월 29일에는 각계 대표 400명이 서울 종로 중앙청년회관에 모여 조선민립대학기성회 발기총회를 개최하고 전국적으로 1천만원의 기금을 모집하여 재단을 구성해서 민립종합대학을 설립하기로 결정했으며, 그는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27년 2월 자치론을 비판하고 절대독립을 추구하는 민족주의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독립운동의 민족협동전선으로서 신간회(新幹會)의 창립을 발기했으며, 신간회 평양지회장에 추대되어 활동하였다. 이해에 숭인중학교(崇仁中學校)의 교장에 취임했으나 일제의 압력으로 얼마 후에 사임하였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신간회 중앙간부들과 함께 서울역 앞에서 광주학생운동 진상보고 민중대회(民衆大會)를 개최하려다가 12월 13일 일제 경찰에 구속되었다. 1930년 평양에서 체력향상을 위하여 창립된 관서체육회(關西體育會) 회장에 선출되었다.

  1931년 7월 만주에서 만보산사건(萬寶山事件)이 일어나서 한국인 학살이 자행되자 동지들과 함께 재만동포옹호동맹(在滿同胞擁護同盟)을 중심으로 만주에 있는 동포들의 보호운동을 전개하였다. 1932년에는 조선일보(朝鮮日報)사장에 취임하여 경영난에 빠진 신문사를 수습하고 민족언론의 창달에 공헌하였다.

  1934년 5월 국사·국어를 중심으로 한 국학연구단체인 진단학회(震檀學會)가 창립되자, 그 찬조위원으로 가입하여 이를 지원하였다. 일제 강점기간에 상해 임시정부를 지지하여 여러차례 군자금을 모집하여 보냈으며, 국내에서는 기독교 계통의 민족주의 독립운동을 지도하였다.

  1943년 지원병(志願兵)제도가 실시되자 협조를 간청하러 온 일제의 조선군 사령관 판원(板垣)과의 면담을 거절하고 한국 청년들의 징병을 끝까지 반대하다가 일제 경찰에 일시 구속되었다. 곧 석방되었으나 산정현교회(山亭峴敎會)가 신사참배(神社參拜)거부로 폐쇄 당하자 고향으로 돌아가서 은거하다가 광복을 맞았다.

  1945년 8·15광복 후에는 평안남도 건국준비위원회(建國準備委員會)의 위원장과 평안남도 인민정치위원회의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45년 11월 조선민주당(朝鮮民主黨)을 창당하고 반공노선에 입각한 신탁통치(信託統治) 반대운동을 전개하다가, 소련군에 의해 평양 고려호텔에 연금, 1946년 1월에 행방불명되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70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책 핵심 읽기]
   역사는 결코 한 인물을 우상화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또한 훌륭한 평가를 받아야 할 인물이 역사 이면에 가려서 방치되어서도 안될것이다. 고당 조만식에 대한 책은 역사적인 사실과 증거자료들을 근거로 사실적이면서도 현장감 있는 필체로 정치인으로서, 기독교인으로서,경제인으로서,교육사상가로서,인간으로서의 고당 조만식 선생을 그리고 있다.


  공산당에 의해 짓밟히고 있는 불쌍한 동포들을 내버려 두고 혼자 남하할수 없었던 고당은 자기 백성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처럼 민족의 아픔을 짊어지고 죽음의 길을 자초했던 것이다. 고당 조만식 선생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그에 삶을 통해서 보여주는 민족사랑 정신과 목숨을 담보로 지킨 순결한 신앙 정신을 요즘에 지도자들뿐만이 아니라 가치관이 혼돈되어지고 미친 시대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방황하는 젊은세대 들에게 한번쯤은 읽혀져야 할 빛나는 기독교의 유산이라고 볼 수가 있다.

[생각하며 책읽기]
   고당 조만식 선생님은 물산장려운동을 주도하였다. 조선 사람은 조선 물건을 쓰자. 그렇게 해서 벌어진 운동입니다. 우리 물건을 쓰면 우리 산업이 살아나고 우리가 힘을 더 기를 수 있다는 이야기죠.그래서 이 세 가지를 지키자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1. 옷은 남자는 두루마기, 여자는 치마를 본목(本木, 조선 무명)으로 염색하고 음력 정월 1일을 기하여 입도록 독려한다.

2. 음식물은 사탕(砂糖) 식염 · 청량음료 · 과실을 제한 이외에는 순수한 토산을 사용한다.

3. 일용품에 대하여는 가급적 토산물을 사용하되 부득이한 경우에 한하여 외국제품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경제적 실용품으로 절약한다
.

  이 운동은 단순한 사상계몽이나 그 이념적 선도를 위한 국민강연이 아니고 실천력을 강조한 점에 결성의 최대 목표가 있다고 하겠다. 고당 조만식은 하나님이 보낸 민족 지도자이시다. 요즘 시대에 그분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을 해 보아야 할 것은 1945년 11월 3일 고당선생은 평양에서 조선 민주당을 창당하였다. 12월 28일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조선에 대한 5년 간의 신탁통치안이 결정되자 1946년 1월 2일 소련군정에 신탁통치 불찬성의 뜻을 통고하고 한편으로는 반탁 성명을 발표했다.

   동시에 소위 인민위원회 위원장직도 사퇴했다. 1946년 1월 6일 마침내 소련군장과 김일성 일파와의 최후 담판은 결렬되고 선생이 인민위원회 건물 현관을 나서자 이미 소련군에 의해서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에 실려 고려호텔로 연행되어 갔다. 그 후 공개적인 장소에서 선생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조만식 선생은 월남을 권하는 인사들에게 『나의 일신을 염려하지 마시오. 나는 북한의 일천만 동포와 운명을 같이하기로 이미 굳게 결심하였고』라며 오직 애국애족과 민주주의를 위하는 굳센 신념으로 끝내 권유를 거부한 민족수호의 정치가였다. 북한동포의 절대적인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분, 공산당원도 그 인격 앞에 겸손하게 절을 하였던 분, 월남동포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고당 조만식(古堂 曺晩植)선생, 오늘도 우리 민족의 가슴 가슴 마다에 살아 있으며 선생의 높은 유덕을 기리는 소리는 지금도 끊임이 없다.


 

  민족적으로 어려움에 처했을때 하나님의 사람들은 시대적인 역할을 다하였다. 오늘날 어려운 시기에 하나님이 보낸 민족적 지도자 고당 조만식 선생님의 일대기는 우리에게 무언가 깊은 고찰을 하게한다. 물산장려운동, 나라를 사랑하고 공신치하에 백성들을 버리지 않고 죽음에도 일사각오에 투철한 신앙관을 보여준 그에 모습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분들에 희생과 헌신이 있기에 편안한 삶을 살고있다는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이책이 출판된 동시에 기쁜 소식은 숭실대학교에서 대학 입학신입생들에게 이 도서를  구입하여서 책을 선물하여 읽게하였다는 소식에  내심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세대들이 어려운 나라를 위해 진정한 사명을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필요한 일군으로 살기 위해서 학문에 정진하여 우리민족의 진취적인 기상을 모든 분야에서 세워나가야 되리라고 여긴다.

 

  바라기는 이 책을 읽는 모든 분들이 이기주의적인 모습을 정리하고 당당한 그리스도인으로, 민족을 위한 지도자로서 값지게 삶을 살아가기 위한 참된 멘토 고당 조만식 선생님의 철학을 이어 받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일독할것을 권한다. 고당 조만식 선생님 같은 삶의 멘토들이 다시금 많이 태어나길 바라면서 즐거운 영적 독서를 생각하며 읽기를   바란다.


              [한국양서보급중앙회 북멘토클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