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멘토 리뷰]
실물경제의 큰손, 닫힌 시대의 개화를 촉진한 선각자 역관의 역사적 지위를 복권한다! 역관은 능통한 외국어실력과 탁월한 협상력으로 청일 간의 중개무역을 통해 거대한 부를 축적, 빈약한 조정의 재정을 확충하고 나아가 전체 조선 경제를 활성화시켰다. 그들은 실무외교관으로 국제무역상으로 첩보원으로 종횡무진 활약하며 막후의 실세로 군림하기도 했고, 신문물과 신학문을 조선사회에 소개하여 양반들을 개화하도록 이끌었으며 이러한 활동은 후에 애국계몽운동과 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이렇듯 역관은 조선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중인이라는 신분적 한계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고, 충분한 자료가 전해지지 않아 오늘날까지도 그들의 위상과 역할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저자 이덕일은 역관에게 정당한 역사적 지위를 찾아주고자, 조각조각 흩어져 있는 사료들을 발굴하여 재구성함으로써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간 한 집단의 다양한 역할과 의의를 입체적으로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역관은 통역할 역譯, 관리 관官, 요즘으로 치면 통역관이라 할 수 있고 의원, 산관算官, 율관官, 화원畵員 등과 같은 기술관으로 중인 신분이었다. 중인에 관한 사료가 충분하게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전문적인 내용을 담은 논문과 단편적인 조각글만 띄엄띄엄 나와 있는 상황이었다. 이덕일은 『조선왕조실록』『고려사』『승정원일기』와 같은 기본적인 관찬 사료부터 『통문관지』『부연일기』『열하일기』『성호사설』『연려실기술』등 역관이 언급되는 수많은 사료와 이 사료를 바탕으로 씌어진 논문 등을 꼼꼼하게 읽고 소화한 뒤 자신의 관점에서 새롭게 편집하고 해석하여 오랜 작업 끝에 이 책을 완성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역관의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고, 이미 알려진 역사적 사실들과 조합하여 새로운 표정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거대한 역사에서 작은 역사로, 이덕일 역사서의 새로운 경향,이덕일은 객관적 사료에 근거하되 행간의 의미를 찾고 전체 맥락에서 이를 새롭게 해석하여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형태의 역사서를 집필해왔다. 1999년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에서 우리 역사의 미스터리와 의문에 대한 도전적인 문제제기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음으로써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낸 그는 그 후로도 논쟁적인 주제로 새로운 역사해석의 선두에 있었다.
이제껏 대부분의 역사서는 주류인 왕실과 사대부들에 초점을 맞춘 왕조사와 양반사였다. 당대의 기록을 독점한 탓에 지배층에 대한 자료, 지배층의 시각에서 저술된 자료는 많았으므로 후대의 역사해석 역시 자료의 한계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이덕일은 다양한 사료들에 대한 비교분석과 행간을 읽는 추론의 방법을 통해 이러한 사료의 한계를 딛고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조선 왕 독살사건』에서 표면적인 역사 이면에 도사린 음모와 암투의 거대한 드라마를 추적해냈다.
그는 당쟁을 중심으로 한 정치사를 다루는 한편,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이덕일의 여인열전』 등의 작업을 통해 생존 당시 주목받지 못했던 불운한 천재들이나 역사 속에 안타깝게 잊혀버린 인물을 복원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조선 최대갑부 역관』은 정치사, 인물사 중심의 역사해석 작업에서 시대를 풍미한 한 계층 전체를 복원하려는 시도로 확장되는 이덕일 역사서의 새로운 경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다양한 계층, 다양한 시선, 다양한 분야에서 한 시대를 바라봄으로써 현재의 시각으로 왜곡되지 않은 당대의 역사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복원하려는 시도의 첫 결실인 것이다. 물론 역사해석 작업이란 객관적일 수 없고 특정한 관점을 수반하게 되지만, 한 시대를 가능한 한 세부적으로 다층적으로 규명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 시대의 진실에 더 가깝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과거의 역사는 후대에게 더욱 깊고 풍부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천의 얼굴을 가진 역관, 그들은 무슨 일을 했나?,역관은 뛰어난 외교관이었다. 외국어에 능통한 역관은 외교의 최전선에서 실무를 담당했다. 조선 초기에는 공식 외교관인 사은사의 신분으로 중국에 가 직접 외교업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이후에 점점 본연의 임무인 통역만을 담당하게 되었으나 명분만을 중시하던 무능한 사대부들을 대신하여 중국과 외교 담판을 벌인 끝에 중국 땅이 될 뻔한 우리 영토를 지켜낸 김지남 부자와 같은 역관들도 있었다.
역관은 국제무역상이자 조선 실물경제의 큰손이었다. 조선은 사대교린 외교정책과 실리추구의 무역을 동시에 추구했다. 특히 조선은 중국과 일본이 직접 통상무역을 하지 않을 때, 두 국가 사이에서 중개무역을 통하여 큰 이익을 보았다. 중개무역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사람들이 역관들이었다. 역관이 짧은 기간 동안에 치부할 수 있었던 것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국내외의 정세를 빨리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잦은 외교업무를 통해 일본에는 구리, 은 등의 1차 상품이 흔하고, 중국은 비단과 백사白絲 같은 공산품의 생산이 많고, 조선은 인삼이라는 특산품을 생산한다는 것을 잘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역관 자신이 큰 부를 얻기도 했지만 가장 크게 혜택을 본 것은 조정이었다. 역관이 중개무역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수익이 고스란히 조선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역관의 활발한 무역활동 덕분에 조선 경제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역관은 무기수입상이자 뛰어난 첩보원이었다. 화약은 조선군의 전투력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이 화약의 원료는 수출금지품목이고 화약 제조법은 극비인지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역관은 자신의 외국어 실력과 대외 정보력을 십분 활용하여 화약 원료를 구하거나 직접 화약을 제조하기도 했고 외국과 전쟁을 벌일 때는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를 최대한 동원해서 전쟁하는 데 도움이 되는 첩보를 제공함으로써 조선의 전투력을 높이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역관은 개화사상가이자 독립운동가였다. 세상의 변화를 직접 확인하고 가장 민감하고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역관. 그들은 뒤처지는 조선의 상황을 개탄하며 서양서적과 신문물이 담고 있는 서구사상과 과학지식을 통해 조선을 개화하려 애썼다. 또한 국제정세를 파악하면서 열강의 침략 속에서 조선을 보존하기 위해 온몸과 전 재산을 투척하여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책 핵심 읽기]
한중일 삼국 중개무역을 장악한 조선통역사 ‘역관’의 이모저모,박지원의 「허생전」에서 거지 행색의 허생에게 선뜻 만 냥을 꿔준 변씨는 역관 출신으로 조선 제일의 부자가 된 실존인물이었다.(18쪽),「허생전」에서 가난뱅이 허생에게 선뜻 만 냥을 빌려주었던 변 부자의 직업은 역관譯官이었다. 변 부자의 손자인 숙종 시대 역관 변승업은 지금으로 말하면 천 억 이상의 재물을 가진 부자였다. 그리고 부인이 죽었을 때 감히 왕가의 상제를 행하여 물의를 빚기도 했던 인물이다. 엄격한 신분사회인 조선시대에 중인이 양반처럼 선산을 구축한 것은 당시 변승업 집안의 위세를 능히 짐작케 한다. 또한 그의 9형제 중 6명이 역관이었다. 뿐만 아니라 역관 신분을 대대손손 이어가 280년간 106명의 역관을 배출했다. 역관을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기관은 사역원이었는데 이 곳은 역관의 추천을 받아 심사를 통과한 사람만이 입학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현직 역관들이 직접 이들을 심사했다. 이렇듯 천거받기도 어렵고 천거됐다 하더라도 누가 추천을 했느냐에 따라 합격에 상당한 영향이 있었으니 역관은 당연히 세습될 수밖에 없었다.
세계 최초의 중국어 학습서를 저술한 사람은 조선의 역관이다.(29쪽),역관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은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관이 공식 직제로 사료에 등장한 것은 고려 충렬왕 2년(1276)으로, 이때 통문관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당시에는 원이 집권하고 있었으므로 몽고어 역관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라가 몰락하면 그 언어도 쇠락하기 마련, 명이 원을 대체하면서 몽고어 역관도 몰락했다. 이후 조선이 점점 자리를 잡아가면서 주변국들과의 외교가 빈번해지고 교류하는 국가도 늘어났다. 그리하여 중국어, 몽고어, 만주어, 일어, 위구르어, 유구어 등 6개국 언어를 구사하는 역관을 양성했다. 이들 여러 언어들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기 위해 제작된 외국어 교재로는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중국어 학습서인 『노걸대』와 『박통사』가, 일본어 교재로는 『첩해신어』가 있었다. 이들 교재는 해당 외국어를 교육시키기 위한 필요에서 역관이 직접 집필했다.
역관들은 요즘으로 치면 ‘투잡스족’으로 외교관이자 국제무역상이었다.(18쪽),조선 초기에 역관은 통역과 실무만을 맡은 게 아니라 직접 사은사謝恩使라는 공식 외교관 신분으로 중국을 왕래할 정도로 고위직에 오르기도 했는데, 예종 이후로 사대부들의 견제가 심해지면서 점점 본연의 통역 임무만을 수행하게 되었다.
국제무역에서는 조선의 귀한 약재였던 인삼을 중국이나 일본에 판매하여 거액의 돈을 벌기도 했다. 또, 중국과는 다음과 같은 다채로운 무역활동을 펼쳤다.
·여마 무역-여마餘馬란 사행 도중에 말이 죽거나 병이 들까봐 예비로 데리고 다니는 말을 뜻하는데, 이 여마에 추가로 물품들을 싣고 가 물건을 사고판 무역.
· 회동관무역-조선 사신들의 공식 숙소였던 회동관에서 진행했던 무역.
· 단련사후시-단련사團練使란 사신 일행이 북경에서 돌아올 때 심양 근처까지 가서 일행을 맞아오던 관리를 뜻하며, 단련사후시란 단련사가 우두머리가 되어 일행 뒤로 떨어져 여러 날을 머무르면서 마음껏 물건을 매매하여 돌아오는 말에 싣고 오는 것.
· 연복 무역-귀국길에 책문 근처에서 행해지는 무역을 뜻하는데, 휴대화물을 복물卜物, 말에 실은 화물을 복태卜& #39364;, 화물을 맞이하는 것을 연복延卜이라고 부른 데서 연유함.(조청무역도)
그러나 무엇보다도 조선의 지정학적 위치에 기반한 중개무역을 통해 얻은 이익이 가장 컸다. 이 중개무역은 청나라의 해금海禁정책으로 중국이 일본과 직접 교역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이 중개무역에서 가장 큰 이익을 본 것은 조선의 역관이었다.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로 여겨지는 조공이 실제로는 조선의 잇속을 챙기는 국제무역이었다.(46쪽),중국에 바치던 조공은, 중국에서 한 해에 한 번만 오라고 했는데도 조선에서 억지로 우겨서 세 번이나 갔을 정도로 실제로는 조선이 몇 배나 이익을 보는 무역이었다. 조선의 기본 외교정책에 따라 중국에 대하여 사대를 하였지만 실질적인 내용에서는 조선 경제에 도움을 주는 무역행위였던 셈이다. 중국과 일본의 중간에 위치한 조선은 중개무역을 하기에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었고 역관은 이런 조선의 입지를 최대한 이용하여 자신도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을 뿐 아니라 조선경제까지도 크게 활성화시켰다. 정부는 명분만 앞세우는 사대부들의 등살에 견디지 못하고 역관의 이러한 무역행위를 수시로 금하였지만 이 무역행위로 왕실과 사대부도 큰 이익을 보았으므로 근절시키지는 못했다. 시장의 승리였다.
은행이 무역업체에 자금을 대출해주고 이익을 얻는 것처럼 조선 관아들은 앞 다투어 역관에게 대량의 은을 빌려줌으로써 재정 확충을 도모하였다.(110쪽),역관들이 조선 제일의 갑부가 될 수 있었던 요인 가운데 하나는 관아의 은을 사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역관은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하여 각 관아에서 필요로 하는 중국 물품이 있을 경우, 대금을 받아서 구입하여 관아에 가져다주고 몇 배의 이익을 얻었다. 그리고 역관의 신분을 빌미로 관아의 은을 빌려 쓸 수 있었다. 이는 관아에서 역관에게 은을 빌려주면 관아도 큰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역관은 외교 사행길에 소요되는 모든 경비도 자신이 부담했다. 역관 신분을 이용하여 거둔 막대한 부에 비하자면 외교경비쯤은 큰 부담이 되지 않았다.
명나라 홍등가에서 기녀를 구출해주고 뒤에 보답받은 이야기의 주인공은 <상도>의 임상옥이 아니라 역관 홍순언이었다.(72쪽),홍순언은 조선의 역관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겼던 역관으로, 역관으로는 드물게 당릉군(唐陵君)으로까지 봉해진 특이한 인물이었다. 그가 그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까닭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종계변무’ 즉, 명나라의 『대명회전』에 잘못 기록된 태조 이성계의 족보를 바로잡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조선에 군사를 보내주도록 한 것이다.
일개 역관이 대신들도 하지 못하는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었던 데는 재미난 이야기가 숨어 있다. 홍순언이 명나라에 갔을 때 하루는 홍등가에 갔다. 그는 그곳에서 억울한 사정으로 몸을 팔아야 했던 중국 여인을 큰돈을 주고 구해주었는데 그녀가 뒤에 명나라의 재상 석성의 부인이 되었다. 부인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난 석성이 크게 감동하여 홍순언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 성심껏 도와주었고, 종계변무와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조선에 도움을 줄 수 있게 된 것도 석성이 애썼기 때문에 가능했다. <상도>에서는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임상옥으로 표현되었지만 실제 주인공은 역관 홍순언이다. 이 내용은 『통문관지(通文館志)』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뛰어난 외국어 실력과 대외정보 수집능력으로 역관은 화약을 밀수입하거나 직접 제조하여 조선군의 전투력 향상에 기여하기도 했다. 역관 오경석은 병인양요 때 뛰어난 첩보활동으로 프랑스의 막강한 함대에 맞선 조선을 승리로 이끌었다.(146쪽, 198쪽),역관들은 때로 상대국의 정보를 빼오거나 반출 금지된 무기나 원료를 구입해오는 첩보원 역할도 했다. 이를테면 조선 후기 가장 민감한 교역품이었던 화약의 원료인 염초와 유황의 경우, 구입이나 제조 비법 취득이 매우 중대한 일이어서 절대적인 비밀엄수가 요구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역관의 임무가 되었다. 역관 표헌, 김지남 등의 노력으로 조선은 자체적으로 화약을 만들고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군의 전투력을 대폭 높였다. 역관 김지남은 그의 부친과 함께 뛰어난 외교술을 발휘하여 청의 땅이 될 뻔했던 백두산에 정계비를 세우는 쾌거를 달성하기도 했다. 또한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동양함대를 앞세워 조선을 침략했을 때, 역관 오경석은 평소 자신이 알던 중국인 관리들을 동원, 프랑스군의 정보를 빼내어, 이 정보를 조선군에 전달함으로써 조선이 막강한 프랑스 함대를 대패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대대로 유명한 역관을 배출한 집안의 서녀庶女 장희빈은 서인정권을 무너뜨리고 남인들의 재집권한 기사환국의 주역이었으며, 장씨 집안은 남인정권과의 ‘정경유착’으로 큰 권세를 누렸다.(180쪽),조선 후기의 역관 명가인 세 가문이 있다. 밀양 변씨, 우봉 김씨, 인동 장씨가 그들이다. 이중에서도 인동 장씨는 역관의 틀을 뛰어넘어 한때 정치 명가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장희빈은 숙종 당시 거부였던 역관 장현의 종질녀로서 천인으로 인생을 보내느니 남다른 자색으로 인생역전을 꿈꾸고 궁녀 입궁을 자처하였다. 그녀가 서인정권을 무너뜨리고 남인정권을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 자신의 뛰어난 전략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녀의 배경이었던 인동 장씨 가문, 즉 역관 명가가 정치권력을 획득하고자 그녀를 지원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역관은 천주교 서적과 새로운 서양선진문물을 조선에 들여옴으로써 개화사상의 주역이 되었고, 이는 한말애국운동으로 이어졌다. 역관은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앞선 시대감각으로 조선사회의 변화를 촉진하였다.(200쪽),교통이 발달되지 않았고 국제여행이 힘들었던 이 시대에 역관은 변화하는 세계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천주교서적과 많은 신문물들이 역관을 통해서 조선에 전해졌다. 역관들은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선구자 역할을 하며 조선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을 누구보다 먼저 깨우쳤다. 이들은 신분철폐운동, 개화사상을 싹 틔웠고 급변하는 조선 후기에 새로운 세계를 향해 눈을 떠가는 핵심 세력으로 떠올랐다. 조선 개화사상의 세 주창자는 양반 출신의 박규수와 중인 출신인 오경석, 유홍기였다. 이들 가운데서도 역관 오경석은 박지원의 조부 박제가와 추사 김정희의 제자였던 역관 이상적을 스승으로 모시면서 일찍이 깨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오경석은 중국에 자주 드나들면서 양무운동을 했던 중국인들과 교제하면서 조선의 앞길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고민했다.
[생각하며 책읽기]
오경석은 청나라의 당면 위기가 조선에도 미구에 닥칠 문제임을 직시하고 미리 그 대응책을 세워놓지 않으면 큰 위기에 처하리라고 예상했다. 그는 시대에 뒤떨어진 성리학에 젖어 있는 조선의 지배층을 일깨우기 위해 스스로 변화한 세계상을 담고 있는 서적들을 읽고 새로운 이론을 습득하는 한편 이를 조선으로 반입해 양반 사대부들에게 읽히려고 했다. 이런 과정에서 조선의 개화파가 탄생할 수 있었다. 그는 『해국도지海國圖志』『영환지략瀛環志略』『박물신편博物新編』등의 지리서, 서양과학서 등과 태평천국운동에 관한 서적, 유럽여행기 등 많은 서적을 들여옴으로써 조선의 개화에 앞장섰다. 또한 일제 치하 역관 가문 출신들은 자신이 축적한 거대한 부를 자본으로 독립협회에 참여했고, 3·1운동에도 주도적으로 개입하였으며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영향력 있는 직책을 맡기도 했다.
[한국양서보급중앙회 북멘토&북코치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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