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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자서전 출판

북코치 2007. 7. 20. 13:52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최초의 자서전 출간!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최초의 자서전『박근혜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가 출간되었다(위즈덤하우스 刊).

이 책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성 지도자이자 희망의 리더로 불리는 박근혜 전 대표의 인생의 발자취를 담고 있다. 남다른 어린시절부터 젊은 나이에 양친을 잃고 홀로서기에 성공하기까지, 올곧이 자신의 길을 걸어온 그만의 굳센 신념과 희망에 대한 힘찬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첫 자서전을 쓰고 다듬으면서, 책 한 권을 쓰는 것이 한 번의 삶을 사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만큼 이 책에는 ‘인간 박근혜’가 걸어온 삶의 궤적과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진솔하게 들어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박근혜 전 대표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진지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어린시절부터 짧았던 유학시절의 추억, 갑자기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대신한 퍼스트레이디 시절의 경험, 아버지마저 잃고 청와대를 떠나 사회사업을 하며 보낸 18년에 대한 술회, 정치 입문 계기와 정치인 박근혜로서의 삶, 신촌 피습 사건 후 얻은 두 번째 인생에 대한 각오, 전 세계 지도자들을 만나며 벌인 외교 활약상 등을 들려준다. 아울러 어린시절 모습과 가족사진, 유학시절 모습 등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사진 120여 컷을 통해, 성장 과정부터 현재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그의 지난 삶을 한 편의 영화를 보듯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희망을 선택했다”

사람들에게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대통령의 딸이자, 우리나라의 퍼스트레이디, 제 1야당의 대표를 거쳐 현재는 유력한 대선 후보의 모습 등으로 알려져 있다. 모두가 선망하는 자리를 누려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절망의 끝을 경험하며 다시 세상으로 나오기까지 고난의 계단을 수차례 오르며 스스로를 단련시킨 사실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박근혜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 그는 자신에게 닥친 여러 위기와 고난을 이겨내며 더 큰 단계로 오를 수 있었던 힘과 그 순간순간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진지하고 편안한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다.

그는 짧지 않은 삶을 살며 겪은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사건과 절망의 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삶이 그만의 삶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앞으로 그에게 다가오는 어떤 운명의 순간과 선택에도 당당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인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일’을 선택했기 때문에 어떤 길이라도 당당히 극복하며 나갈 것임을 밝히고 있다.


마당 넓은 집에서 자란 아이

신당동 골목은 그의 첫 놀이터이자 추억의 장소이다. 그 골목을 누비며 놀던 개구쟁이 시절은 짧지만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의 어린시절은 남다르다. 열두 살부터 청와대에서 지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스스로를 엄격하게 다스리며 자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어머니 육영수 여사는 항상 남을 먼저 배려하고 생각하는 겸손의 자세를 일깨워주신 분이었으며, 나라 살림부터 가족 건강까지 무엇 하나 소홀하지 않으셨던 인생의 멘토였다. 아버지는 그에게 정치 감각을 길러주신 스승과 같다.

그의 전공은 전자공학이다. 전자공학이 생경한 학문이던 시절에 나라 경제 발전에 보탬이 되는 일꾼이 되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전공을 선택했고, 늦은 밤까지 도서관에 살며 그 흔한 미팅 한 번 못해본 공대생으로 지냈다. 남들처럼 캠퍼스의 자유로움을 누리기에는 조심스런 위치에 있었던 그에게도 아련한 봄날의 추억이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밝히고 있다.


스물두 살의 퍼스트레이디

 어머니를 총탄에 잃고 스물두 살에 어린 퍼스트레이디가 되었지만, 자신의 슬픔을 뒤로 한 채 가족과 국민을 돌보며 아픔을 이겨냈다. 학자가 되겠다던 꿈을 과감히 접고 어머니의 빈자리를 대신해 봉사활동부터 외교 정상 회담까지 나라 안팎을 챙기고, 국정운영 감각을 익혀가며 당당하게 퍼스트레이디 임무를 수행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마저 ‘맏딸인 근혜가 없으면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라며 믿고 의지했을 정도로 나라 살림 전반에 혼신을 다했다. 그가 의연하게 나라 살림에 힘쓸 수 있었던 것은 어린시절부터 부모님의 국정운영을 곁에서 지켜본 경험이 든든한 밑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퍼스트레이디를 맡으며 봉사활동부터 새마음운동사업 전개까지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해냈다. 특히 의료사업에 관심을 쏟아 우리나라 의료보험의 기틀을 세웠다. 그리고 자신의 전공인 전자공학의 지식을 바탕으로 아버지를 설득해 전자산업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해 우리나라 전자산업 발전에 영향을 끼쳤다.

그의 퍼스트레이디 시절의 왕성한 활동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국경 너머에도 있다. 나라를 대표하겠다는 신념과 영어를 비롯해 불어, 스페인어(현재는 중국어까지)를 구사할 수 있는 외국어 능력을 바탕으로 외국 국빈들과의 회담 및 국제적인 교류 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특히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던 카터 전 미 대통령을 설득해 주한미군 철수계획을 포기시킨 일화는 지금까지 외교가에 ‘근혜-카터 회담’이라 불리며 회자되고 있다. 이 시절 맺은 리콴유 전 싱가포르 수상,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 등 외국 정상과 해외 인사들과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 그의 외교활동에 큰 힘이 되고 있다.

그의 퍼스트레이디 시절은 대통령 곁에서 국가운영의 전반을 지켜보고 함께 동참하며 국정운영과 외교력을 키운 중요한 수련기였다.


거센 바람은 뿌리 깊은 나무를 만든다

나라 살림에 자신감이 생기며 적극적으로 활동하던 1979년 10월 26일,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마저 세상을 떠났다. 스물일곱에 그는 양친을 잃고 두 동생을 돌봐야 할 가장이 되어 청와대를 떠나 신당동 옛집으로 돌아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사후 평가는 그와 형제들에게 부모를 잃은 아픔 이상의 상처를 남겼다. 부모님에 대한 거친 오해와 비판은 계속되었고, 친했던 사람들마저 등을 돌리는 차가운 현실에 맞서야 했다. 운신의 폭이 좁아진 그 시간을 동서양 고전을 탐독하고 스스로를 단련시켜 가며 이겨냈다.

부모님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바라던 그의 오랜 노력은 마침내 공식적인 추모 행사를 시작으로 한 추모사업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유지를 이어받은 장학사업을 계속하며 사회사업에 매진했다.

그와 그의 가족에게 쏟아지는 여론의 비난을 곁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에게 대한민국 땅을 떠나 살 것을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15년을 지낸 청와대 생활은 그를 뼛속까지 애국자로 만들었고, 그는 세상 그 어느 곳보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 대한민국에 자신의 인생과 뼈를 묻고 싶다는 의지를 굳히며 오늘의 삶을 만들어냈다.


대한민국을 위해 다시 일어서다

일상인 박근혜로서 지내며 오랜만에 삶의 여유와 평화를 맛보던 중 나라가 IMF로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는 나라를 위해 남은 생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정치에 입문했다.

1998년 ‘달성대첩’이라 불린 4.2 재보궐 선거에 승리하며 15대 국회의원직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정치개혁과 정당개혁을 몸소 실천하는 소신의 정치를 펼친 결과 한나라당 당대표를 맡게 되었고 현재 17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당의 존립을 논할 만큼 위태로웠던 한나라당 당대표를 맡으며 천막당사에서 다시 태어난 한나라당을 만들어냈다. 당대표 임기 중 네 번의 재보궐 선거를 압승으로 이끈 지도력을 발휘하며 정책 정당, 원내 정당, 디지털 정당이란 목표를 하나씩 이루어냈다. 2년 3개월 동안 제 1야당을 탄탄하게 이끌며 우리나라 정당사에서 최초로 당대표 임기를 완수한 영광의 주역이기도 하다.

그의 활약은 국경을 넘어서도 펼쳐지고 있다. 그는 한 나라 안에서만 머무는 대표가 아닌 국가를 대표하는 얼굴로 세계무대에 서고 있다. 각국에 있는 우리 교포들의 작은 민생부터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한 외국인들까지 챙기며 대한민국을 위한 일에 앞장서서 뛰고 있다.

퍼스트레이디 시절부터 쌓은 외교력과 ‘신뢰’와 ‘국익 우선’이란 엄격한 외교 원칙 아래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북한 등의 국가정상과 외교 인사들을 만나 우리나라의 외교 현안과 경제협력 등 상호 발전을 이끌어내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2006년 5월 20일은 그가 다시 태어난 날이다. 지방선거 유세 중 신촌에서 피습을 당했고, 기적적으로 두 번째 삶을 얻었다. 그는 두 번째 삶은 국민이 준 것이기에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살겠다는 초심을 더 굳건하게 다지고 있다.

 

박근혜, 도전의 증거가 되다

우리는 최상의 자리에서 내려와 새로운 인생을 일구며 다시 일어선 박근혜 전 대표를 통해 도전의 증거를 보게 된다.

대통령의 딸이란 자리에서 그는 누린 것보다 인내하고 감당해야 할 것이 더 많았다. 세상의 시선에 의연해야 했고 어려운 일이 닥칠수록 더 강해져야 했다. 양친을 일찍 잃은 슬픔은 쉽게 이겨낼 수 없는 아픔이었지만, 스스로를 단련시키며 사회사업가에서 정치인으로 끊임없이 거듭나는 자신을 만들어냈다.   

  무수한 인생의 굴곡을 넘어 제 1야당 대표에서 대선 후보로 우뚝 서기까지, 그의 삶은 도전의 증거이자 희망이다. 자신의 원칙과 신념을 바탕으로 세상의 희망을 향해 달리는 그를 통해, 우리는 누구나 새로운 희망의 길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 위즈덤하우스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욺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