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멘토링연구원

셀교회의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관계

북코치 2009. 3. 15. 17:11

제 11 장
셀교회의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관계 The Relationship between Quantitative and Qualitative Growth the Cell Church

내용 목차

들어가는 글

I. 교회성장의 질적 측면
II. 교회의 질적 성장의 임상적 증거들
III. 질적 측면과 양적 측면의 상반성
IV. 질적 측면과 양적 측면의 상호의존성
V. 셀 교회에서의 질적 측면과 양적 측면의 조화

나오는 글


들어가는 글

교회는 성장해야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단순한 조직이나 기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체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자라며, 자라지 않는 것은 죽은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으로서 언제든지 그 생명의 열매들을 통하여 또 다른 열매들을 맺는 생명의 연속성을 지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지난 반 세기동안 교회성장에 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으며 수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교회성장을 위해 헌신해 왔다. 어쩌면 이러한 노력과 헌신은 당연한 것이며 반드시 오늘날 우리가 보고있는 교회성장 그 이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풀러 신학교의 Macgavran 교수가 1955년부터 기초를 놓음으로써 시작된 교회 성장학의 주된 관심은 지난 40여 년간 교회의 양적 성장에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양적 성장에의 관심은 교회의 질적 성장의 문제를 강조하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비판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양적 성장을 이룰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실용주의적 접근은 성서적, 신학적 뒷받침을 결여할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님으로써 오히려 또 다른 문제점들을 야기시킨다는 점에서 신중히 고려되어야 마땅한 일이다. 한국의 경우 지난 세기 말에 유행처럼 번졌던 "총동원 주일" 이라는 이벤트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 그 이벤트를 치루는 방법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인위적이고도 웃지 못할 일들이 발생했으며 또 그 결과는 과연 무엇이었던가? 평소에 모이던 숫자에 비하여 어느 한 주일에 두 배, 세 배, 심지어 다섯 배까지 사람들이 모였다한들 그 결과가 일과성으로 끝나버린 수많은 경우들을 보면서 그러한 이벤트가 교회의 질적 성장은 물론이고 양적 상장 그 자체에도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는가를 되돌아 볼 때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또한 한국에서도 그 관심이 봇물 터지듯 지대해지고 있는 셀 교회 운동의 경우도 이러한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의 상충성에 관한 심각한 검토와 연구가 이루어져야 마땅하다고 믿어진다. 이미 대부분의 목회자들과 교회지도자들은 교회성장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양적 성장이라는 방향으로 그 관심이 쏠려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신중하고도 사려 깊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경우 셀 교회에 쏟아지는 관심은 당연히 숫자적 증가에 도움이 되는 또 다른 "영적 성장의 한 방법"이라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할 것이라는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본 연구자는 이미 그러한 각도에서 셀 교회를 접근해오는 수많은 목회자들을 만나오고 있다. 셀 교회 모델의 진정한 의도와 정신은 사실상 질적 성장을 전제로 양적 성장을 바라본다는 면에서 이러한 우려되는 가능성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어진다. 따라서 본 논문은 교회 성장의 양적 측면과 질적 측면의 관계를 규명하고 그것이 셀 교회의 경우 어떠한 관계성을 지니면서 조화를 이루는지를 연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질적 성장과 양적 성장의 상반관계와 상호연관관계를 살핀 후 조화로운 관계를 연구하되 셀 교회 모델의 경우 이 양자간의 바람직한 관계가 어떠한 모습으로 구조 속에 나타날 수 있는지를 연구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셀 교회의 구조와 기능이라는 측면에서 그 본질이 어떻게 이 양자의 성장을 촉진하게 되는지를 밝히게 될 것이다.

I. 교회성장의 질적 측면

교회의 질적 성장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그리고 그러한 질적 성장은 무엇으로 측정할 수 있으며 평가할 수 있는가? 오늘날에 이르러 교회의 질적 성장은 종종 "건강한 교회 성장(healthy church growth)," 또는 "자연스러운 교회성장"(natural church growth)이라 불려진다. 아마도 이러한 최근의 용어들이 시사하는 바는 인위적이고도 비정상적인 숫적 증가 위주의 교회성장에 대한 대안으로서 질적 성장을 강조하는 표현들이라 믿어진다. 이러한 각도에 비추어 볼 때 교회의 질적 성장이란 건강한 교회로 성장함을 의미하며 교회의 본질을 구현하는 교회를 의미한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의 본질 구현이라는 과업은 양 차원을 지닌다. 첫째는 교회의 질적 성장을 가늠하는 기준으로서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의 본질에 관한 이해이며, 둘째는 이러한 이해에 바탕을 둔 교회의 질적 성장은 전적으로 그 교회를 구성하는 구성원 개개인의 영적 성장과 직결되며 그리스도인의 제자도를 이루는 삶과 직결되므로 여기에 철저한 교육과 제자훈련의 과정들이 전제를 이룬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공동체가 지니는 다양한 측면에서의 균형 잡힌 성장과 기능 수행은 개개 교인들의 영적 성장의 응집의 결과로 나타난다는 면에서 볼 때 개개 교인들의 제자도는 교회의 질적 성장의 기초라 할 수 있다.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그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로서 온전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여부에 의해 그 건전성이나 건강성을 드러낸다할 수 있을 것이다.

1. 교회의 본질 구현으로서의 교회성장

교회의 질적 성장이란 교회의 본질에 부합되는 정도에 좌우된다. 즉 성서가 말하는 교회의 본질이 실제로 어느 정도로 구현되었는지가 교회의 질적 성장 정도를 나타내 준다는 말이다. 따라서 교회의 본질에 관한 성서의 언급과 그 언급들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론에 관한 신학적 이해가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된다.

성경은 교회의 본질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교회를 일컬어 "하나님의 비밀" 또는 "그리스도의 비밀"이라고 말하고 있으며(엡 3:4,5) 그러한 교회는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의중에 계획하셨던 바라고 말씀하신다(엡 3:9). 그러면 교회가 무엇이기에 하나님께서 창세로부터 마음에 품으셨다는 말인가? 교회가 무엇이기에 하나님의 비밀이란 말인가?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본질에 관한 성경의 표현들과 함께 그 신학적 의미들을 살펴볼 필요를 느낀다.

1) 하나님의 선택된 공동체로서의 교회본질

Alvin J. Lindgren은 그의 책에서 교회의 본질을 "하나님의 선택된 공동체"로 제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교회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인간이 고안해낸 조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도권적으로 계획하신 것이며 하나님 쪽에서의 선택적 행위로 만드신 것이다. 그런가하면 교회는 그 본질이 공동체이다. 공동체란 단순한 사람들의 연합체가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로서 태어나고 자라나는 속성을 지닌다. 공동체란 구성원들이 삶을 위하여 상호 의존관계를 맺는 집단으로 규정될 수 있다. 교회가 공동체라는 말은 교회의 구성원들 상호간에 자신들의 영적 생활을 위해 결정적인 의존관계를 맺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교회는 구성원 서로가 하나의 영적 생명체를 이룸과 동시에 서로의 존재가 곧 서로의 영적 성장과 발전을 위해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개인은 공동체를 떠나서는 생존할 수 없다. 공동체에 붙어있을 때 그 개인과 공동체는 함께 생명력을 유지하며 성장과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교회의 공동체적 본질은 구성원 상호간의 영적인 유기적 관계를 잘 나타내 준다. 그리고 이러한 유기적 관계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한 말 속에 매우 적절히 나타나고 있다.

2)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본질

교회의 또 다른 본질에 관한 표현은 유기체(organism)로서의 교회이다. 교회의 본질이 유기체라는 말은 곧 교회가 생명체라는 말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살아있는 실체(living reality)이며 그 몸은 마치 육체가 성장하듯 탄생으로부터 시작하여 계속적으로 성장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모든 교회는 유기체로서 성장하며 존재하는데 문제는 그 유기체의 건강함에 따라 그 기능수행이나 사명수행의 정도가 달려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사회적으로 존경받지 못하고 오히려 비난과 지탄의 대상이 되는 현상은 그것이 유기체로서의 건강함을 상실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Schwartz는 「자연적 교회성장」에서 교회성장에 관하여 원리중심 접근 방식을 취하면서 교회의 균형잡힌 성장을 위한 필수적 요소로 생명체 원리를 말하고 있는데 그는 이 생명체 원리를 다음과 같이 6가지로 제시한다.:
(1) 상호 의존--"교회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상호 연관된 많은 부분을 가진 복잡한 유 기체이다."
(2) 번식--유기체는 끊임없이 자라는 것이 아니라 재생산-자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성 장" 형태-하는 것이다.
(3) 에너지 전환--생명체가 생명 존속을 위해 에너지 전환을 시도하는데 이는 현존하는 힘과 에너지를 미세한 조절을 통해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다.
(4) 다목적--자연에서는 쓸모 없는 것이 없다. 나무로부터 떨어진 낙엽도 비료로 바뀌어 그 나무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자양분을 공급해준다.
(5) 공생--두 개의 서로 다른 유기체가 서로 유익을 주고 받으며 밀접하게 함께 사는 것 이다.
(6) 기능--하나님의 창조 세계 내에 있는 모든 생명들은 원래부터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각각의 종류나 종족을 보존하기 위함이다

교회가 진정으로 생명체로서 이러한 생명체 원리들이 작용하는 장(場)이라면 교회의 본질이 구현될 것이며 그러한 상황은 필연적으로 교회의 생명력을 발휘함으로써 질적 성장을 가져 올 것이다. 교회본질이 구현되는 정도는 이와 같은 생명체 원리들이 구체적으로 작용하며 실현되어지는 정도에 달려있는 것이다.

한편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심을 의미하며 몸의 각 지체가 서로 유기적 의존관계를 맺고 있음을 의미한다. 첫째, 그리스도께서 머리되신다는 말은 교회는 모든 상황과 경우에 그리스도의 명령을 받으며 그분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는 관계를 지녔다는 말이다. 머리의 명령을 즉각 순종하지 않거나 거부하는 지체를 지닌 몸을 일컬어 지체부자유자 또는 장애인이라 일컫는데 교회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분별하지 못하고 또 분별했다 할지라도 그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결코 건강하지도 못하며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도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모든 교회는 반드시 건강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 즉 교회 본질이 반드시 구현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이유로 Lidgrern이 교회의 사명을 그리스도의 구속적 몸(redemptive body of Christ)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이해된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 속에는 교회 구성원 상호간의 상호의존적 관계성을 강하게 내포한다. 마치 우리의 몸의 각 지체가 몸에 붙어있어 몸을 중심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결정적으로 필요한 존재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듯이 교인들이 교회에서 각자가 개체로서 서로에게 결정적 역할을 감당하는 의미를 가진다. 몸에는 불필요한 지체가 하나도 없다. 그리고 그러한 각 지체들이 서로의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전체로서의 몸이 하나의 유기체로서 존재하며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게 된다. 몸의 어떠한 지체도 그 자체가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못하며 각자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함으로써 공동의 건강을 유지하며 한 몸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한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본질 구현은 사회 속에서 교회의 역할과 위치를 확고하게 하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3) 코이노니아로서의 교회본질

교회는 하나님이 함께 거하시는 장소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장소란 영적 공간을 말하며 하나님의 임존이 이루어지는 영적 실체를 뜻한다. 하나님께서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장소로서의 교회는 그 현현이 이루어지는 장소로서의 코이노니아인 것이다. 교회는 언제든지 그리스도의 임재와 현현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지는 장소이어야 한다. 이것은 본질에 관한 문제이며 교회의 존재 이유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일 1:3). 여기서 말하는 사귐이 곧 코이노니아인데 이 코이노니아는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사귀는 곳에서 발생함을 보여준다.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함이니"라는 말씀은 교인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물리적 공간에서 삶을 함께 나누며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고 말씀하심으로써 교회 공동체 속에 나타나실 자신의 현현을 예고하셨다. 진정한 코이노니아가 발생하는 곳에 주님 자신이 나타나심으로써 세상 속에 자신을 증거하시는 주님의 계획을 우리가 믿을진대 교회는 반드시 교회 본질로서의 코이노니아를 실현해야만 한다.

4)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교회

교회본질과 관계된 또 다른 성경의 중요한 표현은 "하나님의 가족"이다(엡 2:19; 딤전 3:15). "하나님의 권속"으로도 번역된 이 표현은 영어로는 "family of God," "household of God"으로 번역되어있는데 이러한 표현들은 교회가 영적 가족으로서의 본질적 실체임을 나타내 준다.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족관계만큼 가깝고 친밀한 관계는 없다. 교회가 가족이라는 말은 구성원들이 영적 혈연관계를 가진다는 말이며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교회 본질은 단순한 사람들의 사랑의 모임이 아니라 함께 삶을 나누며 함께 삶의 의존관계를 통하여 서로 세워주며 서로의 성장을 위해 서로 서로 기여하는 상호절대의존성을 지닌다.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라는 말은 비유법이 아니라 직설적인 선언이다. 직설법은 그 내용이 실체라는 말이며 비유법은 실체는 그것이 아니지만 그 본질적 성격이나 내용이 유사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 직설법으로 표현된 것과 비유법으로 표현된 것은 본질적으로 180도 다른 것이다. 직설법은 그 자체가 실체라는 말이며 비유법은 실체가 아니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교회를 "하나님의 집과 같은 것"이라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이다"라고 한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본질은 영적 가족으로서의 실체이며 이러한 영적 혈연관계는 육신의 가족관계 이상의 중요성을 지닌다. 즉 교인들은 모두가 가족관계로 맺어져 있으며 이러한 관계는 인종과 년령과 성별 등을 모두 초월한 신성한 가족관계를 맺고있다는 말이다.

사도 바울은 교회의 본질을 이야기하면서 교회를 "하나님의 비밀," "그리스도의 비밀," "은혜의 경륜" 등으로 부르고 있다. 여기에서 경륜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 oikonomia인데 이 단어는 집이라는 의미의 oikos와 경영 또는 운영하다는 뜻의 nomia(원형은 nmeo)라는 단어가 합성된 용어이다. 따라서 이 단어의 어원학적 의미는 "집을 경영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에배소서에서 하나님의 집인 교회가 운영되는 방식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비밀이 전하지는 하나님의 계획과 비밀을 깨달은 바울의 흥분을 보게 된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으로서의 본질을 지닌다. 이러한 표현 속에서 우리는 가족으로서의 교회 구성원들간의 독특한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가족관계의 독특성으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손꼽을 수 있다. 첫째, 구성원들 사이가 혈연관계로 맺어져 있다. 둘째, 가족간의 관계는 지속적(영원한) 관계이다. 서로의 관계의 친밀성 여부에 따라 가족이 되었다가 다시 그 관계가 없어지는 한시적인 관계가 아니라 영원한 하늘나라에까지 연장되는 영원한 관계이다. 셋째, 진정한 가족관계는 가족 상호간에 책임지는 사랑(accountability)의 관계이다. 부모가 자녀를, 자녀가 부모를, 그리고 형제가 형제를 책임지는 관계이다. 이러한 책임성은 모든 삶의 영역에 걸치며 따라서 가족은 운명공동체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족으로서의 교회는 구성원 상호간에 자기 희생적 관계를 가진다. 이러한 영적 가족관계는 결국 그 본질이 영적 사랑공동체라는 뜻이며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들간의 사랑이 통용되는 곳이라는 말이다.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시던 마가의 다락방에서 자신이 떠난 후 제자들이 사랑공동체를 이룰 것을 당부하시는 자리에서 "새 계명"을 당부하셨다(요 13:34,35). 으 새 계명의 핵심은 서로 사랑하되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의 수준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이제 불과 몇 시간 후면 체포를 당하시고 제자들의 곁을 떠나게 될 긴박한 상황 속에서 주님은 뒤에 남을 제자들이 사랑공동체를 이룸으로써 자신의 현존이 계속 지상에 이루어질 것을 계획하셨던 것이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는 말씀을 통하여 사랑공동체로서의 교회본질 구현이 복음전도와 하나님 나라 확장의 결정적 전략이라는 사실을 천명하셨다. 그렇게 때문에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교회는 육체적 가족관계 이상의 사랑과 헌신으로 그 가족 됨을 실현하는 일을 필연적인 과제로 안고 있다. 교회의 질적 성장이란 결과적으로 이러한 본질의 구체적 실현을 의미하며 이러한 본질 구현은 교회의 사명이기도 하다.

디모데전서 3장 15절은 교회의 본질과 관계되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교회 본질구현과 관계된 매우 중요한 사실들을 생각하게 된다. 교회 곧 하나님의 집을 일컬어 "진리의 기둥과 터"라는 표현 속에서 우리는 교회가 진리를 떠받치는 기둥이며 진리를 세우는 기초라는 사실을 보게 된다. 건물에서 기초와 기둥이 부실하면 그 건물은 무너져 내리고 만다. 따라서 더 이상 세상사람들이 그 건물을 볼 수 없게 된다. 건물이 우뚝 세워져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으려면 튼튼하게 지어져야 하는데 이러한 튼튼한 건물에 있어서 기초와 기둥은 결정적 요건인 것이다. 아무리 외관이 미려하고 찬란하여도 기초와 기둥이 허술하면 건물 그 자체가 세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진리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따라서 교회라는 기초와 기둥이 튼튼해야만 진리가 세워지며 세상 사람들에게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제시될 수 있는 것이다. 교회는 반드시 그 본질이 구현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며 교회다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의 질적 성장은 이와 같이 교회 본질 구현과 밀접히 연관되어있기 때문에 결코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소홀히 여기거나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닌 것이다.


5) 교회성장의 본질적 기초로서의 제자도

교회는 공동체로서의 본질과 동시에 그 공동체를 이루는 개개 구성원에 대한 주님의 부르심이라는 본질적 측면을 가진다. 개개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의 제자도에로의 부르심은 일차적으로 개별적인 것이다. 집단 개종 같은 형태가 아니라 개별적인 만남을 통해 제자도의 삶으로 부르셨다는 면에서 개인적인 제자도(personal discipleship)가 교회의 기초가 된다. 공동체란 개개인의 영적 성정과 발전의 응집이라는 차원에서 교회의 질적 성장을 위해 개인적인 제자도는 근본 요소일 수 밖에 없다.

교회는 모든 교인들을 기초로부터 철저히 가르치고 양육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들이 되도록 해야한다. 주님의 지상명령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대로 개개 그리스도인을 충성스러운 제자로 성장시키는 일이 교회 본질 구현에 결정적이다. 그리스도께로 향한 헌신과 사랑을 시작으로 하여 그분을 아는 지식과 사랑에서 자라가는 일이 계속될 때만 공동체로서의 전체 교회가 온전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룰 수 있게 된다는 면에서 교회는 끊임없이 교인들을 가르치고 훈련하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

교회공동체가 온전한 공동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구성원 각자의 주님께 대한 허신과 사랑, 곧 제자로서의 온전한 충성과 헌신을 절대적으로 요청한다. 이것이 안 될 경우 공동체는 구성원들에 의해 어려움을 겪게되며 심할 경우 결과적으로 그 공동체가 와해되는 일까지 발생할 수 있게 된다. 이 점에 관하여 Heinrich Arnold는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우리가 교회 공동체 안에 살고자 한다면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렇 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지고 있더라도 교회 내부 생활 안에서 기생충과 같은 존 재가 될 것입니다. 남보다 더 많이 일하고, 남보다 더 많은 수입을 남긴다하더라도 그 와 같은 노고는 나머지 공동체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만 될 뿐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 람에게 열린 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완전한 제자생활의 도전을 받아들 여 함께 머물고자 하난 사람들을 기대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공동체는 산산조각 이 날 것입니다.

 

II. 교회의 질적 성장의 임상적 증거들


우리는 앞에서 교회의 질적 성장의 기준으로서 신학적으로 교회 본질을 검토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질적 성장의 현상적 증거들을 연구하기 위하여 방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한 독일의 Schwartz가 제시한 자연적 교회성장 연구 프로잭트의 결과가 건강한 교회를 위한 질적 특성으로 다음과 같이 8가지로 제시된 바 있다:

1. 사역자를 세우는 지도력: 성장하는 교회의 지도자는 사역을 위해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게 기회와 권한을 부여하는 일에 중점을 둔다
2. 은사 중심적 사역: 교인들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발견하도록 돕고 자신에게 맞는 은사를 따라 사역할 수 있도록 조정해준다
3. 열정적 영성: 교인들이 열정적으로 불붙어 있으며 기쁨과 열정으로 헌신하며 믿음으로 살아간다.
4. 기능적 조직: 교회가 스스로 움직이는 자생적 조직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교회 조직을 평가, 개선해 나간다
5. 영감있는 예배: 관념적인 성령의 임재가 아니라 성령께서 진정으로 역사하실 때 예배의 분위기와 예배 절차에 구체적 변화가 일어나며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교회에 가는 것이 즐겁게 느낀다
6. 전인적 소그룹: 소그룹이 단순한 성경공부가 아니라 성경 말씀을 매일의 삶에 적용시키 는 전인적(holistic) 소그룹으로서 그 안에서 사람들이 자신이 처해있는 개인적 문제나 질문들을 내어놓는다
7. 필요 중심적 전도: 교회가 전도의 초점을 불신자들이 당면한 문제와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에 맞춘다
8. 사랑의 관계: 교회의 사랑 표현 능력과 장기간의 성장 잠재력 간에는 매우 중요한 연관 이 있다.

이와 같은 임상적 연구 결과는 매우 흥미롭게도 1993년까지 연구하여 저술한 Ken Hemphill 박사의 안디옥 이팩트에서 제시하는 건강한 교회를 위한 8가지 원리와 약간의 표현이 다를뿐 거의 동일한 원리들을 제시한다는 면에서 교회의 질적 성장을 논할 때 Schwartz가 제시한 8가지 원리가 그 타당성을 뒷받침 받는다고 말할 수 있다. Schwartz의 연구는 1994년으로부터 1996년 기간동안 이루어졌으며 Hemphill 박사의 연구는 1993년까지 이루어졌으며 1994년도에 출간되었기 때문에 이 두 연구 사이에는 실질적인 참고나 관련이 없다고 여겨진다. Hemphill 박사가 제시한 8가지 원리는 다음과 같다:

1. 영적 능력이 충만한 교회
2. 역동적인 예배가 살아있는 교회
3.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는 교회
4. 목회 지도력이 확고한 교회
5. 영적 가족관계가 이루어진 교회
6. 하나님 주신 비전이 뚜렷한 교회
7. 복음 전도적 열정이 타오르는 교회
8. 성도들을 사역자로 무장시키는 교회

이상의 두 연구 결과는 우리에게 교회의 질적 성장의 기준이 어떠한 것인지를 임상적으로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물론 Hemphill 박사가 제시한 원리들은 전혀 임상학적 접근이나 결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Schwartz가 연구한 임상적 자료들을 논리적으로, 신학적으르로 뒷받침한다는 사실을 유념할 때 여기서 제시된 원리들이 교회의 질적 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본다. 또한 앞에서 신학적으로 살펴 본 교회 본질에 관한 설명과도 상당부분 겹친다는 면에서도 의미있는 연구결과라 믿어진다.

이렇듯 교회의 질적 성장은 교회의 본질을 구현하는 정도를 의미하며 교회 전반에 걸친 성장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의 논의를 교회의 질적 성장으로부터 양적 성장으로 옮기도록 한다.

 

111. 교회의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의 상반성


앞서 진술한 바와 같이 오늘날 사용되는 교회성장이라는 용어는 주로 양적 성장을 의미한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질적 성장을 경히 다루거나 관심을 적극적으로 두지 않는다는 면에서 문제를 느끼는 것이지 양적 성장은 불필요하거나 비성서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성경의 수많은 경우들은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서 양적 성장과 팽창이 급속도로 이루어졌음을 기록해주고 있다. 예를 들면 예루살렘 교회는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이후 기독교 전체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괄목할만한 양적 성장을 단기간 내에 이루었음이 사실이다.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이 있었던 그 날에만 3천명의 사람들이 회개하고 믿음으로써 침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일이 이루어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행 2:40). 뿐만 아니라 그 사건을 기점으로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셨으며"(행 2:47),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고"(행 4:4),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였으며(행 5:14),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으며"(행 6:1),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했다"(행 6:7).

바울의 세 차례에 걸친 선교 여행의 경우에도 복음이 전파되는 속도에 있어서 괄목할만한 양적 성장을 보여준다. 바울의 사역은 가는 곳마다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며 수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도에 복종케 하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대부분의 성과 도시에서 그의 사역은 온 성을 소동케 했으며 온 도시 사람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각 도시와 성에서 믿는 사람들을 많이 얻음으로써 각 곳에 교회를 세우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가 전도한 지역은 주로 이방인 지역이었다. 따라서 급속도로 불어나는 교인들에 비하여 성경을 알거나 그리스도를 집적 만나본 적이 있는 일차적 목격자들을 거의 두지 못했던 지역들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이방지역의 개종자들은 충분한 성경지식이나 훈련을 받은 경험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속에서 복음의 역사는 계속되었다는 말이다. 복음은 그 자체가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교회의 양적 성장은 질적 성장과 무관하게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본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 속담에 "꿩 잡는게 매"라는 말처럼 결과적으로 양적 성장을 이루면 그만이라는 태도가 만연한 듯 싶다. 물론 양적 성장에 따라 질적 성장이 이루어진다고 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 교회의 양적 성장은 결코 무시되거나 거부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하지만 교회의 양적 성장에 대한 지나친 강조로 말미암아 성령께서 역사하심을 따라 순종한 결과가 아닌 지극히 인위적이고도 부자연스러운 양적 성장에의 강조는 결과적으로 교회 속에 비기독교적 요소들을 끌어들이고 교회의 본질을 구현하기보다는 오히려 교회 본질을 훼손하는 역기능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즉 기독교 신앙을 미신적인 차원으로 끌어내림으로써 맹신과 광신이 보편화하는 문제점을 안게 된다는 우려를 부식시키기 어렵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역사 속에서 수없이 보아왔으며 오늘날에 있어서 지난 50년간 양적 성장을 거듭한 한국교회와 그것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양적 성장을 거듭한 중국교회의 경우에서도 이러한 문제점들은 잘 나타나고 있다. 1949년 중국이 공산화 될 당시 불과 834,000명 정도로 추산되던 기독교인의 숫자가 불과 30여년만인 1980년, 즉 중국이 죽의 장막을 걷고 개방이 되었을 때까지의 30여 년 간 그 혹독한 공산치하의 탄압 속에서 그 작은 숫자의 그리스도인들이 무려 5,000만명으로 늘어나는 경이로운 양적 성장을 했음은 이미 익히 잘 알려진 바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날에 이르러는 1억을 넘는 그리스도인의 숫자를 헤아리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양적 팽창의 이면에는 성경지식의 부족과 신학 부재현상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신앙이 미신적인 양상을 띄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이단들의 거짓 교리에 쉽게 넘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교회도 지난 30여 년 간 기록적인 양적 성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빛과 소금으로서의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이라는 면에 비추어 볼 때 오히려 한국 사회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든 각종 사고와 사건 뒤에 기독교인들이 그 악역을 담당하는 모습 속에 양적 성장의 이면에 가리어진 질적 성장의 결여가 가져온 병폐를 결코 간과할 수 없다.

교회성장을 논함에 있어 질적 성장과 양적 성장은 쉽게 결합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상반성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교회의 양적 성장을 강조하다보면 질적 저하를 가져오고 반대로 교회의 질적 성장을 강조하다보면 양적 성장의 둔화를 경험하게 되는다는 임상적 결과들로 말미암아 이 양자의 적절한 조화에 관한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따라서 우리는 이 양자간의 대립적 상황을 극복하고 승화시킴으로써 상호보완적인 역학관계를 이해함이 필요하다.

 

IV. 질적 측면과 양적 측면의 상호보완성


성경의 첫 모델인 예루살렘 교회는 이 면에 있어서 우리에게 좋은 예를 제시한다고 믿어진다.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이었던 열 두 제자들은 우선 유대인으로서 전통적인 율법 교육을 어렸을 때부터 철저히 받았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열 두 살이 되었을 때는 이미 율법을 대부분 암송할 만큼 토라(Torah)에 통달한 교육을 받았던 자들이었다. 비록 그들의 출신성분이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평민 계층의 사람들이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유대인의 전통에 따라 출생 때부터 율법을 철저히 교육받은 경험과 배경을 가진 자들이었다. 이러한 바탕 위에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3년 반 동안 제자로서 훈련을 받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식과 이해수준에 배운 말씀들을 실제 생활이라는 상황 속에서 부딪히고 경험함으로써 말씀의 체질화가 된 사람들이었다.

제자로서 이러한 질적 성장의 경험들이 그들로 하여금 양적 성장을 가져오게 하는 결정적 요소가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들이 준비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사용하시는 일에 있어서 거의 무제한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이 그러하듯 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교회로 돌아왔을 때 즉각적으로 그들을 날마다 가르치며 제자로서 훈련시키는 일에 돌입했다. 이 점에 관하여 성경은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고 기록하고 있다. 사도들은 날마다 집에 모여서 교인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교제와 기도로 제자훈련을 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훈련의 결과는 그 모든 교인들이 계속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그 결과로 엄청난 수의 개종자들을 얻는 양적 성장의 결과로 나타났다.

교회의 질적 성장은 필연적으로 양적 성장을 가져와야만 바르게 질적으로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질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양적으로는 성장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아직 충분한 성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러한 충분치 못한 성장은 보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 적지 않은 교회들의 경우 이 양자간의 불균형과 부조화로 말미암아 한쪽으로 치우쳐 다른 한 쪽을 희생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질적 성장에 집착하고 양적 성장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를 어떤 이는 코이노니아 질병(koinonitis)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편, 양적 성장에 집착함으로써 질적 성장을 놓치는 경우는 그 신앙의 내용에 있어서 미신이나 맹신 또는 단순한 기복신앙에 불과할 수 있다는 면에서 문제가 된다. 이러한 문제는 제자훈련을 강조하는 목회와 전도를 강조하는 목회 사이에 있는 긴장과 근원적으로 동일한 문제이다.

교회의 질적 성장과 양적 성장의 이상적인 관계는 양자가 상호보완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즉 교회의 질적 성장은 궁극적으로 교회의 양적 성장을 낳으며 또한 동시에 양적 성장은 교인들의 열성과 신앙의 질을 높여주는 결과를 가져다줌으로써 전체적으로 교회가 질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 양자간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교회성장 모델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V. 셀 교회에서의 질적 측면과 양적 측면의 조화

셀 교회에 있어서도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의 긴장관계가 존재한다. 근본적으로 셀 교회에 쏟는 관심의 원인들이 침체되거나 정체된 교회의 양적 성장을 다시 불붙게 하려는데 있음을 보게된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셀 교회들의 경우 한결같이 셀 교회 운동은 교회성장 운동이 아니라 교회갱신 운동이며 교회혁신운동이라 주장한다. 이 점에 관하여 국제 터치 사역(Touch International) William Beckhem은 오늘날의 셀 교회운동을 제2의 종교개혁 운동이라고까지 말한다.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 많은 목회자들은 교회의 양적 성장을 위한 "새로운" 방법으로 이해하고 접근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연유로 셀 교회로 하여금 셀 교회가 되게 하는 가장 근본요소가 되는 셀 모델이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뉘어질 수 있다. 그 첫 번째 모델이 열린 형태의 셀(open type cell)이며 두 번째 모델이 닫힌 형태의 셀(closed type)이다. 이러한 두 가지 형태의 셀 모델들은 각각 장점들과 제한점들을 가지고 있다. 이제 이 문제에 관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1. 열린 형태의 셀 모델

열린 형태의 셀은 일차적으로 그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교회의 정회원(membership)으로만 한정짓지 않고 불신자들까지도 셀 회원이 될 수 있도록 그 범위를 열어둔 모델을 말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전도 대상자를 발견하면 어제든지 셀 모임으로 인도하여 참여할 수 있게 한다. 열린 형태의 셀이 가지는 장점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손꼽을 수 있다.

첫째,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면 누구나 셀 모임에 참여할 수 있으며 이러한 개방성은 교회 내에 불필요한 위화감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없다. 둘째, 먼저 믿는 사람들의 삶과 교제를 참여한 불신자들이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음으로써 감동을 받고 예수를 믿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셋째, 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본을 영적으로 어리거나 미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받음으로써 영적 성장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그러나 열린 형태의 셀이 가지는 제한점으로는 첫째, 불신자들이나 새신자들의 경우 먼저 믿는 사람들의 열정적인 삶으로부터 나오는 삶의 모습이 자신들과 너무도 달라서 오히려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둘째, 신자들간의 깊이있는 교제가 셀 모임 속에 있는 불신자들이나 새신자들로 말미암아 깊이있는 차원에서 이루어지기 어렵다. 따라서 셋째, 영적 가족으로서의 셀 경험이 어려워지는 점 등이다.

이상과 같은 장점과 제한점들을 고려할 때 열린 형태의 셀 모델은 질적 성장보다는 오히려 양적 성장에다 그 방향성을 설정한 것으로 보여진다. 전도 대상자가 발견되면 즉각적으로 접촉한 뒤 자신들이 영적으로 큰 도움을 받는 셀 모임에 그들을 초청하여 자연스럽게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모델인 것이다.

2. 닫힌 형태의 셀 모델

한편 열린 형태의 셀 모델에 비하여 닫힌 형태의 셀 모델은 셀의 구성원을 철저히 교회의 정회원으로 그 자격을 엄격히 제한한다. 따라서 불신자나 교회의 회원이 아직 되지 못한 사람들은 셀 구성원이 될 수 없다. 이렇게 함으로써 교회의 회원권을 가진 먼저 믿은 사람들이 영적 가족으로서의 경험이나 각자의 신앙의 깊은 문제들을 자연스럽게 털어놓고 사랑의 분위기 속에서 해결받을 수 있게 해준다. 닫힌 형태의 셀 모델이 가지는 장점으로는 첫째, 회원간의 사랑의 교제와 나눔이 깊이있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나눔은 단순히 영적인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 나눔까지를 포함한다. 둘째, 이러한 나눔은 결과적으로 셀 구성원간의 영적 가족됨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교회의 본질로서의 가족됨은 교회본질 구현의 한 중요한 측면으로서 이는 교회의 질적 성장을 위한 결정적 요소가 된다.

이에 비하여 닫힌 형태의 셀이 가지는 제한점으로는 첫째, 교회 내의 어떤 불신자들이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비록 자신은 아직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지는 못했지만 모처럼 자신을 먼저 믿은 사람들과 동일시하려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제한점이 있다. 둘째,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자신들만의 교제권에 빠져들어 그 자체만을 즐기려는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

열린 형태의 셀 모델은 확실히 전도지향적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닫힌 셀 모델에 비하여 양적 성장 지향적 모델이다. 이 모델은 단기적으로 볼 때, 숫적 증가가 훨씬 빠르게 이루어지며 빠른 시간 안에 셀들이 배가되는 양상을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배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셀을 건강하지 못한 셀로 보고 해체시키거나 재구조화 한다. 그러나 닫힌 셀 모델의 경우는 보다 긴 시간동안 진정한 영적 가족관계가 형성되도록 기다리며 보다 실제적이면서도 영적 가족관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는 면에서 볼 때 질적 성장 지향성을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양자간에는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의 긴장이라는 역학관계가 형성되어있다.

3.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의 조화를 이루는 셀 모델

셀은 그 자체가 교회 속의 작은 교회로서 영적 유기체이며 생명체이다. 따라서 셀은 공동체로서의 본질 곧 그 자체가 생명체로서의 질적 특성을 지닌다. 따라서 셀은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의 조화를 적적히 이룰 수 있는 본질적 특성을 지닌다. 이러한 맥락에서 셀 모델 개발을 위해 지난 수년간 전세계의 셀 교회들은 나름대로 다양한 형태의 모델들을 개발해왔다. 그중 첫 번째 형태가 목산침례교회이다

1) 목산침례교회의 모델--교회학교와 셀의 혼합

열린 형태의 셀과 닫힌 형태의 셀을 적절히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사실상 그러한 혼합이나 절충형은 결코 쉽지 않다. 다만 닫힌 형태의 셀이 자주 비회원인 사람들이나 불신자들을 자신들의 셀로 초청하여 교제하는 방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회의 구조와 제도 속에서 정기적으로 셀에 속한 사람들과 아직 셀 구성원이 되지 못한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한다면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불신자 또는 비회원들과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는 교회가 목산침례교회이다. 목산 교회는 전체 교인들이 매주 주일에 주일학교 반에 소속되어 성경을 공부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이 성경공부반은 교회의 정회원으로서 셀 구성원들로 핵심 반원이 중심이 되어 아직 회원이 되지 않은 교인들을 같은 반에 편성함으로써 한 셀의 구성원들은 매주 성경공부 시간에 자신들의 반에서 만나는 비회원들과 지속적으로 만나고 교제함으로써 전도의 기회 또는 교회의 정회원이 되어 셀 맴버가 될 수 있도록 격려하며 섬기는 기회를 가진다. 이러한 모델은 이를테면 주일학교 반 속에 셀 그룹이 존속하는 형태인 것이다.

2) 버클랜드 침례교회 모델--셀 스탶 모델

지난 3년간 버클랜드 교회는 열린 형태의 셀로 전환하면서 셀 스탶(Staff) 모임 제도를 활용함으로써 한 셀 속에 닫힌 셀과 열린 셀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는 모델을 개발했다. 예를 들어 10명의 셀 그룹원들이 있을 경우 그 셀에는 목자, 예비목자, 회계, 찬양인도자 등 5,6명의 스탶들이 핵심 그룹원으로서 별도의 모임을 가지는데 이 모임은 철저히 닫힌 형태의 셀을 유지하여 삶의 깊은 것들을 나누는 곳이다. 하지만 새신자나 불신들을 모두 포함한 열린 셀을 또 다른 요일에 가짐으로써 먼저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영적으로 어린 사람들로 하여금 그 뒤를 따라가는데 큰 도움을 준다. 이러한 유형의 모델을 온두라스의 데구치갈파에 있는 '살아있는 사랑의 교회'(Love Alive Church)에서도 동일하게 발견한다. 이 교회의 1,000여개의 셀들중 90%의 셀들이 그 안에 "리더 팀"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리더, 예비리더, 재무담당, 그리고 특정한 책임을 가지지 않는 두 명의 회원들로 구성된다. 이들은 매주 별도의 모임을 가지고 셀의 운영 전반에 걸친 논의를 비롯하여 깊이있는 교제를 나누며 셀의 핵심요원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한다.

이러한 혼합형 셀 모델은 지난 10년 동안 보다 광범하게 개발되어왔다. 그 증거로 엘살바도르에 위치한 엘림교회(Elim Church)의 경우에도 동일한 형태의 셀 모델을 개발하여 놀라운 질적, 양적 성장을 경험해오고 있다. 이 교회는 셀 그룹 속에 리더, 보조리더, 장소제공자, 재무담당, 비서, 아동담당교사, 그리고 특정한 임무를 맡지 않은 소수 회원들로 핵심 그룹 팀을 이루고 이들이 한 팀으로 셀 그룹을 인도하는 형태를 개발한 것이다.


나오는 글

열린 형태의 셀과 닫힌 형태의 셀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콜롬비아 보고타에 있는 국제은사교회(International Charismatic Missions)는 지난 10년간 나름대로의 셀 모델을 개발하여 엄청난 양적 성장을 이루어왔다. 1990년 당시 200명의 교인들이 70개의 셀을 이루어 시작된 교회가 1998년 6월말 현재로 무려 24,000개의 셀로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 그리고 2000년 말까지 50,000개의 셀에 500,000만명의 교인들을 예상하는 대교회로 성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은 단순한 양적 성장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매우 강력한 성장을 하고 있는데 이 회가 개발한 모델을 G-12라 부른다. 이 모델은 한 사람의 셀 리더가 12명을 셀 멤버로 하여 그들을 가르치고 훈련시켜 그들 각자로 하여금 그들의 또 다른 셀을 개척하도록 돕는다. 그리하여 그들 모두가 그들의 셀을 가지게 될 때 최초의 셀 리더는 그 실 모임을 중단하고 그때로부터는 새롭게 세워진 12명의 리더들을 계속적으로 돕되 평생을 돕는 관계로 발전한다. 따라서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은 이러한 평생관계 수립을 통하여 동시적으로 충족되는 체제를 발전시켜 온 것이다.

교히의 질적 성장과 양적 성장은 결코 쉬운 결혼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셀 교회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절대적 과제인 것이다. 교회가 그 본질을 회복하는 일에 있어서 이 조화와 균형을 상실한다면 온전한 의미의 교회본질 회복은 구현할 수 없다.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한 인식과 함께 문제 해결을 위한 부단한 노력은 기필코 하나님의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복된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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