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득한 옛날이다. 생텍쥐페리를 처음 만난 건 물론 <어린 왕자>를 통해서였다. 누구나 그러하듯,
나도 <어린 왕자>에 홀딱 빠져 버렸고, 그렇게 놀라운 책을 쓴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했다. 한 권씩 생텍쥐페리의 책을 찾았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의 대지>가 나를 찾아왔다. 솔직히 고백하자. 고등학교 시절, 다음날 학교에 가야 한다는 엄연한 현실도 무시한 채
거의 밤을 새워 읽었던 그 책의 내용들은 이제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 에피소드는 내 뇌세포에 뜨거운 낙인으로 찍혔다. ‘기요메’,
생텍쥐페리의 동료 비행사였던 어느 사내의 이야기.
그는 안데스 산중에 추락했다. 한겨울, 그 높은 산의 추위조차 모르핀처럼 편안하게 느껴지기 시작할 때, 그저 눈을
감으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을 때, 그는 불현듯 아내를 떠올린다. 보험 증서가 있으니 설령 자신이 세상을 떠나도 아내가 비참한 생활은
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그러나 아내가 보험금을 타기 위해선 그는 ‘사망’해야 했다. ‘실종’이 아니어야 했다. 실종의 경우에 법정에서 사망이
인정되려면 4년을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기요메는 그래서 다시 기어가기 시작했다. 50미터 앞에 있는 바위까지. 그 바위에 기대어 눈을 감으면
여름이 되어 자신의 시신이 발견될 수 있을 것이기에.
뚜렷이 기억한다. 그 대목을 읽으며 이불 속에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다시
기어가기 시작한 끝에 끝내 동료들에게, 아내에게 살아 돌아온 기요메를 이야기하며 생텍쥐페리는 말했다. “그의 위대함은 자기의 책임을 느끼는 데에
있다”라고. 그 옛날의 책을 다시 펼쳐 본다. 빨간 줄이 두 줄씩 그어져 있는 오래된 세로쓰기 책.
“사람이 된다는 것은 바로 책임을
안다는 그것이다. 자기의 탓이 아닌 것 같은 곤궁 앞에서 부끄러움을 아는 그것이다. 동료들이 거둔 승리를 자랑으로 아는 그것이다. 자기 의지를
갖다 놓으며 세상을 세우는 데에 이바지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인간의 대지>, 안응렬 역, 동서문화사, 1978)
삶이
치사해질 때, 삶이 같잖아질 때, 내 어깨로 짊어진 삶이 너무 무겁게 느껴질 때, 그냥 다 포기해 버리면 참 편하겠다 싶어질 때, 그럴 때면
기요메라는 사내가 떠올랐다. 그 사내가 내게 조용히 타이르곤 했다. 저기 바위까지라도 기어가렴. 네겐 책임이 있단다. 너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너 자신에게 책임이 있단다. 자, 눈을 뜨렴, 저기 바위까지만 기어가렴….
여행하러 인도로 들어갔다. 어쩌다가 우연히 캘커타에 발을 들여놓았고, 또 어쩌다가 우연히 마더 테레사의 집에서 잠시
허드렛일을 돕게 되었다. 딱 일주일만, 경험 삼아 해보자고 시작한 일이었다. ‘죽어 가는 빈자들을 위한 집’ 칼리가트에는 독일인 고참
자원봉사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안디’였다. 매일 사람이 한두 명씩 죽어 가는 그 집에서 안디는 언제나 얼굴 가득 웃고 있었다. 그 집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한 시간이 그때 이미 4년 반이 되어 간다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가 내게 그릇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어리숙한 초보
봉사자였던 나는 찬장에서 그릇을 꺼내 그에게 주었다. 그릇을 받아든 그가 잠시 후, 큰 소리로 내게 말했다. “헤이, 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가 내민 양은그릇 한 귀퉁이에 밥풀 조각이 남아 있었다. “이건 말이 안돼! 너에게 이 그릇으로 밥을 먹으라고 하면 너는 먹겠니?
너하고 여기 환자들이 다를 게 뭐가 있지?”
그는 찬장에 있는 1백여 개의 그릇을 모조리 꺼냈다. 그리고 그걸 모두 다시 설거지하기
시작했다. 나도 그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함께 설거지를 해야 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안디를 ‘나의 스승’이라고 불렀다. 밥과 커리를
끓이고 남은 석탄재를 코코넛 껍질에 묻혀서 닦는 설거지 방법을 가르친 스승. 한 톨의 밥풀 조각도 남지 않도록, 거리에 쓰러져 있다가 마더
테레사의 집으로 실려 온 가난한 이들만이 아니라 나도 얼마든지 마음 놓고 먹을 수 있을 만큼 깨끗하게 그릇을 닦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
스승.
그게 1994년 1월의 일이었다. 그리고 2005년 12월 현재, 안디는 여전히 캘커타에 있다. 마더 테레사가 살아 계실 때,
마더 테레사는 안디에게 권하셨다. 기왕에 평생을 캘커타에 바치려고 마음먹었다면, 수사나 신부가 되어 그 일을 해도 좋지 않으냐고. 안디는 마더
테레사께 이렇게 대답했다. “마더께서 원하시는 일은 뭐든지 하겠습니다. 그러나 제게 신부나 수사가 되라는 그 말씀은 따를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저 평범한 자원봉사자로 이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안디를 만나기 전, 그리고 캘커타의 자원봉사자 친구들을 만나기 전, 나는 그런 일은
특별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었다. 성스러운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안디에게서 나는 배웠다. 그건 평범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내 밥그릇을 깨끗이 닦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두 돌 조금 지난 조카 빈이가 나를 놀래킨다. 너무 어린 나이에 동생을 봐서 스트레스가 심할 것이다, 동생을 괴롭히면
어쩌나, 그런 걱정을 하게 했던 어린 빈이였다. 그러나 그 어린 빈이는 백일 지난 동생이 잠에서 깨어 울면 엄마보다 먼저 달려가 동생의 배를
가만가만 토닥여 준다. 인이야, 인이야, 울지 마.
혼자 사는 선배가 행여나 끼니를 거를까 걱정이 된 후배 상준이는 매일 전화를 건다.
형, 도시락 넉넉히 싸왔어요, 시간 괜찮으시면 내려와서 같이 드세요. 술집밖엔 되는 장사가 없다는 대학로에 작은 서점을 낸 후배는, 제 밥을
내게 나눠 주며 나를 안심시킨다. 형, 걱정 마세요. 저, 끝까지 버틸 거예요. 그래도 이렇게 해보고 싶었던 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형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추운 밤거리, 어느 노인이 떨고 있다. 어깨를 움츠리고 걷던 어느 아주머니가 멈추더니
돌아서 그 노인에게로 간다. 핸드백을 열고 천 원짜리 두어 장을 꺼낸다. 노인의 손에 쥐어 주고 아주머니는 다시 바삐 걸어간다….
세상이
온통 멘토들 투성이다. 두 살짜리 빈이부터 어느 이름 모를 아주머니까지, 세상은 온통 멘토투성이다.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진실을 몸으로 아는 사람들, 내겐 언제나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있다는 진실을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들, 그들은 모두 나의 스승이다. 그들을
따라갈 때 내 삶은 따뜻해진다. 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