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도력개발원

더불어 승리하는 사회를 꿈꾸는 방법, 멘토링

북코치 2006. 8. 4. 07:02
더불어 승리하는 사회를 꿈꾸는 방법, 멘토링
@웹진@ | 2006/01/17 (화) 12:43

1984년 미국에서 <Between Women>이란 책이 출판되었다. 굳이 번역을 하자면 ‘여성들 사이의 고백’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이 책은 멘토링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담아낸 최초의 책으로 기록되고 있다. 책 속엔 소설가, 예술가,
문화 비평가, 전기 작가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 중이던 여성들이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멘토를
기억하면서 그(녀)들에게 바친 글들이 담겨 있다.
그 중에서도 소설 <칼라 퍼플>의 작가 앨리스 워커의 멘토 이야기는 깊은 감동의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책에서
그녀는 열 명 중 아홉 명이 문맹이었던 시대에 흑인 여성도 ‘훌륭한 소설’을 쓸 수 있음을 일깨워 준 조라 닐 헐스톤을
자신의 멘토라 고백하고 있다. 워커의 입에서 헐스톤의 이름이 불리기 전까지 그녀는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이름 없는 흑인 여성 소설가에 불과했다. 그러나 워커의 입과 글을 통해 헐스톤의 작품 세계가 새롭게 해석되면서
그 이름이 널리 전파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오늘날 헐스톤의 작품들은 오랜 노예의 전통을 지닌 미국 남부 지역에서
흑인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따스하고 속 깊은 시선으로 그려냄은 물론, 이중 삼중의 억압과 편견 속에서
오히려 인생의 진수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흑인 여성들의 삶의 역설을, 유려하고도 힘찬 필체에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내게도 멘토가 한 분 계시다. 1982년 대학원생 시절에 만났으니 햇수로는 어느새 스물다섯 해째 인연을 이어 오고 있다. 처음 만났던 당시 내 나이 스물넷, 멘토의 나이는 마흔에 접어들고 있었건만, 우리는 열여섯의 나이 차를 훌쩍 뛰어넘고 그 누구보다 친밀한 삶의 동반자가 되었다.
“당신은 나이는 어리지만 속은 어른이구먼. 한데 이런 사람은 대개 아랫사람들은 좋아하고 따르지만 윗사람들은 경계하고 부담스러워하는 경향이 있지. 인생을 너무 교과서처럼 살진 말아요.”
                            첫 만남에서부터 관상을 봐 준다는 핑계 삼아, 나의 약점을 솔직하게 지적해 준 것이 인연이 되어
                              우린 멘토와 멘티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멘토는 늘 나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가치를 인정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었으며, 앞길이 안 보여 헤맬 때면 무서운 채찍질을 통해 험난한 길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곤 했다. 뿐만 아니라 큰 숲을 보지 못한 채 작은 나무에 연연해하면서 게으름의 유혹을 자주
                              받는 나의 우유부단함을 항상 호되게 나무라 주셨다. 미국 유학을 떠나는 내게 “외국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경제적 안정일 거야. 그러니 괜한 고집 부리지 말고 필요하면 서슴지 말고 내게 도움을
                                   청하도록 해요. 그리고 당장 돈이 필요하게 되면 이걸 팔아서 써요” 하시며 석 돈짜리 금반지를
                                        건네주셨다. 지금은 세월의 때가 묻어 그럴듯한 골동품처럼 보이는 그 금반지는 지금도
                                             내 손가락에 끼워져 있다.

멘토란 말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현명하고 성실한 조언자, 스승’으로 나와 있다. 요즘 들어 멘토가 화두로 급부상하고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네 역사와 전통 속엔 스승과 제자 사이에 얽힌 아름답고 감동적인 사연들이 넘쳐난다. 인생의 경륜과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지혜와 덕망이 높은 가치를 부여받던 시절, 스승은 그림자를 밟기조차 송구스러운 외경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요, 그 자취는 모두들 기꺼이 따라 하고픈 귀감이 되었다. 이제 옛 스승의 의미가 서서히 퇴색되어 가는 자리에 새삼 멘토가 부활하고 있음을 보니, 마냥 반가움이 앞선다.
멘토의 부활이 특별히 반가운 이유인즉, 멘토링에 적극적 의미를 부여한 이들이 실은 사회적 약자들이었다는 사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들이 멘토를 절실히 필요로 했던 건, 바로 사회적 약자로서 경험했던 무수한 좌절과 반복되는 시행착오 때문이었다. 일례로 여성의 사회 진출이 금기시되어 있던 시절, 용기를 내어 막상 세상으로 나간 여성들은 동서남북 어디가 어딘지 세상천지 막막하기 그지 없었던 데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있는 듯한 절박함을 경험했다. 덕분에 이들 여성은 자신에게 등불이 되어 줄 이가 필요했고, 자신을 이끌어 줄 손길이 그리웠던지라 적극적으로 멘토를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초창기 사회로 진출한 여성들에게 멘토는 함께 살아 있어 따뜻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바로 옆 선배도 좋았고, 이미 무덤 속에 묻혀 있는 이도 상관없었다. 심지어 같은 피부색을 지닌 인종이어도, 눈 빛깔이 다르고 언어가 달라도 기꺼이 멘토로 삼을 수 있었다. 이들에겐 망망대해 항해하는 길에 등대 불을 밝혀 줄 수 있는 이라면 그 누구든 멘토가 될 수 있었다. 반면 이미 확고한 연고에 따라 파워를 행사하고 세력을 구축해 온 지배집단의 경우는 새로운 멘토의 필요성이 그리 크게 느끼지지 않았기에 오래도록 소외되어 온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없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존재가 바로 멘토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멘토의 의미가 요즘 들어 보다 광범위하게 해석되어, 남녀를 불문하고 다양한 조직과 집단에서 선후배 간에 밀어주고 당겨주는 아름다운 인연의 고리를 만드는 과정으로 확산되고 있다. 앞서 인생을 개척해 온 선배들은 시행착오를 통해 뒤에 오는 후배들에게 이를 줄일 수 있는 지혜를 전수함은 물론, 서로의 좌절과 실패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특별히 사회적으로 주변적 지위에 있었던 이들이 멘토링과
연계망 구축을 통해 사회 각 영역에서 기존의 조직 문화를 쇄신시켜 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이들의 영향으로 과거의 권위적 위계서열이나 일방적 획일적 명령 체계 대신, 민주적이며 호혜적인
의사소통 및 의사결정 방식이 선호되고 있으며, 집단의 목표 달성을 위한 추진력과 모험심 못지않게 진행 과정의
공정성 및 투명성이 중시되고 있다. 동시에 성원들의 사기 및 관계를 최대한 존중해 주고 배려해 주는
‘관계지향적 리더십’이 힘을 얻어 가면서, 우리네 조직 문화도 경쟁보다는 협력을 중시하고 약자를 포용해
주는 사람 냄새 가득한 분위기로 전환해 가고 있다.
이제 미래의 리더가 되고자 한다면, 남성 특유의 ‘과업 중심성(task-oriented)’과 여성 특유의
‘사람 중심성(people-oriented)’을 균형 있게 결합해냄으로써 추진력과 효율성을 유지하면서도 타인을
향한 배려와 팀원 간의 인화 단결을 이루는 과제를 안게 된 셈이다. 이때 멘토링은 어느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사람 중심의 리더십을 통해, 개개인의 잠재력을 조직의 다양성으로 승화시키면서,
생산성 및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데에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멘토링은 주로 조직 생활에서의 괄목할 만한 성공 사례에 초점이 맞춰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멘토링은 신입사원과 선배 사원 사이의 소박한 유대뿐만 아니라 취미 생활을 공유하는
이들 사이의 친밀한 상호작용,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들 사이의 뜻 깊은 연대 등으로 보다 확대될 것이다.
더불어 그 의미 또한 우리의 삶에 깊은 감동을 안겨 줄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은퇴 이후
연변으로 건너가 사재를 털어 조선족들에게 영어회화를 가르치고 계신 전직 영어 교사, 지역사회 발전이
곧 나라의 발전이란 신념 하에 지역 내 주부들을 책임 있는 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는 전직 약사,
명예퇴직 후 재소자들의 성공적 재활을 위해 소박하나마 경제공동체를 가꾸는 데 주력하고 있는 전직 교수 등
이들의 삶의 방식 자체가 우리네 삶에 새로운 등불을 밝히는 멘토가 되어 줄 것이다.
누군가 “당신의 경쟁 상대는 누구입니까?”를 묻기보다 “당신의 협력 상대는 누구입니까?”를 물을 때, 더불어 함께 승리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자칫 삭막해지기 쉬운 우리네 삶에 언제나 손 내밀어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이 있다면, 더욱 힘겨워지는 우리네 삶에 항상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 줄 이 있다면, 우리의 삶은 보다 풍요로워질 것이요, 관계 또한 더욱 성숙해 갈 것이다. 그이들이 바로 멘토 아니겠는가.
 
이 글을 쓴 함인희는 이화여자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이다. 우리 사회를 진단하는 글을 여러 매체를 통해 기고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여자들에게 고함> <페미니즘이 한국 가족 논의에 미친 함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