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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역사 드라마 왜곡을 MBC가 앞장을 서는가?

북코치 2006. 10. 22. 17:39

첫째로 부여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등장인물간의 인척관계가 대단히 잘못되어 있다. 예를 들어, 정확히 말해서 고주몽은 해모수의 둘째 아드님인 고진의 손자, 불리지(일명 고모수)와 유화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분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유화부인의 남편을 해모수라 하는데, 유화부인을 시증조할아버님과 관계를 맺은 것으로 만들었다. 유화부인이 실제 살아계시다면 참으로 면목없을 것이다.

 

둘째, 드라마에서 주몽이 태어난 나라를 부여라고 한다. 여기서 부여에도 북부여, 동부여, 대부여, 졸본부여, 서부여, 남부여 등 부여의 흥망사에서 수많은 부여가 있다는 사실이 간과된 채, 부여 하나로만 인식하고 때문에 역사가 매우 왜곡되어 있다. 주몽이 태어난 나라는 동부여이다. 그러나 주몽의 아버지는 북부여의 건국자인, 해모수 단군의 황손이다. 광개토열제의 비문에 '황천지자(皇天之子)'라고 했던 것은 이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것을 우리는 잘 모르고 있을까? 그것은 중국의 역사가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역사왜곡으로 인한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여기서 다 언급하기 힘들지만, 중국은 한무제 때 사기(史紀)를 쓴 사마천 이후로 조선(朝鮮, 고조선)을 역사에서 지우기 위해서 역사에서 일부러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다. 조선은 세상에서 아는 것과 달리 수많은 제후국을 거느리고 있는 대제국이었다. 그러나 '조선'이란 이름을 거명하지 않고, 단지 제후국의 이름만 거론하면 조선은 역사 속에서 오리무중으로 사라지게 마련이다. 후세의 김부식과 같은 우리의 역사가들은 중국인들이 써준 역사를 베끼기에 급급했던 탓으로 우리의 역사의 뿌리, 조선사는 실체는 없는 신화로만 남게 되었다. 

 

조선사를 역사 속에서 지우는 가장 쉬운 방법은 부여사를 역사에서 지우는 것이다. 조선의 역사 계승은 부여를 거쳐서 열국시대와 사국시대(고구려백제신라가야), 남북국시대(대진국신라)로 해서 부여, 조선에 이르게 되는데, 부여를 역사 속에서 지우면 뒤에 난 국가들은 고조선과 전혀 관계없는 역사의 미아가 될 것이라는 것을 중국인들은 간파하였다.

 

그러면 도대체 부여란 나라의 정체는 무엇인가? 부여의 원뿌리는 고조선이다. 고조선은 47분의 단군이 나라를 다스렸다.(이에 대해서 토를 달 분도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모두 대꾸해주기 힘드므로 그냥 본론을 이야기 하기로 하자.) 44대 단군은 구물단군이다. 이 분은 본래 43대 단군 때 상장군이었다.

2096년의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고조선도 후반기에 와서는, 삼신상제님의 도법을 바탕으로 해서 광명이세(光明以世) 하는 초대 단군왕검의 도법이 많이 무너졌다. 급기야는 사냥꾼의 두목 우화충이란 사람이 나타나서 사냥꾼들을 모아놓고는 대뜸 반역을 저질렀다. 이 때 단군께서 피신 중에 돌아가시고 나라가 하도 혼란해지니, 5가에서는 상장군 구물(丘勿)이 인물이 성스럽고 공이 많아서 단군으로 추대하였다. 구물 단군께서는 나라의 혼란을 수습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수도를 장당경(藏唐京, 지금의 開原, 단군 44대~47대까지 188년간의 수도)으로 옮기고 국명을 바꾸기에 이른다. 그래서 조선의 국통은 보전하되 나라 이름을 '대부여(大夫餘)'라 하였다.(부여는 알다시피 초대 단군의 네째 아드님의 이름이다. 여기서 우리는 문화사적인 맥락을 상상해볼 수 있다.)

 

그러니까 요컨대 부여는 본래 고조선과 같은 나라인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명심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고조선의 종통은 다름 아닌 부여를 통해 계승되고 있다. 지금의 일제식민사학을 계승한 국사교과서에서는 전혀 관계없는 것으로 맥을 끊어놓고, 수많은 열국들 사이의 종통맥에 대한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데,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대부여도 점점 혼란스러워지자 47대 단군 고열가(高列加)께서는 50여년에 걸친 치세 끝에도 혼란을 걷잡기 힘들자, 5가에 나라를 맡기고 은거를 하시게 된다.(BCE 238) 이로써 삼한관경체제는 막을 내리고, 오가(五加)에 의한 과도기의 공화정이 실시되었다. 이 무렵 종실(宗室)인 해모수가 웅심산(熊心山)에서 일어나(BCE 239) 6년간 계속된 공화정을 철폐하고 단군조선의 대통을 이어 나라이름을 ‘북부여(北夫餘)’라 하였다.(BC 232) 이로써 대부여의 종통은 북부여로 이어졌다. 해모수는 국가 체제를 그대로 보전하고 나라 이름만 북부여라고 한 것이다. 해모수도 '단군'으로 호칭했으므로, 우리는 해모수 단군이라 불러야 한다. 시조단군 해모수가 ‘북부여’라고 나라이름을 정한 데에는 ‘대부여’ 곧 단군의 고조선의 정통정신과 법통을 그대로 계승하였다는 역사의식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면 북부여의 종통은 어디로 갔는가? 고구려로 갔다. 해모수의 둘째 아들 고구려후(高句麗侯) 고진(高辰)의 3대손인 고주몽은 “나는 북부여 천제의 아들이다(我是北夫餘天帝之子)”(광개토대왕비문)하여 강한 북부여 계승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단군의 고조선-북부여-고구려”로 이어지는 한민족사의 국통은 정신적인 정통맥일 뿐만 아니라 혈통줄이 동일한 선영과 후손으로서의 직계조상의 혈맥을 타고 발전해 온 것이다.

 

셋째로, 드라마 주몽에서 보이는 부여는 엄밀히 말해서 동부여이다. 해부루가 다스리는 동부여는 드라마에서 이야기하듯 중국의 전한(前漢)과 국명을 맞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만주 흑룡강성 통하현(通河縣)에 위치하고 있었다. 드라마가 상정하는 그 자리에는 사실 북부여가 있었다.
 

넷째, 고주몽 성제와 결혼한 소서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다. 동부여를 떠나온 고주몽은 북부여의 계통을 잇게 되는데, 그는 북부여의 6대 단군인 고무서 (高無胥)의 둘째 딸, 소서노와 결혼하게 된다. 고무서 임금은 아들이 없고 딸만 셋이 있었는데 둘째 딸을 고주몽에게 시집보냈다. BC 58년, 임금이 죽자 고주몽이 유명(遺命)을 받들어 즉위하여 고구려를 세웠다. 알다시피 소서노는 또한 백제의 시조 온조와 그의 형 비류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드라마에서 나오다시피 거상 연타발의 딸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나라의 국통맥을 치졸하게 끊어놓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연타발(延?渤)은 고구려의 창업공신으로 고주몽을 도와 나라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다섯째, 드라마에서 볼 때 전한이 매우 강성하여 부여 국내에까지 침입하여 노략질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당시 역사적 상황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북부여 초대 해모수 단군이 돌아가실 무렵, 조선의 분국인 번조선은 연나라 추장 위만에 나라를 빼앗겼다. 위만 정권은 불과 3대를 나라를 보전하다가, 손자 우거왕에 와서는 한나라의 침입을 막아내지 못하고 바다로 도망하였다. 이 때 서압록 사람 ‘고두막한(高豆莫汗)’이 의병을 일으켜 한나라 군대를 가는 곳마다 이겨서 민심을 크게 얻게 된다. 고두막한은 고조선의 마지막 임금 고열가의 후손이라 한다. 이후 고두막한은 북부여 4대 단군(고우루)을 이어 단군이 되어, 북부여 제2기를 열게 된다. 그는 호를 동명(東明)이라 하여 흔히 말하는 ‘동명왕’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동명성왕은 고주몽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북부여를 창건한 해모수도 아니다. 고두막한인 것이다. 이 분이 북부여 5대 단군이 되었으며 고주몽의 장인 어른이 된 6대 단군 고무서 단군의 부친이 되시는 분이다. 그러니까 소서노의 할아버지인셈이다. 물론 주몽이 동명부여를 계승하였으므로, 주몽을 동명왕이라고 부를 수는 있을 것이다.

 

고두막한의 태양같은 의기와 충의에 힘입어 사실상 한나라는 조선의 고토에서 힘을 별로 발휘하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한나라가 번한의 땅에 한사군을 설치하려고 하였으나, 고두막한을 필두로 한 민중의 뜨거운 독립운동에 불과 몇십년 만에실패했다. 지금의 국사 교과서는 이 한반도 내 한사군의 존재자체를 부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혹자들이 한사군이 한반도에 설치된 것으로 기술하는 것은 명백히 잘못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