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속에 미래가 있다]
생각하는 리더의 독서론
명사들이 말하는 글쓰기
명사들이 말하는 책읽기
신문에 푹 빠진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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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속에 미래가 있다]생각하는 리더의 독서론
윤송이 박사를 키운 것의 8할은 독서다.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본 영화는 대여섯 편도 안 되지만 집의 책을 다 읽으면 동네 서점, 그 서점의 책을 다 읽으면 시내 대형 서점으로 진출하며 책 탐험을 계속했다. 책 속에서 전 세계를 탐구하던 어린 소녀는 주변을 탄복케 한 천재 과학자가 되었다. 정경택 기자 |
《시대를 개척하고 앞서가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생각이 늘 앞선다. 남보다 더 깊이 생각하고 더 넓게 생각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의 원천은 뭐니 뭐니 해도 폭넓고 깊이 있는 독서라는 게 우리 시대 ‘생각의 리더’들의 한결같은 경험담이다. ‘생각의 리더’들이 들려주는 자신만의 독서론을 들어본다.》
어린 시절 나에게 책 읽기는 고통과 즐거움의 원천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어머니 심부름으로 집 근처 구멍가게를 다녀오던 중 자동차에 정면으로 부딪히고 말았다. 다행히 자동차가 주차하던 중이라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았을 정도로 크게 놀랐던 것이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자동차의 잘못이었다기보다 심부름을 가면서도 읽던 책을 놓고 싶지 않아 책을 읽으며 걷던 나의 부주의 때문에 일어난 사고였다.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책을 손에서 놓고 싶어 하지 않았던 당시의 그 고집은 크고 작은 상처로 이어져 잦은 꾸중을 듣게 했던 고통의 근원이기도 했다.
부모님의 만류와 꾸지람에도 불구하고 그 무렵 나의 주요 관심사는 걸으면서 혹은 밥 먹는 순간에도 책을 계속 읽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고 연습하는 데 있었다. 그 바람에 크고 작은 사고를 자주 일으켰지만 독서에 푹 빠진 시기에 책 읽는 데 방해되는 것을 하나하나 나름대로 해결해 나간다는 데 기쁨을 느꼈던 것 같다. 이 무렵 책 읽는 것이 점차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책 읽기에 푹 빠진 내게, 집에 있는 책은 곧 바닥을 드러냈다. 독서에 대한 열망은, 동네 서점에 비치된 어린이 책까지 모두 읽고 난 후, 결국 시내 대형 서점에 가서 하루 종일 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책을 사오는 일로 이어졌다. 시내 대형 서점 서가에 가득 쌓인 책들 사이로 걷고 또 마음에 드는 책을 찾는 일은 삼림욕장에 간 듯한 편안함과 즐거움을 주는 일이었다. 마치 비밀로 가득 찬 동굴을 탐험하는 탐험가가 된 듯, 서점의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읽을 책을 발견하는 기쁨에 서점을 가는 일이 더욱 잦아졌다. ‘어린이 도서’ 코너에서 더는 새로운 책을 발견하기 어렵게 되었을 때, 서점의 다른 책장으로 한칸 한칸 옮겨 가며 읽을 만한 책을 찾아내는 것은 어린 시절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였다.
그토록 손에서 놓기 싫었던 책의 외형은 한 손에 쏙 들어올 만한 아담한 크기와 무게를 가진 종이 뭉치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몇백 g의 종이 뭉치는, 그 속에 담긴 저자들의 고민과 한숨, 수없이 반복되는 퇴고의 과정을 거친 고뇌의 산물로 단순히 물리적 크기와 무게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더욱이 이런 책들은 내가 직접 만나 보기 어려운 사람들이 수년 간 계속해 온 고뇌의 정수를 전수받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우리에게 주는 가치에 비해 저렴하고 편리한 매체임에 틀림없다.
요즘은 영상 기술의 발전으로 화려한 그림과 입체 음향을 통해 오감을 자극하는 스토리들을 쉽게 접할 수 있어, 책 읽기가 조금 구세대의 유행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일견 따분해 보이는 활자로 가득 찬 책들이 이제 구시대의 것이라는 일부의 평과, 신기술이 도입된 하이퍼텍스트나 인터랙티브 영상매체가 대세라고 말하는 일부 전문가도 있다.
하지만 구세대 매체라는 책에 빼곡히 들어찬 검은 활자에 의해 촉발되는 우리의 상상은 그 어떤 화려한 그래픽보다 더 매력적이고 또 감동적이다. 이 놀라운 현상은 인류의 본능에 활자를 통해 배우고 상상하는 것이 편입된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할 만큼 우리 사고의 깊은 곳에 내재된 능력처럼 여겨진다.
독서로 인한 즐거움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내게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다. 가만히 앉아 주어지는 대로 지식을 받아들이고, 설계된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매력적인 대상을 탐구해 가는 이 느낌은 서재에서 전 세계를 탐구한다는 어느 작가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마음 깊이 깨닫게 해 준다. 꼭 지식을 얻고 암기하고 쌓아 간다는 측면뿐만 아니라 수수께끼를 풀어 가듯 작가의 생각의 끈을 따라 탐험하는 그 행위 자체가 즐거운 것이 바로 독서가 아닐까 한다.
오늘은 집에 돌아가는 길에 서점에 들러 밤새 읽을 책 한 권 골라 봐야겠다. 어린 시절 퇴근길의 아버지가 사다 주신 내 생애 첫 동화책을 받았을 때의 느낌과 주무시는 아버지 곁에서 동화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꼬박 밤을 새우고 나서 느꼈던 그 감동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윤송이 씨 “날 키운 건 8할이 독서”▼
윤송이(31) 박사는 서울과학고를 2년 만에 졸업, 한국과학기술원(KAIST) 수석 졸업,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에서 3년 6개월 만에 박사학위 취득, 29세 때 대기업 상무 등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학력과 경력이다. 이처럼 놀라운 학력과 경력의 배경에는 어릴 때부터 키운 ‘생각의 힘’이 있다. 그리고 그 같은 생각의 힘의 비결은 한마디로 독서라고 한다.
윤 박사는 어릴 때부터 책을 옆에 끼고 살았다.
“제가 태어나서 대학 들어갈 때까지 본 영화는 ‘킹콩’을 포함해 다 합쳐도 5편 정도밖에 안됩니다. 책만 읽었습니다. 당시 출판된 동화책은 거의 모두 읽었어요.”
그가 과학자가 된 것도 독서의 영향이다.
윤 박사의 어머니는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위인전 전집을 사주었는데 위인전 전집의 마지막인 11, 12권이 과학자 편이었다. 에디슨, 아인슈타인, 퀴리 부인 등 유명한 과학자는 모두 등장했는데 이들 과학자 편을 반복해서 읽었다고 한다.
상상력과 탐구심이 뛰어났던 그는 수업시간에 이상한 질문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 당시 선생님은 그에게 바로 정답을 가르쳐 주기보다는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쳤다. 당시에는 인터넷이 없었으니까 그는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책을 찾아서 읽곤 했다.
고등학교 때 특히 수학과 물리학을 좋아했던 그는 대학에 들어가서는 전자공학을 전공했는데 점차 뇌에 깊은 관심을 보이게 됐다. 과학 연구에서도 논리적인 사고력뿐만 아니라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그는 항상 말한다. 그리고 그 상상력의 힘은 독서에서 나온다고 강조한다.
만 24세의 나이에 박사학위를 취득할 때 논문 주제도 ‘감성을 가진 합성캐릭터(Affective synthetic character)’. 합성캐릭터는 인간과 기계의 대화를 중재하는 디지털 존재인데 곧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상품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보다 만드는 걸 더 좋아하는 윤 박사는 스토리를 쓰고 캐릭터를 만드는 등 창의적인 작업에 몰두하기를 즐긴다.
과학 외에도 서예나 바이올린 등 예술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문학 작품 중에서는 중학교 때 읽은 ‘제인 에어’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등의 고전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안기석 기자 daum@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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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속에 미래가 있다]명사들이 말하는 글쓰기
《감각적인 문체와 미학으로 명성을 떨친 작가 김승옥은 오랜 절필을 끝내고 ‘서울의 달빛 0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글은 손이 쓰는 것이다.”
좋은 글을 쓰려면 ‘일단 글을 써야 한다’는 뜻이다. 펜을 쥐고 글을 써 나가다 보면 쓰는 행위 자체가 쓰는 이의 두뇌와 감성을 자극해 새로운 사고와 상상력의 세계를 열어 준다는 것이다.
일본 작가 사이토 다카시는 말하는 것을 걷기에, 글쓰기를 달리기에 비유한 적이 있다. 거리를 조금씩 늘려 가며 훈련하면 누구나 1km는 거뜬히 달릴 수 있듯 글쓰기도 마찬가지라는 것.
글쓰기에도 비기(秘技)가 있을까. 국내 논픽션 분야 베스트 셀러 저자들에게 물어봤다. 체험기가 모두 베스트셀러가 된 한비야 씨, 교양과학 분야 최고 판매 도서 기록을 세운 정재승 씨, 역사 분야의 대중 저술가인 이덕일 씨가 자신만의 글쓰기 방식을 들려줬다.》
○ 쉽고 편안한 말글-‘한비야 체’ 글쓰기
1996년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이후 지난해 말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 이르기까지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이 펴낸 책 7권은 모두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책들은 한결같이 술술 읽히는 쉬운 말글로 쓰였다. 오죽하면 한 고교 국어교사가 신문 사설을 학생들에게 나눠 주고 ‘이 글을 한비야 체로 고치라’는 수업까지 했을까.
그러나 글이 쉽다고 해서 글을 쓰는 과정도 쉽게 이뤄지리라 생각하면 착각이다. 그의 책 세 권을 낸 푸른숲 출판사 김혜경 사장은 한 씨에 대해 “느낌표 하나까지 굉장히 엄격한 완벽주의자”라고 평했다.
한 씨는 글을 쓸 땐 늘 밤을 새운다. 밤새 원고지 100장을 넘게 쓴 뒤 아침에 마음에 들지 않아 5장만 남기고 모두 버린 적도 있다. “머리를 벽에 100번 찧어 좋은 글 한 줄 얻을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 글쓰기를 대하는 그의 기본 태도다.
그는 매일 쓰는 일기와 메모로 글쓰기의 기본을 닦았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긴급구호 현장에서도 빼먹지 않은 일기를 토대로 썼다. 디지털카메라를 갖고 다니는 사람이 첫 번째 목련을 보면 저절로 카메라에 손이 가듯 그는 저절로 메모장에 손이 간다고 한다.
글을 멋지게 쓰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글을 잘 쓰려면 미사여구, 유식한 단어를 써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 책엔 초등학생이 모르는 단어가 한 개도 없다. 그렇게 쉬운 단어로도 얼마든지 책을 쓸 수 있다.”
다 쓴 글은 꼭 소리 내어 읽어 본다. “글은 노래이자 이야기이자 호흡이다. 나와 독자가 호흡이 맞으려면 소리 내서 읽을 때 껄끄러운 표현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조다.
그에게 ‘일필휘지’란 없다.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뒤 교정지가 나올 때마다 빨간 펜으로 하도 많이 고쳐 ‘딸기밭’이라고 부를 정도다. 원고가 인쇄소로 넘어가기 직전에도 밤중에 달려가 고치고 책이 나온 뒤 2쇄, 3쇄를 찍을 때도 계속 고친다.
한 씨는 해마다 ‘1년에 100권 읽기’를 하는데 긴급구호로 오랫동안 외국에 나가 있지 않으면 대부분 초과 달성하는 편이라고 한다. 그는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들이 ‘진부하지만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조언 하나를 들려줬다.
“진심을 갖고 써라. 제발 단 한번만이라도 나에게 가슴 뛰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라. 그리고 그것을 글로 써라.”
○ 전방위적 호기심과 독서-정재승 식 글쓰기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시스템학과 교수가 쓴 ‘정재승의 과학콘서트’는 2001년에 출간된 뒤 지금까지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교양과학 도서다. 이 책을 펴낸 동아시아출판사 한성봉 사장은 정 씨에 대해 “전방위적 호사가”라고 평했다. 다방면에 걸친 지식과 호기심이 그의 글이 지닌 가장 큰 강점이라는 평가다.
한 달에 40∼50권을 훑어보고 10권가량은 꼼꼼히 읽는 정 씨는 “좋은 글을 쓰려면 독서가 필수”라고 생각한다.
“독자가 쉽게 이해하도록 글을 쓰려면 적절한 예제, 딱 맞는 비유, 핵심을 꿰뚫는 인용 등 세 요소가 중요하다. 좋은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이 세 요소 없이 생각을 추상적으로 전개하거나 중언부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세 요소는 다른 사람의 글을 충분히 읽지 않으면 도저히 구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칠 때 문단 단위로 연습하기를 권한다. 문단은 생각의 단위이고 한 문단에 하나의 생각을 담아야 하는데 한 문단에서 여러 이야기를 하거나 한 이야기도 끝마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 문단을 잘 구성하기만 하면 연결고리를 통해 다른 문단과 이어가고 글쓰기를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글쓰기 전 밑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중요하다. “밑그림을 그리지 않고 곧바로 글을 쓰다가 처음 의도와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시작은 어떻게 하고, 각 문단은 어떤 내용을 담을지 밑그림을 먼저 잡고 글을 쓰면 더 잘 써진다.”
한번 글을 쓰면 반드시 20번쯤 읽는다. “산문에도 운율이 있으므로 독자가 한번에 이해하도록 쓰려면 필자가 아주 작은 운율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글쓰기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의 공통점은 ‘남의 글을 충분히 읽지 않고 글 쓰는 연습을 많이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 시각과 문제의식의 단련-이덕일의 글쓰기
어마어마한 생산량인데도 이 씨는 “쓰는 행위 자체가 큰일은 아니다. 글쓰기에서 글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제의식을 다듬어 주제를 구상하고 자료를 분석하며 생각을 숙성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책 3권을 펴낸 출판사 김영사의 백지선 팀장은 ‘도발적 문제의식’을 그의 글이 지닌 강점 중 하나로 꼽았다. 역사가가 보는 자료라는 게 새로울 것이 없는데도 다양한 자료의 비교분석을 통해 새로운 진실을 발견해 내는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것.
글 쓸 주제를 고를 때 이 씨는 “내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을 독자도 알고 싶어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고른다”고 했다. 그는 글을 잘 쓰려면 개방적 세계관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변화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변화를 수용해야 새로운 문제의식이 생기며 문제의식을 갖고 보면 같은 자료에서도 계속 새로운 게 보인다.”
치열한 문제의식을 글로 옮기려면 문장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 씨는 “문장력을 기르는 방법은 많이 보고 많이 써 보는 것 말고 왕도가 없다”고 했다.
“요즘 논술 준비 광고를 보면 논술 공부가 문장 공부인 것처럼 광고하는데 문장은 자기 생각을 펼치는 도구에 불과하다. 더 중요한 것은 글에 담긴 생각, 논리다.”
책을 그렇게 많이 썼지만 여전히 1000장짜리 책을 쓸 때 원고지 200∼300장을 버리는 일이 다반사라고 한다. 아무리 많이 해도 더 수월해지지 않는 일이 글쓰기인 까닭이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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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속에 미래가 있다]명사들이 말하는 책읽기
《우리 시대 대표적인 책벌레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도대체 어떻게 책을 읽느냐고. 비슷한 대답이 쏟아질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독특한 방식으로 책을 고르고, 읽고, 갈무리했다.
어떤 이는 집중적으로 몇 시간을 투자해 한 권을 읽었고, 어떤 이는 틈틈이 시간을 쪼개 여러 권을 나눠 읽었다. 어떤 이는 책을 읽었다는 흔적을 남기는 것을 싫어했고, 어떤 이는 서슴없이 책을 찢기도 했다. 어떤 이는 책의 주요 내용을 적어 둔 메모상자를 활용했고, 어떤 이는 낭독하거나 대화 중에 섞어 넣는 등 몸으로 책을 읽었다.
책 읽는 개성은 달랐지만 그들의 결론은 같았다. 책은 지식을 얻는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며 책은 꾸준히 읽다보면 그 학습 효과가 기하급수적으로 배가된다고.》
○ 이미지맵을 통한 입체적 독서-시인 장석주
신문 서평을 읽거나 제목과 필자를 보고 직관적 판단에 의존해 책을 고른다. 온라인 서점에서 책의 목차를 훑어보고 주로 인터넷 주문으로 1주일에 15권가량 구입한다. 온라인으로 책을 사지만 실망한 확률은 20권에 1권꼴밖에 안 된다. 하루 한 권 이상은 꼭 읽으려 한다.
한번 책을 잡으면 3시간 이상 집중적으로 읽는다.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속독을 배우지 않고도 단어가 아니라 덩어리로 읽는 버릇이 생겨 이론서도 1시간에 60쪽 이상의 속도로 읽는다. 책에 대한 결벽증이 있어 메모도 하지 않고 줄도 치지 않는다.
다만 책을 읽을 때 머릿속에 직육면체의 공간을 상상하고 읽어 가면서 깨달은 내용을 그 안에 배열하는 이미지맵 독서를 한다. 이런 입체적 독서를 하다 보면 책을 읽다가 앞으로 되돌아가서 읽을 필요가 없다. 다만 쉽게 이해하기 힘든 책은 책장 가까이 두고 읽고 또 읽는다.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가 쓴 ‘천 개의 고원’이 그런 경우로 완독만 5번 했고 부분적으로는 거의 매일 읽는다. 노자의 ‘도덕경’은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국내의 거의 모든 역주본을 찾아서 읽지만 읽을 때마다 좋다.
○ 메모함을 이용한 DB독서-출판평론가 표정훈
매주 서너 개 신문의 서평을 샅샅이 읽고, 온라인 서점의 신간 코너를 두루 검색해 구입할 책 목록을 작성한다. 책 구입은 반드시 오프라인 서점을 방문해 책의 ‘신체적 건강 상태’를 점검한 뒤 결정한다. 한 달에 대략 30권의 책을 구입한다.
책을 읽을 때는 중요한 부분, 필요한 부분만 찾아 읽는 ‘스킵(skip) 독서’를 많이 한다. 서문, 목차, 찾아보기 등을 먼저 훑어보고 무작위로 펼쳐서 읽다 보면 내게 필요하고 중요한 부분이 저절로 찾아진다. 꼼꼼하게 정독할 필요가 있는 책은 한두 달이나 그 이상에 걸쳐 조금씩 읽어 나간다. 이런 책들은 한약방 약상자처럼 언제든 꺼내 볼 수 있게 가까운 책장에 꽂아 놓고 본다. 책을 읽으면서 어떤 페이지에 어떤 주제의 내용이 있다는 것을 메모지에 적어 두고 주제별 메모 상자에 넣어 둔다. 카페에서 잡지를 읽다가도 좋은 구절이 나오거나 TV 교양프로를 보다가도 좋은 말이 나오면 메모해 뒀다가 이 메모 상자에 보관한다. 독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에게서 배웠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실용서는 아예 필요한 페이지를 찢어서 별도의 파일 형태로 보관하다가 새 책을 한 권씩 만들기도 한다. 요즘은 소장서적 1만3000권의 서지사항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있다.
○ 몸으로 읽어라-고전연구가 고미숙
연구실(연구공간 ‘수유+너머’) 식구들이나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책을 빌려 읽거나 필요할 때는 인터넷으로 구매한다. 집필을 위해 읽는 책과 매일 반복해 읽는 경서(동양고전)를 빼고 일주일에 최소 두세 권을 읽는다. 일반 책을 읽을 때는 이해 못하는 부분은 그냥 건너뛰면서 단숨에 쭉 읽는다. 필요하면 줄도 많이 치고 여기저기 메모도 하면서 거칠게 읽는다.
책에 대한 집착이 없어 쉽게 빌려주고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책으로부터 지식이나 정보를 얻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책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해 주고 내 몸을 바꿔 주는 통로일 뿐이다. 경서를 읽으면서 터득한 것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읽으라는 것이다. 예전에 소리 높여 낭독하게 한 것은 교육의 현장감과 신체적 교감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낭독은 기운을 소통시키고 읽다가 막힌 부분을 뚫어 주는 마력이 있다. 요즘 책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으면 일부러 소리 내 읽다 보면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특히 청소년에게는 낭독을 통한 독서를 권한다. 또 책에서 읽고 깨친 부분이 있으면 일상의 대화나 토론 현장에서 그 내용을 끊임없이 응용할 때 비로소 내 것이 된다.
○ 책에 대한 엄숙주의를 깨라-경영저술가 공병호
매년 한 해 동안 얼마의 책을 읽을 것인지 수량 목표를 설정한다. 작년에는 300권을 목표로 했는데 380권을 읽었다. 올해는 500권을 목표로 삼았다. 새 책을 읽을 때마다 꼭 500권 중에 몇 권째임을 기록해 둔다. 한 달에 두 번씩 오프라인 서점을 찾아 정신없이 바쁘게 책을 고른다. 책을 잡으면 목차를 보고 중요한 부분부터 찾아 읽는다. 정독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앞에서부터 차례로 읽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면 발췌 독서로 충분하다. 이제는 센서 기능이 발달해서 내게 필요한 부분만 잘 찾아 읽게 됐다.
책에 대한 엄숙주의를 버려야 한다. 돈 내고 내게 필요한 지식을 사는 것이다. 예전엔 책을 읽다 필요한 페이지는 과감하게 반을 접어서 언제든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요즘에는 책을 읽고 맨 앞 페이지에 사용가치가 있는 아이디어, 사례, 키워드가 담긴 페이지를 메모하는 방식을 택한다. 또 책을 연속적으로 읽지 못하고 틈틈이 읽기 때문에 마침내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20∼30분의 시간을 들여 메모한 주요 내용을 복습한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일이 손에 안 잡힐 때 남들은 술을 마시지만 나는 몇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책을 읽는다. 피터 드러커에게서 배운 휴식 방법이다.
○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라-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
아마존닷컴과 반스 앤드 노블 등 해외 온라인 서점의 실시간 베스트셀러 목록과 독자들의 서평을 참고해 온라인으로 구매한다. 특히 맬컴 글래드웰, 짐 콜린스, 토머스 프리드먼, 존 그리셤처럼 좋아하는 필자의 책은 바로 구매한다. 주로 경영 관련 서적이 주를 이루는데 한국에 있을 때도 번역돼 나오는 것을 참기 힘들어 원서로 읽었다.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보기보다는 한 권의 책을 집중적으로 본다.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해 틈틈이 읽는 경우가 많다. 승강기를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기도 하는데, 몇 년 전까지 입주했던 회사 건물의 승강기가 느려서 한 달에 한두 권은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절대로 요약본은 보지 않는다. 책의 대강의 줄거리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저자의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자신의 지식이나 현재의 상황과 대비하면서 사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이 읽는 것도 좋지만, 능동적으로 생각하면서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을 때는 그 부분에 집착하기보다는 다음에 같은 분야의 다른 책을 읽는다. 다른 표현 방식과 다른 관점으로 설명을 하는 것을 읽고 있노라면, 그 전의 책에서 이해가 안 가던 부분도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때가 많기 때문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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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속에 미래가 있다]신문에 푹 빠진 아이들
만 6세 때부터 써 온 신문일기를 펼쳐 보고 있는 박민지 양(왼쪽). 한글을 막 깨친 동생 예지(오른쪽)에게도 언니의 일기장에 ‘예지 생각’을 적어 넣는 것은 즐거운 놀이가 됐다. 안철민 기자 |
3월 9일. 어린이동아에 공병호 박사의 인터뷰 기사가 났다. 부자는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가치를 제공하고 부를 얻는 사람이라고 했다. 가치와 제공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3월 10일. 얼짱 선생님이 쓴 글을 읽었다. 선생님과 학생들이 꼭짓점댄스를 추어 울상이 된 기준이를 웃게 했다. 새 학기가 시작돼 나도 서먹서먹한데 선생님 말씀대로 (친구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겠다. 그런데 꼭짓점댄스가 뭘까?’
박민지(10·인천 경인교대부설 초등학교 4년) 양은 매일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이렇게 일기를 쓴다. 신문에서 읽은 기사를 소재로 자신의 느낌을 정리하는 ‘신문 일기’다. 초등학생이 되기 전부터 쓰기 시작한 수십 권의 신문 일기는 민지의 보물 1호다.
○“신문으로 일기 써요”
세 돌이 지날 즈음 한글을 깨치고 엄마가 냉장고에 오려 붙여 둔 신문 기사를 까치발을 디뎌 가며 읽었다는 민지. 엄마 공미라(36) 씨는 민지가 다섯 살이 되자 ‘어린이동아’ 구독을 신청했고 그 후 지금까지 민지의 하루 일과는 아침에 현관에 배달된 신문을 주워 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신문을 읽으며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을 오려 붙이고 노는 민지에게 엄마는 6세가 되던 해 ‘신문 일기’를 쓰게 했다.
‘어린이동아’나 부모가 보는 ‘동아일보’에서 재미있게 읽은 기사를 오려 붙인 뒤 내용을 요약하고, 모르는 단어의 뜻을 찾아 적고, ‘내 생각’을 써 넣는 형식이다. 유치원생인 동생 예지(6)도 한글을 깨치자마자 서툰 글씨로 언니의 일기장에 자기 생각을 적어 넣는다.
과자 속에 든 식품첨가물이 아토피를 앓고 있는 어린이들의 증세를 악화시킨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고 자매는 이렇게 연필로 꾹꾹 눌러 써 가며 자기 생각을 표현했다.
“신문 기사 보고 깜짝 놀랐다. 나도 사탕 아이스크림 과자 껌을 안 먹고 야채만 먹고 건강에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을 먹을 것이다.”(민지)
“나도 아토피야. 손이 간지러 사탕 초콜래(초콜릿) 이제는 암머거(안 먹어).”(예지)
황사철 식생활을 안내하는 기사를 읽은 자매.
“황사 바람은 왜 우리를 공격할까. 중국이 힘이 없을 때 우리가 괴롭혔기 때문일까.”(민지)
“황사 너무 시를(싫을) 거야. 나는 햇볕이 조아(좋아).”(예지)
엄마는 민지가 폭넓게 사고하도록 자매가 쓴 일기에 ‘엄마 생각’이라는 ‘댓글’을 달아 놓기도 한다.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안현수, 진선유 선수가 한국의 첫 올림픽 3관왕이 됐다는 기사에 민지는 “금메달을 3개씩이나 따냈다…. 일본이 막 괴롭혔는데 난 이제 안 부끄럽다”며 흥분했고 엄마는 차분하게 댓글을 달아 놓았다.
“민지야. 1등을 하는 것도 좋지만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우승을 하면 더욱 값진 결과가 되겠지. 엄마는 최고가 되는 것보다는 민지가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생각거리와 해결 능력을 동시에 주는 신문
민지는 신문으로 놀고, 신문으로 글쓰기 공부를 하고, 신문으로 한자 공부를 한다. 기사의 문장을 요약하고, 신문에 난 한자를 따라 쓰고 예문을 적는다. 덕분에 전국한자능력검정시험에서 7급 자격증을 땄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독서논술경시대회에서 ‘비판력 우수상’을 받았다.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을 배울 수 있어서 좋다”는 것이 민지가 꼽는 신문의 장점이다.
그러나 ‘신문 일기’는 사실 배움의 시작인 경우가 많다. ‘무마’ ‘비즈니스’ ‘공공영역’ 등 기사에는 이해하기 힘든 단어로 가득 차 있다. 때로는 사전으로도 해결하지 못할 문제들과 맞닥뜨린다. 굶주림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기사를 읽고는 생각 끝에 “밥을 남기지 말자”는 해답을 찾아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지구온난화 탓이라는 기사를 놓고 민지는 엄마와 상의 끝에 에너지대안센터라는 시민단체를 찾아 체험학습을 하고 매월 용돈의 10%인 3000원을 이 단체에 기증하고 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여러 문제와 마주치게 되지요. 민지가 어떤 문제에 직면하더라도 자기 식으로 이해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가졌으면 해요. 신문은 언제나 문제점을 많이 던져 주니까 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겠지요.”(엄마)
신문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민지에게 기사를 직접 쓰고 싶지는 않으냐고 물었다.
“훌륭한 사람이 돼서 신문에 나오고 싶어요.”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2006-04-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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