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도서

안 식

북코치 2007. 5. 4. 09:13

 

 

[북멘토 북리뷰]

기독교에서는 안식일에 대한 개념을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더구나 기독교에서 안식일은 더 이상 지키지도 않는 날이며, 그 날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안식을 완성과 함께 그 날에 우리에게 더 이상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는 까닭은 안식일이 ‘율법적’ 혹은 ‘율법주의’라는 측면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안상홍증인회의 안식일을 차용한 세 확장 등 이단들이 주로 안식일을 이용한 포교를 한다는 점에서 안식일에 대한 인식은 우리를 안식일에 대한 생각을 불쾌하게 여기에 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 다른 측면에서 안식일을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거룩한 날’로 구별하셨기 때문이다. 유대교적 혹은 율법적인 안식일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이 안식일을 거룩하다고 하셨고, 예수님은 그 날을 완성하셨지 결코 폐기하거나 무용한 것으로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 헤셀의 <안식>은 우리에게 안식일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보여준다. 저자는 유대교신학자이면서고 기독교에서 그의 글이 자주 인용되는 학자이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그의 글이 인용되는 까닭은 그의 신학적 통찰이 기독교에서 긍정할 수 있는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안식일 혐오에서 벗어나야

헤셀의 <안식>은 유대교에서 말하는 율법적, 혹은 행위중심의 외적인 것과 다른 차원의 안식일을 분석하고 있다. 그는 안식일의 접근은 안식을 혐오증을 벗어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가 다시 안식일을 지키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존에 우리가 부정적인 시각으로 접근했던 안식을 다시금 보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통찰이라는 점이다. 그렇지만 그의 한계는 안식일이 구약에 머물러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헤셀의 안식일을 되짚고,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안식일은 이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이 현존, 인간의 영혼에 개방된 하나님이 현존‘이라고 말한다. 안식인은 결코 세속적이지 않으며 매우 영적이라는 것으로 구별한다. 여기서 세속적인 것과 영적인 구별은 이원론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구별로서 보는 나눔이다.

 

헤셀은 6일이라는 날은 인간이 열심히 일해야 하는 날이며, 이날은 공간을 점유하는 인간의 날이라고 규정한다. 인간은 이 공간에 모든 개념의 상을 만들어 채우려 하고, 심지어 하나님까지 이 공간에 넣으려는 시도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공간을 뛰어넘는 초월적이면서도 영원적인 분으로 안식일을 통해 당신의 거룩성을 나타내신다.

 

안식일은 쉬는 날인가? 일주일 동안 부지런히 쉬고 하루는 일하지 않고 쉼을 통해 몸을 회복시키는 날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헤셀은 이런 생각에 대해 분명히 거부한다.

 

“성서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에게 노동은 목적을 향해 가는 수단일 뿐이다. 수고를 접고 쉬는 날인 안식일은 잃어버린 기력을 회복하기 위해 존재하는 날이 아니며,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상태가 되기 위해 존재하는 날도 아니다. 안식일은 생명을 위해 있는 날이다.”

 

평일이 안식일 위해 존재

헤셀은 평일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지 안식일이 평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이렛날 쉬셨고 그 날을 복되게 하셨으며, 그날을 거룩한 날로 삼으셨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통해 인간은 하나님과 친해지고, 하나님을 닮은 것에 닿기를 갈망하게 된다. 헤셀이 말하는 안식일은 그날 아무 일을 하지 않는 것에 율법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예수님이 지적한 것처럼 안식일의 준수에 대해 “사람의 목숨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조금이라도 생명이 위태로울 때는 모든 금지 계명을 무시해도 된다”라고 말한다.

 

정신이 없는 규범에 매인 금지조항 중심의 안식일은 천박하다는 것이다. 영혼과 정신, 그리고 육체 모두가 그 날을 거룩하고 기쁘게 할 필요가 있다. 헤셀은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준수를 통해 세계 창조를 경축하고, 일곱째 날 시간 속에는 거룩한 왕, “안식의 날, 자유의 날”, “다른 모든 날의 주인이자 임금”인 날, 시간이라는 나라의 주인이자 임금인 한 날을 또다시 창조하는 것이 안식일이라고 말한다.

 

“안식일과 평일의 차이는 시간이 차원, 우주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창조보다 우위에 있으면서도 창조를 완성한 것이 바로 안식일이다. 안식일은 이 세계가 경험할 수 있는 전부다.”

 

헤셀이 인식하는 안식일은 “영혼을 고귀하게 하고 육체를 슬기롭게 하는 날”이다. 그는 안식일의 영원성과 함께 완성으로 보고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 가운데 이루어지는 완성은 결국 안식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영원한 사귐이다. 헤셀은 유대교 학자로서 거기까지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안식일은 율법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과의 친밀하고 영원한 관계를 맺는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자유를 위해 떼어 놓은 한 날

헤셀은 안식일을 자유를 위해 떼어 놓은 한 날이라고 정의한다.

“자유를 위해 떼어 놓은 한 주의 한 날, 곧잘 파괴의 무기로 둔갑하는 도구들을 사용하지 않는 날, 자신을 돌아보는 날, 속된 것을 멀리하려는 날, 형식적인 의무에서 벗어나는 날, 기술 문명의 우상들을 숭배하지 않는 날, 기술 문명의 우상들을 숭배하지 않는 날, 돈을 쓰지 않는 날, 이익을 얻고자 동료 인간 및 자연 세력과 싸우다가 휴전하는 날, 그 날이 바로 인식일이다. 안식일만큼 인간의 진보에 큰 희망을 주는 제도가 있는가?”

 

헤셀의 안식일은 인간의 성가신 문제를 풀기 위해 안식일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문명으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이것은 완전분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즉 평일을 아예 무시하거나 문제시 하는 것이 아니라 6일과 하루의 밀접한 관계 가운데 독립된 어떤 것을 추구하는 것으로 안식일을 보고 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6일 다음 존재하는 막간의 날이 아니다.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헤셀은 안식일을 “아래 있는 것과 위에 있는 것을 하나 되게 하는 분위기에 참여하는 날”로 인식한다. 그의 이런 통찰은 그리스도께서 이 날에 하나님 나라를 끌고 내려오시고, 그 완성을 하시는 것을 연상하는 참된 안식의 완성을 연상하게 한다. 그래서 헤셀은 그런 그리스도의 계시적 안목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식일에는 너희 모든 일이 완성되었듯이 안식하라”고 권면하는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안식일의 거룩성이 결코 평일의 세속적 폄하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헤셀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6일의 최선의 삶을 하늘 이쪽 세계에서도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6일의 공간은 안식일의 신부를 맞이하기 위한 최고의 헌신인 것이다. 이스라엘의 운명은 바로 신성한 날의 신랑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안식일의 신부를 맞이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안식일이 아무리 숭고해도 그 자체로서 충분하지 않은 것은, 신부가 신랑을 필요로 하듯이 안식일은 그 백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안식일의 여적 실재는 인간과의 교제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계약 체결

신약에 와서 안식일은 그 주인이신 그리스도 신부가 새로운 자녀(백성)을 맞아 영원히 함께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완성된 안식 안에서 모든 날을 안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의 종말론적 완성이 바로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헤셀의 안식은 구약에서 머물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안식은 궁극적인 오늘날의 주일의 해석을 기독교인의 안목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안식일은 인간에게 뜻 깊은 날이면서 하나님에게도 뜻 깊은 날이다. 안식일은 하나님과 인간 모두에게 관계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 곧 양자가 계약을 체결했다는 표시다. 무엇이 그 표시인가? 하나님께서 그 날을 거룩한 날로 삼으셨고, 인간은 그날을 거듭 성화하고, 자기 영혼의 빛으로 그날을 빛내야만 한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하지만, 인간이 부여하는 거룩함도 필요로 한다.”

 

헤셀은 안식일을 신부로 지칭한 개념은 의인화가 아닌 신적인 속성을 예시한 것으로 하나님이 인간의 사랑을 필요로 하신다는 것을 예시한 것이라고 말한다. 즉 하나님의 현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유대인들이 말하는 안식일 준수의 한 계명을 이해하는 기법 그 이상이다. 헤셀의 이런 안식일 인식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이 안식일에서 옮겨진 것으로, 안식일적 주일 준수의 오류를 범하는 것에 일침을 가하는 통찰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리스도인들 중에 일부는 주일을 안식일처럼 지키려고 한다. 가게에서 물건을 사지 않거나, 노동을 전혀 하지 않는 것 등등 안식일의 일부 규정을 주일에도 그대로 적용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안식일은 이런 차원을 뛰어 넣는 하나님과의 관계이며 주일은 구약의 안식일보타 더 나아가고 완성된 그리스도의 날이다.

 

우리는 안식일의 거룩성과 경건성은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완성된 개념으로 주일의 황홀함과 자유함을 누려야 한다. 그러나 그 자유는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지 방종은 절대 아니다. 안식일은 영원한 한 날을 지향하고, 헤셀은 그 영원한 한 날을 “그분만이 우리의 하나님이시고, 우리 이스라엘은 그분의 백성”이라고 고백한다. 이런 고백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새로운 백성 가운데 계시된 완성된 ‘그 날’의 하나님과 연합 가운데 토해낼 고백이다.

 

영생을 맛보는 날

<안식>에서 헤셀은 유대교 전통에서는 영원의 정의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간 속에서 영원 내지 영생의 맛을 경험할 수 있는지 설명한다. 여기서 영생은 사후의 상태에서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심겨져 있는 영원한 안식이다. 그러므로 헤셀이 인식한 안식은 영원이다. 이 영원은 영생을 맛본다. 또한 안식은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한다.

 

“온통 안식일뿐인 그 때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때는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세속적인 거래도 없는’ 때이자, 의인이 면류관을 쓰고 앉아서 존경을 받으며 세키나(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을 누리는 때다.”

 

헤셀은 시간 속에서 영원 내지 영생의 맛을 경험할 수 있는 안식일을 고찰한다. 그래서 그는 안식일은 “내세를 미리 맛보라고 주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시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영“으로서 안식일은 정상을 향해 상승하고, 시간을 성화하고, 선을 성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속된 짓을 삼가고 성스러움을 볼 기회를 제공한다.

 

헤셀은 안식일에서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다. 9장의 ‘시간 속의 거룩함’에서 헤셀은 “시간 속의 순간이야말로 메시아의 마지막 때다. 모든 사람의 일치를 회복하고자 하는 소망은 그 때에 성취된다”라고 말한다.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는 장소가 아니라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임재가 예루살렘에 국한되지 않듯이 안식일을 통한 메시아의 고대 속에 헤셀은 일곱째 날은 제물이 필요치 않는 안식일 자체의 거룩함을 바라보고 있다. 그가 안식일의 완성과 평안, 그리고 영원과 완전성의 고찰 함께 메시아를 고대하지만, 그 메시아가 곧 예수라는 차원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은 아쉽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는 헤셀의 안식일 고찰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우리는 구약의 안식일을 율법적 차원에서 바라보고, 경시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거룩하게 한 날을 율법적인 눈으로 보지 않고 그 날의 신비를 바로보고 해석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책무이다. 그런 점에서 헤셀의 <안식>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안식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틀을 갖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비록 유대인의 학자이인 헤셀이 안식일에 대한 지평이 편협하지 않고, 신약의 어떤 것과 공존할 수 있는 여지는 보여주는 식견에 놀라움과 고마움을 느꼈다. 안식일은 예수님께서 그 주인으로써 완성하셨다. 우리의 종말론적 성취는 그분의 재림으로 말미암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이미 완성하신 그리스도의 안식 안에서 주일을 신부와 신랑의 혼인잔치의 날로 기념하고 즐기며 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뻐한다. <안식>은 그런 주일의 지평을 볼 수 있게 하는 출발이라는 점에서 기독교인들이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한국양서보급중앙회 북멘토&북코치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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