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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실록서 찾은 조선사회 뜻밖의 사건들

북코치 2008. 5. 2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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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기담
이한 지음 | 청아출판사

[북멘토]역사를 둘러보면서 기록이 남아 그것을 살필 수 있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많은 기록이 있을 것 같지만 필요한 자료를 찾아보면 그 기록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 역사 공부를 할 때의 어려움이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참으로 다행스런 것은 우리나라의 옛 사람들은 기록을 상당히 중요시 하였던 것 같다.

특히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정도로 우리의 중요한 기록문화이다. 중국이 자랑하는 ‘이십오사(二十五史)’도 유네스코에 오르지 못해 배아파하고 있는 현실이고 보면 우리의 기록유산이 더욱 자랑스럽기 그지없다.

저자는 이러한 기록문화유산을 꼼꼼히 살펴 15세기 조선과 21세기 현대를 차분하게 이어주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역사의 본의를 현대에 되살려 흥미로운 사실들을 엮어감이 우리의 입맛을 다시게 한다. 물론 여기서도 우리의 관심은 역시 의학일 수밖에 없는데, 다행히도 한 가닥 끼워놓아 우리의 흥미를 돋운다.

왕조실록에서 의학과 관련된 사항을 찾자면 몇 권의 책으로 엮어낼 정도로 많지만, 여기서는 특이하게도 인육(人肉)을 치료의 수단으로 삼은 사례를 뽑아 ‘사람의 간과 쓸개는 명약이 되니’의 편으로 엮어놓았다. 물론 기담(奇談)이라는 특성 때문에 그러하기도 하겠지만, 당시의 상황이 이러한 지경에까지 이르러 있음이 참으로 끔찍스럽다.

그것도 창질(瘡疾)이나 나질(疾)에 쓰였다는 기록인데, 근거없는 소문에 나라가 어지러울 정도였다는 것이 안타깝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이기에 그 효능에 관해서 궁금함이 일기도 하지만 결과적인 얘기가 없다. 달리 생각하면 사회적 질서와 국가적 안녕의 차원에서라도 당연한 결과겠다.

물론, 이 땅의 어떤 의서(醫書)에서도 인육을 쓰는 경우가 없었지만, 창질은 물론이고 나질에 관한 치방(治方)도 대풍창(大風瘡)이라 하여 상세한 치료법이 전해지고 있으니, 국가적 차원에서도 결코 그냥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질에 관해서 ‘조선왕조실록’에 5~6군데 실려 있는데 특히나 문종(文宗) 1년(1451) 4월의 기록은 제주목사(濟州牧使)로 있었던 기건(奇虔)이 나병치료를 한 것이어서 흥미롭다. 그에 관한 기록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기건은 이사(吏事)에 조금 익숙하고, 여러 사서(史書)를 즐겨 보았다. 일찍이 제주 목사로 있을 적에 사람들이 나질이 많았는데, 비록 부모와 처자일지라도, 또한 서로 전염될 것을 염려하여 사람 없는 땅으로 옮겨 두어서 절로 죽기를 기다렸다.

기건이 관내를 순행하다가 바닷가에 이르러 바위 밑에서 신음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서 보니, 과연 나병을 앓는 자였다. 그 까닭을 물어 알고서, 곧 구질막(救疾幕; 질병을 구치하기 위한 막사)을 꾸미고, 나병을 앓는 자 1백여 인을 모아 두되, 남녀를 따로 거처하게 하고, 고삼원(苦蔘元)을 먹이고 바닷물에 목욕을 시켜서 태반을 고치니 그가 체임(遞任)되어 돌아올 때에 병이 나은 자들이 서로 더불어 울면서 보냈다.”

감격의 순간들이 표현되어 있음도 이채롭지만, 오늘날 한센씨 병으로 불려지고 있는 나환자촌의 관리를 생각하면 구질막의 설치나 나병환자의 별도관리가 주목할 만하며, ‘향약집성방’에서부터 비롯하여 ‘동의보감’에서도 보이는 대풍창에 관한 ‘고삼원’의 처방도 오늘날 재검토하여 우리 의학의 효능을 드높일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