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교회의 역사적 개관 2
초대교회의 모습
"초대교회의 모습을
시각화하기란 쉽지 않다.
확실히 그것은 오늘날의 그것과는
너무도 판이하게 달랐다.
그 때엔 예배당 건물도 없었고
교회 내에 계층도 없었고
신학교도 없었고
기독교 대학도 없었고
주일학교도 없었고
성가대도 없었다.
오직 작은 무리의 신자들
...작은 교제 모임만이 있었다.
처음에는 신약성서조차 없었다.
신약성서 그 자체는 이 교제의
원인이라기보다 오히려 교제의 결과였었다.
신약성서중 최초로 씌여진 책들은
그 작은 교제의 모임들이 당면한
어려운 문제들, 위험, 시험 따위 때문에
그들에게 보내진 편지들이었다.
그들이 가졌던 것은 교제 모임뿐
그 어떤 것도 아니었다.
지위도, 명예도, 영광도 아닌....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지위도 없었으나
그들 가운데는 신비한 능력이 있었고
그 신비한 능력은 그들이 서로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부터 연유한 능력이었다."
Elton Trueblood, The Yoke of Christ, p. 25.
신약교회의 이중구조
제 1 세기의 신약교회는 다음과 같은 이중구조 속에서
교회로서 기능을 발휘했다:
함께 모이는 "연합모임"의 구조
"모든 교회"로서
"회중"으로서
"성전"에서 모였다
"흩어진 교회"로서의 구조
"가정 교회"로 모였고
셀 그룹으로 모였으며
가정마다 모였다
의문사항:
이러한 셀-회중 구조 형태는 모든 교회를 위한 것인가?
이러한 교회의 이중구조는 오늘날에도 유용한 것인가?
주일에 건물을 중심으로 모이는 교회는 아니오!라고 한다.
* 신약성서 시대 교회의 소 그룹들은 "문화적 상황 속에서 생겨난" 한 방법일 뿐 이다
* 셀 그룹으로 모인 신약교회는 "Sitz im Leben"일 뿐이다.
* 소 그룹으로 나뉘어져 모인 것은 초대교회 시대에 적합한 방법이었으나 21세기 에 돌입한 오늘날의 상황에는 적합한 형태가 아니다.
* 주중에 소그룹으로 나뉘어 모이는 것 없이 주일날 모이는 전통적 교회가 그리 스도께서 처음부터 의도하신 교회 형태이며 오늘날도 여전히 진정한 형태의 교 회이다.
* 셀 그룹 형태 교회는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는 더 이상 적합치 않다.
셀 그룹 형태 교회는 예!라고 한다.
* 신약성서에 나타나는 소 그룹 공동체는 "모든 시대와 상황 속에 적용되는 원 리"이다.
* 그 것이 교회의 본질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
* 소 그룹으로 흩어져 모이는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1세기나 21세기 모두의 경우 그 분의 교회를 세우시는 방식이다.
* 20세기 교회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몸이 되기 위하여 반드시 현재의 주일날 건 물 중심으로 모이는 교회 형태에다 셀 공동체 구조를 회복해야 한다.
가정 셀 그룹 교회의 관련 성구들
교회 생활을 가정 중심으로 재 편성하는 개념은 전 교회역사를 통해 계속 옹호되어왔다. 누가의 기록에 따르면 기독교 운동의 시작 때로부터 초대 교인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전체 회중들이 모였을 뿐만 아니라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했다."
(행 2:46-47; 20:6-11; 히 10:23-25)
교제 모임 장소로 사용된 가정들
□ 데살로니가의 야손의 집이 이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다.
□ 고린도의 한 회당 앞에 있던 디도 유스도의 집이 모이는 장소였다.
□ 가이사랴의 빌립의 집이 바울 및 그 일행들과 같은 뱃길 여행을 하던 사람들과 아가보와 같은 나그네들이 들렸던 장소로 여겨진다.
□ 빌립보의 루디아 집은 모임장소임과 동시에 바울이 유숙했던 장소였다.
□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의 집은 고린도와 로마에서 교회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믿어진다.
□ 빌립보 간수의 집은 그의 개종 이후 복음전도의 센터 역할을 한 것으로 믿어진 다.
□ 스데바나의 가족들은 바울에게 침례를 받았고 바울은 그의 집을 "성도를 섬기는 일"에 사용했다.
□ 예루살렘의 마가의 어머니가 소유한 집의 다락방은 최초의 교회가 모였던 장소 였다.
"집"에 있는 교회들
빌립보 교회 행16:34
로마 교회 롬16:5--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의 집에 있는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 골4:15--눔바의 집에 있는 교회
빌레몬의 집에 있는 교회 몬2
"가정에 있는 교회"가 기독교 신앙전파의 핵심적 요소가 되었음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건물중심의 교회
주후 312년 첫 기독교인 황제인 콘스탄틴은 성당 건물 형태의 교회제도를 낳게 했다. 이 때로부터 신학은 교회별로 달라졌으며 예배 형태 역시 다양해졌고, 그 후 17세기동안 교회의 지도력은 계속해서 동일하게 중앙집권적 형태를 유지해 왔다.
건물중심 교회의 특성들
특정 건물에 모인다 (예배당)
주중 특정한 날에 모인다 (일요일)
특정한 사람이 (성직자)
특정한 사람들에게 (치유나 돌봄)
또는 특정한 사람들을 위하여 사역한다 (예배의식)
이와 같은 건물중심 형태의 교회가 지난 1700년 동안
기독교를 주도해 왔다
건물중심 기독교가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지속되고 유지되어온 이유가 무엇인가? John Wesley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세기부터 조차 교회 내의 잘못된 관행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콘스탄틴 황제의 침례에 이르러 그 잘못은 최 절정에 이르게
되었고 그 것은 이전의 10대 박해자들의 잘못을 모두 합친 것
보다 더욱 큰 잘못이었다. 왜냐하면 그 때에 교회와 국가, 세
상과 그리스도 왕국이 너무도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게 서로 섞여
버렸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이 세상에 오셔서 통치하시게
될 때까지 다시 분리되기가 어려울 것이다.
역사의 한 기록에 따르면 어떤 카톨릭 교황이 성 베드로 성당의
부와 찬란함 가운데 서서 다음과 같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더 이상 은과 금은 없거니와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이 이야기를 들은 한 추기경이 중얼거리기를:
"그리고 더이상 일어나 걸으라는 말도
할 수 없다."
가정에서 건물로 옮겨짐으로써
발생한 교회의 변화
주의 만찬: 상징적 기념에서 의식으로
지도력: 은사에서 직업 전문인으로
예배형태: 참여에서 참관으로
사역형태: 개인에서 사회적인 것으로
제자도: 도제로부터 집단 훈련으로
교제형태: 심층적인 것으로부터 피상적인 것으로
은사사용: 교화로부터 인상적인 것으로
청지기직분: 감사의 드림으로부터 의무적인 것으로
교회와 건물
Howard Snyder는 교회 건물에 대한 그의 비판적인 글에서 건물이 오늘날의 교회에 관한 다섯가지 사실을 입증한다고 말한다:
비기동성
비융통성
교제의 부재
교만
계층의 구분
"여기에서의 과오는 물론 단순한 건물 이상의 더 깊은 것에 기인한다. 그러나 건물이 그 증거인 것이다. 건물은 교회의 계층의식과 유별성을 세상에 말해주는 하나의 표식인 것이다."
(Howard Snyder, 새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중에서)
Donald McGavran은 초대 기독교인들의 가정교회의 유익점들에 관한 글에서 그들은(가정교회들) 한번에 다음과 같은 교회성장의 장애물 네 가지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장애 1: 건물비용
사역과 전도를 위한 경제적 자원을
전용시키는 문제
장애 2: 회당에로의 고정
이방인 지역에로의
복음전파 운동에 방해를 주는 문제
장애 3: 내향성
기독교인 가정들이 복음전도의
센터가 되지 못하게 하는 문제
장애 4: 제한된 지도력
영적 지도력의 전문직화 문제
(Donald McGavran, Understanding Church Growth (Grand
Rapids: Eerdmans, 1970)
교회건물 위험지역
지체교회 장막교회
유령교회 성전교회
유령교회 지체교회 장막교회 성전교회
건물을 비영적, 비 건물,토지 등을 소 건물을 부차적인 건물을 교회로
성서적으로 여김 유할 필요 못 느낌 것으로 여김 여김
공동체 주장하나 대체로 유기적 건물이 성전아님 건물 및 주일 프
매우 개인주의적 조직체 형태 왕국확장 시설 로그램중심 활동
불투명한 존재 셀 조직에 의한 건물은 일시적인 건물이 교회생활
교회 생활 필요를 위한 것 과 사역을 결정
거의 무형적 임대시설에서 필요여건에 따라 예배 및 교육에
예배모임 시설 사용 만 시설사용
즉흥적 모임 배가 과정을 통한 건물은 기능적, 여러형태의 교회
교회성장 융통성 가짐 카톨릭,오순절,
개신교,복음적
유기적상호관계 신약시대 교회 소그룹이 교회생
전무 형태와 가장 유사 활의 가장 중심
적 요소
성장을 촉진하는 세상은 건물을 세상은 건물을
구조의 결여 교회로 여김 교회로 여김
suggested by Howard Snyder, The Problem of Wine Skins, p.79.
극복해야 할 건물중심 교회의 문제
건물컴플랙스 비싼 건물과 부동산은 사역자와 사역을 위한 경제적 자원을 낭 비하게 한다
출중한 목회자 목회자 한사람이 모든 교회의 활동을 관리, 동기부여, 추진 등을 당토록 기대
과중한 업무 몸의 대부분의 일이 교회 안에서의 각 기관 중심으로 이루어짐
오라는 구조 교회 사역의 흐름이 세상을 향한 것이라기보다 교회 자체 내부 로 향함
예배참관 전문적인 지도자들이 설교, 성가, 의식 집례 등을 행할 때 의자에 앉아서 참관한다
교인증모 사람들은 신자의 공동체 속에서 제자로 훈련되기보다 "교인"으로 모집됨
활동의 함정 대부분의 시간과 정력이 활동 유지를 위해 사용되므로 열매맺는 일에 신경쓰기 어려움
셀그룹 왜곡 모든 내부적 소그룹 (주일학교 반 등)과 외부적 그룹 (가정그룹) 이 주일 프로그램을 위해 존재함
유급 사역자 고용된 사역자들은 양떼들을 위한 모든 목양의 책임을 수행해야 함
희석된 비전 본래의 비전이 구조, 세력, 사람에게로 향함
낡은 가죽부대 필요한 변화가 옛 방법과 구조, 전통 등에 의해 제한됨
요새에 숨음 교회가 건물 속에 안주하며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군대로서 전 투하는 일을 회피함
현대교회의 모델
강당형 신자들은 주일에 건물에서 이루어지는 성서강
해를 듣기 위해 모인다
성극형 성실한 회중들은 단에 올린 성극을 보러 모인
다
기업형 전문 사역자에 의해 인도되는 매끄러운 프로
그램이 대중에게 판매된다
사교클럽형 어떤 사교 클럽에 참석하듯 특정한 사교적 필
요 충족을 위해 모인다
오순절 표적과 기사와 신비한 은사 체험을 위해 그리
극장형 스도인들이 모인다
천국복권형 건강과 물질적 필요를 위해 기도하며 또 기도
하기 위해 모인다
미디어교회 TV, 전화, 우편 등을 통하여 짐꾸러미화한 프
로그램 등을 받는다
왕국공동체 하나님의 왕국이 대 그룹과 소그룹 공동체 속
에서 역사한다
(첫 네 모델은 Peter Savage의 The Church and Evangelism에 제시됨)
셀 교회 신학
교회 신학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을
교회를 통해 나타내신다
공동체 신학
교회는 하나님의
공동체적 본질의 표현이다
성육신 신학
하나님은 그분의 몸 안에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거하신다
능력 신학
그리스도께서는 "더 큰 일"을 행하도록
그분의 교회에 능력을 부어주신다
전도 신학
하나님은 그 분의 교회를 사용하여
불신자들을 구원하신다
예배 신학
하나님은 그분의 교회와
"지고하시며" "가장 가까우신" 하나님으로 만나신다
지도력 신학
지도자와 교인 모두가
섬기는 자로서 사역한다
왕국 신학
하나님의 나라가 지상에서
그분의 교회를 통해 역사한다
예수님의 가죽부대 신학
마 9:17
예수님은 예언자들처럼 종교의 형식과
영적 실체의 차이점을 인식하셨다
▦형식: 성막--성전--전통
▦실체: 야훼--"스스로 있는 자"--영
위험성은 형식이 실체를 왜곡시키거나 변질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그 형식의 시작이 얼마나 진실하고 선했는지에 관계없이)
제1세기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형식을 갖춘 종교를 만나셨다
*모이는 날: 안식일
*건물: 성전
*전문적 지도자: 제사장들
*전통체계: 예배의식과 프로그램
*경제적 측면: 십일조와 기타 헌금
예수께서는 이러한 유대교 형식이 다음과 같은 사실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등을 돌렸음을 아셨다
*의식주의
*전통주의
*전문가주의
*기구주의
*율법주의
이상의 "주의들"은 공동체 및 관계의 안티테제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그러한 제도 속에 거하실 수 없으셨다...
그 기원이나 과거의 영광이 어떠했음에 관계없이!
그리스도께서 운명하시는 순간(막 15:38),
지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옛 장소를 떠나 새로이 거하실 곳으로 들어가셨다
하나님의 거하시는 새 장소는 "그리스도인 "안"
요14:20; 요일4:12; 골1:26; 고전3:16; 6:19; 롬8:9-11
하나님의 거하시는 새 장소는 교회와 "함께" 하는 곳
마18:20; 요14:23; 엡2:19-23; 행2장
복음의 새 포도주를 보존키 위하여 새 가죽부대가 필요했다
오늘날의 교회가 1세기 교회의 모습으로
재구성 된다면 그 모습은 어떠할 것일까?
셀 그룹 교회의 신학
창조시 하나님 자신을 공동체(삼위일체)로 계시하심
◆ 하나님의 본질은 인간의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분은 삼차원 적이면서 공동체적 모습으로서 한분이시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세 가지 방식이다. (창1:26; 3:22; 11:7; 요 3:1-3,10)
동산에서 완전한 공동체가 거절되고 파괴됨 (창3)
파괴된 공동체의 특성들:
◆우리 자신과 우리가 행한 일을 숨기기 원함
◆자기를 방어하고 타인을 비난함
◆자신과 타인을 기만
◆타인을 조작함
십자가에서 완전한 공동체가 구속됨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깨어진 공동체가 구속됨
◆엡 2:11-13
◆골 1:19-22
◆고후 5:17-19
◆인간 사이의 깨어진 공동체가 구속됨
엡 2:14-16: 유대인과 이방인이 원수였으나 십자가에서 하나가 됨
교회에서 완전한 공동체가 친밀한 관계의 셀 그룹 속에서 회복됨
◆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집이 함께 지어져 하나님의 성령께서 거 하시는 장소가 됨 (엡 2:19-22)
◆ 하나님의 백성은 친밀한 셀 속에서 함께 살아 신약성서가 묘사해주 는 "교회"를 이루어야 한다. 1세기 그리스도인은 가정과 같은 곳에 모여서 소규모의 교제 속에서 신앙생활을 했었다는 사실을 신약성서 로부터 발견할 수 있다.
◆ 이러한 형태의 교회를 보여주는 신약성서의 증거들:
♠관객아닌 참여자로서의 예배 (엡 5:19; 골 3:12)
♠가정에서의 모임 (고전16:19; 롬16:5; 골4:15, 행5:42)
♠소그룹 속에서의 인간관계 (마18:15-17)
♠가정마다에서 있었던 애찬 (행 2:46)
♠소 그룹 속에서 행해진 은사들 (고전14:26-33)
천국에서 완전한 공동체가 영원히 실현된다
◆요 14:1-3
◆고후 5:1-5
◆빌 3:20-21
◆계 21:3-4
총체적 복음전도
신약성서에서의 복음전도는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의 능력, 그리스도인/신앙공동체 속에 표현된 하나님의 임재 사이의 상호작용, 그리고 기도에 의한 이 모든 것의 총체적 역사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각 요소는 불신자를 거듭나게 하는 경험을 위해 준비시키는 독특한 역할을 한다.
진리....정보(INFORMATION)
능력....개입(INTERVENTION)
사람....상호작용(INTERACTION)
기도....중보(INTERCESSION)
이와 같은 복음전도의 네 가지 요소는 기록에 남은 1세기 개종경험에 상호작용한 것으로 보여지지만 그러나 언제나 같은 정도로 같은 조화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바울의 개종경험에서 우리는 에디오피아 내시의 개종경험과 다른 조화를 본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공식이나 조리법을 찾을 수 없다:
"일정한 양의 지식에다 상당량의 능력을 부어 풍부한 임재의 경험에 섞어 넣어 그것들을 기도에 푹 절구면 결과적으로 개종경험을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불신자들을 구원시키는 방법은 다음과 같은 것들에 좌우된 것으로 보여진다:
불신자들의 필요
그리스도인의 전도
역사적 상황
하나님의 절대주권
"예루살렘에서 기독교는
라이프스타일이었으며
로마에서 그것은
제도가 되었으며
유럽에서 그것은
문화가 되었으며
미국에서 그것은
기업이 되었다"
Francis Franqpane
Truth, Holiness, and the Presence of God
Morning Star Publication
그리고 한국에서 그것은
기복신앙이 되었다.
교회 가죽부대의 역사
순수한 교회
예수께서 새 포도주를
새 가죽부대에 넣으셨다
정치적인 교회
콘스탄탄 황제가 공식적으로
새포도주를 낡은 성당건물 가죽부대로 격하시켰다
카톨릭 교회
1000년 이상동안 포도주는
낡은 가죽부대 안에서 증발되었다
개혁교회
루터가 포도주를 개혁했으나
그것을 도로 낡은 가죽부대에 부어버렸다
남은 자 교회
웨슬레가 새 소그룹 가죽부대를 사용했으나
낡은 가죽부대 속의 남은 자로 사용했다
부흥된 교회
부흥회 운동은 낡은 가죽부대 속에 있는
묵은 포도주를 개혁하려는 노력이었다
갱신된 교회
오순절과 은사주의 계통은
낡은 가죽부대 속에 성령의 포도주를 부어넣었다
셀 그룹 교회
하나님께서 새 포도주를 담을
새 공동체 가죽부대를 창조하고 계신다
21세기의 교회
새 포도주를 새 가죽부대에 담은 교회
말틴 루터는 교회의 라이프스타일을
개혁하려는 의도를 가졌었다
Emil Brunner는 루터의 Preface to His German Mass 로부터 그의 글을 인용했다. 이 책에서 루터는 세 종류의 예배를 언급하고 있다. 첫째는 라틴어 미사, 둘째는 독일어 의식이다:
"이 두 가지 종류의 예배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아직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행해지도록 허용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을 복음으로 통치할 수 있는 상태가 아직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세 번째 형태의 예배는 진정으로 복음적인 것으로서 아직 모든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행해지는 공적인 예배가 되지 못하고 있지만 진지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복음에 대한 신앙을 행동과 말로 고백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등록하고 어떤 집과 같은 장소에 함께 모여...
여기에서 침례와 주의 만찬식을 간단하면서도 세련된 방법으로 행할 수 있을 것이며 모든 것을 말씀과 기도와 서로에 대한 사랑을 중심으로 행할 수 있을 것이다...간략히 말하자면,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갈망하는 일단의 사람들이 있다면 그러한 형태의 예배는 쉽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러한 회중을 조직하거나 마련할 수도 없고 하기를 원치도 않는 다. 왜냐하면 아직 그럴만한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예배를 원하는 사람들을 아직 많이 만나보지 못했다. 그러나 기회가 온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선한 양심이 꺼리게 되지 않도록 기쁨으로 나의 최선을 다할 것이다.
D. M. Lloyd-Jones는 루터가 개혁을 진행해 가면서 낙심하게 되었음을 지적한다. 루터는 자신의 가르침에 반응한 교회들이 진정한 영적 생활과 활력있는 삶을 결여하고 있다고 느꼈다. Lloyd-Jones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그의 속에 생겨난 이러한 실망감을 더욱 부채질 한 사실은 재침례교 운동이었다....그는 그들에게는 그가 속한 교회에 없던 어떤 수준 높은 삶이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따라서 그는 그들에게 두가지 형태로 반응했다; 그는 자기 교인들을 재침례교도들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훈련시켰으며, 동시에 그는 그들에게서 그토록 아름답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들이 자기 교회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원헀다. 이러한 모든 것의 결과로 그는 자신이 해야 할 한가지 일은 참된 그리스도인을 모아 참다운 교회(내적 교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루터로 하여금 그 당시 교회의 라이프스타일을 개혁시키는데 방해를 준 것들은 무엇인가?
◈ 지나치게 조심하는 정신
◈ 정치적 고려
◈ 교인들에 대한 신뢰 결여
◈ 재침례교도들에게 개혁 주도권을 빼앗길 두려움
루터와 웨슬레 사이의 소그룹 운동
보헤미아 형제단: 이들은 의식이나 전통보다 예수를 믿는 산 믿음과 코이노니아를 강조하는 자들의 소그룹을 형성하여 이 소그룹을 '형제의 연합'(brotherly harmony)이라 부르고 보헤미아에 정착한 후 다시 '형제들의 연합'(unitas fratrum--The Unity of the Brethren)이라 불렀다. 여기서의 연합이란 공동체를 의미했다. 루터는 이들을 자신의 세대 이전의 실제적인 개혁자들이었고 믿고 "사도시대 이후 이와 같은 사도적인 모임에 가깝게 접근한 교회가 일어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Trudinger, 40)
모라비안 교도들: 이들은 보헤미아 형제단의 직접적인 후손들로서 18세기 초에 진젠도르프 백작이 준 땅에서 헤른후트(Hernhut--주님의 파숫군이라는 의미)라는 공동체를 이루어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성숙해갔다. 이들은 유럽 일대에 엄청난 영적 영향력을 끼쳤는데 그 원동력은 끊임없이 작은 그룹을 이용하여 서로간의 관계의 중요성에 주의를 집중한데 있었다. 그는 코이노니아를 교회의 제 3의 성례전으로 추가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이 코이노니아를 위한 작은 그룹을 반덴(banden)이라 불렀다. 8-12명으로 구성된 '밴드들'(bands)에 관한 한 모라비안 역사가의 언급은 주목할만하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영적 생활과 연합을 새롭고 깊게 하기 위해 추구하며 도달하고자하는 셀 모임들은 진젠도르프 백작이 이끄는 정착자들로 구성된 헤른후트에서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모라비안들은 세계 도처에 이러한 셀 모임들을 조직해야만 했다
경건주의 운동
Doyle L. Young의 『새로운 교회생활』p.106.에서
Philip Jacob Spener: 경건주의 운동의 아버지(1635-1705)
1669년에 이르러 스페너는 교회가 그 신분상 그리스도인들이 정기적으로 소 그룹으로 함께 모여 서로 격려하며 훈련하는 것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스페너의 목회전략은 아니었으나 교회에 필요한 상호관계임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어떤 경우라도 우리 목회자들은 회중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은혜로 탁월한 기독교 지식을 가지고 있는 어떤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제사장직을 감당키 위해 고통을 감수하면서 목회자들과 함께 그리고 목회자 밑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은사를 활용하여 동료 교인들에게 가르치고 교정하며 개혁하는 일을 하지 않고서는 필요한 것들을 모두 강단에서 가르칠 수 없음이 분명하다" The Pietatis as a Model for Home Bible Study Groups, Kenneth J. Derksen, Crux XXII, no. 4 (December 1986: pp. 16-26)
다음 해인 1670년, 스페너는 이러한 상호 교제와 돌봄을 제공해 주는 모임들을 만들었다. 루터와 마틴 부쩌(Butzer)는 실제적으로 그러한 모임을 만들었다는 증거는 없으나 그런 소 그룹을 제안했다. 후에 Jean de Labadie와 Jacob Boehme 는 Geneva와 Gorlittz에 가정모임을 만들었다. 이 운동들은 소규모였고 잠간 있었지만 스페너는 스그룹의 필요에 대한 결정적인 성서적 배경을 발견했다.
Collegia pietatis(경건 모임들)로 불리우는 모임들은 주일 오후 스페너의 집에서 모임으로써 성장했다. 교인들의 요청에 따라 스페너는 1670년 상호 사역과 상장을 위해 개인적으로 가정모임을 시작했다. 남여 교임들이 주중에 두번 모인(여자는 따로 앉고 말하지 못하게 함) 이 모임은 처음에는 주일 설교에 대하여 토의하거나 경건서적을 읽었다. 후에 성겅 토의가 핵심이 되었다.
스페너는 "경건하게 그룹들을 조언했다." 토의의 위험이 명백하게 보였다. 5년 후에 Pia Desideria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참여자의 영적 성장, 그리고 그들의 제한점을 고려하여 다루어져야 한다. 간섭과 논쟁과 자기자랑 따위의 일들로부터 지켜져야 하며 이 모임에서 지도자 역할을 하는 목회자에 의해 적절히 조절되어야 한다.
이 그룹들 속에서 경건주의자들은 죄와의 싸움과 경건함에의 성장에 도움을 입기 원했다. 그룹들의 목적은 보다 큰 모임인 교회를 를 새롭게 하는 것이었다. 전체 교회가 새로와 지려면 개교회의 진지한 교인들로부터 시작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러한 ecclesiolae in ecclesia(교회 속의 작은 교회들)가 제도권의 교회를 대치시킬 어떤 시도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들은 그 영향력이 모든 반죽에 미치는 누룩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기대했으며 따라서 스페너는 가정 모임에서는 어떠한 형태의 예배도 금했으며 오직 교회에서만 예배의식을 허용했다. 거기에다가 그 모임들은 그 자체가 "진정한" 교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Pia Desideria에서 스페너는 Collegia는 다음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기술했다.
그것들은 교회가 다시 초대 기독교 공동체의 모습을 반영한 것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도구들어어야 한다....그것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을 다른 사람들과 구분시켜놓는 통로가 되어서는 않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을 바리새적인 사람들로 만들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와 같지 않았다. 수 많은 사람들이 유익을 얻었지만 독일 교회의 완전한 개혁을 실현되지 못했다. 프랑크프르트의 조심스런 시의회는 그 모임들에게 가정이 아닌 교회에서 모일 것을 명령했다. 스페너는 이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모임에서 개방적으로 말하지 못하게 했다고 기록한다. 사실상 그 명령은 그 모임의 조종을 울리게 했다.
어떤 Collegia는 교회에서 갈라져 나가 독자적인 교회들이 되었고 이러한 현상은 기존 교회로부터 혹심한 비난을 받게 했다. 스페너의 전기를 쓴 작가는 이러한 결과가 스페너의 불분명한 입장과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의 전개를 중단시키는 일에 미온적인 그의 태도에 기인했다는 의구심을 제기했다. 실제로 1703년(Collegia가 시작된지 33년 후)에 이르러 스페너는 그 모임에 대하여 냉소적이고도 의심스러운 태도를 보였으며 그가 프랑크프르트를 떠났을 때 다른 곳에서 어떠한 모임도 만들지 않았다.
마침내 독일의 경건주의는 두 가지 거대한 적을 만나게 되었다. 첫째는 주관적 입장으로 인도하는 "삶"에 대한 지나친 강조였다. 그들은 교리를 적절히 강조치 않았다. 둘째는 기존의, 제도화된 루터 교회(정부의 지원 하에 있는)의 저항을 극복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절망감은 침묵하거나 갈라져 나가게 하고 말았던 것이다.
진젠도르프의 젊은 시절에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 북서유럽의 '경건주의자' 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신앙생활 핵심은 '경건한 모임'(collegia pietatis)라 불리우는 작은 모임으로서 개인 집에서 10명 정도가 모여 예배드리며 교제하는 것이었다. 이 모임의 지도자인 아우그스트 프랑케와 함께 살면서 진젠도르프 백작이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요한 웨슬레, 자신의 운동을 위해
새 가죽부대를 만들다
요한 웨슬레: 웨슬레는 회심은 물론 전도의 열정에 있어서 모라비안 교도들의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수 많은 회심자들을 양육하고 제자화 하기 위하여 8-12명으로 구성된 '조모임' 또는 '양육 셀 모임'을 만들어 자신의 부흥운동의 기둥으로 관리하며 살폈다(Trudinger, 39-43). 후에 이 모임은 감리교단으로 발전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감당했다. 1742년 "죄사함과 구원의 확신을 체험한 자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신도반(band)을 만들었고 신앙의 추구자요 아직 회심치 못한 이들을 위한 속회(class)가 조직되었다. 한국교회의 구역예배가 바로 여기로부터 왔다.
웨슬레 가족들은 새로운 교회생활 구조를 개발토록 운명지어졌던 것처럼 보인다. 요한과 챨스의 아버지인 사무엘 웨슬레는 이미 1701-2년에 특별한 종류의 "종교모임"의 기초를 놓았다. 그러나 그 운동의 모양을 갖추고 힘을 얻게 한 것은 요한 웨슬레였다. 『급진 웨슬레와 교회갱신 유형』 The Radical Wesley and Patterns of Church Renewal이라는 책에서 언급한 다음의 Howard Snyder의 말은 웨슬레가 그 당시 교회에 신약성서 교회 형태를 회복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감리교 모임은 곧 작은 반과 소규모 모임으로 나뉘어졌다. 아마도 감리교 모임은 반과 소규모 모임의 집합이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왜냐하면 소속됨의 일차적 요점은 반에서의 공동체적 수준의 친밀감이 감리교 모임에 참여하기 전에 요구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반 모임은 전체 건물의 모퉁이 돌이었다. 반들은 그 기능상 사람들이 사는 여러 이웃들을 만나는 가정교회였다(교육만을 위한 학급으로서의 반이 아니라).
그들은 일반적으로 일주일에 한번 이상 저녁에 모였다. 참석자 각자는 자신의 영적 성장이나 특정한 필요나 문제에 대하여 보고하고 다른 사람의 지원이나 기도를 받았다. 필요에 따라 책망이나 조언이 주어졌으며 언쟁이나 오해 따위가 해소되었다. 이와 같은 일에 한 두 시간을 투자한 뒤 기도와 감사의 찬양으로 모임이 종결되었다.
1738년 12월 15일에 세워진 소규모 모임을 위한
다음의 규칙들은 모임의 투명성을 확인해 주었다
우리 모임의 목적은 "서로 죄를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데 있다. 이 목적을 위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한다:
1. 최소한 일 주일에 한번씩 만난다.
2. 특별한 사정이 없는한 정해진 모임 시간에 정확히 참석한다.
3. 정해진 시간에 참석한 사람들만으로 찬송과 기도로 정확히 시작한다.
4. 각자는 자유롭고 솔직하게 지난번 모임 이후의 자신의 영적 상태와 생각, 언 어, 행동에 있어서 잘못된 점, 그리고 느꼈던 유혹 등을 말한다.
5. 모든 모임은 참석한 사람들의 상태에 적합한 기도로 마친다.
6. 우리중 어떤 사람이 자신의 상태를 먼저 말하고 나서 나머지 사람들에게 순서 대로 그들의 상태, 죄, 유혹 등의 문제를 털어 넣도록 요청하기를 기대한다.
매 모임에서 토의를 위해 사용되어질 일련의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1. 지난 모임 이후 지은 죄가 무엇이엇는가?
2. 당신이 느낀 유혹은 어떤 것이었는가?
3. 그런 문제들로부터 어떻게 벗어났는가?
4. 당신이 죄인지 아닌지를 의문할 때 무슨 생각이나 말 또는 행동을 했는가?
GEORGE WHITEFIELD와 소 그룹
RAY STEDMAN은 18세기 영국의 웨슬레 영적 각성운동에서 이루어진 자신의 개종경험을 기술하면서 죠지 휫필드의 말을 인용했다. 그의 이 인용은 휫필드가 소그룹의 목적과 행습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알려준다.
"나의 형제들이여...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위하여 해주신 일을 정직하고 자유롭게 서로 말합시다. 이것을 위해 다른 사람들처럼 다음과 같은 것들을 하는 것이 잘하는 일입니다.
스스로 4,5명의 작은 모임을 구성하십시오
자신의 마음에 있는 것을 서로 고하십시오
필요한대로 서로 위하여 기도하고 위로하십시오
오직 경험해본 사람만이 그러한 영혼의 연합과 교통의 말로 다 할 수 없는 유익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형제를 자신처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자신의 마음을 열고 필요한 충고와 책망과 훈계와 기도를 받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신실한 사람은 그러한 일을 가장 큰 축복중 하나로 여길 것입니다."
Quoted by John R. W. Stott, p. 111; one People:Layman & Clergy in God's Church; Ray Stedman (Downers Grove, III.: Inter-Varsity Press, paperback), p. 88.
공산치하에서의 중국 가정교회
공산치하에서의 중국 기독교의 확산은 소 그룹으로 이루어진 가정교회 모델에 의한 것이었다. 중국이 공산화되고 모택동에 의해 죽의 장막이 드리워진 것이 1949년으로서 당시 기독교인의 숫자는 70만(중국 정부의 공식적 통계) 또는 834,000명으로서 채 100만명이 못되었다. 그후 중국 교회는 철저한 핍박 속에 처했으며 특히 1966년부터 시작된 문화대혁명으로 기독교인들이 혹독한 시련과 핍박을 받아야만 했다. 31년이 지난 1980년에 등소평에 의해 중국의 문이 드디어 다시 열렸으며 그 때에 기독교인은 이미 5,000만명이라는 엄청난 숫적 증가를 보이고 있었다. 1980년 개방당시 중국 정부의 삼자교회에 등록한 교인들의 숫자는 70만명이었는데 이들이 1999년 현재 1,300만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삼자교회에 등록하기를 거부한 교인들은 지하교회로 숨어들었으며 이들의 숫자는 삼자교회의 다섯 배에 달한다고 볼 때, 지하교인만 6,500만 명이므로 대략 8,000만명에서 1억명 정도로 추산한다.
자유가 없고 오히려 극심한 핍박만 있던 그곳에서 어떻게 그러한 폭발적인 복음전파가 가능했는가? 성경도 없고, 예배당도 없고, 잘 훈련된 교사들이나 목회자들도 없는 가운데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그들이 작은 집단으로 교회를 이루었고 그러한 교회들은 목숨걸고 믿음생활을 했을 뿐 아니라 복음전파에도 헌신적이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약속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의 진정한 코이노니아가 이루어진 곳에 성령의 나타나심과 역사는 불신자들에게 복음의 위력을 나타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비록 서방세계의 셀 교회 형태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셀 교회의 정신이 중국교회에도 동일하게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어진다.
현대제자훈련운동
한편, 현대제자훈련운동의 영향으로 평신도의 사역이 크게 자극받게 되었으며 이러한 자각운동은 새로운 가죽부대운동으로 그 방향을 잡고 지난 70년대 이후 교회의 구조를 바꾸는, 이른바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하면서 셀 그룹 교회모델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모든 교인들이 하나님의 복음의 사역자라는 자각은 교회로 하여금 그러한 자각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을 모색하게 만들었고 그러한 노력의 결과가 바로 셀 그룹 교회인 바 앞으로 이러한 노력은 계속적으로 확산될 것으로 믿어진다.
현대세계를 뒤흔드는 역동적 세력들
"내 적 묵 시"
인 구 폭 발
심 리 적 소 외 감
사 회 적 퇴 보
교 회 의 정 체
영 적 혁 명
하나님은 오늘날도 교회를
사용하실 수 있는가?
교회가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법에 있어서
몇 가지 다른 방법을 취할 수 있다:
과거회상 하면서 과거 교회의 영광을
경외로움으로 바라보는 태도
미래조망 하면서 그리스도 재림시의
교회가 받을 영광을 바라보는 태도
현재집착 하면서 사회적 정치적 행동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태도
이 모든 방법들은 한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교회에 대한 낮은 수준의 관점이 그것이다. 세 가지 모두는 교회가 그 영적 장엄함을 구가했으며 더 이상
과거의 능력과
현재의 목적과
미래에 대한 비젼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느끼고 있다.
하나님은 교회에 대하여 포기하셨는가?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공동체적 본질, 살아계심의 임재, 그리고 영적 능력을 모든 세대에 나타내도록 의도하셨다. 하나님께서 21세기의 그분의 크신 일을 위하여 교회를 세심히 준비시키고 계시는 시기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것이 왕국 접근방법이다!
"나는 과거를 아쉬워함과 동시에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었네
그 때 주님은 홀연히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은 스스로 있는 자다,'
잠시 멈추셨고 나는 기다렸네
계속 말씀하셨네
네가 과거의 잘못과 후회 속에
살게된다면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지.
그곳에 나는 함께하지 않는단다
내 이름은 스스로 있었던 자가 아니다
네가 미래의 문제와 두려움 속에
살게 된다면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지
그곳에 나는 함께하지 않는단다
내 이름은 스스로 있을 자가 아니다
네가 지금 이 순간에 살고 있다면
그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지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단다
내 이름은 스스로 있는 자이다."
Helen Mallicoat
왜 하나님은 셀 교회 사용을 택하셨나?
저명한 역사학자
HERBERT BUTTERFIELD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셀이라 부르는 조직이 세계 역사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조직인 것으로 믿어진다:
자책할 것이 없는 자기 배가자이다
파괴시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방대한 조직은 그 중심부가 약화될 경우 즉시 시들지만 셀은 그 강력한 생명력 을 보존할 수 있다.
정부의 힘에 도전할 수 있다
어떠한 현상도 열 수 있는 적절한 지랫대이다
Butterfield, H. "The Role of the Individual in History," Writings on Christianity and History. ed. C. T. McIntire, New York, OUP, 1979, p. 24.
초대 기독교의 경우를 들든, 16세기 칼빈주의를 들든, 혹은 현대 공산주의를 들든, 셀이라는 소수의 사람들이 시민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음은 분명한 것 같다.
현대 교회를 위한 셀 구조의 유익점들
주차 상태 이상의 교회가 될 수 있다
빛과 소금이 세상으로 침투해 들어갈 수 있는 접촉점을 제공한다
교회는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단위로 나뉘어진다
12-15명의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이루는 기초 단위가 된다..."하나님의 소대"
목양 사역을 위하여 많은 일군들이 양성될 수 있다
셀 구조는 목자들이 양들을 인도하고 양육하는 일을 배울 수 있는 장이 된다
교회가 "연관성 차이"를 좁힐 수 있다
80%의 성인들이 기독교 신앙이 그들의 삶의 방식과 연관성을 가진다고동의한다. 28%의 성인들만이 그들의 지역에 있는 교회들이 오늘날의 사람들이 사는 방식에 연관성을 가진다고 강력히 동의한다
지원 그룹이 "최전선"에 위치한 결과가 된다
셀 조직은 양들이 세상에서 "꼴을 먹고" "돌봄을 받는" 방법이다
상처받은 심령과 세상의 필요를 돌보는 방법이다
모든 신자는 사역자이며 따라서 개인적인 사역은 상처받은 사람을 도와준다
신약성서의 교제를 누릴 수 있다
따뜻하고 투명하며 개방적인 코이노니아가 발생할 수 있는 구조이다
의무감이 아닌 넘처 흐르는 것으로 섬긴다
공동체의 삶과 능률적인 활동들은 의무감에 짓눌림으로부터 가볍게 해준다
프로그램보다 사람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사람들이 교회를 위해 존재하기보다 교회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며 능력을 주실 수 있는 장소이다
"그 가운데 거하시겠다"는 예수님의 약속과 능력을 부어주시겠다는 약속이 소 그룹 상황에서 성취된다
영적 은사들이 적절히 활용된다
영적 은사들이 소 그룹 상황 속에서 순전하고 능력있게 사용된다
교회가 왕국을 위한 싸움을 싸울 수 있게 된다
정력을 정치적, 교단적, 경제적 싸움으로부터 그 방향을 재설정할 수 있다
교회는 선교사 운동이다
소그룹의 사람들은 단순히 선교를 지원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들이 선교사인 것이다
불신자들을 향한 다리가 가설된다
불신자들이 공동체의 맥락 속에서 접촉되며, 개발되며, 구원된다
실제적인 배가가 발생한다
성장 지수가 시설, 유급 사역자의 숫자, 경제력, 지역, 사회적 장애물 따위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85/15" 형태가 역전된다
더 이상 15%의 사람들이 85%의 일과 헌금을 하는 일은 없게 된다
건물 문제가 해결된다
셀 교회의 생활과 성장에는 건물의 신축, 유지가 주요 사안이 아니다
섬기는 지도자상
한 사람의 지도자가 아니라 다양한 은사를 가진 섬기는 지도자들의 팀이 사역한다
축제 분위기의 예배
셀들이 연합하여 예배를 준비하며 교육, 흥취를 목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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