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랑공주-호동왕자도 부부첩자였어요”
[한겨레] 인터뷰/<역사를 훔친 첩자> 펴낸 김영수 영광지역문화복지연구소장
살수대첩의 명장 을지문덕, 신라 장군 김유신, 고구려와 왜에 볼모로 잡힌 신라 왕자들을 구한 충신 박제상. 이들의 공통점은? 삼국 시대 위인들! 글쎄 틀린 답은 아니지만, 너무 두루뭉술하다.
<역사를 훔친 첩자>(김영사 펴냄)를 쓴 김영수 영광지역문화복지연구소장은 이들의 공통점을 ‘첩자’라고 주장한다. 첩자, 영어로 스파이, 우리 입과 귀에 익숙한 말은 간첩이다. ‘간첩’ 을지문덕, ‘간첩’ 김유신. 왠지 어색하고 불편하다. 더덜이 없이 1980년대까진 초등학생들이 ‘반공 방첩’ 구호를 외치고 ‘저기 가는 저 아저씨 간첩인가 다시 보자’ 는 반공포스터를 그렸다.
예나 지금이나 첩자의 본질은 엿보기와 이간질이다. 첩자는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해야 했고, 따라서 역사의 주역이 될 수 없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석·박사 과정에서 고대 한-중 관계사를 연구한 김영수 소장이 첩자에 관심을 둔 계기는 <삼국유사>의 한 대목이었다. 그는 650년 신라 승려 원효와 의상이 고구려 땅 요동을 거쳐 당나라에 유학가려다 첩자로 몰려 감금됐던 사실에 주목했다. 고구려가 이들을 첩자 혐의로 붙잡은 것은, 고구려 스스로가 승려를 첩자로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거칠게 말하자면, 삼국시대는 전쟁의 시대였다. 삼국시대 700년 가운데, 역사 기록에 남은 전쟁 횟수만 460번이다. 김 소장은 “국제정세는 급변했고 끝없는 무력충돌에 내몰린 삼국은 상대를 엿보고 속이기 위한 첩보전을 치열하게 벌였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는 이런 문제의식을 담아 지난 93년 <고대 첩자고> 논문을 발표했고, 이번에 책을 냈다.
삼국시대 기록에는 첩자조직이나 첩자이론이 전혀 없다. 그는 <삼국유사>, <삼국사기>에 남아있는 첩자 사례를 분석하고, 중국 일본 역사서를 비교했다. 이 책이 새로운 사실을 밝혀낸 게 아니라, 기록된 사실과 인물을 다르게 해석하고 기록의 빈틈은 역사적 상상력으로 채웠다.
그는 고구려를 주변국과 혼인 관계까지 첩자 활용 수단으로 삼았던 첩보강국으로 설명했다. 고구려 대무신왕은 낙랑 공주를 며느리로 삼아 아들 호동과 낙랑 공주를 ‘부부첩자’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을지문덕은 거짓항복 같은 기만술로 수나라와 첩보전에서 승리했다. 연개소문은 그물같은 첩보망으로 당을 손바닥 보듯 감시했다.
김 소장은 첩자가 신라 삼국통합의 밑거름이 됐다고 주장한다. 김유신은 고구려, 백제 지도층에 첩자를 침투시켰고 삼국통합 뒤 영토 야욕을 보인 당나라에도 첩보망을 가동했다. 김유신은 당대 최고 정보전문가였다.
이 책은 첩자란 무겁고 음습한 주제를 가볍고 산뜻하게 다뤘다. 인터뷰 중간에 “책이 쉽게 읽히더라”고 했더니 “더 쉽게 풀어 쓰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역사연구자가 한문으로 된 사료에 갇힌 채 대중적 글쓰기를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첩자가 인간의 역사에 등장했던 수많은 보통 직업 가운데 한 가지로 취급될 때 본연 의미를 찾을 것”이며 첩자의 역사적 복원을 주장한다. 그는 권력이 건강함을 잃으면 애초 가치 중립적인 첩보조직이 변질된다고 분석했다. 고구려는 연개소문이 죽은 뒤 당나라를 향한 첩보망이 안으로 집중 작동하면서 권력 유지의 도구가 됐다. 권력투쟁을 벌인 연개소문 아들끼리 벌인 소모적 첩보전, 이를 노린 당의 첩보술에 걸려 고구려는 맥없이 망했다. 삼국을 통합한 뒤 신라 첩자조직도 외부 위협이 아니라, 내부 정적을 향해 칼끝을 겨누었다.
그는 “첩보조직이 적을 찾아 움직이지 않고 내부를 겨냥할 때 첩보 조직의 붕괴, 권력자의 몰락, 국가의 위기로 이어진다”다고 말했다. 굳이 삼국시대가 아니더라도 십수년전 우리 사회를 돌이켜봐도 분명하다.
그는 책을 내기 전 국정원장한테 추천사를 부탁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기회가 된다면 ‘21세기 첩자’ 국정원 직원을 상대로 첩자의 사회·역사적 의미를 강연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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