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칼럼니스트

포르노를 통하여 성을 배우는 아이들

북코치 2006. 8. 28. 09:19

포르노를 통하여 성을 배우는 아이들


십대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성교육 강사는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포르노이다. 아이들은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야한 동영상을 친구들과 함께 보면서 성에 대한 지식을 얻는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처럼 청계천 뒷골목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돈을 주고 사던 빨간 책이나 빨간 비디오는 이미 전설이 되어 버렸다. 인터넷은 우리의 사랑하는 아이들로 하여금 과거보다 훨씬 일찍 성에 눈뜨게 하였다.

몇 년 전 십대들이 자신들의 성행위를 촬영한 ‘빨간 마후라’라는 비디오가 나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였다. 일진회라는 학교 폭력조직에서는 입회 신고식으로 선배 언니가 후배 여학생으로 하여금 남학생 오빠에게 성을 상납하도록 하기도 한다. 청소년 성폭력 가해자의 연령이 열네 살 내지 열다섯 살로 낮아지고, 원조교제 즉 십대 소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매매는 날로 늘어난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보통 아이들에게도 성문화는 있다. 특히 포르노 보기는 십대들 사이에서 일반화한 현상 중의 하나이다. 어느 아이의 이야기처럼 반에서 1등 하는 아이와,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아이들 말고는 다 포르노에 관심이 있다.

아이들은 대개 포르노를 보면서 자위행위를 한다. 거기서 한 발 더 나가면 이성친구와 섹스를 한다. 남자 고등학생들 중에서는 섹스를 백 번 이상 해 본 아이도 있다. 노는 아이들 사이에는 실전경험의 횟수를 가리키는 단위로서 접시라는 말을 사용한다. 한 접시는 100번이다. 이 말은 접시 하나에 담을 수 있는 콩의 숫자가 대략 100개일 것이라는 데서 유래한다. 한 통계에 의하면 십대 가운데 남자 중학생과 고등학생은 각각 6.4%와 17.5%가 성관계를 경험하였고, 여자 중학생과 고등학생도 각 3.2%와 6.7%에 달한다. 1981년만 해도 반드시 혼전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청소년의 비율이 81.8%였으나, 최근에는 39.3%로 현격히 낮아졌으며, 혼전순결은 전혀 불필요하다는 비율도 1.5%에서 16.5%로 높아졌다.


못 참겠으면 콘돔 끼고 하라?

오늘날 학교의 성교육은 순결교육에서 피임교육으로 바뀌었다. 여학생이 교실에서 분만을 하는 사태까지 벌어지자, 피임교육의 근본적 문제점이나 실효성에 대해서는 따져보지도 않은 채 바로 시행에 들어간 것이다. 어른들이 뭐라고 하든 간에 아이들은 섹스를 할 것이다. 이는 상당수 아이들이 술과 담배의 위험성을 잘 알면서도 그것을 끊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아무런 보호 장치가 없는 것보다는 콘돔을 사용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것이 피임교육의 논리이다. 미국의 많은 학교 양호실에서는 학생들에게 콘돔을 나누어준다. 에이즈의 확산이라는 공포 분위기 속에서 도덕적 논쟁은 하나의 사치일 뿐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어떤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섹스의 욕구를 도저히 참을 수 없으면 콘돔을 끼고 하라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개념을 성교육에 원용하여 청소년들도 성을 즐길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들은 현실논리에 치우쳐 가치와 원칙을 상실하고 만 성교육의 현주소를 잘 말해준다. 콘돔만 끼면 그만인가. 성병에 걸리지 않고 임신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말인가. 자위행위로는 욕구를 해소할 수 없다는 말인가. 청소년들도 이성(異性)을 사랑할 권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절대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다. 혼전순결은 남녀 공히 간직해야 할 소중한 가치이자 원칙이다.


수업시간에 포르노를 틀자?

아이들의 성교육에 대한 만족도는 예전보다 높아졌다. 그러나 그 만족도는 아직 40%가 안 된다. 성교육의 내용은 콘돔사용법을 가르칠 정도로 상당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바뀌었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는 아직 구태의연한 측면이 많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포르노 All boys do it(포르노 볼 아이들은 다 본다는 뜻)』이라는 책의 저자 엄기호 씨는 이제 학교는 수업시간에 포르노를 틀 정도로 용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포르노를 학교에서 틀 수는 없다. 법적으로 어린이들에게는 교육적인 목적이라 할지라도 포르노를 보여주지 못한다. 엄씨의 주장은 포르노에 대해 아이들과 토론하라는 것이다. 교사는 아이들이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알며,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듣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고 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대중매체들이 쏟아내는 성에 대한 이미지와 정보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고, 아이들 스스로 도덕적 규범을 내면화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많은 기성세대가 십대의 성 개방 풍조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십대는 기성세대를 보고 배울 따름이다. 십대의 그릇된 성문화를 탓하기 전에 기성세대가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성교육을 할 때 교사가 명심해야 할 사항이다.


순결의 실익을 깨우치자

우리 주변에는 순결을 거부하는 이데올로기가 넘쳐난다. 순결을 지키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고, 비정상적인 것이며, 억압당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성의 가치를 일깨우는 가치교육과 함께 순결을 지켰을 때의 실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알려줄 필요가 있다. 사람의 몸은 남녀 공히 자존심의 실체이다. 몸을 함부로 굴리면 자존심도 없어진다. 남자가 여자를 갈구하는 순간, 여자는 하나의 고기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남자는 여자가 가지는 희망, 꿈, 욕구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은 오로지 여자의 몸을 차지하는 것이다. 남자가 정말로 여자를 사랑한다면 섹스를 하자고 강요하지 않는다. 섹스를 하자는 압력에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자가 떠나갔다면, 그 남자는 다시 돌아볼 가치가 없는 저차원의 남자이다.

성적 관계에 대한 선을 분명히 그어놓고 이성교제를 하면, 남자아이들도 성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고 즐거운 시간을 갖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성적 관계에 얽매이지 않은 사람은 자유를 누릴 수 있다.


피임교육의 허점

피임교육은 수단에 치우쳐 목적을 상실하고 말았을 뿐 아니라 실효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콘돔을 나누어주었던 미국의 학교들은 학생들의 임신을 줄이는 데 성공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임신 비율이 증가한 사례도 있다. 어떤 학교는 학생들에게 콘돔을 나누어준 지 2년도 채 안 되어 그 학교 학생들의 미혼 출산율이 전국 평균보다 31%나 늘어났다. 콘돔을 나누어주는 것은 학생들에게 콘돔을 끼고 섹스를 하면 임신으로부터 안전한 가운데 마음껏 섹스를 즐길 수 있다는 그릇된 확신을 심어줄 수 있다. ‘안전한 섹스’라고 하는 환상을 통해 혼전 성교와 혼외정사 같은 위험한 행동을 부추길 뿐이다.

콘돔은 성병에는 더욱 취약하다. 한 조사에 의하면 한국 여대생의 15%가 성병을 앓는다고 한다. 서로 사랑하는 부부간의 성관계는 아름다운 초원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러나 혼전성교나 혼외정사는 지뢰밭에 비유할 수 있다. 콘돔은 또한 혼전 성교와 관련한 감정적, 정신적 상처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한다. 많은 청소년들은 성행위 후에 성병에 걸리거나 임신하지 않았는데도 공연한 걱정 때문에 안절부절 하기도 한다. 마음을 위한 콘돔은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