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섹스하려고 친해지는 남자, 친해지려고 섹스 하는 여자
심양섭(沈良燮)
남자는 섹스를 하기 위하여 여자와 친해지려는 반면 여자는 남자와 친해지기 위하여 섹스를 한다는 말이 있다. 남자에게는 섹스가 목적이고 교제는 수단인 데 반하여 여자에게는 교제가 목적이고 섹스는 수단이라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나의 건방진 주장이 아니다. 불륜문제를 연구하는 국내외의 전문가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하는 말이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와 삶을 함께 하려는 결심을 포함한다. 그런데 남자는 사랑을 통하여 삶을 함께 하려 하기보다는 우선 즐기려고 한다. 사랑하지 않는 상대와도 섹스를 한다. 아내나 애인과 함께 길을 걷다가도 짧은 치마나 풍만한 가슴의 여자를 보면 한 눈을 파는 게 남자이다. 남자는 시각적 이미지에 약하고, 여자는 사랑한다는 청각적 속삭임에 약하다고 한다. 남자에게는 결혼할 여자 따로 있고 섹스 할 여자 따로 있다고도 한다. 미국의 어느 바람둥이 대통령은 학창시절 생리적 욕구는 많은 육감적인 여대생들을 통하여 해소하고 아내로는 이지적인 여학생을 선택하는 남성 이기주의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여자들 중에도 피가 뜨거운 여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성편력을 무용담처럼 자랑하는 남자가 있듯이 남성편력을 취미 삼는 여자가 있다. 심지어는 자기보다 나이 어린 소위 영계 남(男)을 좋아하는 아줌마도 있다. 십대 고등학생이 인터넷에서 동정(童貞)을 팔겠다며 경매에 내놓자마자 삼십만 원에 팔리기도 하였다. 이런 아줌마들의 심리를 노린 십대 남학생들이 채팅 사이트에서 연상의 유부녀에게 러브 콜을 보낸다. 그러나 그런 피 끓는 여자들은 많지 않다. 남자들은 흔히 그런 여자를 우연히 만나 소위 홍콩 가는 꿈을 꾸지만 그야말로 꿈일 뿐이다.
많은 남자들이 마음으로는 “나는 너를 원해(I want you)."라고 하면서 입으로는 “나는 너를 사랑해(I love you)."라고 말한다. 여기에 여자들은 속아 넘어간다. 속지는 않더라도 남자와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서는 섹스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여자 킬러들은 한 수(手) 위다. 처음에는 마치 육체적 관계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능청을 부림으로써 여자가 안달하게 하여 끝내는 정복하고 만다. 여자들끼리의 시기 질투 심리를 이용하여 친구지간인 여자들을 차례로 섭렵하기도 한다. 유부녀의 허파에 바람을 잔뜩 불어넣어놓고는 여자가 함께 살자고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정과 일터로 돌아가는 남자도 있다.
조물주는 남자와 여자를 다르게 지었다. 특히 남녀의 성 충동과 성욕은 판이하다. 여자들은 단순한 성기의 결합보다는 친밀함을 원한다. 상호 대화와 교감을 통하여 사랑을 확인하고 발전시키기를 원한다. 입맞춤만 하더라도 여자는 애정의 표시로 생각하지만 남자는 섹스의 전희로 간주한다. 여자가 키스 이상은 안 된다며 아니오(NO)라고 말해도 남자는 잘 믿지 않는다. 여자도 속으로는 좋으면서 내숭을 떠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자가 정말로 거부하면 남자는 마치 놀림 당한 사람처럼 화를 낸다. 어디까지 주겠다고 사전에 약속한 적도 결코 없는데 말이다.
남자가 한 여자에게 몰두하는 것은 여자가 아직 모든 것을 그에게 보여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자는 불덩이처럼 뜨겁게 돌진하지만 정상에 깃발을 꼽고 나면 급속히 식어버린다. 그리고는 새 꽃을 찾아 떠난다. 반면에 여자는 남자에게 한 번 몸을 허락하면 그 순간부터 그 남자에게 집착하고 매달린다. 그럴수록 여자는 값싸지고 추해진다. 남자를 사귈 때에는 무언가 여자의 신비로운 부분을 남겨 두어야 한다. 이것은 연애학 제1조이다.
여자 섭렵하기를 생의 낙으로 아는 자(者)들은 어느 직장에나 있다. 세상이 다 아는 유부남 직장인이 멀쩡한 처녀 사원을 농락하곤 한다. 그런 남자들의 삶의 목적은 내 몸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요, 열심히 일하여 최고경영자가 되는 것도 아니요, 오직 여자를 유혹하여 재미를 보는 것이다. 이는 십대 양아치 때의 버릇을 어른이 되어서도 못 고쳤음을 의미한다.
여자가 남자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거부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남자를 사랑할수록 아니오(NO)라고 말하기가 어려워진다. 남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바로 그것이 함정이다. 사랑의 속도가 느리다고 떠난 남자는 사랑을 누릴 자격이 없다. 빨리 사랑에 빠지는 남자는 그 만큼 빨리 떠난다. 사랑은 속도전이 아니다. 더욱이 진실한 사랑이라면 그의 본색을 보기 전에 성문을 열어 주지 말아야 한다. 열린 문은 다시 닫기 어렵다. 혼자되는 두려움 때문에 가치 없는 남자에게 매달려서는 안 된다. 자신을 소중히 여겨 아니오(NO)라고 말하는 여자가 오히려 남자로부터도 존중 받는다.
남녀는 언제 한 몸이 되어야 할까. 흔히 사랑이 무르익어 서로가 간절히 원할 때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말이다. 남녀가 한 몸이 되려면 그 삶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 삶은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배짱이 없다면 함부로 몸을 허락하여서도, 공략하여서도 안 된다. 남자는 실연을 당하면 다른 여자를 통하여 그녀를 잊으려 하지만, 여자는 실연을 당하면 다른 남자에게서 그를 느끼려 한다. 남자는 여자를 잊으려고 술을 마시만, 여자는 남자를 생각하려고 술을 마신다고도 한다. 여자의 상처가 상대적으로 크다는 이야기이다.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섹스는 남녀를 최고의 친밀감에 도달하게 한다. 그것을 삶의 합일(合一)로 연결하지 못하면 상처는 어마어마하다. 단지 여자만 불행해지는 게 아니다. 남자도 상처를 받고 불행해진다. 남녀 모두의 불행이다. 삶과 섹스는 분리할 수 없는 일체이다. 섹스하려고 친해지는 남자도 없어야 하지만, 친해지려고 섹스 하는 여자도 없어야 한다. 진정한 친밀함은 하나 된 삶에서만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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